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22. 08. 03.

본 글은 『리포에틱 평론과 대화-이동욱』(2022)의 「평론」(pp. 7-34)을 바탕으로 합니다.

비스듬히 열린 부조리의 세계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1. 작고 연약한, 그리고 불투명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태어난다. 우리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해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나 위험은 꽤 자주 나타나 괴로움과 아픔을 선사한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길 원하는 인간은 끝없이 도전하고, 저항하고, 존재 의미를 찾으려 한다. 고난의 상황을 이겨내려 애쓰다 보면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절망의 순간도 찾아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 무력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은 삶이다. 애초에 인간의 운명이 그런 것이었나 보다. 과연 인간, 아니 나의 삶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지금의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인가? 삶과 실존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가장 명확한 결론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운명, 바로 마지막 순간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죽을 것이란 사실이다. 불확실하고 비결정적인 세계 속 인간에게 확정된 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며 결정된 확실한 미래는 죽음뿐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죽음의 순간은 예측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생명을 얻었고 원하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죽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나는 아무런 선택도, 회피도 할 수 없다. 인간이 살면서 경험한 어떤 고난도 이처럼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 수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죽게 될 모든 인간은 홀로 남거나 홀로 떠나게 될 운명이다. 사회의 권력과 자연의 힘에 압도당하고, 근원적으로 분리된 무력한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가 마주하는 진실은 인간을 괴롭힌다. 실존적 괴로움, 모든 불안의 원천인 분리, 거기에서 파생되는 고독과 무력함을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외부 세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결합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분리 상태를 극복하고 결합하는 것은 모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마주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의 기록이 바로 인간의 역사이다. 종교, 철학, 예술은 이 모두가 시작된 근원인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응답해왔다.¹⁾

<애벌레 Larva> 16×5×3.5cm, 혼합 재료, 2011 ⓒ이동욱

이동욱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시작은 꽤 선명하다. 작가는 세상에 홀로 던져져 단절과 불안에 갇힌 무력한 인간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상들은 살짝만 만져도 으스러질 것 같은 작고 약한 존재이다. 갓난아이처럼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쉽게 다칠 것 같다. 숨김없이 드러난 피부는 말 그대로 가냘픈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피부는 인간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일차적인 보호막이지만 완벽한 갑옷은 아니다. 이동욱의 인간상들은 모두 창백하고 분홍빛이 도는 피부를 가지는데, 이는 특정한 민족성을 드러내기보다 사회적으로 덧입혀진 모든 규범과 질서를 벗어난 근원적인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서이다.
맨몸의 인간만큼 두드러지는 것은 혼자라는 상황이다. <아디다스 보이 Adidas Boy>(2004)와 같은 초기작에서부터 <벌거벗은 Naked>(2008), <애벌레 Larva>(2008), <애벌레 Larva>(2011)에 이르기까지 이동욱은 유독 홀로 존재하는 인간을 많이 만들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던져진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 외로운 존재의 숙명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이름도 모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저 인간일 뿐인 존재이다. 사실 둘이어도 처지는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리얼 Real>(2006)에서처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지만 곧 홀로 남겨질 것이라는 자명한 결말은 잔혹하다. 인간이 서로를 공격하는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I Know Everything>(2010), 자신의 생존 혹은 욕망을 위해 다른 이를 파괴하며 고립을 택하는 인간의 모습이 담긴 <위대한 탄생>(2004)은 서늘하다. 세상에서의 삶이 이제 시작인데 주인공은 이미 지쳐 보인다. 누군가는 현실의 냉혹함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잔혹극을 떠올릴 것이다. 얼굴이 모여 완성된 수류탄인 <두통 Headache>(2007~2008)은 말 그대로 두통을 불러일으키는 상황, 머리가 터질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들, 골치 아픈 일이 끝없이 일어나는 사회, 생각이 넘쳐나는 사람들, 해소되지 못한 갈등 때문에 폭발 직전에 이른 공동체 등을 함축한다. <질식>(2003)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답답해진다. 살아가면서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굿 보이 Good Boy>(2011~2012)는 촘촘하게 연결된 시스템 속에서 옥죄여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속 인간의 초상 그 자체이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I Know Everything> 17×20×15cm, 혼합 재료 ⓒ이동욱

