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22. 03. 28.

권오상의 정물 조각에 나타난 구축과 해체의 공존¹⁾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1장.
권오상의 사진조각은 <데오도란트 타입 Deodorant Type>(1998~현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최초의 사진조각은 <힘에 관한 집착적 레포트>(1998)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두 점의 작품으로, 그중 하나는 작가가 직접 촬영한 목조용 끌의 사진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진조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발표된 <더 플랫 The Flat>(2003~2007, 2010~2014)에서 작가는 잡지 『지큐 GQ』, 『에스콰이어 Esquire』, 『W 매거진 W magazine』, 『월페이퍼 Wallpaper』,『럭셔리 Luxury』 등에 실린 사진들을 오려 뒷면에 철사를 붙이고 입간판처럼 세운 뒤 촬영해 사진으로 발표했고, 정물(상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플랫>을 거대한 입체로 재현한 것 같은 <뉴 스트럭쳐(New Structure)g>(2014~현재), <뉴 스트럭쳐>를 벽에 걸 수 있는 두께감 있는 평면적 조각으로 만든 <릴리프 Relief>(2013~현재) 등에서는 인터넷을 검색해 얻은 이미지도 함께 사용되었다. 이밖에 <데오도란트 타입 매스패턴스 Deodorant Type Masspatterns&ㅎt;(2013~현재)에도 작가가 선택한 사물들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²⁾
권오상의 사진조각은 형식적으로 이미지와 물질, 일상의 오브제 혹은 상품과 조각(예술), 온라인과 오프라인, 입체와 평면 사이를 오간다. 예를 들어 완성된 <플랫>은 사진으로 공개되지만, 작업 과정 중에는 분명 실재하는 공간에 세워진 조각이 존재했다. <데오도란트 타입>, <데오도란트 타입 매스패턴스>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져 평면으로 존재하던 사진은 3차원적인 입체물이 되어 조각의 경계를 해체하면서도 명확한 조각성을 구축한다. 동시에 사진의 평평한 표면은 물질성의 지각을 방해한다. 엄밀히 말해 사진조각은 실재하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평면적 이미지이자 이미지 자체의 물질화이다. 사진 혹은 온라인 속에 존재하던 이미지들은 출력되어 실재하는 공간으로 나왔고 만질 수도 있는 입체물로 변신했다. 그러나 이미지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가 만든 정물 조각은 사물의 이미지로 뒤덮인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사진이기에 그것의 겉모습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지만, 원본의 물질성으로부터는 멀어지는 이중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편 <가구 Furniture&ㅎt;(2018~2019)는 정물과 정물 조각, 상품, 예술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구>는 실용품인 동시에 예술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난 뒤 나온 부산물들로 예술적인 동시에 실용적인 오브제를 만들었다. 심지어 <큐브 의자 1, 2, 3 Cube Chair 1, 2, 3>(2021)은 가구의 형상을 한 사진조각을 촬영한 이미지이자 가구, 그리고 조각이다. 이러한 작품들이 가구로 기능할지, 조각의 역할을 할지는 그것이 놓이는 맥락에 따라 바뀐다.

