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8. 03.

본 글은 『리포에틱 평론과 대화-이동욱』(2022)의 「대화」(pp. 35-88)를 바탕으로 합니다. 「대화」는 이문정과 작가 이동욱의 대화를 녹취하여 편집, 정리했으며 정리된 내용에 대한 작가의 확인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작가 이동욱( Lee, Dong Wook )

LEE : 이문정, LDW : 이동욱

LEE : 언제부터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미술 외에 두각을 보이거나 흥미를 느꼈던 다른 영역은 없었는가?

LDW :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지만 어렸을 때 매달 달력 찢는 날을 좋아했었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큰 종이에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웠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큰 달력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막연히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고, 친구들과 비교해도 그림 그리는 것을 많이 좋아했던 것은 맞다. 만화나 동물 등을 그렸지만 만화를 그렇게 많이 그리진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내가 아주 잘 그리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초등학교 때도 나보다 잘 그리는 학생들이 항상 있었다. 내가 만화를 그렇게 잘 그리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당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친구들은 만화를 많이 그렸다. 나는 그렇게 그리지 못했고,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

LEE :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LDW :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다. 학교 미술부였던 중학교 때도 방학이 되면 일주일에 1~2회씩 미술학원에 갔다. 내가 좋아했고, 그림이 내 생활의 전체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미술 시간을 제일 좋아했었다. 대학을 미술 전공으로 진학해야겠다고 결정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인데, 이때부터 이전보다 열심히 했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진 않았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예고에 진학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고민했었지만, 대전에는 예술 중, 고등학교가 없었다. 진학을 위해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게 엄두가 안 났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미술 외에는 관심 가는 게 별로 없다. 영화나 만화처럼 미술의 연장선인 것을 좋아하는 정도이다. 물건을 수집하는 것도 결국 작업과 연결된다.

LEE :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LDW : 영화나 만화를 그렇게 많이 보는 것도, 적게 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2014)의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처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는 챙겨보는 편이다.

LEE : 어렸을 때부터 반려동물을 길렀다고 했는데 여태까지 기른 동물은 무엇이 있었는지, 반려동물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듣고 싶다. 특히 물고기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LDW : 곤충, 물고기, 새, 강아지 정도였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풀밭에서 잡은 도마뱀을 1년 넘게 길러본 적이 있다. 지금은 금붕어를 비롯한 몇 종류의 물고기, 사슴벌레를 기르고 있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말리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계속하는 것을 보면 어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을 관찰하고 가까이서 보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LEE : 물고기나 곤충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LDW : 강아지와 고양이는 가족 같고 상호 간에 오가는 게 있다면 물고기나 곤충은 관찰의 대상이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장면을 좋아한다. 살아 있는 곤충보다 표본을 수집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은데 나는 그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곤충을 좋아한다.

LEE : 형태에도 흥미를 느끼는가?

LDW : 곤충 수집의 시작은 그 형태에 흥미를 느껴서이다. 곤충은 서양의 갑옷 형태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한다.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 완벽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형태가 좋았다. 곤충의 더듬이나 다리보다는 딱딱한 유선형의 볼륨감을 보여주는 몸통의 형태가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LEE : 그러고 보니 물고기도 유선형이다. 혹시 곤충의 특정한 색에 집중하지는 않는가?

LDW : 색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지금 내가 기르는 곤충은 다 완전히 검정이다. 곤충마다 검정 스포츠카를 보는 듯한 미묘한 질감의 차이나 광택의 차이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곤충이 있고, 이게 생물에서 나올 수 있을까 싶은 다양한 색채를 보고 열광하지만 결국 기르는 것은 검은빛을 띤 곤충이다.

<불특정 다수 Unspecified> 가변 크기, 혼합 재료, 2001 ⓒ이동욱

LEE : 서양화를 전공했던 대학 시절의 작업이 궁금하다.

LDW : 고등학생 때까지의 그림 중 남은 것은 없고, 대학생 때의 그림은 있다. 내 작업이라고 생각할만한 것으로 대학교 3~4학년, 특히 4학년 때의 작업을 들 수 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닐 수 있지만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을 합쳐놓은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인물상 같은 게 중간에 들어간, 단편적인 장면을 담았는데 보기에 그렇게 편한 그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잔혹한 이미지가 등장하는 그림도 아니었다. 대학생 때 만든 작품이나 초기의 입체 작품 중에 단순하지만 움직임을 넣으려고 했던 것도 있다. 모터로 움직이는 작품들을 몇 점 만들었다.

LEE : 혹시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있을까?

LDW : 그때나 지금이나 나체의 인물 혹은 동물의 형태가 등장하는데, 그 형태가 반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작품에 두 인물이 들어간다면 서로 다른 인물이 아니라 같은 모습의 인물이 반복된다. 특별히 계산하고 그리거나 만들지는 않았고 그냥 그게 좋았다. 반복되는 동작에 관심이 있긴 한 것 같다. 또한 작품 속 존재들이 특정한 행동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고립된 듯한 느낌도 있다.

LEE : 서양화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LDW : 내 성향상 디자인 전공은 아예 생각을 안 했고 서양화와 조소 사이에서 고민했다. 내가 지방에서 입시를 준비해서 조소 학원이 많지 않았던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입시 학원에서도 조소를 배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때 회화와 조소가 그렇게 다르다는 생각을 안 했다. 둘 다 순수 예술이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LEE : 그렇다면 입체적인 작품을 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대학생 때 애니메이션 수업을 들으면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LDW : 서양화를 전공했어도 선택 과목에 조소가 있어서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수강했다. 물론 1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이니 기초적인 것을 배우는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반드시 조각을 해야겠다, 회화를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정하지 않고 작업했다.

LEE : 회화를 전공한 데에서 나오는 작업의 특징 같은 것은 없을까?

LDW : 내 주변의 조각을 전공한 작가들의 작업을 보다가 내가 색에 조금 더 민감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회화적인 표현으로 해결하려는 게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조소 전공자보다 만드는 것에 덜 익숙할 테니까.

LEE : 현재까지 이동욱의 작업을 보면 입체의 비중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리지 않고 만들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을까?

LDW : 특별한 전환점은 없었다.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두 개가 대등하게 공존하던 시기도 있었다. 타고난 재현 능력으로만 보면 회화(평면)적으로 재현하는 것보다 입체로 재현하는 것을 조금 더 쉽게 하는 것 같긴 하다. 그림을 그릴 때는 잘 안 그려져 고민하고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만들 때는 막힘 없이 흘러가 스트레스도 덜했다.

<질식> 6×5×5cm, 혼합 재료, 2003 ⓒ이동욱

LEE : 첫 전시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예상했는가?

LDW : 나는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 잘 된 편이다. 자신감이 있거나 하진 않았지만, 전시할 당시 만족스러웠던 부분이 많긴 했다. 내가 만족하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고 내가 불만족하면 다른 사람들도 불만족하고, 작품에 대한 반응은 비슷한 것 같다.

LEE : 최근 들어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기는 하지만, 이동욱의 인간상을 떠올리면 연분홍색 혹은 살구색의 피부를 드러낸 작고 연약한 인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앞으로 이와 같은 분위기를 벗어난 인간상이 등장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LDW : 아직은 잘 모르겠다. 최근에는 이전보다 그와 같은 형상에 흥미를 덜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일시적일 수도 있고 지속될 수도 있을 거다. 억지로 지속하거나 변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게 좋다.

LEE : 2009년에 제작한 사진 작업이 있다. 작가로 데뷔한 이래 사진 외에 평면 작업을 발표한 적이 있는가? 앞으로 회화나 사진 작업을 진행할 계획은 없는가?

LDW : 사진이 주가 되는 전시는 아니었고, 입체 작품을 전시할 때 같이 놓았던 것이다. 그 외에는 없다. 회화와 관련해서 나는 그리는 행위가 계속 쌓였을 때 나오는 그 깊이에 감흥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내가 그림을 안 그린 지 오래되어 그 정도의 깊이를 우러나오게 할 엄두가 안 난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 워낙 회화 작업 보기를 즐기니 내 관심 영역에 존재하고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둘 다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니 가능성은 열려 있다.

