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01.

본 글은 2025년 3월 26일 진행된 이문정과 송석우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artist 송석우(Song, Seokwoo)

LEE : 이문정 SSW : 송석우

LEE : 사진을 시작-전공하게 된 계기로 어머니의 카메라에 관한 관심을 이야기했는데, 관련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사진을 전공한 이후 사진작가로 활동하게 된 이유와 과정 등이 궁금하다.

SSW : 어려서부터 미술을 한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2~3년 정도 미술학원에 다닌 게 전부였다. 미술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이 없다. 이후 고등학교 입학할 즈음에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내가 멍하게 있을 때가 많은 것을 보신 어머니가 그것도 관찰의 일종이라 생각하시고 미술학원에 보내셨다고 한다. 관찰한 것을 그리기 학습으로 연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다. 그러다 어린 나의 스케치 촬영을 돕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니셨다. 이후 내가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특별히 미술을 좋아하고 잘해서 미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지금도 내가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화를 전공한 작가들에 비하면 못 그리는 축에 속한다. 어렸을 때 운동하는 걸 너무 좋아해 축구부 활동을 했는데 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지금도 작가들의 축구 모임에 참여 중이다. 여하튼 사진 전공으로 입시 준비를 했고 미대에 진학했다. 입시를 준비할 때도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때 사진에 정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꼭 전공을 해야지’ 하면서 전투적으로 입시를 준비한 게 아니라 대학교에 들어온 뒤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된 경우이다. 내 작업을 통해 교수님들이 피드백 주시는 것도 즐거웠고 성취감도 있었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우아하고 멋져 보이는 상업적인 사진보다 사진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좋아했다. 사진을 통해 ‘작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송석우 <Wandering, Wondering #39> 2023, Archival Pigment Print, 110x138cm, 도판=작가 제공

LEE : 작업이 꽤 빠른 속도로 알려졌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볼수록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강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공연을 완성한 뒤 사진을 찍은 것 같다.

SSW :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한 마음이다. 제 작업이 빠르게 알려졌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아직도 스스로는 많은 부분에서 배워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고, 작업마다 새로운 고민과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작업 초기부터 연출이라는 수행적 태도에 주안점을 두고 인물의 몸짓이나 움직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면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해 왔다. 그래서인지 완성된 이미지가 수행-행위적인(performative) 장면으로 확장되었을 때 나 역시 내 작업을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게 결국 어떤 장면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이 누군가에게 공연처럼 다가갔다는 점이 뜻깊은 피드백이 되는 것 같다.

LEE : 작업을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사회 구조와 규범, 그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 불안과 갈등, 적응, 낙오’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든 안 드러나든―오늘날 활동하는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후 활동하는 많은 작가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관심사이자 문제의식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데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작가의 안팎에서 제공하는 설명이 일반론에 그친다는 인상이었다.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부연이 필요할 것 같다.

SSW : 그에 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말한 적 없다. 동시대 미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인 만큼 차별화되는 부분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지만 조심스럽다. 타인의 폭력과 차별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는 정도로만 밝히겠다. 해당 이슈만 부각될 위험도 있고, 결과적으로 잘 견뎠고, 그 시간으로 인해 더 강인해졌기 때문에 트라우마로만 남지도 않았다. 닫힌 시스템 안에서 하나의 규범을 따르게 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구심력을 강화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위계질서를 강요하면서 권력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지만 결국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공동의 주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피하는 이유를 조금 더 말하면, 교훈적이거나 희망적인, 또는 비관적인, 즉 특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진에서 정지된 도상들을 이미지 자체로 봐주길 원해서이다. ‘인물들이 왜 순간적으로 그런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을까?’란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으면 좋겠다. 미술 전공의 유무와 무관하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진을 제시하고 싶었다. 조금 더 다양한 서사를 끌어내길 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사진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는 태도와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물론 작업할 당시 내 상황도 영향을 준다.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비판적인 느낌이 강할 때는 분위기를 환기하는 요소를 넣는다.

LEE : 분명 서사적이고 궁금증도 생기는 사진이다. 시각적으로는 초현실적인 인상이 강하다. 미술 사조로서 초현실주의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초현실적이란 뜻이다. 이런 분위기에는 앞모습(얼굴)이 가려져 있거나 뒷모습만 보이는 사람들의 반복적 등장이 한몫한다. 이에 대해 사회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온전히 형성하지 못하거나 잃어버리는 사람들,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청년 세대를 담아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관련해 페르소나도 언급된다. 하지만 역으로 저항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숨김으로써 여지를 주고,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가?

