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4.

본 글은 2020년 9월 29일(화)에 진행된 이문정과 신제현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작가 신제현(Shin, Jaehyun)

LEE : 이문정, Shin : 신제현

LEE :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신제현과 관련된 기사 제목 중 천재 작가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놀랄 정도의 작업들이 있다. 혹시 본인을 천재적이다, 똑똑하고 남다른 생각과 재능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작업을 하다가 스스로에게 흐뭇했던 적이 없었나?

Shin : 전혀 아니다(웃음). 시간을 많이 들여서 작업하는 타입이라 내가 작가로서 천재적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꽤 많은 시간 동안 조사하고 완성 과정에서 수정도 많이 한다. 학교 다닐 때도 다른 학생들보다 노력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지 두드러지게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다. 미술사의 유명한 작가나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감탄하는 편에 속한다. 혹시라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감사하지만 남다른 재능을 가진 작가는 따로 있는 것 같다.

LEE : 내가 사용한 천재적이라는 단어는 순간적인 아이디어나 표현이 주가 되거나 작품을 빨리 완성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Shin : 아마 작업을 볼 때 들인 시간이라든가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보게 돼서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와 같은 표현은 너무 상대적이다. 또한 나는 작가를 신화화하는 단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대부분 그와 같은 단어는 미술 시장에서 작가의 신화를 만들거나 막연한 기대감을 높일 때 쓰이는 것 같다.

<TRAILING> 50일의 이름 쓰기 퍼포먼스와 닭 키우기 프로젝트, 재난 대책 매뉴얼 워크숍, 영상설치, 2014 ⓒ신제현

LEE : <아트스타코리아 ART STAR KOREA>(2014)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신제현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였기 때문이다. 방영 당시 긍정, 부정의 의견이 모두 있었다.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떤 마음으로 나갔는지 궁금하다.

Shin : 내 작업 중에 한국에 있는 말도 안 되는 공모전들에 일부러 참여해서 파인 아트(fine art)의 작업 형식으로 풍자하는 <아트 콘테스트>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아트스타코리아>의 2차 면접 프레젠테이션을 <아트 콘테스트>를 위한 퍼포먼스로 진행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당일에 가서 보니 심사위원에 김선정, 유진상, 우정아 선생님이 계셨다. 급히 자료를 바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는데 최종 15명 안에 들게 되었고 끝까지 가게 되었다. 처음에 고민이 많았었기 때문에 심사위원분들께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여쭤봤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열악한 현대 미술의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신진 작가로 어느 정도 활동을 한 상황이어서 미술계 전체를 알지는 못했지만 꽤 많은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에 비춰봤을 때 서바이벌 형식으로 예술가를 뽑는 방송이 좋지 않다고 단정할 만큼 미술계의 상황이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참여하게 되었다. 또 당시에는 내가 텔레비전을 잘 안 봐서 방송에 나가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볼 것이고 관심도 흐지부지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LEE : 짧은 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를 바탕으로 작업을 선보여야 했다. 당시의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였는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듣고 싶다.

Shin :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경쟁에 대한 압박인데, 그건 <아트스타코리아>나 미술계의 경쟁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떨어뜨리는 쇼를 보여주는 방식이 조금 자극적일 뿐이지 실제 미술계의 공모전과 진행 과정이 비슷했다. 경쟁 방식으로 작가를 뽑고 상을 주는 방식은 이미 미술계에 많았다. 진행의 방식이 좀 더 고급스럽냐, 세련되었냐, 아니면 자극적이냐 그 정도의 차이인 거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미션으로 주어진 주제들이 엄청 구체적이진 않았다.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인가?’, ‘금기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라’, ‘현대 미술계를 비판하는 작품을 하라’처럼 작가라면 생각해봤을 법한 주제였기 때문에 큰 부담감은 없었다. 시간에 대한 부분도 다른 참여자 중에는 압박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 다니면서, 또 미술계에서 활동할 때,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부 경쟁이나 신경전도 별로 없었다. 이미 필드에서 알고 있던 작가들도 많았고. 그래서 시스템상으로 크게 어려움이 있진 않았다. 편집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편집으로 인해 자극도가 심해진다는 것, 내가 무언가 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계속 찍고 있다는 것이 신경 쓰이는 정도였다. 덕분에 카메라에 적응이 되어서 이후 작가 활동을 하면서 편안하게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LEE : 현재의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 <아트스타코리아>에 참여했던 경험(경력)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Shin :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일단은 상금도 크게 받았고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기획하신 전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여러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 방송을 통해 나와 나의 작업이 알려지게 되어 전시 기회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다양한 협업 작업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먼저 밝혀오는 분들이 많아져서 작업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는 여건들도 마련되었다.

