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8. 20.
본 글은 2020년 8월 11일(화)에 진행된 이문정과 민예은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LEE : 이문정, Min : 민예은
LEE : 현재 주목받는 신진작가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Min : 주목받는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작업은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와 같은 아주 커다랗고 추상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여러 소재와 재료들을 사용해 그것을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 그 결과물들이 시각적으로 혹은 시대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House(es)> 설치, 480x240x480cm, 2017 ⓒ민예은
LEE : 민예은의 작업에는 집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왜 집인가?
Min : 내가 집을 주요한 소재로 선택한 제일 큰 이유는 사고의 혼성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집은 공간을 시각적, 물질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2019)에서는 하나의 공간에 다양한 사고가 공생하는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공간의 천장들을 하나의 형태로 만들기도 하고 여섯 개로 흐트러뜨리기도 했다. 생각이 그렇듯 형상도 없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잡을 수 없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계가 필요했다. 또한 사람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최소한의 소속감을 느끼는 자신만의 공간이 집이라는 점도 중요했다. 내가 만들어내는 집들은 실제 집의 형태를 가지거나, 집의 일부이거나, 집이 아닌데 집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집은 퍼포먼스에서 내가 착용하는 탈이나 의상 같은 다양한 형태로 번역된다.
LEE : 민예은의 작업을 설명할 때에는 오랜 시간 프랑스에 머물렀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이주, 문화적 교차, 혼종 등이 이야기되는데, 이는 오늘날 미술에서 상당히 주요하게 다뤄지는 이슈이다. 본인의 작업에 이와 같은 내용이 어떻게 담기는지 차별화되는 지점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민예은의 작업이 개인에 집중하여 공간, 시간, 존재, 무의식, 상상 등을 근원적으로 탐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집을 다루는 작업도 그렇다.
Min : 내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내 작업에는 자연히 혼종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다. 나의 경우 개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나는 나라와 나라의 충돌이나 섞임보다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들에 조금 더 관심이 있다. 작품에 나라나 공동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가 문화의 경계선을 국가로 구분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화에 그러한 경계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개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선별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인다. 개인들이 선택하는 문화는 각자 다르다. 그런 개인들이 만나서 결합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에 집중하면서 작업을 발전시킨 것 같다.
나에게 혼종은 익숙함이었다. 나는 유학 가기 전에 프랑스에서 살았던 적도, 프랑스어를 배웠던 적도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문화적 충돌이나 혼란스러움 혹은 어려움을 겪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단어들도 들리고, 한국말처럼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처음에는 한국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여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유학생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부모님과 대화 중에 알았는데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 프랑스에서 유학하셨고 그때 받아들인 언어와 문화들을 이건 한국의 것, 이건 프랑스의 것이라는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셨던 거였다. 그래서 나에게 프랑스 유학은 새롭게 혼종을 경험하거나 만들어내는 시기가 아니었고 내가 그동안 어떤 혼종적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지 깨닫고 발견하는 계기였다. 유학을 계기로 이런 부분은 한국적인 거고, 이런 부분은 프랑스적인 것이구나, 내가 그동안 프랑스 문화를 꽤 많이 받아들이고 있었구나 등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작품에 문화적 혼종이라는 부분은 국가(공동체)와 국가 사이의 문제로 드러나기보다 개인의 이야기로 담긴다. 나는 개인과 개인이 놓인 다양한 맥락 속에서 문화의 교차가 일어나고 섞임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다’,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두 전제에서 비롯된다. 전자는 생물학적 조건처럼 동일하게 갖게 되는 조건에 의한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환경이나 시스템, 문화 등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는 것들을 말한다. 작가뿐 아니라 개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과 반응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집이다. 물론 나는 집의 사회적 역할이나 의미 등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Lee : 한국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 역으로 한국에서 이방인과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가?
Min : 내가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끼기보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나의 행동 중 일부를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문화적 차이를 느낀다. 그러나 ‘나는 이방인이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는 정도다. 나의 기준에서는 그 사람들이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에 그냥 ‘모두가 모두에 대해 이방인인 것은 아닐까?’ 정도로 답하고 싶다.
