2025. 03. 25.
본 글은 2024년 12월 2일에 진행된 이문정과 심예지 작가의 대화 이후, 작가의 필답을 업로드한 것입니다.
LEE : 이문정 Sim : 심예지
LEE : 미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과 미술을 전공하게 된 계기, 그리고 언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등을 말해주면 좋겠다. 작가로 활동하기 전까지의 이야기 중 미술과 관련된 것들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Sim : 돌이켜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려왔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인체 데생이나 수채화도 배우게 되었다. 이때 현대미술의 개념을 처음 접했다. 학교에서 미술 교과서에 실린 이미지를 보는 것과, 동시대 예술가들의 활동을 보는 건 충격적일 만큼 달랐다. 그전까지는 작가의 주관보다는 사실적 재현을 중심으로 하는 그림 그리기 정도로 미술을 다소 납작하게 이해했다면, 이 시기에는 작가의 역할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달았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삶을 비추고, 생각을 전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작가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목표에 대한 이해가 막연했다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해가 선명해지고 목표가 더욱 확고해졌다.
LEE : 현재까지 심예지의 작업에서는 회화가 주류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실험을 배우고 시도하게 된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방식의 작업이 있는가?
Sim : 대학에서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실험을 배우고 시도했다. 나는 매체가 전달 내용을 선행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단순히 회화가 가장 익숙하거나 회화밖에 할 줄 몰라서 회화를 선택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회화에서도 최대한 다양한 재료를 시도하는 데 집중했고, 그 외에도 설치, 조각, 영상 매체 작업을 시도했으며, 신체에 드로잉을 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아직 보지 못하신 작업은 많을 것 같다. 대학 및 대학원 시절에도 지금의 관심사가 일관되게 유지되었는데, 학부 때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분열하고 조합하며 초현실적인 문장을 만드는 참여형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대학원 시절에는 문장의 공백에 형광펜을 사용해 이를 분할하면서 텍스트의 해체 및 통합을 연구하기도 했다. 즉, 내 작업에서 해체하고 다시 접합하는 과정은 변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텍스트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탐구했다면, 지금은 몸 이미지를 대상으로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결국,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개념은 나의 일관된 관심사이며, 표현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대학원을 졸업하는 시점에서는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줄 대표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장지에 파스텔, 아크릴 형식의 회화가 되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예정이다. 이미AI 기반 프로젝트를 포함한 여러 새로운 시도를 구상 중이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확장되더라도, 회화는 내 작업에서 계속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곱게 자란 자식>, 2023, acrylic, color pencil, pastel, pencil on Korean paper, 112.1×162.2cm, 도판 제공=심예지
LEE : 《2024 화랑미술제》 내에서 열린 《특별전 ZOOM IN》에서 작품을 처음 보고 동양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고, 일본화가 떠올랐다. 장지를 사용해서가 아니었다. 특정한 기법이나 지식에 근거한 게 아니라 즉각적으로 받은 인상이다. 한편으로 실험성이 강한 만화(웹툰)나 애니메이션도 떠올랐다. 한편으로 팝(pop)적이란 느낌도 조금 있었다. 작가의 의도가 어떤지 잘 모르는 상태였는데 꽤 강한 서사가 담겨있을 거란 기대를 하기도 했다. 작품 안에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담기는지 궁금하다.
Sim : 동양화 전공일 거란 오해를 많이 받는다. 사람들은 이미지를 보고 익숙한 것들과 연관 짓곤 한다. 그 해석이 일관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보통 그러려니 한다.작품의 구상은 단적인 동사나 상황에서 시작되며, 개인적인 고민을 반영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작품 안의 서사 또한 소설처럼 장황하게 구성되어 있기보다는 감각이나 상태에 집중한다. 또한 나는 작품 속에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가지 상황처럼 보이지만, 작은 요소들을 배치해 관람자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한다. 동사로 구성된 작품은, 예를 들면 <곱게 자란 자식>(2023)은 신체의 연결과 해체, 그리고 신체와 공간 사이의 긴장을 다룬다. 두 신체는 마치 한 몸처럼 보이지만, 한쪽이 다른 쪽을 업으며 불안정하게 연결된 모습을 보인다. 담 너머에는 검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고, 신체가 이를 향해 손을 뻗고, 무언가를 주는지 혹은 받는지 알 수 없는 등 여러 요소를 숨겨두면서 다양한 상상을 요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목 없는 사내에게>(2023)는 단순히 '목 없는 사내에게 귓속말하기'라는 초현실적인 장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화면을 자세히 보면, 손이 머리를 누르는지, 밀어내는지 모를 모호한 긴장이 존재한다. 또한 교차하는 손의 움직임이 무언가를 주는 것인지, 요구하는 것인지, 혹은 붙잡으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나는 작품 속에서 이런 요소가 시선을 붙잡고 맴돌게 하는 걸 좋아한다.