<The Sculpture 8> acrylic on paperclay, 160x210x210cm, 2006 ⓒ권오상

<더 스컬프쳐 8 The Sculpture 8>(2006), <더 스컬프쳐 9 The Sculpture 9>(2008)에서 권오상은 고전적인 조각의 좌대 위에 자신의 작업실에 있는 사물들을 지점토로 제작했다. <더 스컬프쳐 The Sculpture>(2005~현재) 중 <더 스컬프쳐 2-자동차 The Sculpture 2-Car>(2005)에서는 작가가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았던 람보르기니(Lamborghini) 무르시엘라고(Murcielago)를 청동으로 제작해 2톤에 달하는 무거운 조각으로 완성했다. 이는 자신이 조각가임을 선언하는 것이자 사진조각과는 다른, 작품의 표면이 전달하는 물질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작업은 르망 24시(The 24 Hours of Le Mans) 레이스에 출전한 자동차를 미니어처로 재현한 <스몰 스컬프쳐 Small Sculpture>(2015~현재)로 이어졌는데 권오상에게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역시 하나의 정물과 같으며 예술품처럼 감상이 가능한 대상이다. 이후 작가는 <스몰 스컬프쳐> 50점을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스몰 스컬프처스 Small Sculptures』(2019)를 출간했다. 그런데 『스몰 스컬프처스』는 사진조각이 실행했던 이미지의 물질화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작품당 10장 이상씩 사진 촬영한 뒤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부분만 골라 하나로 합쳐 실제 작품을 마주한 인간의 눈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스몰 스컬프쳐>의 이미지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손에 올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조각이라는 <스몰 스컬프쳐>의 목적을 사진을 통해 실현한 것으로³⁾ 실물보다 사진과 동영상 같은 이미지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를 투영한다.

<Relief 12> print on wood, varnish, 126x160x5.4cm, 2016 ⓒ권오상

이후 권오상은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게 되었고, 점차 추상 조각을 향하게 되었다. 작가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대리석 조각과 같은 고전적인 조각을 염두에 두면서도 조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극대화하는 추상 조각을 지향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초기의 사진조각은 알루미늄 스틱을 지지대로 삼았기 때문에 조금씩 함몰되어 의도치 않게 추상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한 명의 모델을 연이어 5점의 사진조각으로 제작한 <흉상 Busts>(2016~2018)에서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연작 <쟈네트 I~V Jeannette I~V>(1910~1913)를 생각하며 작업했다. 또한 <두상 LP Head(LP)>(2020)와 <두상 MM Head(MM)>(2021)은 얼굴의 형태가 아래로 꺼진 것처럼 표현하고 <와상 Reclining Figure>(2020~2021)에서는 왜곡되고 단순화된 형태의 인체를 보여주어 헨리 무어(Henry Moore)가 그랬듯 추상화를 시도한다.⁴⁾ 그밖에 <뉴 스트럭쳐>와 <릴리프>에서도 추상적이고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조합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고, 이미지를 삭제한 빈 면을 제시하는 방식을 통해 추상 미술과 같은 구성을 보여준다.
권오상은 자신의 모든 작업을 조각이라 명명하고 조각의 근원적 정체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의 조각은 시대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조각의 닫힌 체계를 벗어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특정한 기준에 맞춰 분류되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고정 관념을 벗어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각각의 요소가 자신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는 공존을 지향한다. 차이가 끝없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 있어야 복수성에 바탕을 둔 조각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권오상은 조각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에 관한 모든 분류와 규범을 의심하고 해체하여 다양성을 담아내는 비정형적인 상태의 조각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각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양가성을 획득한다.

2장.
소비는 소비문화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기능하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행동 양식을 규정한다. 소비 욕망은 소유의 욕망으로 이어지며 인간은 때때로 소유 자체를 욕망하게 되어 소유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소비 그 자체가 신조인 소비가 반복되고 있다. 무언가를 구매한 뒤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다 이내 같은 기능을 가진 다른 모델을 다시 구매하는 새로운 순환과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광고를 비롯해 외부로부터 받게 되는 자극과 심리적 압박도 소비에 대한 욕구를 촉진한다.⁵⁾ 또한 현대인들은 사물로서의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미지를 통해 체계화되고 코드화된 가치를 위해 상품을 구매한다. 다시 말해 사회의 상징적 체계와 계급 질서가 부여한 상품의 가치가 제공하는 위계를 소비하며 사물의 기능성이 아니라 그것이 구현하는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이제 사물은 소비자의 사회적 배경, 생활 양식을 표현하는 정보가 되고 현대인은 사물이 아닌 기호를 소비하게 된다.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사라지고 드러나는 기표만을 보고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⁶⁾
화려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한 <더 플랫>은 소비 지상주의의 직접적인 재현과 같다. 오늘날의 사회는 상품의 유혹 속에서 상품에 탐닉하고, 그것으로부터 위로받으려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질서 아래의 현대인들은 위로받지 못함은 물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기호화된 상품만을 응시하며 결핍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주체는 객체의 자리로 옮겨져 소외가 일어나고, 소외는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비 이데올로기의 체계를 이루는 물신 숭배가 일어난다. 물신 숭배는 사물이 가지는 본질적 가치의 신성화가 아니라 기호학적으로 환원된 상품에 대한 신성화이다.⁷⁾