LEE : 민예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철학이나 사회학 등과 같은 이론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이 찾아진다. 작품을 설명할 때 반드시 이론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정한 이론이 떠오르면 그것을 바탕으로 분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Min : 나의 경우를 이야기하면 석사과정 중 내 작업에 대해 고민하면서 글리상(Édouard Glissant)의 책을 많이 읽었고 직접 언급도 했었다. 혼성화(크레올화, Creolization)가 나의 작업에 딱 맞는 개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현상이 찾아지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세계들이 내가 상상하는 세계와 연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리상이 들뢰즈(Gilles Deleuze)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들뢰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계 맺음의 현상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은 나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특정한 이론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내 작업의 방식과도 맞지 않는다.
<Furniture house> 4x5x3.8m, 가구, 목재, 선박용합판, 유리, 시멘트, 철판, 2013~현재 ⓒ민예은
LEE :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 <가구오두막 Furniture House>(2013~현재) 등은 수집한 오브제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오브제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Min : 선택의 기준은 정말 중요하고 나 자신도 작업할 때마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다. 질문에 등장한 두 작품의 공통점은 누군가가 사용했었던 물건을 수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부 기준은 다르다.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은 인터넷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한 명, 한 명과 직접 거래했고 물건(거래자)이 소유한 지역적인 의미의 부분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내가 구매해야 하는 물건의 목록을 ‘조명, 시계’, 이런 식으로 작성하고 그것이 수집되는 순서를 따라 하나하나 그림(작품의 조형적인 부분)을 맞춰 나가듯이 작업했다. 한편 <가구오두막>에서는 가구를 구매하는 지역의 특수성이나 역사 같은 환경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가구오두막>이 설치된 지역은 프랑스 브르타뉴(Bretagne)인데 여기는 거리 표지판에 브르타뉴어와 프랑스어가 동시에 표기될 정도로 두 언어가 함께 사용된다. 브르타뉴가 지리적으로는 프랑스에 속하지만 역사적, 심리적으로는 거리감을 갖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화와 브르타뉴 문화가 공존하는 이곳은 속하면서도 분리된 지역과 같다. 나는 브르타뉴에 있는 Emmaüs France에서 오두막의 재료로 사용될 가구를 제공받았는데, Emmaüs France는 프랑스에 온 난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동체이다.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기부하면 그것을 수리해서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후원을 한다. <가구오두막>에 사용된 대부분의 가구가 Emmaüs France에서 구매를 하거나 지원받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브르타뉴의 전통 가구와 다른 지역의 가구들, 또 지역과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가구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브르타뉴에 브르타뉴와 타지역의 문화가 공존하듯, 특정 지역의 특정한 공동체에서 구했음에도 브르타뉴의 전통 가구와 타지역의 전통 가구가 공존했다. 그래서 완성된 작품에는 다양한 문화와 지역적인 특성들이 함께 하게 된다. 사실 <가구오두막>은 경계, 시대적인 변화 등, 참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복합적인 작품이다. 한편 재료로 사용된 가구 중에는 천장이 낮아지고 문이 작아지는 것처럼 건축의 형태나 생활 양식이 바뀌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가구들도 있었다. 자발적인 선택이라기 보다 시대적인 변화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가구로 지은 집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상황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구오두막>의 경우 그 형태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이 작품을 대하는 나의 입장이 계속 성장하고, 작품의 의미도 계속 변화하는 것 같다.