LEE : 다른 매체로 확장할 계획은 없는가?

LDW :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다. 필요하다면 영상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계속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선호하지 않는다.

LEE :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드로잉을 하는가? 드로잉을 한다면 전부 보관하는가?

LDW :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드로잉 해놓은 것을 일부러 버리진 않지만, 단순히 형태나 비율을 확인하기 위한 드로잉의 경우 종이(A4용지)에 쓱쓱 그리고 버릴 때도 많다. 작업의 모티브가 될만한 드로잉들은 남아있다. 이전에 개인전을 진행할 때 공간의 여유가 생겨 드로잉 20여 점을 함께 걸었던 적이 있었다.

LEE : 머릿속에서 작업에 관한 영감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나?

LDW : 아니다. 계속 앉아서 작업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이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지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다. 평균적으로 일정 시간 동안 잘 집중해서 작업하면 계속 생각이 떠오른다. 인물을 만들다 보면 인물이 놓인 상황이나 이후의 상황들에 대한 상상이 이어지거나 심상이 떠오르는 식이다.

LEE : 작업을 시작할 때 영감이나 힌트를 주로 어디에서 얻는가? 작업 노트를 작성하는가?

LDW : 메모를 적을 때가 있다. 다만 길 가다 갑자기 생각나서 급하게 적었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별것 아닌 경우가 꽤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업 중에 떠오르는 게 제일 좋다. 바로 다음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 떠오른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간단한 드로잉을 하기도 한다. 글보다는 이미지로 떠오를 때가 작업으로 확실히 연결된다.

LEE : 작가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영감을 받을 때도 있을 것이다.

LDW : 아무래도 영화나 소설 같은 데에서 영향을 받는 것 같고 동시대 미술에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다른 작가들 작품을 보면서도 영향을 받는 것 같고. 다만 내가 의식할 정도로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LEE :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인가?

LDW : 아예 안 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도 없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작품들을 챙겨보는 정도이다. 코맥 매카시 (Cormac McCarthy)의 소설을 좋아한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고 죽음의 언저리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다.

LEE : 혹시 이전부터 좋아하거나 눈여겨본 작가가 있는가?

LDW : 대학생 때 다양한 작가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 전시뿐 아니라 도록이나 미술잡지를 정말 많이 봤다. 한두 명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당시 감흥을 받았던 작가들이 많았다.

LEE : 이동욱의 작업은 입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조각과는 다르다. 인형이나 피규어(figure) 같다. 혹시 대학 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 것과도 연결되는가?

LDW : 연결고리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에서 파생된 피규어의 영향 같은 게 있긴 할 거다. 마니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관심 있게 보며 수집한 것도 있다. 다만 내가 나의 입체 작업이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부터 시작했다고 기억하고 말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점토를 처음 사용해 인물을 만들었기 때문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LEE : 원래 작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가?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대부분의 크기가 작다.

LDW : 당시 내가 좋아했던 오브제들과 연관된다. 점토를 갖고 놀다가 내가 갖고 있던 오브제와 결합한 <무제 Untitled>(1999)가 작은 입체 작업의 시작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시 내가 선택했던 오브제가 작아서 작은 크기의 작품이 나온 것 같다.

LEE : 모두 다 직접 만드나?

LDW : 다 내가 직접 만든다.

LEE : 혹시 직접 만들고 싶어서 작가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만들다 보니 크기가 더 커지지 않았던 것인가?

LDW :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인물상의 경우 나보다 더 잘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혼자 작업을 지속해온 것을 보면 내가 직접 만드는 것, 그리고 작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LEE : 혹시 작품에 반드시 작가 자신의 손길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가?

LDW : 그건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다. 작은 크기의 작품은 내 손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해보지 않아 단언하긴 어렵지만 큰 작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상황마다 다르므로 확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LEE : 혹시 만들 때 촉감, 재료가 내 손에 만져지는 기분을 즐기는 편인가?

LDW : 그렇다. 지금 사용하는 스컬피(sculpey)라는 재료가 그런 면에서는 촉감이 다른 재료보다 좋은 편이다. 다른 건 손에 달라붙기도 해 번거롭다.

<무제 Untitled> 가변 크기, 혼합 재료, 2016 ⓒ이동욱

LEE : 작품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LDW : 크기나 무게 모두에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Arario Museum in Space)에서 선보였던 <무제 Untitled>(2016)이다. 큰 선박의 닻에 사용되는 쇠사슬에서 시작해 점점 작고 얇은 쇠사슬까지 연결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시작과 끝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LEE : 앞으로 작품의 규모를 키울 생각은 없는가?

LDW : 내 경험에 근거해보면 큰 작품에서만 받을 수 있는 감흥이 분명 있다. 그런 것을 내 작업을 통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다.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LEE : 만약 작품이 커지면 작은 부분이 모여 큰 것을 이루는 것, 하나의 덩어리로 큰 것, 어느 쪽인가?

LDW : 후자일 것 같다. 내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 한 덩어리로 큰 작품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LEE : <그린 자이언트 Green Giant>(2003), <천하장사>(2004) 등에 등장하는 실제 상품을 좋아하는가?

LDW : 그것을 많이 먹거나 한 것은 아니고 디자인적으로는 그렇다. 천하장사의 경우 신동우 화백의 인물 표현과 상품의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린 자이언트도 마찬가지이다. 캔(can) 같은 경우 마음에 들면 종종 모으기도 하는데 수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유통기한을 넘기면 부패해서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기도 해서 불가능하다.

LEE : 상품의 디자인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캠벨 수프(Campbell's soup)만 해도 매우 감각적이다.

LDW : 내가 음식에 관심이 많아 다른 것보다 식품 통조림의 형태 등에 애정을 갖는 것 같다. 사람이 디자인한 상품을 좋아하는데 그중에 음식에 관심이 있는 정도라 말할 수 있겠다.

LEE : 이동욱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수집이 빠지지 않는다. 수집은 여러 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인간의 행위이다. 인간은 영원히 소유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무언가를 소유하길 원한다.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도 이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수집에 근간한 작업은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욕망과 생사)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전시된, 빈 수조에 위태롭게 매달린 비닐과 해골이 보이는 <무제 Untitled>(2012)도 그렇고, <지켜야 할 영광과 지우고 싶은 과거 Engraved Glory Indelible Past>(2012)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수집과 관련해 인간의 소유욕이나 욕망 등을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다.

LDW : 작품을 위한 직접적인 재료로 수집품을 가져오거나 수집이 그 자체로 작업의 모티브가 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의 작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내가 미술만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작업할 당시에는 수집을 인간의 욕망이나 존재에 관한 탐구 등과 연결하지 않았다. 그냥 좋으면 모았다. 나에게 수집은 즐거운 거였다. 최근에야 수집의 의미 등에 관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끝없는 인간의 소유 욕망과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내가 느끼는 것을 말하자면, 하나만 더 가지면 만족할 것 같은데 그것을 가지면 다른 게 또 눈에 들어오기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LEE : 본인이 수집한 오브제가 작품에 등장한다. 그런데 작품이 되는 순간 수집품으로의 의미가 사라진다. 달리 보면 예술 작품이라는 또 다른 수집품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작품에 사용할 것을 예상해 동일 물건을 여러 개씩 수집하거나 하진 않는가?

LDW : 가능하면 두 개씩 모으는데 작품을 위한 것은 아니다. 확실히 작품에 사용할 것 같으면 더 많이 모은다. 현재도 작업에 관계된다고 생각해 놓아둔 것들이 작업실의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작업실에서 내가 모은 물건을 바라보다 그것을 샀을 때 어떻게 작업을 하고 싶었는지를 떠올리고 작업하기도 한다. 나의 수집품들이 나에게는 에스키스나 드로잉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사물을 통해 기억하는 방식이다. 하나밖에 없는 수집품의 경우 작업을 위해 사용하길 주저한 적이 있긴 했다. 대체품을 구하려 한 적도 있고.
사실 작업 이야기를 할 때 수집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수집가라고 할 정도의 양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만큼의 정성을 쏟는 것 같지도 않다. 마니아라고 하긴 부족하다. 아주 잘 모으고 정돈 잘하는 사람도 아니다. 수집을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 없어도 시리즈나 구성을 맞추기 위해 모으는데 난 그러지 않는다.