<The Sculpture 2-Car> painted bronze, 220x462x113cm, 2005 ⓒ권오상
<Small Sculpture 2018-3> acrylic on resin, 3.8(h)x8.1×14.4 cm, 2018 ⓒ권오상

물신 숭배에 기반한 소비 형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권오상의 <더 스컬프쳐>, <스몰 스컬프쳐>의 주요 소재인 자동차이다. 오늘날 고가의 자동차는 사용 가치가 높은 기능적 상품이 아니라 부와 권위, 행복, 사회적 지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기호 가치와 같다. 신분과 힘, 소유로 정의되는 자아의 상징인 것이다. 이런 실체 없는 이미지의 유포는 사람들을 소비로 이끈다. 현대인은 상품의 질이나 내용, 본질이 아닌 기의가 배제된 기표를 보고 소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와 같은 고가의 상품을 구입하고 소유하는 행위는 무언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기쁨을 배가시키고,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다는 소망과 새로운 자극을 향한 욕구를 만족시킨다. 따라서 자동차는 경쟁을 부추기고 비기능적인 소비를 부르는 대표적 상품으로 작동한다. 이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존재의 경험과 대비되는 병적 소비와 소유가 같은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생산적 발전을 약화시키고 파괴한다고 비판한다.⁸⁾ 그런데 권오상은 <더 스컬프쳐 2-자동차>에서 육중한 람보르기니 자동차를 만들어 표류하는 기표와 같은 자동차를 실재하는 현실로 불러오고, 자동차의 기표가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큰 압도감과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를 확인시킨다.
그렇다고 하여 권오상이 이러한 소비사회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정물 조각을 상품 홍보의 일부로 등장시켜 스스로 기표적 소비와 소비 욕망 안으로 들어간다. 작가 자신도 소비 시대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 스컬프쳐 8 The Sculpture 8<은 펜디(Fendi)의 팔라조백(Palazzo Bucket Bag)의 런칭 행사를 위한 조각이었고, <더 스컬프쳐 9 The Sculpture 9>(2008)는 나이키(Nike)의 요청으로 제작한 것이다. 또한 호주 시드니(2016), 중국 상하이(2017), 한국 대구(2020)에 위치한 에르메스(Hermes) 쇼윈도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쇼윈도를 채운 작품들에는 작가가 직접 촬영했거나 온라인에서 검색해 얻은 도자기와 같은 유물을 비롯한 정물들, 에르메스의 상품 등의 이미지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 등과의 협업으로 그의 작품 이미지가 활용된 상품들도 제작되었다.⁹⁾ 이러한 행보는 작가를 포함한 누구도 소비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인간의 욕망이 가진 모순과 딜레마를 드러낸다.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자아를 확인해가는 삶의 태도는 불멸의 실체를 전제한 그릇된 환상에 기초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대 혹은 확신과 달리 객체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행위는 한순간만 지속될 뿐이며 사실상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¹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소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에 대한 문제를 인식한다고 해도 소유 지향적인 태도를 벗어나 존재 지향적인 삶을 위한 변화를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개개인이 처한 상황, 개인이 사회와 형성하는 관계도 다르고 거대한 소비 사회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프롬의 주장처럼 개인의 정신적 혁명뿐 아니라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한 이유이다.¹¹⁾