LEE : 가구로 지어진 오두막이다. 기존에 있는, 형태가 완결된 재료를 바탕으로, 그것도 건축적인 작업을 하니 남다른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Min : 야외 설치물이기 때문에 원목 가구만을 선택했고, 이것이 집의 일부가 되어도 가구의 역할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변형을 최소화해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자연히 처음 사용된 가구의 크기가 기준으로 퍼즐 맞추듯이 채워나갔다. 또 작품을 보면 장이 밖을 향해 문처럼 열리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은 안과 밖이 바뀐 집을 보여주는 나의 다른 작업과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NOSIAM> 120x120x50cm, 발사나무, 나무지, 회색지, 하드보드지, 목재, 흑연, 2012 ⓒ민예은
LEE : 작가는 <노지암 Nosiam>(2012)이 새로운 각도의 삶을 상상하도록 권유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조금만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Min : 실내와 실외가 바뀐 형태와 공간, 최소한의 색인 무채색만을 제공한 작품이다. 내가 만들고 제안하는 집의 형태는 우리가 흔히 알고 경험하던 것이 아니다. 특히 집의 역할 중 ‘보호’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만든 집은 그 역할을 잃었기 때문에 자연히 우리가 살았던 방식과는 다른 집이다. 사실 이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은 피하고 싶다. 외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집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며 각자 자신만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나는 잠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작품을 만들면서 ‘그 안에서 어떻게 잘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먼저 했다. 각자 자신이 관심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부터 그려나가면 된다.
LEE : 홈페이지게 게시된 <침실 A sleeping room>(2013)의 설명을 보면 사회와 가정, 부모와 아이, 남성과 여성처럼 이분법적인 항목들을 거론하고 있다.
Min : 이 작품을 위한 설명, “사람이 태어나 마주하는 개인의 공간은 그 시작부터 두 가지 이상의 문화가 결합되는 공간이다. 부모와 아이의 문화, 남성과 여성의 문화, 사회와 가정의 문화 등이 이 공간에서 만난다.”에서 중요한 것은 “등이”이다. 이 작업 역시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수집한 작품이다.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기부받거나 빌려서 완성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의 문화는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특성으로 인해 남성만 사용하는 물건, 여성만 사용하는 물건을 뜻한다. 두 개의 쌍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성별 자체를 나눠서 이야기하기보다는 특정한 누군가의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 공간으로 이 방이 작동되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만든 작품이다.
LEE : 가장 최근작인 <크넥사로(路) Rue-cnecsa>(2020)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가? 역시 안과 밖이 역전되었다.
Min : ‘masion’을 거꾸로 적어 ‘Nosiam’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듯, ‘Rue-cnecsa’는 프랑스어로 엘리베이터를 뜻하는 단어 ‘ascenseur’를 뒤집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엘리베이터의 안과 밖을 역전시켰다. 엘리베이터의 공간은 가장(매우) 제한되어 있고, 엘리베이터 밖은 엘리베이터 안에 탄 사람이 볼 수 없는 공간이라고 가정했다. 볼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은 상상의 영역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볼 수 없다는 것은 무한한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단어를 뒤집고 ‘크넥사’라는 길(rue)을 설정했다. 길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층과 층을 이어주고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엘리베이터는 길과 같다. <Rue-cnecsa>가 작동하는 범위를 5층으로 해놓아서 2층과 5층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반복적으로 옮겨가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Crane> 80cmx65cmx67cm, 브론즈, 종이, 아크릴지, 2011 ⓒ민예은
<Animal(s)> 38x30x62cm, 실제 동물 털, 도자 흙, 석회, 2012 ⓒ민예은
LEE : <학 Crane>(2011), <동물(들) Animal(s)>(2012)은 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정지한 생명체이다. 이 작품들에서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동물을 통해 은유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날고 싶지만 날지 못하고 나가고 싶지만 나가지 못하는 존재, 흐르고 싶지만 고정되어버리는 존재는 우리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Min : 동물은 내가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때마다 나를 대신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로 사용된다. 이 작품들은 선택한 물질의 형태와 물성의 차이를 보여준다. <학>의 머리는 브론즈로 최대한 현실감 있게 표현했고 몸은 우리가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종이학의 형태를 종이로 만들었다. 그런 특성 때문에 형태가 완전히 변형되고, 절대 날 수 없고 바닥에 붙어 있는 학이 만들어졌는데 역설적으로 몸이 공중에 뜨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동물(들)> 같은 경우에는 무엇으로도 정의될 수 없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음을 느끼는 정지된 상태를 동물들의 몸으로 나타낸 것이다. 