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에틱,리포에틱 로고
  • ABOUT
  • CV
  • PUBLICATION
  • CRITIQUE
  • REVIEW
  • IN-DEPTH
  • ON-THE-SCENE
  • RISING
  • WORKSHOP
  • NOTICE

artist 권오상

2018. 12.03. / 2020. 12. 14.

본 글은 2018년 11월 18일(수), 2020년 11월 25일(수)에 진행된 이문정과 권오상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작가 권오상 (Gwon, Osang)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 1998-present
더 플랫(The Flat) 2003-2007, 2010-2014
더 스컬프쳐(The Sculpture) 2005-present
데오도란트 타입 매스패턴스(Masspatterns) 2013-present
릴리프(Relief) 2013-present
뉴 스트럭쳐(New Structure) 2014-present

LEE : 이문정, Gwon : 권오상

2020. 12. 03. (2018. 11. 18. 인터뷰)

LEE : 여태까지 정말 많은 인터뷰를 했을 텐데, 혹시 너무 많이 받아서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은 질문이 있는가?

Gwon : 인터뷰에서 받게 되는 질문들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내가 미술사 안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고, 현대 미술 안에서 연동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의미를 유사한 방식으로 파악해 질문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특별히 좋아하는 질문이나 싫어하는 질문은 없다.

LEE : 유사한 질문에 반복적으로 응하다 보면 답변이 더 진화하는가?

Gwon : 정리된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어린 나이에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작업에 대한 생각들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답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 후 한동안은 정형화된 답변들을 했다. 이후 반드시 틀에 맞춰 정답을 제시하듯 대답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컨디션에 따라 유동적으로 답변을 하고 있다. 나에게서 나온 작업이니 편하게 답변해도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

LEE : 작가가 처음부터 강력하게 작업의 개념을 완성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권오상의 작업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한 평론이나 기사의 많은 부분이 형식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역시 그동안의 인터뷰에서 형식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왔다. 나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작품을 마주했을 때 내러티브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상상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느꼈다. 중첩된 이미지가 많은 데도 그렇다.

Gwon : 나 역시 한동안 그 부분을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작가가 그 지점까지 생각하지 않고 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처럼 내러티브를 이끌어내도록 작업하지 않는다. 작업할 때 다양한 상상을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과도 연관이 있는데 매우 즉각적으로 형태와 포즈, 배치 등이 이뤄진다. 때문에 내러티브의 생성보다 시각적인 풍경에 가까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조각을 현대 미술로 보고 감상할 수도 있지만 수석을 보거나 산을 보는 방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거다. 얼핏 보면 내러티브가 강조되는 작품 같지만 실제로는 나의 작품에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최근 들어-생각하고 있다.

권오상 도판 <Worktable & Heuer>, C-print, mixed media,107x84x94cm, 2013 ⓒ권오상

LEE : 반드시 연상 작용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술에서 내러티브가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작업에 익숙해진 누군가는 권오상의 작품을 보고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Gwon : 물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받는 전시가 나뉘는 것 같다. 내러티브나 담론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전시에는 점점 참여하지 않게 된다. 미술을 글을 통해 보려는 태도 때문에 미술의 내러티브가 강조되는 것 같다. 나 역시 현대 미술을 글로 배웠다. 예전에는 그런 내러티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이제는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술에 내러티브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LEE : 과거 인터뷰에서 본인이 하고 있는 예술이 ‘예술에 대한 예술’이라고 말한 적 있다. 예술에 대한 예술이라고 할 때 개념 미술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권오상의 경우에는 오히려 예술을 위한 예술처럼 예술만을 생각하고 다루는 모더니스트적인 태도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연상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형식 그 자체가 중심에 놓이는 작품인 거다.