그런데 직설적으로 명쾌하게 다가오던 첫인상은 마주하는 작품의 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불투명해진다. 선명했던 생각의 실루엣은 조금씩 흐릿해진다. 존재들의 형상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이 다소 과장되어서일까?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지배력이 점점 커지고 현실인지 꿈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둘 사이를 오가는 망설임과 같은 환상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엄밀히 말해 환상은 사실을 전제한 것이니 모순되는 표현만은 아니다. 모순이어도 괜찮다. 애초에 인간의 삶은 모순 그 자체니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 현실과는 다른 관계를 보여주는 상상력인 환상은 현실이 있기에 가능하다.²⁾
결과적으로 환상은 이동욱이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은 인간상을 하나하나 만들어내기에 가까이 다가가 돋보기로 세상을 들여다볼 것 같지만 작가는 항상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나무보다 숲을 본다. 특정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야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 사유가 가능하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하나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한 방향만 바라보기 쉽다. 그러고 보니 이동욱의 인간상들은 웃지 않는다.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무표정의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 일방적인 비극도, 희극도 아니라는 작가의 열린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가는 현실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현실 없이 창작할 수 없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면서도 그 세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으며, 떠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집착하고 소유하고 싶어 한다. 예술은 현실을 전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³⁾ 그러나 현실에 함몰되어서도 안 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애피타이저 Appetizer>(2005)에서 어딘가를 가리키는 인간은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존재의 방향을 찾으려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답을 주지 않는다. 인간은 존재 이유를 찾고 세계는 존재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부조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질문하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대치. 세계의 불합리성을 경험하는 인간이 느끼는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 세계를 향해 인간이 갖는 합리의 욕망과 세계의 비합리, 비극이 내포된 형이상학적 모순. 그러나 부조리는 인간의 조건이다. 부조리의 세계를 인식할 때 인간은 실존하고 인간다워진다.⁴⁾
이동욱의 작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양가적이고 모순적이다. 인간은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 나와 타인, 높은 것과 낮은 것, 미와 추처럼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의 공존 상태를 유지한다. 인간 삶의 모호성, 그것은 발작적 웃음과 오열 사이의 모호함이다. 웃음, 그리고 눈물과도 일치할 수 없는 무언가이다.⁵⁾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에 따르면 인간 삶의 조건인 부조리는 특정한 원인이나 특정한 원인의 부재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부조리의 현상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삶 그 자체가 부조리기에 인간의 삶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삶이 지속되는 동안 항상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이 존재하며 관계하는 모든 것, 즉 인간의 삶 전체에서 일어나는 숙명적인 사건이다.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착각하며 현실의 제약 역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실의 고통이 커질수록 미래를 향한 희망은 커진다. 부조리의 삶을 피해 때로는 현실을 외면하고 미래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도피는 해답이 될 수 없다.⁶⁾ 그럴수록 인간은 <노예들 Slaves>(2005) 속 인물들처럼 구속되고, <아껴 쓰기>(2004)에서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소모될 것이다. <이종 교배 Cross Breeding>(2008)가 연상시키는 것처럼 틀에 갇혀버릴 것이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지향의 틀(체계)을 원하고 특정한 인물(존재), 돈, 성공, 신념 등을 헌신의 대상으로 숭배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종교를 인간의 삶에 방향과 의미를 제시하는, 집단이 공유하는 사상과 행위의 체계로 넓게 정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는 인간과 문화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나타나며 인간의 독립과 성장을 도울 수도, 인간을 예속할 수도 있다. 만약 불분명하고 모순된 삶에서 세계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밝히고 안정적인 지향의 틀을 제공한다고 믿어지는 종교가 왜곡될 경우 인간은 더욱 모순에 빠지고 결핍될 것이다.⁷⁾ 때로는 욕망과 탐욕에 취할 수도 있다. <무제 Untitled>(2012)에서 자신의 몸에 흥건히 묻은 꿀을 두고도 꿀이 떨어지는 방향을 응시하는 소년의 모습이 보여주듯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망각한 채 혹은 부조리에서 오는 공허함을 채운다는 미명으로 세속적 욕망에 심취한다.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소유물로 채운다. 욕망의 대상은 사치, 쾌락, 권력,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이동욱의 인간상이 보여주듯 인간은 맨몸으로 와서 맨몸으로 가는 존재이다. 그것은 불변하는 진리이다. <지켜야 할 영광과 지우고 싶은 과거 Engraved Glory Indelible Past>(2012)에서처럼 트로피를 자신의 영역 안에 자랑스럽게 진열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승리에 도취해 트로피의 꼭대기를 정복해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나를 비롯해 내가 한 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잊힐 것이다. 삶에 취해있다 깨고 나면 삶은 사기극이고 미망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⁸⁾