몸통처럼 보이는 부분은 도자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la fontaine petrifiante의 폭포 안에 2~3개월 동안 넣어두었다. 그러자 그 위에 석회가 쌓여서 돌처럼 굳어졌다. ‘petrifiante’는 메두사의 눈을 바라보고 돌처럼 굳어진다는 뜻을 갖는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에 따르면 돌처럼 굳어지는 것은 마법에 걸린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마법이 풀리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돌이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잠시 멈춰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반면 꼬리는 동물의 털인데 그 역시 살아있다, 죽었다라고 말하기에 모호한 상태이다. 그래서 몸통과 꼬리는 그 형태는 다르지만 둘 다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과 같다. 한편 동물 꼬리의 크기와 형태만으로 해당하는 동물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꼬리가 동물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떤 동물로든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언제든 재가동이 가능한 상태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LEE :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지인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미술이 어렵다는 것이다. 혹시 본인의 작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가? 이건 매우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긴 하다. 작품이 반드시 쉽고 명쾌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쉽다고 생각하는 작품도 그 안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Min : 내 작업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 어렵게 받아들이는 경우 다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소재들이 익숙한 것들이고 어떻게 보면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인지할 수 있는 방식, 예를 들어 안과 밖, 위와 아래가 뒤집힌 상황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할 때에는 복합적으로 고민을 하면서 어렵게 작업을 하는 편이다. 그런 것들을 전달받는 분들의 경우 내가 고민하는 부분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어렵게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관객의 연령, 문화, 국적 등을 알 수 없다. 누가 내 작품 앞에 설지 알 수 없고 제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시선에서 복합적으로 고민하고 작업을 진행한다. 내 작업이 주제, 물성, 형식, 형태적인 면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최대한 생각하고 그만큼 해석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려고 노력한다.
LEE : 작가가 작품에 담아낸 이야기를 관객이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할까?
Min : 관객들이 그 모두를 알아야 할 필요성은 없다. 오히려 내 생각이나 의도가 관객의 다양한 해석을 방해할 수 있고,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어린아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다. 첫 느낌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구상하고 진행한다.
LEE :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겠지만 민예은의 작업은 지금 작가가 이야기한 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 안이 비어있어 다양한 해석을 채울 수 있다기보다 그 안에 힌트가 많아 다양한 것들을 꺼낼 수 있다는 인상이다. 작품을 제작할 때 최대한 의미를 비워내는 편인지, 채우려는 편인지 궁금하다.
Min : 비우기보다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어 관객마다 다양하게 접근하고 해석하도록 하는 편인 것 같다. 프랑스에서 다양한 해석을 위해 비우고 깨뜨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비우는 행위가 다양한 해석을 위한 것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면 그 역시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 다양성을 위해 작가가 얼마나 비워야 하는가의 문제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담아 해석의 경우의 수를 늘리는 방식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작업에 개인의 이야기, 사회적 메시지, 물성과 형태, 관계 등에 관한 고민이 다양하게 담기게 되었다. 한두 개의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 내 작품 앞에 선 관객들이 가져오는 생각과 경험, 문화 등이 함께 작동하면서 더욱 복합적인 해석이 나올 수 있길 바란다.
<A sleeping artist> 퍼포먼스, 2015 ⓒ민예은
LEE : <문을 열어둔 채 자는 예술가 A Sleeping Artist>(2009/2015)는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살면서 망각이 필요할 때도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규칙을 잊은 것처럼 작업하는 순간이 필요할 것 같다.
Min : 이 작업을 처음 발표했을 때에는 소통보다는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 물고기, 금붕어라는 것 자체가 기억력이 거의 없어 어항에 갇힌 상태에서도 늘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LEE : ‘잠’이라는 행위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의 다른 작업에서 무의식이나 꿈과 연결할 만한 요소가 발견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질문이다.