SSW : 얼굴을 가린 이유는 명확하다. 일단 얼굴은 신체에서 제일 잘 보이는 부분이고 표정-기호가 다 담겨있다. 나는 기호가 읽히지 않길 원했다. 시선이나 표정이 제거되어야만 나머지 몸짓들이 극대화되고, 작가가 저항을 말하는지 연대를 말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대상과 카메라의 거리도 멀리하고, 카메라 워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송석우 <The Passage of Breath> 2025, Archival Pigment Print, 154x110cm, 도판=작가 제공

LEE : 작품에 관한 작가의 설명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여성과 남성을 분류해서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 본인의 경험을 근거로 시작한 작업이기 때문에 청년 세대 남성을 중심에 놓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본인의 작업이 남성, 여성, 혹은 청년 세대, 나아가 사회 속 인간을 오히려 단순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SSW : 질문의 내용은 항상 고민하는 부분들이고, 딜레마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한데,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되고 계속 고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제일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은 일반화, 단순화이다. 내 작업이 특정 세대 전부를 아우를 수도 없고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을 대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로 20대 또는 30대 중에 나와 같은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고 이방인, 타자로 살지 않는 청년도 있을 거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작가 노트나 인터뷰에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게 말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작업의 주안점은 ‘사람이 타인과 맺는 관계’이다. 관계 맺음으로 인해 관계가 계속 파생되고 확장되어 연대하고 이런 것들에 정말 관심이 많다.

LEE : 한편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 이방인과 같은 청년(개인),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 등은 오늘날 작가들이 다뤄주길 기대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요구되는 주제이고, 사회 속에서 예술가로 교육받고 작업하는 작가는 그것을 체화해 사회가 요구하는 엘리트 예술가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SSW :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런 주제로 작업하는 건 동시대의 시스템이 주입한 결과일지 모른다. 시의적 이슈를 다루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현대미술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작가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만 사회가 나를 억압한다고 해도 의도했든 안 했든 시스템에서 0.1의 오차라고 발생한다면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송석우 [이름 없는 소우주] 전시 전경, 천안시립미술관, 2023.11.14.~12.17. 도판=작가 제공

LEE : 관계 맺음에 저항과 연대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시스템의 안과 밖을 오가는 줄다리기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중요하다. 시스템을 비판하지만, 완전히 이탈하면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 시스템에 완전히 안착해도 결과는 같다. 사회적 의미가 꽤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작업은 이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질문도 받고 그만큼 고민하게 될 거다.

SSW : 작가마다 사용하는 어휘의 난해함에 차이가 있을 텐데, 나는 꽤 쉬운 어법으로 작업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하는 이야기와 이미지가 잘 결부되어 드러나는 게 중요한 부분이다.

송석우 <Wandering, Wondering> Field Sketch, 2020~2023, 도판=작가 제공

LEE : 작품들이 퍼포먼스의 현장 사진 같기도 하다. 사진이지만 행위성이 강하다. 네이버에 공개된 작가 설명 중 작업 분야에 “사진, 퍼포먼스”라 적혀 있었다. 실제로 작가는 “사람이 타인과 맺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몸짓 언어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거기에 관여하는 사회적인 원리들을 탐구하고자 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전술했듯 이런 설명이 없어도 사진에서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사진은 행위성이 가장 적게 반영될 수 있는 장르인데 송석우는 화면 속 사람들을 통해 그것을 보여준다. 이후 작업이 실제 공간에서 공개되는 퍼포먼스나 영상으로 확장할 가능성은 없는가? 현장에서 영상도 같이 촬영하는지 궁금하다.

SSW : 찍을 때도 있고 안 찍을 때도 있다. 현재까지 촬영한 영상이 작품이 될 가능성은 없다. 과거 공모 면접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정지된 한 컷으로 끝나는 게 아깝지 않냐는 질문이나 영상으로 남기면 그것이 작품화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내 답변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그냥 스틸 컷(still cut)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상을 아카이브로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 적은 있다.

LEE : 사진에 찍힌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특정한 행위를 하고 있어 무대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에서도 전시장을 마치 사진을 위한 무대처럼 사용한다는 인상이었다.

SSW : 대부분 사진이 굉장히 납작하고 평평한 매체라고 알고 있고, 내 작업이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구상적인 형상이 있는 사진이기 때문에 어떤 디스플레이로 이미지를 다양하게 선사할지 고민하다 보니 서사 구조에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히 디스플레이의 다양성을 추구하게 된다. 자연히 사진이 왜 벽면에만 걸려야 하는지, 사진이 액자에 꼭 들어가 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고, 전시 환경으로부터 받는 영향에도 감각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전시를 준비할 때 디스플레이를 즉각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같은 작품도 전시 공간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려 하는 편이다. 현대미술이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이고, 나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니 내 안에서도 생각의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 것 같다. 액자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큰 작업을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룹전에서 다른 매체의 작품과 반응하거나 융합될 때 공간을 압도하는 효과를 꼽을 수 있다.