LEE : 수집하는 항목이 정해져 있는가?

LDW : 그런 건 없다. 그냥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사서 보관한다.

LEE : 모아놓고 보면 중복되는 항목이 있을 것도 같다.

LDW :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쓸모가 없는데 순수하게 모으는 것은 무언가를 기르는 케이지(cage)이다. 예쁜 새장이나 어항을 보면 기를 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고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소유욕이 생긴다. 그냥 그것만 갖고 있어도 좋은 느낌이 든다. 병도 좋아한다.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오브제를 좋아하는 것 같다.

<브릭 Brick> 21×21×36cm, 혼합 재료, 2018 ⓒ이동욱

LEE : 혹시 피규어도 수집하는가?

LDW : 관심 가는 영역이고 욕심이 날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지속적으로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고, 수집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다. 피규어 중에 내 마음을 끄는 형태나 디자인들을 구입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주로 좋아하는 만화의 피규어이다.

LEE : 레고(Lego)는 어떤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Ⅰ 라이즈호텔에서의 전시 [무한주 Endless Colunm](2019)에 소개되었던 <브릭 Brick>(2018)에 레고 조각이 사용되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LDW : 내가 어렸을 때는 레고가 흔하지 않았다. 갖고 싶었지만 별로 즐기지 못했다. 레고는 지금도 좋아하는데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제작된 레고 조각들을 조합하는 재미가 있다.

LEE : 첫 개인전 [인브리딩 Inbreeding](2003)에서 발표한 인체와 이후 발표된 인체의 피부 느낌이 바뀌었다. 조금 더 촉촉해진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작(표현) 방법이 많이 다른가?

LDW : 재료는 똑같다. 피부를 표현할 때 물감을 섞어서 사용하는데, 색의 비율의 달라져서 그렇다. 첫 개인전 때의 작품들은 피부를 붓으로 그리는 게 30% 정도였다면 이후에는 10%로 줄었다. 인물의 주름 등을 그리기보다 실제로 만들어 재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다르게 보일 수 있다.

LEE : 표면을 전부 칠한 게 아닌가?

LDW : 만드는 재료 자체에 색이 있다 보니 전부를 칠할 필요가 없다. 색이 있는 점토들을 섞거나, 점토에 색을 첨가해 만든다.

LEE :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LDW : 첫 번째 개인전과 두 번째 개인전이 다르고, 지금은 또 다르다. 지금의 방식을 말하면, 제일 먼저 알루미늄 선으로 인물의 뼈대를 만들고 내구성이 있는 딱딱한 재료인 에폭시 퍼티(epoxy putty)로 내부 뼈대와 근육 같은 기본적인 형태를 만든다. 다음에 스컬피로 세부적인 형상과 표면을 완성한다. 이때 스컬피에 2~4가지 정도의 색을 섞어 내가 원하는 톤을 표현한다. 그다음 유화 물감으로 표면 처리를 해 마무리를 한다.

LEE : 작품을 완성한 후 보호를 위해 전체를 코팅하는 경우는 없는가?

LDW : 하는 경우 안 하는 경우 모두 있다. 예를 들어 첫 개인전에는 반짝거리게 코팅을 하거나 아예 안 했고,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아주 얇게 발랐다. 조금씩 더 세밀해지는 것 같다.

LEE : 유화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LDW : 제일 고운 안료를 발라야 표면 효과가 좋다. 내가 쓸 수 있는 게 아크릴, 유화, 에나멜 정도인데 조직이 치밀하고 적은 양을 살짝 발랐을 때도 발색이 잘 되기 때문에 유화를 쓴다.

LEE : 사용하는 붓 크기는?

LDW : 아주 작은 눈을 그리거나 할 때는 0호나 1호를 쓰고 전체 톤을 맞출 때는 그보다 큰 붓을 사용한다.

LEE : 너무 작아 손으로 못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는 무엇인가?

LDW : 보통은 시중에 판매되는 조각도를 사용하고, 아주 작은 부분을 표현해야 할 때는 내가 직접 만든 도구를 사용한다.

LEE :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동욱의 인체상을 한 점 만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LDW : 인물상 하나 정도로 치면 물리적인 시간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는다. 초창기에는 그 방법을 잘 몰라 헤매고 실패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중간에 수정하면서 만드는 것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 인물 하나에 일주일 정도 걸린다. 형태와 동작, 표현 방식이 확정된 것을 만든다면 3~4일이면 될 것 같다.

LEE : 하나를 다 완성한 뒤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가?

LDW : 전시를 앞두고 작업할 때는 굳는 시간 등을 고려해 2개 정도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데 내 성향에는 한 번에 하나씩 만드는 게 더 잘 맞는다.

LEE : 인물을 만들면서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생각을 하는가?

LDW : 그건 아니다. 물론 만들 때마다 흡족함, ‘작품 하나가 나왔구나’라는 마음은 있다. 찍어내듯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LEE : 하루에 작업실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가?

LDW : 실제로 만드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은 것 같다. 크기가 작아서 상대적으로 빨리 완성하는 편이다. 전시를 앞두고 혹은 작업을 몰아서 할 때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꽤 오래 작업한다.

<두 마리> 34×28×28cm, 혼합 재료, 2003 ⓒ이동욱

LEE : 이제 개별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두 마리>(2003)라는 제목도 그렇고, 전시 [Inbreeding]의 작품들을 보면 절단된 신체가 눈길을 끄는데, 인간을 대상화하고 육체(물질)로 존재하는 인간을 부각해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적인 구별을 벗어나는 것 같다. <생각의 수집>(2003)에서는 ‘생각=머리’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지적 작용이 머리라는 육체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의도가 작품에 담겨 있는가? 그리고 절단된 신체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LDW : 질문을 듣고 ‘그랬구나’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잘라야지, 그런 내용을 보여줘야지’와 같은 생각으로 작업하진 않았다. 지금에 와서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니 나의 회화에서 온 영향인 것 같다. 이전에도 인체들을 보여주는 작업을 했었기 때문에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웠다. 또 당시에는 단편적으로 생각하던 시기라 머리를 보여주고 싶으면 머리만, 손가락을 보여주고 싶으면 손가락만 그리거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리’라는 표현은 당시에 내가 무언가를 계속 길렀기 때문인 것 같다. 기르는 행위가 내 작업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담긴 것이다.

LEE : <두 마리>의 인물이 케이지에 담긴 것에서도 영향을 찾아볼 수 있겠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작품이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안으로>(2003)에서는 인간이 주사기 안에 들어가 눌려 있고 <질식>(2003)에서는 유리병 안에 들어간 인간의 얼굴이 제목처럼 곧 질식할 것 같다. 가학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상황이다.

LDW : 작업하면서 살아 있는 인간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정신적인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신적인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각화한 결과라 보는 게 정확하다.

LEE : 육체성보다는 인간이 처한 상항이라든가 내면이나 심리적인 부분을 시각화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라 불리는 미술이 다수 등장했다. 그와 연결해 생각할 여지도 있는 것 같다.

LDW : 당시의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닌데, 내 성향으로 미루어볼 때 잔혹하거나 그로테스크한 것을 좋아하거나 흥미로워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와 같은 동시대 미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으니 영향이 없었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감흥을 받거나 그와 같은 작업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정도로 말할 수 있다.

LEE : 그렇다면 당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현대인들의 상황이나 심리가 그처럼 힘들다고 생각한 것인가?

LDW : 당시의 나는 시대 상황이나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안에서 나온 것은 맞다. 그러나 당시를 되돌아보면 행복하다고 느끼며 작업했었다. 나이 들수록 일도 많아지고 걱정도 많아지니까.

LEE : 개인마다 감상은 천차만별이겠으나 초기작부터 환상적인 잔혹 동화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작가와 2019년 만났을 때 진행했던 인터뷰에서도 공포스럽거나 잔인한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잔인한 것은 무엇인가?