Min : 보통 잠에서 깨기 직전에 꿈을 많이 꾼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 7시 정도에 기상한다는 가정하에 오전 5시~6시 사이 퍼포먼스를 진행(공개)했다. 관객들은 사전 예약을 하고 내가 자는 모습을 보러 왔다. 당시 나는 금붕어 탈을 쓰고 실제로 자고 있었고, 내가 진짜 자는 것인지 몰랐던 관객 중에는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 정말 잔 것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꿈속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당시 잠을 자던 나와 꿈속에서 활동하고 있던 나는 동시적으로 존재했다. 동시에 일어난 일이지만 서로 볼 수 없었던 영역이 공존하는 작업이다. 한 공간에서 나는 관객들을 보지 못했고, 관객들은 꿈속의 나를 보지 못했다. 나조차도 제어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행한 것이다.
LEE : 정말 수면 중이었나?
Min : 정말 잤다. 내가 자고 있으니 관객들이 조용히 들어와 나를 지켜보다 나가기도 하고, 나와 대화하기 위해 기다리기도 했다. 자는 나의 모습을 촬영해 사진을 준 관객도 있었다.
LEE : 당시에 꾼 꿈이 기억나나?
Min : 기억 안 났다. 꿈을 꿨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에는 꿈을 많이 기억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꿈을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 가변크기, 합판, 각재, 벽지, 페인트, 타일, 석고천장재, 방수 천장재, 몰딩, T5조명, 우드블라인드, 전자벽시계, 종이달력, 괘종시계, 우드액자, 거울, 메탈벽시계, 인테리어조명, 십자형광등, 천장 삽입형 조명, 프로젝터, 실리콘, 타일 줄 시멘트, 2019, 대안공간루프 개인전 [예측할 수 없는 투명함] 전경 사진, 2019 ⓒ민예은
LEE :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을 조금 달리 보면, 자신의 역할이 사라진 물건을 수집해 새로운 삶을 주는 작업이다.
<가구오두막>도 그렇다. 끝나는 지점이 시작점과 연결된다. 죽음과 삶 사이의 역설을 보여주는 <트랜스-마이그레이션 trans-migration>(2019), 찰나와 영원을 떠오르게 하는 <단일슬릿 Single slit>(2019)과도 연결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작업으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해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Min : 인간의 탄생에 대한 고민은 <아담과 이브 Adam & Eve>(2009)에서 처음 등장했다.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죽음, 나아가 시간으로까지 연결된다. 인간, 생명체의 입장에서는 삶과 죽음이지만 생명체 외의 존재들을 생각하면 삶과 죽음으로만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작점과 끝점에 대해 고민하다 시작점과 끝점이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는 반복적인 시간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단순히 탄생과 죽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는 살과 피가 활동하지 않는 정지된 상태이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시작점이라 생각한다. 작품과 관련해서도 보통 작가가 ‘끝났다’라고 말하면 완성된 것인데 그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Adam & Eve> 가변 크기, 혼합재료, 2009 ⓒ민예은
LEE : 반드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이 질문의 의도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든가, 본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이다.
Min : 모든 작가가 다 그렇겠지만 나 역시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해서 하나의 작품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되지 않은 퍼포먼스인
<탈의 외출>(2012)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아프리카 베냉(Republic of Benin)에서 진행한 퍼포먼스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한복을 입고, 그 위에는 짚으로 만든 의상을 겹쳐 입은 뒤 짚신을 신고 키를 가면처럼 쓴 채로 퍼포먼스를 실행했다. 프랑스 문화원, 코토누(Cotonou), 건물 옥상에서 총 3회 진행된 퍼포먼스에서 나는 걸어 다니며 인사하는 행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퍼포먼스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지점에서는 절을 했다. 의상이나 행위 모두 익숙한 형태라 한국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업인 것 같다.