송석우 [2025 고양 아티스트 365+ 기획전 엮어 보아] 전시 전경,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2025.7.8.~8.3. 도판=작가 제공

LEE : 사진에 퍼포머들이 등장하고 관련된 모두를 작가가 연출해야 한다. 작업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SSW : 세 과정을 거친다. 공간 섭외를 한 뒤 인물 섭외를 한다. 흥미로운 장소를 발견하면 혼자 그곳에 가서 장소를 사전 촬영하고, 퍼포머들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고 촬영할지 충분히 디지털 드로잉으로 스케치한다. 운전하며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안전하게 정차해 두고 바로 둘러보는 편이다. 때로는 목적 없이 여기저기 다닌다. 국도든 고속도로든 정처 없이 다니는데, 장소 찾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꽤 빨리 찾게 된다. 장소를 결정한 뒤에는 여러 번 재방문한다. 선택한 장소은 드넓은 곳이자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내가 지향하는 질서와 패턴에 들어맞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다음 퍼포머들과 함께 공간에 가서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다. 현장에서 바로 행위를 요청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대화하고 관계를 맺은 다음, 그 결과에 맞춰 행위를 결정하고 촬영한다. 인물 섭외와 인터뷰 시간에 꽤 긴 시간을 소비한다. 내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퍼포머가 얼마나 공감하는가도 중요하다. 공감도가 높을수록 그들의 자세나 공간과의 조화가 자연스러워진다. 즉흥적인 부분은 거의 없고, 모든 계획이 완벽히 완료되었을 때 본 촬영에 들어간다. 아마 장소 결정이 그나마 우연성이 높을 거다. 이후에 사진을 찍는 기술적인 과정에 들어간다. 나는 일반적인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아날로그 4x5 대형카메라를 쓴다. 그래서 결과물을 즉시 확인할 수 없다. 아날로그 카메라는 나의 작가적 태도와 굉장히 긴밀하다. 때로는 아슬아슬하고, 신중하게 작업해야 한다. 실내가 아니라 완벽히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다. 촬영 후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고, 현상이 완료된 필름을 자가 스캔하여 디지털 파일로 리터칭을 한 뒤 출력한다. 필름에 먼지도 많고 스크래치가 많아서 세세히 확대해 보면서 지워야 하는데 한 장당 3시간에서 5시간이 걸린다. 디지털카메라가 아니기 때문에 촬영의 결과물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작업 초반에는 현상을 맡기고 받아보기 전까지 초조하게 기다릴 때가 많았다. 물론 내가 감당해야 하는 요소이다. 지금은 예상과 결과물 사이의 간극이 꽤 줄었지만, 그래도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최종적으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면 그 성취감은 형언할 수 없다. 그래서 느린 호흡으로 이러한 작업 과정과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LEE : 퍼포머들은 지정된 동작을 취한 뒤 일정 시간 멈춰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SSW : 셔터의 속도로는 한 1/60초~1/125초 정도가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화면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략 2~3초 정도는 멈춰 있어야 한다. 물론 움직이는 사람도 생긴다. 본인이 흔들리는지 모를 때도 있다. 그러면 다시 찍어야 한다.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LEE : 모델 동작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열어두는가?

SSW : 자의성을 많이 부여하진 않는다. 내가 스케치한 특정한 자세들을 미리 퍼포머들에게 전달한다. 동작들은 시각적인 부분과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결정한다. 퍼포머들은 직업 모델이나 무용수가 아니다. 전문적인 퍼포머들은 이미 각자만이 체화된 몸의 언어를 갖고 있어서 동작이 너무 유려하거나 무용 같아 보일 수 있다. 공개 모집은 하지 않고 주변에 알음알음 추천을 받는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퍼포머 중 대표 퍼포머를 지정한 후 무전기로 지시 사항을 전달한다. 참고로 퍼포머 중 두세 명은 거의 고정 인원으로 참여한다. 나머지는 매번 새로운 인물이다.

LEE :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작품마다 어느 정도의 시일이 필요한가?