지켜야 할 영광과 지우고 싶은 과거 Engraved Glory Indelible Past, 129×195×87cm, 혼합 재료, 2012 ⓒ이동욱

그러나 인간은 부조리한 세계에서의 삶을 거부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회피해서도 안 된다. 이 역시 모순적이다. 인간이 지닌 존재론적 의미는 살아감에 있다. 부조리한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임에도 인간은 부조리에 저항한다. 사랑과 행복, 의미에 대한 인간의 갈구와 그것에 무심한 세상 사이의 불일치를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조건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부조리를 극복할 수 없더라도 도전하고 행복을 성취하려 노력한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운명은 견디고 이겨내기 힘든 진실이지만, 그 정체를 똑바로 인식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⁹⁾ 산 정상에 도달한 바위는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고 시시포스(Sisyphus)는 그 무게를 다시 짊어진다. 부조리한 삶에 저항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결말을 알고 있지만,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 인간의 마음은 가득 채워지고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하게 된다. 개인의 운명을 초월하는 운명은 없다. 그러나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는 살아있는 것을 성찰하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제대로 느끼는 위대한 생존자가 되어야 한다. 부조리한 예술가에게는 요령과 수완을 초월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세계가 명쾌했다면 예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¹⁰⁾

2. 해체된 경계와 접촉면
나는 피부가 연약함이나 연민을 느끼게 하고 강하지 않은 인간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¹¹⁾
이동욱의 작업은 손의 감각을 끌어낸다. 2003년의 첫 개인전 [인브리딩 Inbreeding]에 등장했던 인간상이 가진, 붓 터치가 느껴지는 피부는 전시 [마우스브리더 Mouthbreeder](2004)에서부터 윤이 나고 촉촉해 보이는, 그래서 더 불안감을 끌어내는 피부로 바뀌게 되는데 어느 쪽이든 촉각적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미세한 주름까지 묘사해내는 세밀함은 보고만 있어도 만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의 손이 느꼈을 감각이 전달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시각이 중요한 감각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촉각은 이성보다는 육체에 가까운 비합리적이며 물리적인, 그리고 좁은 반경의 세계만을 경험할 수 있는 감각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비주류였던 촉각은 동시대 미술에서 육체성에 부합하는 감각이자 다양성을 확인시키는 통로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미술 작품은 늘 촉각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왔다. 촉각은 인간이 시각 예술과 한층 더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필요하다. 그리고 이동욱은 분명 촉각적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데에 탁월하다. ¹²⁾ <과다출혈>(2003)은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츄파 춥스 Chupa Chups>(2003)는 끈적끈적한 불편함을 전한다. <선물 Present>(2006)에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목도리를 걸친 사람의 맨살이 느낄 차가움은 무엇으로도 채워지기 힘든 인간의 공허함을 대변하는 듯하다. 몸을 뒤덮으며 흘러내리는 꿀은 에로틱한 감촉을 선사하며 종국에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사람의 손에 묻은 황금빛의 끈적한 액체는 질퍽한 온기를, 또 다른 사람의 손에 흥건한 입방체의 피는 얼음 같은 냉기를 발산한다.
옷을 입지 않아 피부 전체가 방어막 없이 세상을 대하는 인간의 상황은 신경질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감각을 예민하게 살려낸다. 온 신경이 그와 그녀의, 그리고 나의 피부에 집중된다. 전통적인 누드가 아닌 벗은 몸이 전하는 정서이다. 그 자체로 역설적이고 이중적인 피부는 모순 속의 인간, 부조리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표상하기에 적절하다. 피부는 인간과 세상 사이의 경계면이지만 접촉면이기도 하다. 피상적인 동시에 심층적이다. 투과성과 불투과성, 신축성과 수축성을 모두 갖는다. 끝없이 고갈되고 재생되길 반복한다. 육체적인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하지만 고통을 전하는 대표적인 통로이기도 하다. 또한 피부의 감각은 육체적 영역을 넘어 인간의 복잡하고 풍부한 지각과 의식, 감정을 깨운다.¹³⁾ 따라서 부조리한 세계 속 인간 존재에 관한 탐구를 지속하는 이동욱에게 촉각성은 중요하다.