이 작업을 하면서 나는 전통에 대해 생각했다. 오천 년 역사를 가진 한국이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배웠던 역사는 조선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최근엔 전통이란 단어가 정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 문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전통과 특정한 식당이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사용되는 전통이란 단어의 의미가 과연 같은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서 익숙한 물건들을 가져왔고, 아프리카에서는 베냉의 강력한 전통이자 문화인 부두(Voodoo)교의 요소(부두교의 의식 때 사제들이 입는 코스튬(costume)의 모양, 코스튭을 입을 때 손발을 제외한 몸을 전부 가리는 형태)를 가져왔다. 그런데 짚은 베냉에서도 흔하게 발견되는 재료이고 전통이라 할만한, 아주 오랫동안 사용된 재료이다. 두 나라 모두에게 익숙한 소재였던 것이다. 같은 소재에서 온 오브제인데 그 목적과 정보가 다른 상황이 흥미로웠다. 정보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내가 쓴 키가 탈로 읽히게 되는 상황이 보여주듯, 각 물건이 용도와 의미가 차단된 상황을 구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기표와 기의의 전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는 안과 밖을 바꿨던 작업이 언어로 이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참고로 프랑스 문화원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할 때에는 나, 베냉 사람들, 프랑스 사람들이 있었다. 베냉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아프리카 문화와 프랑스 문화가 함께 한다. 그래서 나의 퍼포먼스를 보는 관객이 가져오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이 뚜렷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실 부두교는 이방인이 건들지 말아야 하는 조심스럽고 예민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처음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공격당할 수도 있다고 만류하는 베냉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아시아에서 온 여성이어서 더 위험했다. 나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짚을 제외한 퍼포먼스에 사용되는 모든 물건은 한국에서 온 것이며 내 작업의 의도는 부두교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야 했다. 이후 내 작업의 의도를 이해한 사람들이 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나를 지켜 주기 위해 함께 했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나를 대신해 작업에 관한 설명도 해주었다. 내가 베냉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설명하고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던 프랑스어를 비롯해 내 퍼포먼스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정치, 사회, 역사 등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 아래에 존재하는 개별 주체들의 생각과 감정의 공유, 관계들은 계급이나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직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수평적인 관계였다고 생각했다.
LEE : <탈의 외출>을 진행할 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강행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낯선 지역에서, 공개된 장소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Min : 작가가 말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제일 강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처음 미술을 접했을 때 다양한 장르 중에서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미술을 하게 된 이유 중 소통을 하고 싶다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해서인지 나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그것을 직접 꺼내 보여주고 교류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보통 작품이 전시장에 설치되면 관객들은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감상이 구현된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는 작품이 놓인다. 그런데 퍼포먼스는 작가인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그 순간 관객들의 시선과 반응 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퍼포먼스를 할 때 의상을 만들어 입거나 탈을 쓰는 것처럼 나의 일부를 가린다. 혼자가 아니라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 같다.
LEE : 현재 본인의 작업에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Min : 시간과 공간, 언어의 형태와 관계, 물질 등에 대한 고민은 늘 함께 한다. 최근에는 특히 시간성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 같다. 실제 결과물은 그렇지 않았지만 작업을 시작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서 접근했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시공간의 형태였고, 이것은 부피감이나 입체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겹겹의 세계를 떠올렸다. 겹겹이란 양파껍질처럼 하나의 층 아래에 또 하나의 층이 순차적으로, 마치 하나처럼 쌓여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연결고리에 의해 이어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겹겹을 뜻한다. 이 밖에도 시간을 존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이 생각하는 영원한 삶, 영원한 삶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하는 행위들,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행했던 욕망의 실현 등이 시간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그것이 물질적인 부분과의 결합을 통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공존, 공생하고 있고 이를 위해 서로 맞춰 나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미세한 움직임과 떨림이 발생한다. 그것들의 시각화도 나의 관심사이다.
LEE : 마지막 질문이다. 작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Min :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편이 아니다.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많이 느낀다.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언어로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는 언어가 굉장히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언어는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언어로 말하는 행위는 늘 한계를 만든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언어가 아닌 다른 통로가 필요해서 작가가 되지 않았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