<발화하는 단어들3-음계시> 초콜릿, 영상, 가변크기 2min 컬러, 2019 ⓒ신제현

LEE : 영구적이지 않은 재료로 일정 기간에만 존재하는 작업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사라지는 작품을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Shin : 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영구적이지 않은 재료라는 건 오류가 있다. 우리가 제일 안정적이라고 하는 금, 은, 다이아몬드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변하는 속도가 느릴 뿐이다. 회화나 조각도 보관 상태가 안 좋거나 관리가 안 되면 결국 다 사라진다. 아주 긴 시간의 타임라인 위에서 보면 모든 재료나 현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작품 안에서 절대적이고 단단한 뉘앙스를 갖는 개념들이나 재료들은 내가 생각하는 유연한 어떤 개념들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시장 안에서 시간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점점 사라지든 생기든 계속 변화하는 개념들을 만들게 되었다. 작품이라 불리는 것이 고착화되었을 때, 단단해졌을 때,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무언가가 되었을 때 오히려 견고함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특정한 어느 한 시기에 아주 견고한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의미가 퇴색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긍정하는 혹은 부정하는 확고한 작업을 만든 뒤 사람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이 뭔지도 모를 만큼 긴 시간이 지나면 그 작품은 핍진성을 갖게 된다. 구체화된 부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기 때문에 오히려 절대성을 잃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굉장히 본질적이고 큰 개념들, 사라짐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쓰이는 재료, 사라져도 상관없는 지속 가능한 과정 속에 있는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 개념을 강력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게 좀 모순적인 건데, 견고한 개념이나 재료는 시간이 지났을 때 오히려 견고하지 않은 것이 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견고하지 않은 것들, 유연한 것들, 그런 재료나 개념을 다룬다고 보면 된다.

<설탕 만다라> 일본과 유럽에서 판매 금지된 사탕, 가변크기, 아르코미술관, 2016 ⓒ신제현

LEE : 사탕가루, 초콜릿 등의 음식은 그 자체로 전복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재료이다. 작품마다 재료 선택의 이유가 다르겠으나 이와 같은 의미도 담긴 것인가?

Shin :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음식류를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감각을 다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설탕 만다라>(2016) 같은 경우도 사탕을 빻아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전시장에 들어서면 강한 향을 맡게 된다. 인간은 시각에 의존하는 비율이 꽤 높다. 대략적으로 시각이 95%, 청각이 4%, 그리고 나머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시각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은 관객뿐 아니라 작가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미술이 시각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시각에 너무 의존, 집착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전시장에 병 하나만 놓아야 개념이 더 정확히 전달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열 개, 스무 개씩 놓아서 스펙터클에 의존하거나 개념의 부족한 부분을 가리려는 것과 같은 시각적 페티시즘을 경계하기 위해 시각이 아닌 청각이나 촉각, 미각, 후각을 작업에 더 많이 사용하게 된 것 같다. 또한 이와 같은 재료가 갖는 사회정치적인 의미도 중요하다. 초콜릿은 에디오피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동학대를 통해 채취된 농작물이다. 사탕가루도 식민주의 국가와 경제적으로 풍족한 국가들이 노동력을 어떻게 착취하고 이동시키는가에 대한 문제나 좋지 않은 재료로 만든 사탕을 선진국이 후진국에 파는 상황 등을 후기식민주의 담론에서 바라보기 위한 재료이다. 물론 캔버스나 석고처럼 기본적인 미술의 매체가 아닌 일상적인 매체를 통해 관객들이 작품에 더 친숙하게, 쉽게 접근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LEE :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인가?