<혹 Wen> 16×4.5×3.5cm, 혼합 재료, 2011 ⓒ이동욱
<드레스 Dress,> 18×12.5×5.6cm, 혼합 재료, 2012 ⓒ이동욱

피부는 인간이 세상과 분리되는 경계면이지만 안과 밖을 완벽히 단절시키는 경계가 아니다. 그것은 외부 세상과 만나는 연결점이자 경계를 허무는 장소이다. 즉 몸의 표면인 피부는 균질한 표면을 가진 닫힌 영역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구멍과 요철이 있는 열린 영역이다. 따라서 피부가 강조되는 이동욱의 인간상은 그로테스크(grotesque) 육체로 의미를 확장시킨다. 그로테스크 육체는 몸의 평평하고 뚫을 수 없는 표면인 평평한 피부를 무시하고 몸의 경계를 넘어 몸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것에 집중한다. 내부 장기가 피부와 뒤섞여 과도하게 늘어난 것 같은 혹은 장기가 밖으로 흘러내린 것 같은 <드레스 Dress>(2012), 피부가 증식된 옷이나 비행기 등과 한 몸이 된 <애벌레 Larva>(2016)와 <혹 Wen> 시리즈(2007~2010), 피부로 된 왕관을 쓴 <올드 킹 Old King>(2008)과 <프린스 Prince>(2008)가 보여주는 몸의 이미지들은 매끈하게 닫혀 있는 몸의 허상을 깨뜨리고 완성되거나 종결되지 않고 끝없이 생성하는 몸을 보여준다. <핑크 머시룸 Pink Mushroom>(2015)과 <레드 머시룸 Red Mushroom>(2015)이 보여주는 붉은 버섯의 형상은 인체를 배지 삼아 자라는 버섯인지, 인간의 몸이 변형된 것인지 모호하다. 이처럼 몸의 외부뿐 아니라 피와 내장 같은 내부가 혼재하는 육체, 내적 모습과 외적 모습이 하나로 뒤섞인 인간상은 삶의 시작과 끝인 죽음과 수태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준다.¹⁴⁾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동욱은 역동하는 폭발적인 양립이 아닌 고요한 그로테스크를 생성한다.
자신의 피부가 변형된 것이라 해도 이질적인 것이 혼합된 것처럼 보이는 낯선 육체는 신비로움과 기이함, 혐오와 공포가 하나로 녹아드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열어준다. 고정된 질서에 맞춰 움직이던 친숙한 세계가 익숙하지 않은 생경한 것으로 변해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온다. 당연시되었던 질서도 무너진다.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일상적인 삶의 질서도, 논리도 적용되지 않는 그로테스크의 세계에서 우리는 당연시되었던 세계와 질서를 되돌아보게 된다. 현실이지만 현실을 벗어난다.¹⁵⁾ 그리고 <핑키 Pinky>(2012)는 이와 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생명체라기보다 사물에 가까운 형상이지만 마치 잘게 부서진 살덩어리처럼 보여 절단되고 파편화된 인체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마치 세상 속에서 실존 혹은 생존을 위해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누군가의 유해처럼 보인다면 과도한 상상일까? 만약 이런 상상이 유효하다면 산산이 부서지고 파괴된 것은 인간의 물리적 영역일까? 아니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일까? 또한 이와 유사한 인상을 전하는 <굿 테이스트 Good Taste>(2012)에서 한 덩어리로 뭉쳐진, 마치 짓이겨진 것 같은 인체는 누구의 전리품인가? 달리 보면 그것은 증식 중인 생명체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형태로든 진화할 것 같다.