SSW : 본 작품 촬영 시간만 생각하면 하루에 2~3신(Scene) 정도 찍는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기획 단계까지 생각하면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송석우 [제8회 싱가포르 국제사진비엔날레 주제전, Future Known as Unpredicted] 전시 전경, 37 Emerald Hill, 2022.09.16.~2022.10.30. 도판=작가 제공

LEE : 사진은 회화와 매우 다르면서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환영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사진작가가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회화의 그것과 다를 것 같다. 화가는 캔버스 위에서 공간을 구성한다면, 사진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무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을 제외하면 실재하는 현실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

SSW :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오늘 인터뷰에서 그에 대한 답을 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사진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의상을 같이 전시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물론 이 경우 유치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LEE : 모든 영역의 작가가 다 고민하겠지만, 사진의 경우 모두가 다 사진을 찍는 시대에 사진작가로서 하게 되는 고민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카메라-장비를 쓰는가에 따라 영향받을 확률도 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잘 사용하지 못하거나 장비에 압도되면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SSW : 특히 사진은 아마추어부터 하이 아마추어, 프로의 경계가 없어져 보이는 시대까지 온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물의 차이는 이미지적으로도 분명히 있고, 그 차이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민감하거나 답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물론 아마추어적인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장비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능력은 순전히 작가의 몫이고 여기에서 능력이 구별된다. 내게 필요한 장비가 뭔지 판단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나는 다방면으로 면밀하게 알아본 후 두 개의 카메라로 좁혔고, 둘 다 직접 써본 다음 현재 쓰고 있는 카메라로 선택했다. 내가 쓰는 카메라가 내가 원하는 작업에 부합했다. 장비의 영향이 제로일 수는 없겠으나 진짜 실력 있는 작가라면 장비를 압도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써도 실력이 안 되면 완성도 높은 사진이 안 나온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물론 장비로 실력을 잠시 숨길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래 갈 수 없다. 나의 경우엔 새로운 카메라가 나오는 족족 시범 사용을 하거나 신상 카메라를 검색하지 않는다. 아마 새로운 작업을 기획할 때 다른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알아볼 거다.

LEE :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은유적-함축적이고 초현실적이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볼수록 예상보다 직접적이고 담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이기 때문에 주제-메시지 전달이나 상징의 사용 등에서 작가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직관적이란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고, 메이킹 포토라 해도 실재하는 피사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재현성이 강하다. 그 균형을 조절하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SSW : 의식적으로 조율하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들, 영감을 떠오르게 한 글귀 등을 노트에 적어두고, 그것들을 추려내는 과정을 거치는데 재현이나 은유, 상징 등을 조율하려고 하다 보면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다. 작업 노트도 담백하게 꾸밈없이 적는 편이다. 최근에는 비평 웹진이나 관심사에 부합하는 주제의 논문을 주로 보고 있다. 세마코랄(Semacoral,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에도 자주 들어간다.

송석우 <Ethereal movement> 2022, Archival Pigment Print, 109x82cm, 도판=작가 제공

LEE : <No Dress Code>를 비롯한 최근작들은 회화적인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인상이다. 실제로 그와 같은 감상평을 들었을 것 같다.

SSW :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자칭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Wandering, Wondering> 연작은 앞으로 계속 진행하겠지만 하나의 작업만 할 수 없고, 다양한 시도에 대한 욕구도 있다. 전혀 다른 어법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나의 양식만 보여주는 작가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에 집중했다. 물론 다른 연작들이 그런 것처럼 관계를 생각한 작업이다.

LEE : 실뜨기나 눈과 눈이 비스듬히 닿을 듯한 장면을 찍은 사진 등에 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도나 해러웨이(Donna Jeanne Haraway)도 떠오른다. 실뜨기 참여자들은 주체와 타자 모두를 넘나들 수밖에 없다. 앞선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받고 나도 영향을 준다.

SSW :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게 뭘까 하다가 실뜨기를 떠올렸다. 잘못하면 금방 엉켜버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작업이든 일상의 삶이든 관계라는 키워드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LEE : 작품을 완성할 때 시각적이든 비시각적이든 반드시 유념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SSW : 하나 있다. 현장에서 반드시 카메라 워크를 지킨다. 카메라 워크는 포괄적인 단어이긴 한데, 내가 말하는 건 작업자인 내가 서 있는 위치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 간의 거리를 뜻한다. 액자-사진 안에 들어가 있는 인물-도상의 크기가 어떻게 들어가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촬영자와 대상 간의 거리가 정해져야 그게 물성을 가진 결과물로 나왔을 때 관객들이 내 사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최대한 전시장에 걸렸을 때의 상황을 계획하고 촬영에 임한다. 관람자들도 내가 촬영 현장에서 모델들을 보는 느낌으로 보도록 조정한다. 그리고 전시장에서는 벽에 걸린 작품과 관객의 거리감, 그리고 어느 높이에 걸리는가가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