Shin : 부정, 긍정은 아니고 의심을 한다. 의심들을 바탕으로 신뢰하는 것을 찾아가는 구조이다. 그러니 당연히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세상의 시스템 중에 우리를 계속 속이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모더니즘 이후의 사회는 굉장히 복잡한 것들을 단순하게 보게 하거나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또 다른 무언가로 계속 덮는 가짜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미술 작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그것들을 조금 더 정확히 보려는 거다. ‘보다 정확히 보자, 보다 의심해서 신뢰하자, 절차를 조금 더 바르게 가자’라는 것에 가깝다.

LEE : 그러나 작가도 이 세상 속에서 성장했고 살고 있다. 이미 특정한 관점이나 태도가 만들어져 작가도 잘못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Shin :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기본이고 시작이다. 항상 내가 잘 모른다, 속고 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작업을 시작한다. 대신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가 아니라 의심의 과정을 통해 확인하고, 확인한 부분들에 대해 확신을 갖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작업의 과정에는 항상 그것을 알기 위한 조사가 들어간다. 조사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 몰랐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속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작업을 하나하나 단독으로 종결짓지 않고 프로젝트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만약 내가 2020년에 세상을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했다고 단정적으로 발표를 해버리면 시간이 흘렀을 때 내가 실수했고, 잘못 알고 있었다고 느끼는 일들이 많을 거다. 내가 검증받았다고 생각하는 논문이나 과학적 자료들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게 2~3년 후에 바뀔 수 있다. 실제로 과학적 이론들이 실험 등을 통해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어떤 역사적 진실들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작품을 완결시켜 버리면 잘못된 채로 화석화될지도 모른다.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작업을 끝내지 않고 이어간다. 전시라는 것도 아주 긴 작업 중 보여지는 하나의 좌표점일 뿐이지 전시를 통해서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진행하는 작업이나 전시를 긴 작곡의 마디라 말하는 것이다.

<Tortureechomachine> 프린터 악기 등, 7mX7mX4m, 2014 ⓒ신제현

LEE : 지금도 본인의 프로젝트(작업)가 작곡이라 말했다. 그동안 본인이 보여준 작품들과 전시, 공연 등은 긴 악보의 부분이라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본인이 진행하는 모든 작품은 하나의 교향곡처럼 모두 연결되는가? 개별 연작의 연결지점을 모두 계산하면서 작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인가?

Shin : 그렇다. 예를 들면, <히든 사이드 Hidden Side>, <코리안 판타지 Korean Fantasy>라는 큰 그룹이 있는데 <코리안 판타지> 안에 <LSP(Love Soap Project)>가 들어 있고 <마리를 찾아서>는 <히든 사이드>와 <코리안 판타지> 사이에 끼어 있다. 철학적인 주제만 다루는 작업의 군이 따로 있기도 하다. 작업들은 서로 겹치거나 분리되기도 하고 나열되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이 반드시 하나의 작업 군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작업의 분류는 꽤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안 그러면 복잡한 작업의 군들을 파악할 수가 없다.

LEE : 신제현의 작업을 종합하는 작곡인 <천년>이라는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그것이 실행될 때 작가는 그것을 관리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또한 작가의 의도나 계획과 전혀 다르게 왜곡, 변주된 무언가가 작가의 작품처럼 연주될 수도 있다.

Shin : 작곡을 하는 게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우선은 매일매일 작곡을 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 구체적인 준비는 아직 하고 있진 않다. 내 나이가 한 60, 70살이 되었을 때부터 구체적인 하드웨어들을 준비할 것이다. 사실 작업이 어떤 식으로 연주될지는 열려 있다. 구체적인 한 장소를 정해서 연주를 할 수도 있지만, 과연 곡이 연주될 당시에 그게 가능할까? 만약 기후 혹은 지진 등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면 특정한 공간에서의 연주가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코로나19 이전에는 현재와 같은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같은 시기라면 더더욱 한 장소에 모이기보다는 다양한 인터넷 수단을 통해 연주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보다 국제적으로 실행할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진행할지 지금 정해놓는다고 해도 바뀔 것 같다. 물론 정해놓지만 않았을 뿐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지, 그리고 질문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이 나의 개념을 벗어나거나 변주되었을 때 어떻게 조절,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하고 있다.