<갑옷 Armor> 28×45×24cm, 혼합 재료, 2008 ⓒ이동욱

사실 피부가 변형된 인간상들의 시작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적 영역의 시각화였다. 작가는 인간이 가진 공포와 두려움에 초점을 맞췄다. <갑옷 Armor>(2008)과 <나이트 Knight>(2008)가 보여주듯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갑옷을 입는다. 그것이 모든 공격과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완벽히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상관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부가 보호된다면, 심리적 안정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위안이 될 것이다.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약함을 인지하는 것이다. 위험과 불안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동욱의 작품들처럼 연약한 피부로 만들어진 갑옷과 의복은 오히려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일지라도 비행기나 왕관이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상황은 기괴하다.
인간 심리의 반영이든 그로테스크 육체의 재현이든 이동욱의 인간상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몸의 범위를 벗어나며 미(美) 못지않게 지속되어 온 추(醜)와 혐오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한다. 누군가는 그것에 매혹당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때때로 현대 예술은 편안한 즐거움보다는 불편한 즐김을 필요로 한다. 눈에 보이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 본질,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진실에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인간의 본모습을 탐구하고자 부정하고 싶은 그로테스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것이다.¹⁶⁾
점차 이동욱의 인체는 다른 종과 결합되거나 파편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버섯이 인간의 몸에서 증식하는 것 같은 <Red Mushroom>은 인간과 다른 생물의 결합처럼 보인다. <레드 머시룸 Red Mushroom>(2016)은 버섯처럼 보이지만 전작과의 연결성이나 그 색채 등으로 인해 마치 인간 세포의 배양 같다. <트로피 Trophy>(2018)에서는 잡종적 결합이 더 확실해지는데 처음부터 트로피의 꼭대기에 부착되어 있던 인간의 몸에 이동욱이 만든 얼굴이 더해지고 말의 머리, 버섯과 유사한 색색의 형상들이 하나를 이룬다. <브릭 Brick>(2018)에서는 레고 조각과 한 몸이 된 얼굴이 자리하는데 보라색으로 통일되어 로봇 같은 인상이다. <부족한 결합 Insufficient combination>(2018)에서는 조각난 인체와 다양한 대상들이 한 몸이 되었다. 정체를 알기 어려운 오브제들과 함께 공간 속에 흐트러진 몸의 파편들은 초현실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동욱은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각나고, 성질이 다른 요소들과 융합하고, 형태가 변용된 몸을 만든다. 익숙한 몸(존재)을 파괴하고 변용해 다시 구축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물과 동물, 인간 사이의 영역 구분을 비롯해 현실의 질서가 파괴된 세계를 대면할 때의 긴장감을 제공한다. <Insufficient combination>의 잘린 얼굴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또 다른 얼굴은 몸의 새로운 배치를 보여주는데, 눈의 위치에 붙어 있기에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질적인 다른 존재/대상들과 결합한 혼종성은 애매모호한 몸을 생성해 다의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정체성을 강조한다.¹⁷⁾ 그리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서서히 잔혹한 동화로 변하기 시작한다. 다만 보통의 동화는 명확한 결말을 선사하는데, 이동욱의 동화는 마지막 도착점이 안개처럼 흐릿하다.

