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29.

함정식 <기도 퍼포먼스 버전> 2015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교회 십자가에 불이 들어온다. 검은 존재가 ‘현란한 빛다발’¹⁾을 들고 춤을 추듯 골목길을 돌아다닌다.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의 영화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1957) 속 죽음의 사자에서 영감을 받은,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죽음이자 악마이다. 혼자만의 카니발을 즐기는 춤추는 광대 같은 죽음은 심각함과 장난스러움이 공존하는 유동적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기도 퍼포먼스 버전>, 단채널비디오, HD, 3분 58초, 2015 ⓒ함정식

<기도 퍼포먼스 버전>(2015, 이후 <기도>로 기재)에는 십자가, 빛, 어둠 같은 상징이 작동한다. 종교적 상징은 모호하고 신비로운 대상을 외형적으로 단순화시키지만, 의미적으로는 그 깊이와 폭을 확장시킨다.²⁾ 추상적인 죽음은 의인화됨으로써,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빛은 물질화됨으로써 인식되고 의미 발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밤, 빛이 보인다. 빛을 향해 나아간다. 밝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드디어 빛을 마주한다. 그런데 어둠을 밝히는 빛, 절대 선인 신을 상징하는 빛을 어둠 그 자체인 죽음(악마)이 갖고 있다. 희망의 종착지를 향했으나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익숙함을 완전히 벗어나는 낯섦은 의미의 충돌을 일으키고 흔들림을 발생시킨다. 대중가요처럼 편곡된 찬송가 ‘내게 강 같은 평화’는 대립적 속성들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기이함을 극대화하는 데에 일조한다. 반복되는 파열음. 호기심에 소리 없는 웃음이 더해진다. 난해하고 불편한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언어화하기 힘든 미묘한 매력은 떨리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처럼 모순과 부조화의 맥락에 놓인 <기도> 속 상징들이 일으키는 스파크(spark)는 의미의 생성과 재구성의 가능성을 넓힌다. 아이러니가 극적으로 작동하고, 단일한 메시지는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의미는 파편화되어 흩뿌려지고 예술적 상상력이 발동한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아니 끝날 수 없는 해석의 시간이 열린다.

<기도 퍼포먼스 버전>, 단채널비디오, HD, 3분 58초, 2015 ⓒ함정식

성스러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다가오는 종교적 이미지는 인간의 믿음에 관한 차가운 성찰이자 풍자처럼 읽힌다. 우리가 기대하는 종교적 빛과는 거리가 있는 조명,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복장을 한 죽음, 희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죽음의 몸짓, 주술 혹은 장난 같은 음성이 더해진 찬송가에는 세속화된 종교에 대한 자조가 담긴다. 기독교와 무속신앙이 함께 자리한 골목의 풍경은 작가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종교와 믿음 그 자체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인간의 편의대로 왜곡되는 종교를 마주할 때가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자기합리화를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자신의 거짓된 믿음을 포장하기도 한다. 이는 단지 종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정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자신이 삶과 죽음, 심지어 신까지도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모두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도> 속 이미지들이 조악하게 느껴지는가? 지나치게 단순해 보이는가? 혹시 내가 이해하는 세상의 모습이 그런 것은 아닌지 반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 사유의 깊이는 우리가 믿는 것보다 얕을지 모른다. 인간의 사유 체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공고하지 않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의 세상이다. 희극과 비극이 혼재된 세상이다. 부조리함이 가득하다. 삶의 시작과 함께 죽음을 향하는 인간 존재는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 그런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며 당신은 신에게 어떤 기도를 하는가? 믿음의 마음으로 신의 계시를 받고 그에 응답하는 영적인 소통으로서의 기도³⁾를 하고 있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회피해서는 안 된다. 입가에 돌던 미소가 사라진다. 함정식의 우울한 유머를 마주한 당신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무엇이 흔들리는가? 흔들림은 불안과 긴장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만큼의 새로움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도 퍼포먼스 버전>, 단채널비디오, HD, 3분 58초, 2015 ⓒ함정식

<제7의 봉인>에는 ‘죽음의 춤(Dance of Death)’을 그리는 화가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죽음의 사자는 ‘죽음의 춤’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중세 시대부터 등장한 ‘죽음의 춤’은 춤을 추며 사람들을 데려가는 죽음을 묘사한 그림으로 죽음의 시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죽음의 춤’은 세속적 삶의 허망함과 덧없음을 상기시키고 죽음의 보편성을 드러냈다.⁴⁾ 그리고 <기도> 역시 ‘죽음의 춤’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죽음은 우리 생의 시작부터 동행한다. 인간을 포함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결국 죽는다. 삶은 죽음을 향하기에 삶과 죽음은 늘 함께이다. 이처럼 명확하고 보편적인 진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순리임에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의 운명을 회피하려 한다. 잊고 살려 한다. 그러나 지우고 지워도 되살아나는 죽음이다.
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조건인 죽음은 오래전부터 사색의 대상이자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주제였다. 동시에 그것은 가장 본능적이고 육체적인 영역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어렵다. 함정식은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진퇴양난의 감정을 전달한다. <기도> 속의 죽음은 가볍고 무겁다.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섬뜩하고, 둔탁하지만 예리한 형상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이 가진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시간이 흐르고 골목을 돌아다니던 죽음도 지나갔다. 아득히 사라지는 죽음은 신기루 같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죽음을 완벽히 알 수 없음을 은유하는 듯하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이해는 믿음의 영역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추상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될 뿐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우리는 죽음을 붙잡을 수 없다. 종교관과 세계관에 따라 죽음에 관한 정의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든 결과는 같다. 그러고 보니 죽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 역시 붙잡을 수 없다. 삶과 죽음 모두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생에 대한 성찰은 죽음이 등장할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기도 퍼포먼스 버전>, 단채널비디오, HD, 3분 58초, 2015 ⓒ함정식

빛(신)과 죽음(악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인간의 인식과 사유의 불확실성을 경유해 ‘바도 모리(Vado mori)’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빛의 잔상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음이 들고 있던 빛다발의 여운을 음미하자 그렇게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다. 죽음과 함께 한 빛은 의미의 충돌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성경에 따르면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죽음을 거쳐야 한다. 죽음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전 과정에서 의미 있는 부분이다. ‘죽음의 춤’을 추도록 인도받은 인간은 유한성을 극복하고 영원을 향한다.⁵⁾ 이즈음 떠오른 또 다른 두 번째 생각, 그것은 죽음이 있기에 생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로 압축된다. 생은 죽음과 함께이기에 빛을 발한다. 이제 죽음을 통해 생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역설이 성립된다. 해석과 해석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 또 한 번의 흔들림이 발생한다.
확신도 불신도 아닌, 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를 가진 작가. 어떤 식의 답변도 가능할 것 같은 질문. 준비된 해석을 선뜻 내놓기 어려운 상황. 마침표가 아닌 말줄임표로 끝나는 문장과 같은 작업. 할 말이 없음과 할 말을 줄임. 이 모두가 모여 모순의 절정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