LEE : 모든 작업이 다 어렵겠지만, 특히 실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들을 끝까지 추진한다. 본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매우 강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Shin : 사실 이건 자기 확신이나 자존감,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규칙에 더 가깝다.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시작한 일은 무조건 끝을 낸다. 나에겐 남들이 말하는 작업의 성공이나 실패란 개념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실패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다르게 발전되거나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만약 내가 중간에 포기하면 그건 그냥 없어져 버리는 거다.

<LSP(Love Soap Project)> 남성의 정액, 비누 베이스, 2007~현재 ⓒ신제현

LEE : <마리를 찾아서>, <LSP>, <3PM> 등은 말 그대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작가 본인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불편한 상황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Shin : 질문에 언급된 작업들은 일종의 경계선적인 개념이나 재료를 갖고 있다. <마리를 찾아서>는 법과 위법 사이를 걷고 <LSP>는 우리가 소위 말해 혐오스럽다라고 하는 지점과 아닌 지점의 경계에 있다. <3PM>는 성적 자율에 대한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굉장히 센 작업이라 느끼며 높은 자극을 받게 된다. 나에겐 자극도가 높은 것은 중요하지 않고 경계에 서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경계에 서 있는 개념, 상황, 재료들을 다룰 때 나도 굉장히 긴장하고 주제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긴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이다. 관객들이 ‘와 좋다, 멋있다, 예쁘다’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이건 불법 아니야? 선을 넘은 것 아니야? 혐오스럽지 않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것이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것은 아까 이야기했던 의심하는 태도와 연결해 볼 수 있다. <LSP>가 굉장히 자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굉장히 긴 문화의 틀에서 봤을 때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정액을 통해서 태어난다. 동물의 시대, 그러니까 문명 이전의 시대 때에는 그에 관해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심지어 몇백 년 전만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던 것을 사회나 규율, 시스템이 부끄럽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내 작업에서 다루는 것들을 나쁜 것, 혐오스러운 것,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당연시되는 것, 믿으라고 요구되는 것들을 의심하게 하는 재료들은 응당 다뤄야만 하고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누가 왜 굳이 이런 재료들을 쓰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그 재료 안에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의심해야 하는 개념들이 있기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 그런 재료여야 우리가 인지부조화를 일으켜 의심하고 조금 더 다른 생각을 하게 하게 된다. 실제로 작업 중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가 오지 않도록 법률적으로 전문가와 상의를 하면서 진행한다.

LEE : 그런데 지금 언급된 작업들은 결과물이 상당히 깔끔하고 정제되어 있어 작가가 말한 것만큼 거부반응이 일지 않는다. 의도한 것인가?

Shin : 작품 자체보다는 전시하는 공간에 따라 다르다. 정확히는 전시하는 공간에 방문하는 관객의 비율에 따라 바뀐다. 파인 아트나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를 전공한 사람들, 미술 이론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주제나 재료에 내성이 있는 사람들이 주요 관객일 때는 더 자극도가 놓게 전시할 것이다. 대중들이 많이 방문하는 공간에서는 완급 조절을 한다. 자극도가 너무 높아지면 생각을 유도하기보다 무조건적인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미지 자체는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 관객들이 궁금해하게끔 한다. 그리고 보이는 것과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대비가 있으면 있을수록 효과적인 것 같다. 굉장히 자극적인 내용은 깔끔하게, 반대로 굉장히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은 자극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방식처럼 말이다. <텍스트스케이프 Textscape>(2019) 같은 경우 매우 자극적인 이미지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내용은 굉장히 언어학적이고 상징학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도 공간마다 다르다. 이 작품도 대중들이 오는 공간에서 전시할 때는 노출 수위도 굉장히 낮게 하고, 신체라는 느낌이 잘 안 들 정도로 굉장히 크게 보여주고, 색감도 차갑게 한다. 작업마다도 다르지만, 같은 프로젝트라도 어느 시기에,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전시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다.

<LSP(Love Soap Project)> 남성의 정액, 비누 베이스, 2007~현재 ⓒ신제현

LEE : 남성 작가가 남성의 생물학적인 재료로 한 작업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LSP>를 처음 봤을 때 시선이 갔다.