<부족한 결합 Insufficient Combination> 10×10×17.5cm, 혼합 재료, 2018 ⓒ이동욱

그로테스크의 생성을 위해 작가는 불합리성의 영역을 벗어나면 안 되며, 작품에 고정된 의미를 넣고자 해서도 안 된다. 생경한 세계는 꿈, 공상, 잠과 깨어남의 중간쯤 위치한 환상에서 탄생한다. 환상은 오히려 현실적인 것을 포착하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냉정하게, 인간의 행위를 <Armor>의 마리오네트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한 인형 놀이로 직시한다. 수수께끼의 존재인 인간이 작가이자 감독, 배우로 활약하는 마리오네트 연극에서 사리에 맞는 대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저 음산한 것이 겉으로 나타나고, 소름 끼칠 만큼 섬뜩한 무언가가 발견되며,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관한 논의가 드러나게 된다.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불합리한 것으로 유희를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에 기반하지만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는 이동욱의 작품에 서면 흔들리는 세상과 인간이 건네주는 공포, 전율, 은밀한 해방감 속에서 양립하는 생각과 감정, 논의들을 음미하게 된다.¹⁸⁾

3. 욕망하고 사라지고
끝없는 인간의 소유 욕망과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에 대해 생각한다.¹⁹⁾
수집은 이동욱의 작업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이다. 분명 작가는 무언가를 모으고 보관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을 수집가라고 하기에는 수집품의 양도 많지 않고 집중도 역시 높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일상에서 디자인이 예쁘다고 생각되는 상품 등을 조금씩 모을 뿐이고 작업을 위해 의도적, 체계적으로 수집의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곤충이나 금붕어를 기르며 관찰하듯 취향에 맞거나 시각적으로 흥미를 느낄 때 그것을 소유하고, 보기를 즐긴다. 그리고 물리적 오브제일 수도 있고 경험이나 정서일 수도 있는 그 과정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전설 Legend>(2008)은 같은 제목을 가진 두 점의 작품으로 각각 물고기 먹이용 새우 알이 담긴 캔과 향수병이 재료가 되었다. 전자의 경우 작가가 캔에 적힌 단어 중 ‘새우(shrimp)’를 지우자 커다랗게 적힌 빨간색 단어인 ‘Phoenix(불사조)’가 두드러져 새우가 아니라 부화할 수 있는 불사조의 알을 담아놓은 캔처럼 보인다. 향수병에는 반인반마(半人半馬) 로고를 추가해 병 안의 노란빛 향수가 마치 반인반마의 소변처럼 보이게 했다. <Engraved Glory Indelible Past>에서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 오브제(새장, 어항, 병 등) 중의 하나인 케이지(cage) 안에 작은 트로피들을 가득 채워 놓았다.
진열되었던 상품이든 버려진 물건이든 누군가가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사물은 재탄생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수집가는 대상의 기능성과 유용성에서 벗어나 애정을 기울이고 관계를 맺는다. 진정한 수집가에게 소유의 권리는 인간이 사물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이다. 내 것이라는 인식은 남다른 애착 관계를 형성시킨다. 그런데 이동욱이 자신의 수집품을 작업으로 선보이는 방식은 마치 어린아이가 끝없이 성공적인 방법으로 하나의 존재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아이들에게 수집은 재생의 한 과정이다. 수집품을 만져보고, 이름을 붙여주고, 색칠하고, 무늬를 집어넣는 나머지 과정이 더해져 새로운 무언가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구세계를 새롭게 탄생시키기는 수집가가 새로운 수집품을 갖게 되었을 때 갖게 되는 가장 강한 욕망일 것이다.²⁰⁾