상황을 담은 작품의 예시로는 <복부 절제를 불신>(2023)은 외과적 수술을 앞둔 의사와 환자의 시선이 교차하면서도 하나가 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인물은 수술대 위에 누운 것처럼 보이면서도, 외과적 수술에 돌입하기 직전의 의사와 같은 동작을 취한다. 비릿한 소독제 냄새 속에서 퍼지는 의심과 긴장감, 시선과 불신의 주체가 교차하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복부 절제를 불신>, 2023, acrylic, color pencil, pastel, pencil on Korean paper, 112.1×162.2cm, 도판 제공=심예지
LEE : 사람들이 동양화를 전공했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평평해 보이는 색칠과 선의 두드러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동양화에서 선을 떠올린다. 또 전통 동양화는 서양화와는 다른 명암 체계를 갖는다. 표현 방식에 어떤 작가적 의도가 담겼는지 듣고 싶다.
Sim : 내 작업에서 '선'은 몸을 절개하기도 하고, 한데 봉합하기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몸이 평면 위를 흩어졌다가도 묘하게 합쳐지는데, 이때 원근감의 교란을 강조하기 위해 평면적인 표현이 동원되는 것이다. 즉 동양화를 지향하는 바는 없고, 초현실적이고 몽롱한 이미지를 위함인 것이다. 평면 회화에는 x축과 y축만이 존재하고 z축은 완전히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관람자는 그 빈틈을 상상으로 채울 수 있다. 선이 화면을 계속 갈라놓고, 동시에 신체를 얽으며 다시 이어 붙이는데, 그 과정에서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혹은 '어느 부위가 겉이고 어느 부위가 안인지'가 혼재된 지점을 만들어낸다. 이 모호함이 작품에 유동적인 잠재력을 부여한다. 작품은 한 번의 해석으로 고정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상상을 유도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관람자들은 본인만의 방식으로 그 '제3의 시점'을 상상하게 되고, 그래서 평면 안에서 완결되지 못한 z축이 관람자의 의식 속에서 열리도록 의도한다. 즉 현실적 구체성을 흐리게 하고 상상의 여백을 만들기 위한 표현 방식이다.
<Death>, 2024, acrylic, color pencil, pastel, pencil on Korean paper, 112.1×162.2cm, 도판 제공=심예지
LEE : 앞서 몸의 안과 밖을 언급했는데 인간 몸은 처음부터 많은 구멍들을 갖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와 연결된다. 작가의 설명도 그렇고, 시각적으로도 비정형이나 에로티시즘(eroticism) 같은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이론이 떠오른다. 물론 작품을 반드시 특정한 이론과 결부시켜야 하는 건 아니다. 또한 에로티시즘은 성적인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혹시 학위 논문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선행 연구 작가로 다뤘는가?
Sim : 내 작업에서 신체를 가르고, 파고들고, 내부로 들어가는 행위가 바타유가 말한 신체의 경계 허물기와 어렴풋이 닮았다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바타유의 에로티시즘이 성애에만 한정되지 않고, 금기와 경계의 파괴, 연속성 같은 개념을 포괄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작업에서 신체의 표피를 찢고 내부로 향하는 행위는 성적 탐닉이나 사랑을 전제하지 않는다. 나는 신체를 특정 감정, 특히 성적 사랑이나 에로티시즘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해석은 내 의도와는 어긋날 가능성이 크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신체는 서로의 관계를 탐구하기보다, 조형적・구조적 해체와 재조합에 초점을 맞출뿐더러, 특정한 성별로 규정되지도 않는다. 다수의 신체가 등장하는 이유도 조형적 구성을 고려한 것이지, 폭발적인 순간을 묘사하기 위함이 아니다. 존재나 관계의 경계를 허물거나 연속성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다. 따라서 내 작업은 에로티시즘과는 거리가 있다. 형식적 특성의 교집합으로 인해 논문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선행 연구 작가들 중 하나로 다뤄진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학술적 의무로 포함된 개념일 뿐, 내 작업의 중심을 관통하는 핵심 이론은 아니다. 논문에서 핵심적으로 다룬 개념은 욕동(Trieb)이었다. 삶욕동과 죽음욕동을 설정하고, 이들 각각의 성질을 토대로, 작품 속에 나타나는 신체의 상태와 회화적 요소를 기준으로 작품을 분류하는 방식으로 논문이 전개되었다. 내 작업을 특정 이론과 연관 짓는다면, 나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나 올리버 색스의 신경학적 경험과 신체 상태에 대한 연구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LEE : 대부분의 작업이 가볍게 그린 드로잉에 근거하는가?
Sim : 그렇다. 드로잉을 자주 하는 편이고, 이를 바로 작업으로 옮기기보다는 시간차를 두고 다시 펼쳐보는 편이다. 그중에서 작품으로 이어가고 싶은 것들을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자동기술적인 드로잉(automatism drawing)으로 시작되고, 이를 통해 연상되는 모티프를 즉흥적으로 더한다. 참고 이미지 또한 그에 따라 그때그때 촬영하거나 수집하는 편이다. 드로잉은 아날로그나 디지털로 시작되는데, 뭐가 됐든 스케치에서부터 작업이 완성될 때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계속 오간다.