Shin : <LSP>에서 남성의 생물학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재료로 정액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 두 가지 재료를 조사했다.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산업사회에서 생산, 판매되는 것이 비누인데 그것이 오히려 피부 질환을 일으키는 상황, 또 비누인데 더러운 재료로 만들어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발견하고 과연 비누의 재료로서 적합한 것은 무엇인지 찾게 되었다. 그러다 피부에 정말 좋은 재료가 모유와 정액이라는 논문에 근거해 비누를 만들었다. 모유 비누를 만들지 않았던 이유는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남성 작가가 여성의 모유나 신체성을 드러내는 재료로 작업을 할 때 작가의 의도와 달리 여성성을 대상화한다는 오해나 혐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LEE : 작품을 설명하면서 ‘결혼정보회사에서 유출된 등급표에 해당하는 남성 10명의 정액’이라 말했다. ‘유출’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Shin : 지금은 결혼정보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남성과 여성을 매칭하는가가 비밀이 아닌 시대이다. 그런데 그것이 2007년도에 처음 유출되었을 때는 기사에 나오고 뉴스에 나올 정도로 굉장히 비난받을 일이었다. 인간을 등급화하는 데다가 그 기준이 사람의 인성이 아니라 재산이나 외적인 요소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결혼정보회사 직원의 실수로 유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유출이란 단어를 썼다. 13년 정도 지났는데, 지금은 결혼정보회사도 정말 많이 생겼고, 등급을 나누는 것 자체를 오히려 홍보하는 시대다. 그새 변한 거다.

LEE : 비누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어 재료적인 것, 사회적인 것까지 입체적으로 확장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Shin : 그렇다.

LEE : <LSP>의 가격은 결혼정보회사의 기준에 근거한 남성의 등급에 따라 정해졌다. 저가도 있고 고가도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판매되었는가? 사람들이 주로 어떤 등급의 비누를 구입했는지도 궁금하다.

Shin : 지금도 그렇게 판매되고 있다. 그렇게 판매하는 것 자체가 프로젝트이다. 보통은 1등급~2등급(고가)이나 9등급~10등급(저가)을 구입한다. 1~4등급까지의 비누를 구매할 때에는 에폭시(epoxy)에 넣어서 굿즈로 가져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데, 1~2등급은 항상 그렇게 가져가길 원한다. 고가의 비누는 내 작업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콜렉터들이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리를 찾아서-대구> 유리 위에 아크릴릭, 30호(90x65cm), 영상 설치, 영상 3min 20sec 컬러 사운드, 2009~현재 ⓒ신제현

LEE : <마리를 찾아서>는 야생 대마 자생지역을 매년 찾아가는 과정을 영상, 설치, 회화로 보여준다. 작품 가격은 그 지역에서 자라는 대마초의 양과 관련된다고 했다. 매해 양이 바뀔 것 같은데 그러면 같은 장소를 그린 회화라고 해도 매해 작품의 가격이 바뀌는가?

Shin : 일 년에 두 번, 가는 날짜가 있다. 내가 직접 판매할 때에는 거기에서 발견된 대마 양의 가격을 환산해 그림의 가격을 정한다. 그게 작업의 개념이다. 다만 내 작품이 판매된 이후, 미술 시장에서 유통될 때는 내가 조절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내 작품을 갤러리에서 구입하고, 그 뒤에 내 작품이 옥션에 나가거나 할 때에는 시장의 흐름을 따르게 된다. <마리를 찾아서>는 매년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2017년도에 해당 장소에 갔는데 대마를 못 찾으면 그해에는 작품 제작이 안 된다. 2018년도에 다시 갔는데 대마가 많았다면 작품 가격이 비싸게 책정된다. 매해 하나의 에디션이 있는 거다.

LEE : 매번 같은 장소를 가나? 새로운 장소를 찾을 생각은 안 해봤는가?