<모두 다 흥미로운 All The Interestings> 가변 크기, 혼합 재료, 2016 ⓒ이동욱

이러한 특성은 수집한 돌을 이용한 <모두 다 흥미로운 All The Interestings>(2016)에서 한층 두드러진다. 원래 돌을 모으기도 했으나 작업으로 발전시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수집하게 되었기 때문에 <All The Interestings>의 경우 특정한 의도를 갖지 않고 모은 수집품을 이용했던 다른 작품들과도 차이점을 갖는다. 그 시작은 길에 버려진 수석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작가는 자신에게 시각적으로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돌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이동욱은 버려진 사물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것은 온라인에서 특별한 돌을 찾아 수집하는 행위로 이어졌다. 돌이 필요한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사거나 구체적인 형태와 색채의 돌을 정해두고 그것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을 사는 게 아니라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돌을 사는데 그가 선택한 순간부터 상품이었던 돌의 의미는 전환된다. 역시 수집품(상품)을 활용한 작품인 <그린 자이언트 Green Giant>(2003), <돌핀 세이프 Dolphin Safe>(2003), <세일러 Sailor>(2004), <천하장사>(2004), <위대한 탄생>, <판다 굴 소스 Panda Oyster Sauce>(2017) 등도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보관된 뒤 그것이 생산되었을 때의 기능성을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오브제로 재탄생되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는 작가적 상상력 역시 새로운 의미 생성에 기여한다.
한편 수집의 행위는 그 자체로 인간의 소유 욕망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로부터 인간의 욕망, 나아가 과시와 허영을 대표하는 행위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욕망의 대상은 물리적인 것에서부터 지식, 권력 등까지 다양하다. 그중 사물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상징하거나 투영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과하지 않은 소유의 욕망은 인간이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동하며, 욕망이 실현될 때 만족감과 행복을 얻는다. 또한 어떤 욕망도 갖지 않는다면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종국에 홀로 세상을 떠나게 될 운명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욕망이 과잉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케이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Engraved Glory Indelible Past>의 화려한 트로피들은 세속적인 욕망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린 누군가의 삶을 은유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전시 [러브 미 스위트 Love Me Sweet](2012)에서 살아있는 새와 함께 했지만, 살아있음을 전하기에는 케이지의 무게가 육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의 배설물이 쌓였고 트로피는 빛을 잃었다. 영롱한 수집과 관찰의 대상도, 그것을 바라보며 만족하는 인간도 사라지고 달콤함은 케이지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바니타스(vanitas)와도 연결되는 이런 정취는 빈 수조에 해먹처럼 위태롭게 매달린 비닐, 그 안을 채운 고운 (모래 혹은 유리)가루와 살포시 올려진 해골로 구성된 <무제 Untitled>(2012)에서 더욱 부각된다. 커다란 케이지 안에 들어간 금속으로 만든 해먹과 그 위에 얹어진 살덩어리(같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무제 Untitled>(2012) 역시 필멸의 운명을 가진, 그저 육체로 존재하는 그리고 그저 인간인 우리의 허망한 운명을 보여준다. 한편 해먹의 형상을 한 오브제와 그 안을 채운 물질은 수집한 돌을 전시한 <All The Interestings>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색색의 액체가 담겼다. 밖으로 흘러내릴까 불안해 보이는 액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했고 곰팡이도 피었다. 정지한 물(생명)을 기다리는 것은 부패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썩어가는 액체와 곰팡이는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심지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을 선사한다.
다시 부조리하고 모호한 인간의 생으로 돌아가 본다. 죽음은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시작되는 죽음의 너머는 인간의 무능을 증명한다. 새로운 생도 또 하나의 죽음도 인간이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 생명은 다른 생명의 부패가 가져온 산물이다. 생명이 시작부터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생명을 얻음과 함께 죽음을 얻었다는 의미만 갖지 않는다. 죽음에 이어지는 부패는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위한 물질을 순환시킨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인간은 죽음에서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느낀다.²¹⁾
액체가 등장하는 작품은 이후에도 발표되었는데, 물의 순환을 시각화한 <깊고 넓게 Deep and Wide>(2017), 먹을 가는 기계를 변형해 흐르는 덩어리로서의 물을 보여준 <좋은 거래 Good Deal>(2019) 등이다. 실제로는 단단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유동체처럼 보이는 물질들이 돌의 표면을 덮기도 했다. 그런데 <All The Interestings>에서 보이는 돌의 결합, 설치 방식, 흘러내리는 분홍색의 레진(resin) 모두 수평적이다. 이는 황금빛 꿀과 벌집을 만든 것으로 보이는 <러브 미 스위트 Love Me Sweet>(2012)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고정된 형태를 갖지 못하는 유동체는 수평적이다. 수평선은 비정형성을 가장 분명히 작동시키는 본성을 갖는다. 그리고 수직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으로의 하락을 뜻한다. 인간은 직립함으로써 동물의 상태를 벗어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수직은 억압에 근거한다. 아카데믹한 인간의 만족을 위해 우주는 어떤 형태를 가져야 했다. 철학의 목표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비정형은 주어진 의미의 형용사인 동시에 각각의 사물이 그 자체의 형태를 지닌다고 주장하며 저급하게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든 비정형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²²⁾ 존재론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낮은 물질에 대한 새로운 성찰인 비정형은 정형성을 거부해 사물의 의미와 형태를 전락시킨다. 완결되지 않아 독립된 동일성을 유지할 수 없고 단일할 형태로 정의될 수 없는, 여러 가지가 뒤섞여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은 성스러움과 비천함이 만나는 순간이며 모든 범주가 해체되는 순간이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부재이지만 현전이며 있음으로 인해 없음을, 없음으로 인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²³⁾