LDW : 내가 제일 보기 힘들어하는 것은 실제 사건 사고에 나오는 끔찍한 이미지들이다. 상상이라고 생각하면 허용되는 부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거나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공포영화도 안 좋아한다.

LEE : 본인의 작품을 보고 무섭다고 말했던 관객은 없었는가?

LDW : 현대 미술에 익숙한 사람이나 미술의 맥락 안에서 감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한 번은 온라인 댓글에서 불편하다는 반응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목표했던 것이 불쾌나 혐오, 공포의 감정을 주려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른 만큼 내 작품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반응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보고 대화하기 전에는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인 나를 무섭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웃음). 음침하고 무서운 사람일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LEE : 누군가 본인의 의도와 정반대로 작품을 분석해서 당황했던 적은 없는가?

LDW : 없다. 정말 내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확대 해석되는 경우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상태에서 확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경우 오히려 작업할 당시의 나를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LEE : 작업하면서 본인의 작품이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LDW : 어쩌면 내가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해본 적 없다. 생각해보면 공포영화도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무섭다고 느끼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런 느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다. 작품 속 존재가 처한 힘들어 보이는 상황을 현실과 연결해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이와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인물들이 모두 연약한 피부를 가진 존재라는 점이 두드러져 그런 것 같다.

LEE : <질식>은 어떤 이유로 만들었나?

LDW : 숨이 꽉 막히는 심상이 머리에 떠올랐다. 당시에는 내 얼굴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인물상을 만들었는데, 내가 그런 상황이라고 느꼈던 것은 아니다.

LEE : <츄파춥스 Chupa Chups>(2003)에서는 왜 인간의 얼굴로 츄파춥스를 만들 생각을 했는가?

LDW : 왜 그와 같은 형상을 계속 만들어냈는지 대화하며 생각해보니 내가 편한 상황은 아니었나 보다(웃음). 인간을 사회 속에서 소비되는 연약한 존재로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글로 정리한 적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심상으로 작업하는 것 같다.

LEE : <두 마리>에서는 왜 얼굴을 두 개 붙여놓은 것인가?

LDW : 반복되는 형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내용으로 치면 몸은 하나인데 머리는 두 개인 불편한 상황, 서로 의지가 되는 상황이라기보다 불편한 상황을 생각하고 만들었다.

LEE :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동시에 떠오르거나 생각이 쪼개지는 상황을 표현한 것인가?

LDW : 그런 의미도 있었다.

LEE : 개인전의 제목을 ‘Inbreeding’이라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동종번식/동종교배라는 의미에서 인간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온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 같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추측해 보면 이동욱의 작업은 전체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나 문제의식보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나 작가 개인의 생각 혹은 상상을 담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 무엇을 담아내고 싶었나?

<아껴 쓰기> 가변 크기, 혼합 재료, 2004 ⓒ이동욱

LDW : ‘Inbreeding’이 익숙하지 않거나 불편할 수 있지만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이다. 필요 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시 내 작업 과정에 그런 태도가 담겨 제목으로 선택했다. 여러 가지 중에 정점을 찾아 완성하고 싶던 시기였다. 외부의 일들에 반응하기보다 내 안에서 심상과 방향을 계속 찾아가던 시기였음을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LEE : 그와 같은 행위는 동물이나 식물을 중심에 놓지 않고 인간 중심적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는 행위 아닌가?

LDW : 그렇게 볼 수 있다. 농작물이나 가축의 생산성을 높이는 등의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일정 부분에서 인간 욕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LEE : 자신 안에 집중해 작업의 정점을 향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느끼기에 당시의 작업은 인간을 대상화해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가 설정되어있는 것 같다. 앞서 곤충을 관찰한다고 했는데, 본인처럼 인간을 사육하고 관찰하는 누군가를 상상함으로써 이 세상에 인간만 있은 것도 아니고 인간이 세상의 지배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 같다.

LDW :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즈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Bernard Werber)의 『개미 Les Fourmis』(1991~1996), 『나무 L’arbre des Possibles et Autres Histoires』(2002)를 재미있게 읽었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와 같은 소설에 영감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인간을 관찰하거나 사육하는 거대한 인물 혹은 존재를 설정하거나 하진 않았다. 실제 나 같은 인간이 있고 나보다 작은 인간이라는 식의 설정도 안 했다. 굳이 이야기하면 구체적인 존재라기보다 거대한 힘을 생각할 때가 있다. 일종의 섭리,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사회라는 게 제일 가까운 표현 같다. 신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체계,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체계, 바뀌기 쉽지 않은 설정 등이다.

LEE : 갑자기 르네 랄루(Rene Laloux)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 The Savage Planet>(1973)이 생각난다.

LDW : 비슷한 시기에 봤던 애니메이션도 봤다.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LEE : 이동욱의 작업을 보다 <델리카트슨 사람들 Delicatessen>(1991)이 떠오른 적도 있다. 작업을 꼭 영화와 연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타지적이면서 동화적이기도 한데 블랙 유머(black humor) 같고 음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LDW : 개봉 당시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좋아했고 이후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The City Of Lost Children>(1995)를 비롯해 장 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의 영화를 챙겨봤다. 당시에 내가 이 영화의 감독을 좋아한 것으로 보아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LEE :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보다 작가의 취향을 추적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LDW : 특히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당시의 내 취향에 딱 맞았다. 얼마 전 우연히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좋았다.

LEE : 앞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했는데 요즘에는 어떤 영화를 즐겨 보는가?

LDW : 영화는 액션에서부터 실험적인 영화까지 골고루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더 랍스터 The Lobster>(2015)를 시작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Giorgos Lanthimos) 감독의 영화를 챙겨보았다.

LEE : 개인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인간(사)을 조망하면서 보편적인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 또 인간의 힘든 부분들을 다루는데 오히려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이미지나 이야기를 담는다.

LDW : 그렇게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마냥 즐겁고 행복했는데 그런 작업이 나오진 않았을 테니 현실이 아예 반영 안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예리하게 혹은 직설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LEE : 평상시에 ‘인간 존재는 무엇인가?’와 같은 생각을 하는가?

LDW : 그와 같은 고민을 항상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고민하거나 답을 찾으려고 하진 않는다. 일이 안 풀릴 때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LEE : 본인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질문 혹은 느낌(인상) 등이 있는가?

LDW :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작업하면서, 특히 개인전을 준비할 때는 관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객이 작품을 보고 어떤 감흥을 느끼게 하는 게 내 작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업이 작가 개인의 만족감만을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이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상황을 반영해가면서 작품을 읽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읽으면 된다.

LEE : 작업을 기획 혹은 진행하면서 내러티브를 함께 만드는가?

LDW : 이야기를 떠올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이야기를 설정하고 만들지 않는다. 당시에 문뜩문뜩 떠오른 생각이나 분위기, 즉 내가 심상이라 말하는 것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지 완벽하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런 설정을 하면 작업이 조금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작업이 안 풀릴 때 내가 이야기를 만들며 작업하지 않아 그런 것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LEE : 그렇다면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업이라 이해해도 될까?

LDW : 그건 정확히 대답할 수 없다. 작품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이야기 흐름대로면 인물이 서 있는 게 맞는데 계속 앉은 이미지가 떠올라 앉히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닌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온종일 작업만 하는 시기, 즉 작업에 흠뻑 빠져 있을 때는 그 둘이 분리되지 않고 시각적인 것과 내러티브 등을 인식하지도 않은 채 작업을 술술 풀어내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을 때는 상황을 설정하거나 심상을 떠올리며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LEE : 작업할 때 심리적으로 예민해지는 편인가?

LDW : 한창 작업할 때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편이지만 누구에게 예민하게 굴고 그렇지는 않다.

LEE : 초기부터 대부분의 인간상이 옷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옷을 입은 경우에도 피부로 만든 옷이다.

LDW : 처음부터 옷을 입지 않은 인물을 만들겠다 정하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굳이 옷을 입힐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옷이 군더더기처럼 느껴져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필요 없어서 빠진 것이다.

LEE : 피부로 옷을 만들어준 이유는 무엇인가?