Shin : 내가 찾아가는 그 장소밖에 없다. 합법적으로 대마를 키우는 농가들이 있는데, 그 농가를 중심으로 바람 부는 방향을 따라 의도치 않게 야생 대마가 자라는 지역이 생긴다. 그래서 매년 거의 같은 장소이다. 해당 지역의 면사무소 같은 데에서 일정 시기에 대마를 태우는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공지를 한다. 그때 어디인지 알 수 있다. 합법적인 지역 외에서 대마가 자랄 경우에는 불법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대마를 캐고 태우는 행사를 하는 것이다. <마리를 찾아서>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마리화나를 불법으로 만들 수 있는지 인문사회학적으로 다룬다. 또한 이 작업이 한국에서 전시가 되었을 때는 법과 무법의 경계를 다룬다는 점이 중요하다.

LEE : <3PM>의 경우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가? 2020년에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더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

Shin : <3PM>은 원래 참여자들을 인터뷰해서 인터뷰이들이 원하는, 남성중심적이고 가학적인 포르노그래피를 벗어나는 대안적 포르노그래피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였다. 영상과 오브제 등 다양한 결과물이 나왔다. 학생 때 시작했던 프로젝트여서 처음에는 친구나 후배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만들어주는 데에 한계가 생겼다. 시간적인 한계 때문에 포르노그래피 제작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매뉴얼을 만들게 되었다. 그동안 <3PM>은 여자대학교 내의 공간에서만 전시했다. <3PM>의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남성 중 일부가 여성을 대상화하면서 이 작업을 대하는 경우를 목격한 적이 있어서 남성 관객의 유입이 쉽지 않은 공간에서 진행했다. 현재는 잠정적 동결 상태이고 매뉴얼 북에 대한 작업만 조금 진행하고 있다. 지금 시기에 한국에서 이 작업이 과연 가능할까에 대한 걱정이 있다.

LEE : 2020년에 진행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뭔가 이뤄지지 않겠냐고 이야기한 것은 이제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더 편안해졌고, 작가의 답변에도 있듯이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에게 폭력적인 생산품인데 그것을 역전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Shin : 나도 질문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인데, 내가 남성 작가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오독의 위험 때문만은 아니다. 또 <3PM>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작가로서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업을 그렇게 만들었든 만들지 않았든 줄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게 분명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안 하게 된다.

<ARIN Project 인사 싸운드> 한 달간의 공간 악기 제작과 워크숍 및 연주, 2011 ⓒ신제현

LEE : 협업을 상당히 많이 하는데 협업을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만날 때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Shin : 모르는 분이라도 필요하면 찾아가지만, 평소에 관련된 자리를 많이 간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을 때에는 꾸준히 인공지능학회에 참석하는 식이다. 자주 가다 보면 당연히 아는 얼굴들이 생기고 대화를 하게 된다. 보통 다른 영역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쪽에서도 예술가인 나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도 하면서 친분이 쌓인다. 주변에서도 수학자나 물리학자, 기계공학자, 시인 같은 분들을 만나게 되면 소개해주겠다고 연락이 온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나의 작업을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해당 영역의 전문가와 협업을 하는 것과 아닌 것은 완성도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 내가 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르는 분에게 메일이나 SNS 디엠을 보내기도 하는데 보통 긍정적인 대답들이 온다. <아트스타코리아>를 나가서 좋은 점 중 하나인데 방송의 영향력이 커서 정말 다양한 분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었고 실제로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LEE : 음악과 연결된 작업을 많이 진행하는 것 같다. 남다른 이유가 있는가?

Shin : 아까 이야기했던, 시각적인 것 말고 다양한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음악이기 때문이다. 또한 퍼포먼스라든가 사운드 아트, 사운드 퍼포먼스들이 청각만 자극하는 것도 아니다. 내 작업에는 날 것의 악기들이나 몸과 소리를 같이 쓰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감각을 매우 복잡하게 자극한다. 예를 들어 요리하는 소리로도 음악을 하는데, 그럴 경우 향이나 맛과 연결되기도 한다. 내가 봤을 때 음악의 형식이 내가 추구하는 현대 미술의 방식을 꽤 잘 포섭하는 것 같다. 좋은 그릇, 좋은 포맷이 되는 것 같다. 현대 미술이란 포맷은 생각보다 일반 대중을 자극시키기에 매우 낯선 매체일 확률이 높다.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 안정된 포맷 안에서 변화를 만나야 자극받는다. 그래서 음악이라는 포맷 안에서 건물을 악기로 만들어 소리 아카이브를 하고, 비비탄총을 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거다. 그리고 내 작업 요건 중에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계속 배우면서 하겠다는 것이 있다. 그래야 계속 조금 더 새롭고 낯선 것들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독 음악을 배우지 않았다. 지금도 화성 음계 연주를 아예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기나 음악을 더 활용한다.