Gwon :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를 모더니스트적이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나는 21세기를 살고 있기에 모더니즘의 지향에 딱 맞도록 작업할 수도 없다. 다만 일정 부분에서 내가 갖고 있는 태도가 모더니스트에 가깝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작업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기보다 미술사(에 등장했던 작품들)에 영감을 받은 예술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들을 계속 보다 보니 그것을 에너지 삼아 새로운 작업을 만드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활동을 했던 작가들, 근대에 가까운 혹은 르네상스에 가까운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LEE :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권오상의 작업에 대한 글과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이전부터 작업의 주된 내용들은 익숙했다. 작업에 대한 설명 중 사진을 붙이는 방식을 소조와 연결시킨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조각의 기본 골격은 깎아내는 조각의 형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 자체로 소조와 조각이 결합된 작품이다. 이러한 설명은 작가 본인이 처음 사용한 것인가?

Gwon : 내가 처음 사용했을 거다. 그런데 단순히 사진을 붙이는 방식만을 의미하는 설명은 아니다. 사물의 집합처럼 덩어리들을 무작위로 붙여나간 사진조각인
<매스패턴스 Masspatterns>도 흙덩어리를 붙이듯이 조각을 구성한다고 설명했었다. 대부분의 평론은 작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현대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작가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머릿속도 알 수 없는데 다른 사람(작가)의 머릿속을 알 수는 없다.

LEE : 물론 작가의 설명은 가장 중요한 정보다. 그렇다면 작가의 설명을 듣지 않고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오독의 위험이 있을 수 있겠다.

Gwon : 분석할 수는 있을 거다. 또한 작가들은 오해의 부분까지 열어 놓을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분석하려면 반드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오상 도판 <Ulaanbaatar>, C-print, Mixed media, 136x120x80cm, 2011 ⓒ권오상

LEE : <데오도란트 타입 Deodorant Type>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다. 전통적인 조각의 장르적 특성을 깨뜨리면서 조각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자기 모순적이다. 장르 해체를 통해 장르 구별을 확고히 하면서 작가 자신을 조각가라고 명명한다. 동시대적이면서도 과거 회귀적이다. <더 스컬프쳐 The Sculpture> 역시 가장 조각다운 조각이면서 그 표면은 회화적이다. <뉴 스트럭쳐 New Structure>는 평면이자 입체이다. 정말 진정으로 조각가라 불리기를 원하는가?

Gwon : 그렇다. 조각가로 불리고 싶다. 나는 브론즈, 대리석, 나무 조각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하고 싶은 생각과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그 로망에 다가가기에는 여러 조건이 맞지 않는다. 물리적 시간도 부족하다. 사람이나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대리석 조각을 예로 들면, 실제로 대리석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조각가가 많지 않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가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깎았던 조각이 몇 개나 될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25살에 <피에타 Pietà>(1498-1499)를 완성했다. <피에타>는 그 디테일이 징그러울 정도다. 그 한 점으로 자신의 실력을 다 보여줬다. 그것은 본인이 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본인이 전부를 깎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비드 Davide>(1501-1504)처럼 5미터가 넘는 조각상은 혼자 깎을 수 없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작품 수를 세어 보면 한 인간이 평생 만들 수 있는 양을 벗어났다. 주변 공방이나 동료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돌조각을 하려면 장소와 분진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전통적인 조각을 하고 싶은데 여건상 지금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진조각이 나왔다. 단순히 무게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조각을 만들고 싶었다. 조각 전공자들이 느끼는 조각에 대한 열망을 해소하기 위해 나의 모든 작업이 시작되었다.

LEE : 그토록 간절히 전통적인 조각이 하고 싶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Gwon : 그렇게 제약이 많은 상태로는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정말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꿈같은 게 있다. 실제로도 작업량이 많은 편이다. <더 플랫 The Flat>의 초기 시리즈는 인화와 디아섹(diasec) 작업을 모두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그리거(Grieger) 공방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브론즈 조각도 여기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견적이 나왔다. 사실 <더 플랫>도 손익분기점이나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다. 물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전통적인 조각 작업을 하려면 내가 그 분야에 대해 지금보다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