LEE : 초현실주의라는 부분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미술 사조와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연결할 때 해당 사조에서 활동했던 경우가 아니면 '적'이란 단어를 붙이는 편이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의견이고,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Sim : 작품 안의 서사나 이미지가 초현실적인 건 맞지만 이(초현실적이라는 표현)는 포괄적이다. 몸의 표피가 찢어지면서 작품이 전개되기 시작하는 부분도 그렇고, 작업 과정에 자동기술적인 드로잉이 포함되는 점에 있어서도 내 작품은 초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나는 초현실주의가 주는, 논리를 벗어난 자유로운 시각화 방식에 꽤나 오랫동안 매료되어 있다. 다만 전통적인 초현실주의는 일반적으로 정신분석학과 연계되어 설명되고는 하는데(막상 초현실주의에 대한 브르통과 프로이트의 의견은 달랐다고 하지만) 나는 정신분석학적・심리학적 관점이 아닌 생리학적(의학적, 신경학적) 관점을 가진다. 나는 '몸'을 심리나 감정 차원으로 접근하기보다 생리학적・물리적・감각적 차원(조직, 내부 기관, 뼈・근육 구조, 감각 체계)에 집중한다. 즉 감각적, 물질적 초현실을 탐색하고 감정보다 감각을 조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때문에 초현실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몸을 매개로 하되, 물리적・생리학적 요소를 통한 감각적 초현실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초현실주의와는 다른 지점을 개척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따로 연구 중인 프로젝트도 초현실주의의 현대적 확장 및 재해석에 관한 것인데, 이는 회화가 아닌 다른 매체로 나타나게 될 것 같다.
<목 없는 사내에게>, 2023, acrylic, color pencil, pastel, pencil on Korean paper, 162.2×224.2cm, 도판 제공=심예지
LEE :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적 정체성이 정해져 있는가?
Sim : 정해져 있지 않다. 나는 작품 속 신체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성별이 드러나는 요소도 배제한다. 이는 단순한 형태적 특징이 아니라, 내 작업에서 신체가 하나의 구조적・조형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특정한 성별로 규정된다면, 그것이 작품 속에서 하나의 장치처럼 작용하면서 내 작품론과 무관한 해석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LEE :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출처는 어디인가? 모델을 직접 데생하는지, 아니면 온라인이나 책 등에서 수집하는지 궁금하다.
Sim : 대부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작업하지만, 참고하는 것은 주로 나의 몸이다. 스케치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손을 보고 그리기도 한다. 신체 이미지의 경우, 외부에서 차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한, 특정한 이미지를 직접 찾아보면 사고가 이에 묶이거나 제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참고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어디선가 본 이미지가 체화되어 내 안에 녹아든 후에야 작품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있다.
LEE : 인체를 그리기 때문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해도 해부학적 지식이나 자료가 필요할 것 같다. 또 인간을 그리니 인간의 몸이나 행동 등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텐데 평상시에 자연스럽게 관찰하는 편인가?
Sim : 먼저, 해부학적 지식은 단순히 참고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체화된 상태에서 작업에 반영된다. 즉, 특정한 자료를 직접적으로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해부학적 이해가 내재된 채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이다. 작업하다가 연상되는 구조를 즉흥적으로 추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작품에서 '몸'을 '인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수술대에 오른 신체' 같은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인간의 움직임이나 행동에는 관심이 없고, 신체의 움직임을 분석하거나 실사 영상을 통해 관찰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뇌와 감각 체계에 대한 관심이 더 크며, 이와 관련된 연구가 앞으로의 작업을 확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상하는 묘지>, 2023, acrylic, color pencil, pastel, pencil on Korean paper, 112.1×162.2cm, 도판 제공=심예지
LEE : 앞서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고 말했는데 연관성이 있을 것도 같다.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작품 제목이다. 논리적인 듯 비논리적인 듯한 제목인데, 어떻게 짓는가? 그리고 작품들이 시각적으로 상당히 연결성이 강한데 혹시 이것이 시리즈처럼 연결될 가능성은 없는가? 작품들이 전부 독립되어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해서 확인차 물어본다.
Sim : 만화나 애니메이션과의 연관성: 내 작업과 만화/애니메이션은 연관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이미지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내 작업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 뭐든지 간에 그 해석이 작가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는 한, 하나의 의견으로서 존중할 수 있다.
LEE : 작품 제목을 어떻게 짓는가? 보통 작품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제목을 짓는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소에 생각의 조각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그것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목을 만든다. 시를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 특정한 개념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함축적인 방식으로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하는 편이다.
Sim : 시리즈처럼 연결될 가능성: 현재까지의 작업은 개별적인 작품으로 진행되었으며, 특정한 연작 형식을 의도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 나온 작품이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지는 않지만, 각 작품이 가지처럼 뻗어나갈 가능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