LEE : 작곡에 대한 지식이나 학습 없이 작곡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Shin : 일부러 배우지 않는다. 그래야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니까. 물론 음계의 코드를 갖고 음계시를 연주하는 식으로 꼭 악기로 연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화성 체계를 쓰기도 한다. 그럴 때는 화성 체계, 보통의 음악이나 악기가 가진 포맷을 가져오기 때문에 전문 연주자와 협업한다. 그러나 내가 악기를 만들거나 직접 연주할 때는 선형적인 음계보다는 비선형적인 음계를 연주하는 개념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

<ARIN Project 한남 싸운드> 악기 제작 워크샵. 폐자재로 만든 악기, 2011 ⓒ신제현

LEE : <Arin Project>(2017)를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서 모은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어 한국의 부동산 흐름을 소리로 아카이브 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

Shin : 말 그대로 기록이 목표이다. 기록이 남으면 후대에 알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굉장히 한시적인 현상이다. 원래 젠트리피케이션은 굉장히 부정적인 용어인데 지금은 유행어처럼 되어버렸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굉장히 무감각해질 것이다. 당시 액티비즘적인 작업이 어떻게 하면 유효한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액티비즘적인 작업은 굉장히 시의성이 있고 현장에서의 파급력도 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가 급속도로 약화된다. 유행을 타는 것도 있다. 그럴 때 작가는 어떻게 작업을 해야할지 고민이었다.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 자체를 어떻게 아카이브할지 고민하다가 소리 아카이브라는 형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소리 아카이브가 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계기 혹은 흥미를 유도했다고 생각한다. <Arin Project>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의미를 갖게 될지는 작업을 더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임대차법이라든가 부동산 법이 계속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Arin Project>는 특히 더 진행적인 작업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떠나는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으로 소리 지도를 만들어 아카이브를 하다보니 지역별로 악기의 소리가 다 다르다. 그 부분이 유의미하고 중요하다. 지역적인 특수성이 악기의 형태나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주로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지가 변동이라든가 유동 인구, 역세권 문제처럼 도시 집약적으로만 접근한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통해 악기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생태학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Arin Project>의 소리 아카이브는 일반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아카이브와 다르다.

LEE :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사회적인 이슈들을 주로 다루는 것 같다. 물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더라도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경험, 관점이 담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작품에서 작가의 개인적 내면이 담긴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Shin : 내가 진행하는 모든 작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전시장에서는 조금 더 사회나 집단, 환경 그리고 내가 사는 시대와 연관되는 작업들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문제라 하더라도 그 문제는 집단의 공통된 관심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나의 작업은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해 사회적 문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진다. 작업을 매일매일 하고 있고, 정말 많은 작업이 있다. 그중에는 아주 개인적인 주제, 즉 개인적인 관계, 감정 등에 대한 작업도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작업을 굳이 전시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해 나 스스로 의문을 갖고 있다.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경험, 아니면 작가 스스로가 뮤즈로 작품화되는 경우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그런 작업을 사회적인 공간에서 많이 전시하는 편이 아니다. 대신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런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 왜냐면 내가 차고 있는 장신구부터 옷과 신발 등이 다 작업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성향이나 취향과 같은 개인 스스로가 드러난다. 또한 내가 추구하는 작업은 작가가 유물화되거나 대상화되기보다는 작가인 내가 처한 상황, 관계, 개념, 철학을 전달하고, 공유하고, 생각하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데에 목표가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많이 보여주는 작업보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슈, 그중에서도 경계에 서 있는 이슈들을 다루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작업에는 당연히 사회적인 이슈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다루는 사회적 이슈를 하나의 소재주의로 활용하지 않고 투신한다. 내가 젠트리피케이션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이미 3~4년 이상 젠트리피케이션 활동가로서의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작업 안에 내 개인적인 색이 많이 묻어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