<Bag & Porcelain> C-print, mixed media, 42x57x110cm, 2016 ⓒ권오상
<Head & Torso> C-print, mixed media, 90x84x147cm, 2014 ⓒ권오상

한편 가방과 신발, 그릇, 그 밖의 소모품들, 도자기를 비롯한 예술품에 이르는 정물들이 결합된 <데오도란트 타입 매스패턴스<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 영원성에 대한 갈구, 인간의 세속적 허위의식과 욕망인 바니테(vanité)가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과거로부터 사람들이 진귀한 무언가를 수집, 보관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는 행위는 부와 명예,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때로는 미술이 실제로 갖지 못하는 물건을 향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바니테는 일정 부분에서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지만 허위로 가득 찬 삶은 필멸의 존재라는 인간의 운명 앞에서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바니테를 아름답지 못한 허상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남과 함께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죽음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생의 가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니테는 허상적인 가면임에도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도구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허영인 동시에 인간의 어두운 면을 가려주는 구원의 도구인 것이다.¹²⁾
바니테가 허영과 가식, 위선과 관련된 인간의 행위라면 바니타스(vanitas)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동시에 함축한다. 종교적이고 교훈적인 의미가 더해져 덧없음의 상징이 된 바니타스 이미지는 인생의 허망함과 슬픔, 고통, 죽음을 표현하는 미술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점차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실존적 질문을 다루는 주제로 다양화되었다. 바니타스를 통한 성찰은 삶의 시작과 끝에 연결된 죽음을 생각하고 물질적 세계를 반성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절망적인 허무주의와는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바니타스 정물화는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인 예술품이라는 점에서 모순적이다.¹³⁾ 오늘날 예술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 부와 사회적 신분 과시를 위한 소유물로 존재한다. 이처럼 권오상의 사진조각은 인간 운명에 대한 문제를 벗어나 이미지 시대에 뒤따라 오는 소유의 문제, 실재하는 세계의 덧없음, 물질로서 존재하는 조각과 예술품의 의미 설정까지 고민하게 한다.

3장.
호화찬란한 각종 보석류가 가득한 <더 플랫 14 The Flat 14>(2005)와 <더 플랫 15 The Flat 15>(2005), 광고 속 시계가 모인 <더 플랫 19 The Flat 19>(2007)는 잡지 속 광고가 보여주는 상품들의 이미지를 대변하다. 최고급 자동차와 시계, 보석, 의상, 카메라, 화려한 인테리어 소품이 가득한 <2005년 6월 A 2005 June A>(2010)와 가방, 구두, 선글라스, 가구, 여행용품, 건물 등으로 채워진 <2010년 3월 2010 March>(2010)은 각각 한 권의 『월페이퍼』에 담겨 있는 이미지를 모아놓은 것이다. 매달 나오는 잡지에는 이처럼 행복하고 풍요로운 모습이 담긴다. 소비사회의 광고, 잡지와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 속의 인위적 이미지는 소비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해 모든 상징을 총동원하고, 돈을 쓰면 욕구가 충족되고 행복해질 것이라 유혹한다. 그러나 결핍된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가 약속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건을 아무리 사고 소유해도 욕망이 충족될 수는 없으며 만족의 시간은 매우 짧다. 광고를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들이 또 다른 결핍을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끝없는 욕망과 결핍을 부추기는 광고는 이미지의 재현, 재현의 이미지일 뿐이다. 광고가 말하는 허위와 기만, 환각성은 후기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실체이다.¹⁴⁾

<The Flat 6> diasec on lightjet print, 180x230cm, 2004 ⓒ권오상
<2005 June A> lightjet print, wooden frame, 228x188cm, 2010 ⓒ권오상