LDW : 일단 나체의 사람들을 만들다가 옷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있고, 피부의 느낌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나는 피부가 연약함이나 연민을 느끼게 하고 강하지 않은 인간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운데 옷을 안 입고 있는 사람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위대한 탄생> 가변 크기, 혼합 재료, 2004 ⓒ이동욱

LEE : 두 번째 개인전 [마우스브리더 Mouthbreeder](2004)의 경우 사물화된 혹은 대상화되어 소진되는 인간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재활용되고, 부활하고, 새로 탄생하지만 너무 약하고, 무기력하고,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은 인간들이다. 거대한 종족에 의해 사육당하는 인간 같은 분위기는 이번에도 이어진다.

LDW : 두 번째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전시 공간이 확정된 다음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설정이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 안쓰러운 존재처럼 보이는 분위기가 있었다. 또 당시에도 내가 무언가를 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느낌이 이어졌을 것이다.

LEE : 사전적 뜻으로 ‘Mouthbreeder’는 ‘입 안에서 알이나 치어(稚魚)를 기르는 열대어’이다. 치어는 물고기의 입속에 머무는 동안 넓은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어항 속 물고기도 그렇고, 케이지 안에 사는 새나 동물도 그렇다. 보호받는 것 같으면서도 갇혀 있는 것 같은 상황에 놓인다.

LDW : 앞서 말했든 내 작품에 내 삶의 상황이 대입되진 않는다. 당시의 상황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서 그런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보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거대한 사회 속의 인간을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무언가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으니 전자는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Mouthbreeder’란 제목은 어린 물고기를 최대한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선택한 극단적인 방법,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을 느껴서 고른 제목이다. 실제로 물고기가 입안의 치어를 삼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수가 아니라 외부에 위협이 있다고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안전을 지키고 잘 키우겠다는 의지가 극단으로 가면 오히려 보호의 대상을 해치는 상황, 그 경계점의 느낌,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볼 수 있는 상황에 관심이 있었다. 인간도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이나 생각하지도 못한 해결책을 찾아낼 때가 있다.

LEE : [Mouthbreeder]의 전체 흐름과 개별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LDW : 큰 연결고리는 없었다. 전시 제목을 정할 때 작품 하나하나를 모두 설명하거나 대표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해석이 다양하게 보이는 장면을 이야기하기에 괜찮은 제목이라 생각했다. 관객 대다수는 나처럼 물고기를 기르지 않을 테니 그 단어가 낯설 것이고, 그러면 예상할 수 없는 연상 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을 텐데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LEE : <아껴 쓰기>(2004)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LDW : 이미지 자체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껍데기만 남은 상황이다. 물감을 끝까지 짰을 때의 형상을 인간으로 변환한 것이다. 형태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까지 짜내도 물감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우리는 그런 행위를 절약한다고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물감뿐 아니라 치약도 그렇다. 그런데 만약 그런 행위를 인간에게 한다면 어떤 느낌일지 표현하고 싶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소비되어 가는 인간들을 떠올린 것도 같다.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라 평가받는 행동이어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었다.

LEE : 한 번 더 물어보겠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시각적으로 잔인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나?

LDW : 실제 인간을 짠다는 생각보다는 소비되어 버린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안타까움을 갖고 작업을 했기 때문에 잔인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LEE : <위대한 탄생>(2004)에서 모차르트 쿠겔른 초콜릿(Mozart-kugeln Chocolate)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차르트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전통 예술의 규범과 한계를 벗어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규범과 전통이 가져다주는 보호를 거부해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진 반항아가 생각나기도 한다. 정황상 인간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나머지 초콜릿을 칼로 찌르고 홀로 살아남아 탈출한 것 같은 인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도 궁금하다.

LDW : 의도적으로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찾은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 쿠겔른 초콜릿이 있어서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시 특정한 인물 이미지가 들어간 제품을 모으던 시기였고, 디자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 작품으로 이어졌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모차르트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도 관련될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 정도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먼저 태어난 새가 나머지 알을 밖으로 밀어내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경쟁 속의 인간, 심한 경쟁에 대한 압박, 마지막에 승자로 일컬어지는 한 명만 살아남는 상황들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LEE : 클래식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모차르트의 얼굴을 찌른 것을 전통 예술에 대한 저항이나 전통을 벗어난 작업을 선보이는 예술가의 등장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LDW : 젊은 작가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겠지만 당시에 그런 생각은 안 했다.

LEE : <후커 Hooker>(2004)의 경우, 작품을 들고 있는 대일밴드를 붙인 손이 등장하는 도판이 있다. 어떤 의도로 연출한 것인가?

LDW : 당시에는 작업하고 나면 밴드를 붙이게 되는 일이 잦았다. 크게 위험한 건 아니지만 칼을 쓰거나 하면서 조금씩 상처가 생겼다. 완전히 인위적으로 연출했다기보다 손을 실제로 다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표현을 함께 넣게 되었다. 내가 손을 다치니 그것을 담아보자는 것은 아니었고 익숙한 이미지여서 내가 피를 표현할 때 사용하던 물감을 손에 묻힌 뒤 밴드를 감아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LEE : <아디다스 보이 Adidas Boy>(2004) 도판에 등장하는 그림은 무엇인가?

LDW : 사사키 노리코(Sasaki Noriko)라고 당시 제일 좋아했던 만화가의 그림인데, 같은 작품을 아디다스 광고 사진 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도 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흰 바닥이 아니라 작품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일상품을 찾다가 어울릴 것 같아 놓았다. 사사키 노리코의 작품 중 『동물 의사 Dr. 스쿠르 動物のお医者さん』(1987~1993)를 재미있게 읽었다. 동물병원 이야기인데 한 남성이 수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개업할 때까지를 다룬다. 사사키 노리코의 작품 중 병원, 식당, 방송국, 이런 식으로 특정한 집단을 설정해놓고 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보여주는 만화들을 주로 봤다.

LEE : 낚시를 하는가?

LDW : 지금은 아닌데 그때 낚시를 좀 했었다.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많이 잡아보지는 못했고, 잡은 생선은 방생했다.

LEE : <Hooker>의 의미와 시각적인 이미지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 이런 형상을 만들었나?

LDW : 내 전체 작품 중에 관객들이 제일 불편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내가 100% 생각해낸 형상은 아니고 낚시용품 중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가짜 미끼인 루어(Lure)에서 따온 것이다. 손이 등장했던 이유도 실제로 사용되는 루어가 이 정도의 크기이고, 사람이 그것을 만지는 상황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루어의 형태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거기에 인간이 들어가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재현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성상뿐 아니라 남성상도 있다.

<리얼 Real> 12×3×3cm, 혼합 재료, 2006 ⓒ이동욱

LEE : 세 번째 개인전 [양어장 Breeding Pond](2006)에 전시된 작품 중 <리얼 Real>(2006), <선물 Present>(2006)은 제목의 의도가 궁금하다.

LDW : 작품의 제목이든 전시의 제목이든 의미가 여러 개여서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것, 뜻이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Real>의 경우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겠지만 정말 절박하면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고 가능성도 없지만 이게 진짜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Real>의 상황은 한 명이 묶인 채 공중에 매달려 있고 다른 한 명은 끈이 끊어져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지만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입의 흡입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로맨틱한 키스의 장면이 아니라 살기 위해 처절하게 숨을 빨아들이는 장면이다. 이것은 앞서서 ‘Mouthbreeder’의 의미를 설명할 때 했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내가 계속 생각했던 것은 극단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그동안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방법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다. <델리카트슨 사람들> 같은 영화도 그런 재미가 있다. 전시 제목, 양어장을 뜻하는 ‘Breeding Pond’도 당시의 전반적인 관심사가 담긴 것이었다. 이 전시 때 재미있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목욕탕이었던 곳을 전시장으로 만들어서인지 목욕탕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음에도 연못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것도 제목에 영향을 끼쳤다.
<Present>는 인물보다 인물이 두르고 있는 목도리가 중요했다. 목도리는 왠지 선물로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선물이지만 그리고 목도리지만 실제로 보온효과는 없고, 무겁고, 쓸모는 없고, 어찌 보면 구속하는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선물이지만 선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목도리는 아주 작은 쇠고리들을 연결해서 직물처럼 만들었다. 이처럼 쇠고리를 연결하는 것은 갑옷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목도리는 직접 짜서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짠 목도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 선물이란 제목이 나왔다.