<러브 미 스위트 Love Me Sweet> 23×120×90.5cm, 혼합 재료, 2012 ⓒ이동욱

흐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유동체,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상태의 작품들, 고체이자 유동체, 불안정한 상황을 제시하는 순간, 멈춰 있는 듯 멈춰 있지 않은 존재는 언제나 흥미롭다. 유사성에서 비유사성으로 이동하길 멈추지 않는, 무엇과도 닮지 않았으나 무엇과도 닮지 않은 것도 아닌, 무도 아니고 유도 아닌 열린 상태, 그것이 이동욱이 원하고 향하는 지점이다.

4. 명사도, 동사도 아닌 형용사
이동욱의 작업은 형용사로 끝나는 문장 같다.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개념보다 감정적인 무언가가 느껴진다. 명사보다 형용사가 떠오른다. 느낌과 인상이 전달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²⁴⁾ 열린 결말이라기보다 미완의 결말에 가깝다. 말 그대로 흐릿해짐이다. 마치 마침표를 찍지 않은 혹은 말 줄임표로 결말을 흐리는 소설을 발견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차이를 가진 해석들을 생산하기에 앞서 완성되지 않은 마지막 단어의 빈칸을 채워야 한다. 완성된 결말, 마침표는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기에 역으로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정확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어떤 감정이나 상태가 담겨 있는 작품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아쉬움과 여운이 떠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도 해소되지 않은 뚜렷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인지 더 궁금하고 흥미롭다. 미완성된 일이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가 작동하는 것 같다.
이동욱은 해석이 관객의 몫임을 너무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완결된 문장을 제시한다 해도 관객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해 의미를 생성할 것이다. 선택권은 작가가 아닌 관객에게 있다. 그래서 작가는 다양성의 길을 보여주는 데에서 더 나아가 문장의 마지막 자리에 놓일 단어를 삭제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일부를 지운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숨긴다. 부조리함을 체득한 작가는 작품에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하는 선에서 멈춘다. 아쉬움 없이 작품에 모두를 담아낼 수 없기에 더 깊은 의미를 담기 위해 지우는 것이다. 작품의 출발점이자 부조리한 작품에 반드시 필요한 명철한 사고는 이제 구체적 감각과 묘사 뒤로 사라진다. 부조리한 작가와 부조리한 작품.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 작품. 적게 말하는 작품. 그러나 작가가 살아가며 느낀 것 이상을 불러들이는 작품.²⁵⁾ 그것이 이동욱의 예술적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