자본이 고도로 축적된 이미지인 스펙터클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고, 일상에서 만나는 매체들은 감각적이고 압도적인 이미지를 쏟아낸다.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터클의 사회 The Society of the Spectacle』(1967)에서 상품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자본주의의 영향력과 상품을 매개로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 그로 인한 소비사회에서의 소외를 말한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기만적 삶에 대한 자각을 통한 실천을 촉구한다.¹⁵⁾
스펙터클이 가시화하는,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세계는 경험되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소비 시대의 생산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플랫>처럼 스펙터클은 상품이 사회생활을 총체적으로 점령하는 계기가 된다. 현대 경제의 생산이 상품 독재의 범위와 강도를 확장하는 만큼 스펙터클의 장악력도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스펙터클에서 상품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과 풍요를 가시적으로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펙터클의 진실은 상품 소비와 여가의 문화적 매커니즘을 통해 소비 대중을 중독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위조된 삶을 가져온다. 스펙터클은 원칙적으로 무기력한 수용을 요구한다. 또한 스펙터클 사회에서 일어나는 노동자와 생산물 사이의 분리는 완료된 활동에 대한 단일한 관점과 생산자들 사이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소통을 사라지게 한다. 결국 자신만을 위해 발전하는 경제인 스펙터클은 인간을 자신에게 예속시키고 스펙터클의 지배를 지속하기 위해 관료주의적 장치, 정치와 경제, 미디어의 영역 모두가 매진한다.¹⁶⁾
그런데 <더 플랫>뿐 아니라 <뉴 스트럭쳐>, <릴리프>에는 상품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추상적인 형상이나 풍경, 심지어 동물의 이미지도 등장하며 마치 하나의 정물처럼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는 모든 것, 생명체와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상품이 될 수 있음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품화된 모든 것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욕망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생산한다. 현실 세계가 이미지로 변화된 오늘날 이미지는 그 자체로 현실적인 존재가 되어 현대인들이 최면 상태에 빠져 활동하는 효과적인 동기로 작동한다. 이처럼 감각적이지만 초감각적이 된 사물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스펙터클 속에서 완벽히 실현된다. 감각적인 세계는 선별된 이미지로 대체되며, 그러한 이미지들은 감각적 세계를 초월해 존재함에도 가장 감각적인 것으로 인정받는다.¹⁷⁾

<Relief 11> wood, 143x202x5.4cm, 2016 ⓒ권오상

한편 권오상이 최근으로 올수록 작업을 위한 이미지를 직접 촬영하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얻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이미지에 지배당하는 만큼 수많은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동시대성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이미지들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미지의 표면만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한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생산, 배포된 이미지는 대상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주체적으로 체험하고 온전히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오상의 정물 조각 역시 그렇다. 입체가 되었으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물 조각은 실제 정물과 괴리감을 보여 사진으로 존재할 때보다 더욱 비현실적인 허구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반짝이는 표면을 가진 정물 조각은 진짜인 척하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현란한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스펙터클 시대를 비판적으로 폭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드보르가 말했듯 오직 이미지에 의존해서는 결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스펙터클 사회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 머물거나 그것에 함몰되기를 거부하는 작가는 <작업대와 호이어 Worktable & Heuer>(2013), <사다리와 고기잡이 살쾡이 Ladder & Fishing Cat>(2013), <두상과 토르소 Head & Torso>(2014) 등에서 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실재하는 사물을 첨가해 스펙터클의 세계를 해체한다. 또한 <릴리프 11 Relief 11>(2016)과 <릴리프 17 Relief 17>(2016), <릴리프 18 Relief 18>(2016)에서처럼 이미지를 완전히 삭제하기도 한다. 이미지가 사라져 재료 자체가 드러나 오직 물질로만 존재하는 조각은 현대 사회를 뒤덮은 이미지가 아무것도 아닌 허상임을 보여준다. 또한 자연스럽게 스펙터클로부터의 단절을 시도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경험의 세계, 실재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생성한다. 이처럼 고정 관념과 경직된 기준에 근거한 조각의 범위를 벗어나 열린 체계를 갖는 권오상의 작업은 시대에 반응하며 다양성의 공존을 통해 유동적인 의미 생성을 끌어내는 조각적 정체성을 확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