LEE : <Real>에서는 아래로 떨어지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하는가?

LDW : 생각을 하지만 그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과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정도이다. 공포를 느끼진 않는 것 같고 막막함 같은 것을 갖고 있다. 인간 능력 밖의 일들이니까.

LEE : <애피타이저 Appetizer>(2005)는 이동욱이 제작한 인물상이 다른 사물과 함께 놓인다. 전시될 때마다 매번 같은 사물과 등장하는가? 아니면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가?

LDW : 작업을 전체적으로 보면 내가 만든 인물상만 작품인 경우도 있고, 오브제까지 포함해서 작품인 경우도 있고 매번 다르다. <Appetizer>의 경우 종이가 깔린 바닥이나 나무 기둥 위에 놓았다가 최종적으로 자체 제작한 두꺼운 나무 기둥 위에 올라간 것으로 확정되었고 좌대 역할을 하는 나무까지가 작품이다. 그러나 전시에 따라 인물만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LEE : <무제 Untitled>(2006)에는 나체가 아닌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LDW : 그 여성상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피규어이다. 가샤폰(gashapon)이라는 장난감 자동판매기에서 뽑은 것이다. 피규어에 나의 인물상이 같이 놓이면 어떨까 싶어 어울리는 크기와 자세로,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취한다는 생각으로 인물상을 만들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 중에는 의도적으로 찾은 것도 있고, 우연히 발견한 것도 있다.

LEE : <두통 Headache>(2007~2008)은 사람 얼굴로 만들어진 수류탄의 모습이라 매우 불안해 보인다. 현실 속에서 말 그대로 머리가 터질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을 받는 사람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LDW : 정확히 그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상황이다. 수류탄의 형태를 빌려서 반복되는 인물과 형태를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인간의 얼굴은 다 똑같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목표는 똑같은 인물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었다.

LEE : 본인의 작품 중에 편안하고 행복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있는가?

LDW : 생각해봤는데 그런 작업은 없는 것 같다. 만족스럽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인물도 실제로는 불안하거나 공허한 상황에 놓여 있다.

LEE : <신부 Bride>(2008)도 아닌가?

LDW : 피부가 변형된 옷을 입고 있는 자신감 넘치는 여성상이어서 나 역시 앞선 질문을 받고 <Bride>를 잠시 떠올렸지만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그와 같은 의도로 만든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조금 놀랐다.

LEE : <Bride>뿐 아니라 2008년 발표한 작품들에서 피부가 변형된 옷이 등장한다. 피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기묘하게 변형되고 진화한 인간 같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생긴 돌연변이 같기도 하다. 인간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연약한 피부 옷 때문에 일상의 삶이 어려워진 실패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LDW : 정확히 표현하면 ‘자신의 피부가 변형된 옷’이다. 다른 사람의 피부로 만든 옷이 아니라 나의 피부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가 변형되었다기보다 인간의 마음, 정신의 영역을 시각화한 것이다. 당연히 돌연변이나 유전자 조작 등은 생각하지 않았다. 시작은 갑옷이었다. 갑옷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동시에 인간의 두려움이 담긴 것이다. 그것이 극대화되려면 피부가 갑옷의 형태여야 할 것 같았다. <벌거벗은 Naked>(2008)과 <나이트 Knight>(2008)에 갑옷의 형태를 한 피부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실제로 보호할 수는 없겠지만 정서적으로 지켜주는 갑옷이다. 결국 공포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 작업이다. 내가 갑옷을 좋아해서 관심 있게 보다 보니 갑옷이 용맹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란 생각이 들었다.

LEE :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피부는 인간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일차적인 보호막과 같지만 연약하다. 한편 피부 옷을 입은 인간상들은 그로테스크함의 절정인 것 같다. 공포스러운데 위트가 느껴지기도 한다.

LDW :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작업했다. 피부 옷을 입은 인물상들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발표 당시 이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작품의 크기가 작은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LEE : 작품이 컸다면 반응이 전혀 달랐을 수 있다.

LDW : 당시에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 역시 상상해봤는데 징그럽다고 느꼈을 것 같다.

LEE : <이종 교배 Cross Breeding>(2008)에는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인가? 십자가는 그 자체로 강력한 상징이고 케이지들이 모여 십자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LDW : 종교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십자가를 선택했고 제목의 ‘cross’에서도 기독교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종교에 대해 막연한 생각이 살짝 들었을 뿐이고,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은 더욱 아니다. 십자가 그 자체가 인간의 형태이기도 하고, ‘Cross breeding’ 역시 무언가를 기를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LEE : 작품을 볼수록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개념보다 감정적인 무언가가 느껴진다. 명사보다 형용사가 떠오른다. 느낌과 인상이 전달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LDW :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작업할 때 구체적인 개념의 방향을 잡지 않고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 혹은 생각 하나에서 시작한다.

LEE : <Engraved Glory Indelible Past>는 살아 있는 동물이 등장했다. 남다른 이유가 있는가?

LDW : 첫 번째 개인전 때 발표한 <생각의 시간>(2003)에서 물고기 먹이용으로 판매되는 작은 실지렁이들을 한 무더기 전시했었다. 어렸을 때 동네 하천에서 실지렁이의 형태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그 형태와 선홍색이 아름다워 관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실지렁이는 큰 지렁이와는 조금 다르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다양한 욕망이 뭉쳐져 있는 것 같다. 아름답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복합적인 느낌을 전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 작품 이후에 <Engraved Glory Indelible Past>에서 새를 사용했으니 두 번째이다.

LEE : 이동욱의 작업은 전체적으로 상반되는 인상과 감상을 끌어낸다. ‘미려하다’와 ‘끔찍하다’, ‘혐오스럽다’와 ‘재미있다’, ‘낯설다’와 ‘익숙하다’ 등 서로 다른 단어들이 동시에 나열된다. 작가 역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때 계속 여지를 남긴다는 인상이다.

LDW : 상반된 느낌이 공존하는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읽혀도 문제없다는 정도이다. 심지어 모호한 상황을 만들려 한 작업이 모호하게 읽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LEE : 같은 해 발표한 <러브 미 스위트 Love Me Sweet>(2012)에서는 유동성을 느끼게 하는 형태가 등장했다. 무엇으로 만든 것인가? 흐르는 형태뿐 아니라 살아 있는 새의 배설물 등은 앞서 언급했던 애브젝트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LDW : 이 작업 역시 애브젝트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Love Me Sweet>의 흘러내리는 형상은 접착용 플라스틱인 글루 스틱(glue stick)을 녹인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후엔 레진(resin)을 사용하기도 했다.

LEE : 왜 트로피와 새를 함께 놓았는가? 퇴락한 과거의 영광을 떠오르게도 하고, 영광의 결과물이 케이지 안에 있으니 인간 시스템과 연결할 수도 있겠다.

LDW : 무엇보다 그처럼 함께 놓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새를 길렀기 때문에 새의 배설물이 무언가를 더럽히는 상황의 이미지를 알고 있었다. 트로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라면 새는 현실의 영역을 상징한다. 상반된 두 개가 한 공간에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EE : 새의 배설물 때문에 트로피가 부식되지는 않았나?

LDW : 그 정도까진 아니었고 더럽혀진 정도이다. 배설물에 의해서 얼룩이 생기지만 새의 배설물에는 석회질이 많기 때문에 그냥 굳는다. 실제로 내가 의도하고 예상한 정도까지 더럽혀지지 않았다.

LEE : <핑키 Pinky>(2012)는 자연스레 인간 신체의 일부를 떠오르게 한다. 직접적으로 인간이 드러나지 않는데 더 긴장감이 고조된다. 감춰서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너무 잔인해 가려놓은 것 같은 상황은 관객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또 모자이크 형상이 등장하는 작업의 경우 잔혹성을 중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이전의 작업과 이어지면서도 변화가 있었다.