LEE : 이제 진심이라고 믿겠다.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스스로를 조각가라 명명하는 행위가 자신의 미학적 개념을 잘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트릭이 아닐까?’라고 의심했었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계획되고 정제된 인터뷰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Gwon : 그건 어려운 일이다.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하는데 매번 만들어 놓은 답변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솔직한 게 좋다. 대학생 때 조각가 권오상이라 인쇄된 명함을 만들었을 정도로 조각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LEE : 오늘날에는 조각이라는 단어를 굳이 안 쓰는 경우가 많다. 조각가라는 명칭보다 작가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의미를 한정짓거나 규정하려 하지 않는 시대적인 분위기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본인은 조각을 강조한다.

Gwon : 그래서 더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각이라 명명하는 것이 작업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각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진 장르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소스 (source)가 훨씬 많다. -예를 들면-간다라(Gandhara) 양식에서부터 시작해 둔황 석굴,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조각(의 전개) 그 자체에 경도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정말 인류가 어떻게 조각을 하면서 살아왔는가와 같은 보다 근원적인 조각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권오상 도판 <2008 July>, Lightjet print, wooden frame, 228x188cm, 2010 ⓒ권오상

LEE : <더 플랫> 시리즈의 경우 작가 본인도 이 작업을 조각이라고 말하는 것이 다소 억지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목적과 의미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결과물은 평면이다. 그것을 굳이 조각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Gwon : -<더 플랫>을 위해 제작했던 조각을 보여주며- 구현된 것들을 보여주는 최종 방식은 평면이지만 그 안의 이미지들은 실제 공간에 존재했던 것이다. 입체로 모두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이다.

LEE : 그렇다면 입간판처럼 만들어진 입체물이 공간에 실제로 놓여 있던 그 과정까지 모두 작품에 포함해야 하는가?

Gwon : 과정까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다. 왜 실제 조각들을 전시 안 하냐는 이야기 때문에 <뉴 스트럭쳐>가 나왔다. 10년 만의 대답 같은 것이었다. <더 플랫>은 어쨌든 평면으로 된 작업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나 작업의 부산물이 조각으로 존재하고 있다. 관객들이 마주하는 것은 평면이지만 나는 조각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미술관 공모에 조각 분야로 출품해서 소장에 탈락한 경우도 많다.

LEE : ‘왜 현대 미술에 정물 조각이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더 플랫> 시리즈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결과물이 평면이다. 그와 같은 의문에서 시작했다면 입체로 전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Gwon : <더 플랫>의 형식은 아니지만 정물 조각을 만들었다. 지점토로 만든 정물 조각들이 있다. ‘람보르기니(Lamborghini)’도 정물 조각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다.

권오상 도판 <The Sculpture 8>, acrylic on paperclay, 160x210x210cm, 2006 ⓒ권오상

LEE : 새로운 시리즈가 발표될 때마다 특히 형식적인 면에서 정확한 가이드라인 주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읽어주길 강하게 바라는 것 같다.

Gwon : 맞다. 그렇게 읽히길 바란다. 나의 작업에 일정 부분 사진이나 설치적인 속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조각으로 읽히길 바란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조각 분야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더 강조한다. 실제로 초창기에는 나의 작업이 사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전에 자주 초대되었고 사진비평상(2001)도 받았다. 내가 계속 강조를 하니 지금에 와서야 사진으로 분류가 안 되는 거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나는 학생 시절부터 조각가들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잡지에 나오는 조각가들은 록 스타(rock star)처럼 멋진 존재였다. 그러나 조각가가 되기 위해 미술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스스로 조각가의 전형적인 외모를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은 아니었지만-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각가의 모습과 나는 조금 달랐다. 그러고 보면 나의 작업이든 인터뷰든 작가의 심리적인 부분과 연관이 깊다.

LEE : <더 플랫>의 경우 완성된 작품은 납작한 평면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작업을 위해 실재했던 조각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공간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원근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납작한 공간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실재하는 공간까지 담아낸 거다. 환영적 공간과 실재하는 공간이 함께 하는 작품이다.