LDW : 시각적인 부분에서 인물과 디지털적인 픽셀 이미지, 즉 기하학적인 형태가 결합했을 때 시각적으로 멋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이미지가 감춰졌음에도 색 등에 의해 잔혹한 이미지일 것이란 예측이 가능할 때 공포감이 더 커지는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작업했다. 나 역시 유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

LEE : 최근의 작업에는 비교적 다양한 색채가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난색 계열이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인물상이 아닌 작품에서도 초록이나 푸른색 계열의 작품을 거의 보지 못했다. 자연이 연상되는 이미지도 없다. 그래서 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전달되는 것 같다.

LDW :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린 자이언트>(2003)를 제외하면 없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작업하며 초록색이나 식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전설 Legend> 6×17×2cm, 혼합 재료, 2008 ⓒ이동욱

LEE : <레전드 Legend>(2008)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동일 제목의 작품이 두 점인데 하나는 캔이고 다른 하나는 유리병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재료도 궁금하다.

LDW : 하나는 물고기 먹이용 새우 알이 들어가 있는 캔이다. 물고기를 기르는 나의 일상이 반영된 작품이다. 캔을 따서 물에 며칠 넣어두면 아주 작은 새우들이 부화한다. 그런데 새우가 들어가 있는 상품임에도 캔 디자인에는 새우가 아닌 불사조 같은 다른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나는 캔에 적혀 있는 ‘shrimp’란 단어만 지웠는데, 새우란 단어가 지워지자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볼 때 마치 불사조를 부화시키는 상품으로 인식된다. 다른 하나는 온라인으로 구매한 향수병을 이용했는데 로고는 내가 만들었다. 병의 형태는 누구나 향수라는 것을 연상할 수 있으면서도 로고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물론 시각적으로 내 취향에 맞기도 했다. 로고에는 반인반마(半人半馬)가 그려졌다. 병 속의 액체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소변을 뜻한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반인반마의 소변을 갖고 싶다면 인간의 소변과 말의 소변을 반씩 섞어놓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말을 좋아한 것도 있고 반인반수는 신화나 전설의 이미지가 있으니 그 이미지를 현실로 끌고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소변이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가운데 병에 든 향수는 좌우의 것을 섞은 것이다.

LEE : 그냥 물감을 섞어도 되지 않았나? 굳이 색을 맞춰가며 향수를 구해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LDW : 관객들의 불쾌감을 덜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 향수가 색을 유지하기 가장 확실한 재료이기도 했다. 물감으로 용액의 색을 만들면 시간이 지난 뒤 침전물이 가라앉는다.

LEE : <혹 Wen> 시리즈를 보면 인간의 몸에 비행기와 아기 형태 등이 붙어 있다. ‘자신의 피부가 변형된 옷’을 입은 인물들처럼 피부 혹은 몸이 변형된 것 같다.

LDW : 해당하는 인물에게 중요한 물건이나 상징적인 물건을 만들었다. 종양은 인간의 몸에서 나오긴 하지만, 인간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가는 것, 원하지 않음에도 몸에 달라붙은 것이다. 그저 시각적으로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몸에서 나와 딱 붙어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비행기는 어린아이라면 가장 갖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해서 만들었다.

LEE : 엄마와 아기가 한 몸으로 붙어 있는 <Wen>(2009)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 가장 소중한 아이이지만 아이로 인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책임과 삶의 무게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가?

LDW :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그와 같은 의미를 담으려 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싶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면 좋다. 아니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굿 보이 Good Boy> 80×120×120cm, 혼합 재료, 나무 탁자 다리, 2011-2012 ⓒ이동욱

LEE : <굿 보이 Good Boy>(2011-2012)에서 강아지들을 묶은 줄을 사람이 쥐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목줄은 누가(무엇이) 잡고 있는가?

LDW : <Good Boy>는 인간이 만들어낸 체계, 특히 부정적인 의미의 체계나 힘, 거대한 사회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시각화하기에 개가 적합했다. 실제로 개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일상에서 많이 보기 때문에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다. 참고로 개는 직접 만든 게 아니라 금속으로 제작된 것을 구입했다. 팽팽하게 얽혀 있는 줄의 형태가 작품의 중심이다.

LEE : 강아지의 위치는 정해져 있는가?

LDW : 아니다. 전시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좌대 역할을 하는 봉 없이 그냥 바닥에 놓은 적도 있다. 원하는 그물 형태가 나오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 안에서 조금씩 조정한다.

LEE : 작품이나 전시 제목을 짓는 과정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목이 정해지는지, 아니면 완성한 후에 정하는지도 궁금하다. 또 ‘무제(Untitled)’란 제목이 붙은 작품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가?

LDW : 정해진 규칙은 없는데 즉흥적으로 짓는 편이다. 제목이 생각나면 다른 의미는 없는지 찾아본 뒤 확정한다. 제목을 찾기 위해 온라인을 검색하거나 사전을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무제’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거나, 대단한 의미가 없거나, 제목으로 인해 작품이 필요 이상으로 설명적으로 읽힐 것 같을 경우에도 ‘무제’란 제목을 쓴다.

LEE : 시간이 흐른 뒤 ‘무제’인 작품을 보다가 새로운 제목이 떠오르면 바꿀 수도 있는가?

LDW :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무제’라는 제목 자체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 붙인 게 아니니까 나중에라도 제목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LEE : 전시 [러브 미 스위트 Love Me Sweet](2012)은 인간 세상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의 내면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작가의 외부 세계를 동시에 담은 것 같다.

LDW : 그런 것 같다. 공감되는 해석이다. 전시될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많이 했던 생각은 인물뿐 아니라 인물의 배경이 될 수 있는 공간까지 같이 넣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공부하거나 주목하는 개념들을 의식적으로 담으려 할 때보다 문뜩 떠오른 이미지나 심상들을 구현해나갈 때 관객들이 더 다양한 해석을 해주는 것 같다. 최근엔 오히려 인물이 빠진 환경(풍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인물 같은 경우도 세부보다는 덩어리나 색이 강조되게 표현하는 데에 흥미가 생겼다.

LEE : 다시 말하지만, 이동욱은 어떤 특정한 담론이나 이슈 등을 생각하기보다 심상이나 이미지에 집중하며 작업하는 것 같다.

LDW : 여태까지 작업하면서 특정 이슈에 집중한 적은 없다.

<모두 다 흥미로운 All The Interestings> 가변 크기, 혼합 재료, 2016 ⓒ이동욱

LEE : <모두 다 흥미로운 All The Interestings>(2016)은 이전의 작업과 느낌이 좀 다르다. 어찌 보면 배경이 주인공이 된 작품이다. ‘모두 다 흥미로운’이란 제목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모두 다 예쁜 말들 All The Pretty Horses』(1992)에서 빌려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LDW : 제일 큰 이유는 당시에 그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또 돌 하나하나를 좋아해 시작된 작품들이라 그것들을 하나하나 잘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 모두를 담아내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LEE : <All The Interestings>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전시된 돌의 형상에 작가의 개입이 어느 정도 포함되었는지도 궁금하다.

LDW : 그저 돌이 좋아서 모으다가 작업으로 연결하게 되었다. 갖고 싶었던 돌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행위를 작업으로 진행하니 이처럼 수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수집한 돌은 조금 특별한 돌이라고 표현해야겠다. 자연적인 과정에서 생긴 돌은 아니고 인간이 채취한 돌의 조각이다. 그래서 내가 형상을 조금씩 바꾼 경우에도 자연물이라기보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라 생각하며 개입했다.
내가 사용한 돌은 독립적으로 채취된 것도 있지만 거대한 원석의 단면을 잘라 건축물이나 실내 장식용으로 가공할 때 나오는 잔해 혹은 커다란 돌덩이에서 아주 특별한 색을 가진 부분만 떼어낸 뒤 남은 부분들이다. 보석이 되기 전 단계의 돌도 있지만 그렇게 고가는 아니다. 첫 시작은 누군가 버린 수석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만큼 화려하진 않은데 길에서 우연히 관상용 수석이 버려진 것을 발견했다. 시각적으로 흥미로워 찾아보면 매력적인 이미지의 돌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전 세계에서 돌을 수집하거나 채취해 판매하는 사람들이 이베이(ebay)에 올린 돌을 구입해서 작업했다.

LEE : 다른 작업에 비교해 작가의 물리적인 개입이 줄어들었다.

LDW : 그렇다. 돌이니까 아무래도 이전까지 사용했던 점토와 달리 내가 형태를 만들 수는 없었지만, 전체 작품의 구성 등을 통해 충분히 나의 분위기를 담을 수 있었다. 이전 작업의 경우 원하는 것을 하나 만들면 된다. 그런데 돌을 이용한 작업은 표본을 모아 그중에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선택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기준은 시각적인 조화였다. 그래서 그 어떤 작업보다 내 감각과 취향 그 자체에 집중했다.

LEE : 주로 온라인에서 이미지만 보고 구입한 것 같은데 예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돌이 배송된 경우는 없었는가?

LDW : 실패가 거의 50%이다. 전문적인 판매자 중에는 사진 촬영 시 돌이 더 돋보이도록 조명을 쓰고 물을 뿌리는 사람도 있다. 포토샵을 하기도 한다. 이미지만 보고 샀는데 예상보다 크기가 작아 당황한 적도 있었다. 점점 데이터가 쌓이니 어느 정도는 추측이 가능했고 실패율이 낮아졌다.

LEE : 점점 더 추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가? 극사실적인 조각과는 다르다.

LDW : 점점 더 추상으로 가겠다고 마음먹고 한 것은 아닌데, 당시에도 그리고 최근에도 그렇게 연결될 수 있다고 의식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해온 작가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자연스럽게 간 건데 나도 모르게 다른 이들의 길을 타성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계심이 생긴다. 앞서 말했듯 <모두 다 흥미로운>은 수석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수석을 모으는 취미가 한때 유행하다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지, 과거에 수석을 즐겼던 사람들이 이런 돌을 보면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다는 등의 생각을 했다. 물감이나 손으로 만드는 것이 줄 수 없는 형태적 아름다움이 있기에 관객들이 그것을 순수하게 즐기길 원했다. 또 해당 작품이 100%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구체적인 이미지들도 들어갔다. 그러나 관객이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였으면 좋겠고 아닌 사람들은 발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LEE : 조금 더 정제시켜 시각적 본질을 향하는 것인가? 군더더기를 빼고 최대한 핵심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나?

LDW :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다만 때로는 그와 같이 추상적인 형상에 구체적인 무언가가 살짝 들어가면 더 재미있을 때가 있다. 추상적인 요소도 있고 과거 내가 좋아했던 극사실적인 작업도 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완전한 추상으로 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LEE : <All The Interestings>에서는 수평적이고 낮은 구조가 눈에 띈다.

LDW : 전시가 진행된 페리지갤러리(Perigee Gallery)가 천장이 높지 않고 옆으로 긴 형태라는 점도 영향을 주었다. 관객들이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나의 장면을 보길 원했는데 공간상 옆으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었다.

LEE : 가변 설치인데 전시장에 따라 다른 외형으로 바뀔 수도 있을까? 천장이 높은 전시장이라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LDW : 가능은 할 것 같지만, 그 정도의 변화라면 같은 제목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All The Interestings>라는 제목으로는 수평적인 형상의 작품을 설치할 것 같다. 실제로 페리지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세 번 정도 전시했는데 크기의 변화는 조금씩 있었어도 수평적인 형태는 유지했다.

LEE : 개인적으로 <All The Interestings>는 이브 탕기(Yves Tanguy)의 회화 속 풍경 같다. 우주 공간 혹은 해저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이다. 우주 공간을 떠도는 운석이나 행성도 떠오른다.

LDW : 초현실주의 같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다. 당시 중력이 없는 공간에 돌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된 것 같다. 또 일정 거리를 두고 보면 생명체 혹은 단어 그대로 고기 같은 느낌이 전달될 거라 예상했고 의도하기도 했다. 다만 <All The Interestings>에서 우주 공간을 생각하지 않았다. 평상시에 SF에 관심이 있다거나 일부러 찾아보진 않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한 영향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참고로 김수정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별과 우리의 시간 Displacement of Time](2017)에서 소개된 <물과 돌이 있는 설치 Water and Stone Arrangement>(2017)처럼 작품이 놓이는 바닥을 검정으로 만들어 돌이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설치했던 적이 있다.

LEE : 초기 작업부터 <All The Interestings>에 이르기까지 촉각성이 꽤 강하게 느껴진다. 혹시 눈으로만 전달하는 게 아닌 실제로 촉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LDW : 아직 실행해본 적은 없는데 이전에도 생각해봤고 아직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다만, 그와 같은 작품이 부담해야 하는 작품 훼손에 대한 부분은 상관없는데 누군가의 행동을 지정하거나 유도하는 건 내 성향에 맞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촉각을 눈으로라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다. 내 작업과 관련해 촉각성이 계속 머릿속에 있는 것 같다.

LEE : <All The Interestings>를 설명하면서 이우환의 작업에 사용된 돌을 언급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LDW : 이우환 선생님의 작업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돌을 이용한 작업이 맥락 없이 등장한 게 아니라 미술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연물이면서도 인공물과 같은 돌을 이용한 작품을 찾아보면 꽤 있을 것이다.

LEE : <All The Interestings>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전시된 2012년도의 <Untitled>처럼 비닐의 사면을 묶어 해먹처럼 만들고 그 안에 무언가(액체나 가루)를 담는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LDW : 우선 내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형태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위태로운 느낌도 매력적이었다. 비닐을 낚싯줄이나 실로 묶은 뒤 그 안에 고운 모래나 염색된 유리 가루를 넣었다. <All The Interestings>에서는 음료수를 넣었다. 시간이 지나며 곰팡이가 생겼지만, 시각적으로 훌륭했기에 그대로 두었다.

LEE : <All The Interestings>에 등장하는 분홍색 유동체 형상의 재료는 무엇인가? 시각적으로 단단한 덩어리인 돌과 대비된다. 그러고 보면 <Love Me Sweet> 이후 유동적인 느낌을 전하는 물질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LDW : 그때 한창 분홍색을 좋아했다. 이전에는 좋아하지 않았었다. 분홍색이 대중적인 색이 되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인 것 같다. 분홍 물질은 레진(resin)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다.

LEE : 유동체를 보여주는 것 같은 작품이 또 얼마나 있는가?

LDW : 그렇게 많진 않다. <Love Me Sweet> 외에 꿀의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이 몇 점 더 있고, 물을 이용한 작업이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임종은 큐레이터가 기획한 [불멸의 임시변통 Immortal Makeshifts](2017)에서 수돗물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지나가도록 한 작품을 발표한 적이 있다. 물을 순환시켰다고 보면 된다. 임종은 큐레이터의 또 다른 전시인 [궁극의 거래 Ultimate Deal](2019)에 출품한 <좋은 거래 Good Deal>(2019)에서는 검은색 액체를 사용했다. 출품된 나의 작업이 석유에 관한 것이기도 했지만 시각적으로도 검정 액체를 사용하고 싶었다. 유동적인 형태를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색이 몇 가지 있을 텐데 나에겐 그중 하나가 검정이다. 두 작품 모두 생명의 근원이나 순환 같은 물의 상징적 의미보다는 형태가 변하면서 흐르는 덩어리에 대한 관심에서 진행되었다. <좋은 거래>의 구조물은 먹을 가는 기계를 변형한 것이다. 물이 흘러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기계가 먹을 갈아 물이 점점 검어지면서 순환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료(먹)가 소비되고 변화하는 작업이다. 먹을 가는 기계의 형태 그 자체도 재미있었다. 앞으로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진 작품이 또 나올 수 있다.

LEE : 현재 진행 중인 혹은 앞으로 진행할 작업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는가? 작업이 변화하는 과정 중에 놓인 것 같아 다음 전시가 궁금하다.

LDW : 요즘 관심이 가는 것은 식물이다. 식물이 보여주는 불규칙 속의 규칙에 매료되어 있다. 식물은 규칙이 하나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규칙을 갖고 변한다. 다양한 것 같지만 똑같기도 한 상황은 내가 초기부터 지속해온 관심사이다. 또 과거에는 단편적인 장면 하나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조금 더 긴 서사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앞으로의 작업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