Gwon : 두 공간이 모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더 플랫> 초기 작업 중 시계를 오린 것들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앞쪽에 큰 것들, 뒤쪽으로 갈수록 작은 것들을 배치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한 3미터 정도의 공간인데 5미터, 크게는 10미터 공간처럼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배치하고 촬영했다. 또한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왜곡이 일어난다. 대형 카메라의 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원근감을 엉키게 만들 수 있다. 초기의 것도 그렇지만 특히 2010년 이후의 <더 플랫>은 각 사물마다 원근이 두드러지게 다르다. 건물, 시계, 침대 등 개별 사진의 원근이 모두 달라서 원근법이 엉킨다. 크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더 플랫>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물과 사물이 서 있는 사이에 존재하는 공기가 통하는 길이다.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 같은 거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것은 주로 클래식한 조각가들이 생각하는 부분인데, 아마 헨리 무어(Hennry Moore) 정도가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실재하는 조각을 보는 게 아니라 조각과 조각 사이에 존재하는 비어있는 공간을 보는 거다. 사람이 작아져서 바람길 같은 공간을 거닐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뉴 스트럭쳐>가 나왔다. 특히 2016년 개인전을 디스플레이할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권오상 도판 <New Structure 1 Lamp & Stairs>, Inkjet print, aluminium, 214x350x165cm, 2014 ⓒ권오상

LEE : 매 시리즈마다 양가적인 특징들이 공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로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개념들이 공존한다. 평상시에 이중적인 개념의 결합을 생각하며 작업하는가?

Gwon : 의도했다기 보다 그런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정도다. 예를 들어 람보르기니를 조각으로 구현할 때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만약 과거의 것을 그대로 따르려고만 했다면 표면에 칠을 하지 않고 브론즈의 표면을 그대로 보여줬을 거다. 그런데 칠을 했다. 아마 동시대 미술로서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작업하는 것 같다.

LEE : 인터뷰에서 현대와 동시대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한다.

Gwon : 현대 미술은 동시대, 컨템포러리 아트를 말하는 거다.

LEE : 작업의 형식이나 개념들이 원론적인 미술 이론을 공부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이론서들을 어느 정도 읽는가?

Gwon : 그렇다. 이론이 바탕이 되어야 나올 수 있는 작업이다. 작업 초기에는 많이 봤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예전만큼 읽지 못한다. 그러나 많이 접하려고 노력한다. 많이 읽고 싶어 한다.

LEE : 조각가라면 당연히 고민하는 키워드다. 작업을 하면서 공간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하는가? 공간에 대한 본인만의 정의를 내려 본 적이 있는가?

Gwon : 공간은 공간이다. 이 세상에 많은 공간이 있다. 나는 누군가 ‘어떤 색이 가장 좋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않는다. 전문가로서 좋아하는 색을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것 같다.

LEE : 그렇다면 이번 질문에 대한 답도 안 해줄 것 같다. 그래도 물어보겠다. 본인의 작업은 전통,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아우르는 조각이다. 시리즈마다 차곡차곡 조각 그 자체를 탐구한다. 권오상에게 조각이란 무엇인가? 평상시에 많이 생각하지 않나?

Gwon : 조각이란? 답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다. 조각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나에게 이 질문은 ‘산이란? 하늘이란?’ 이런 것과 같다. 조각은 그냥 있는 거다. 공기처럼. 나는 그 자체를 의심해 보거나 그 개념을 향해 도전을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조각 혹은 회화처럼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장르)들은 고유의 치명적 매력이 있다. 그것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LEE : 권오상의 작업이 초현실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Gwon : 내 작업이 초현실적이라는 표현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나에게 초현실은 달리(Salvador Dali)의 작품 같은 것이다.

LEE : 미술사조인 초현실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난 분위기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데오도란트 타입>의 다시점적인 측면도 그렇고, <뉴 스트럭쳐> 사이를 돌아다닐 때에는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Gwon : 비현실적인 느낌은 받을 수도 있겠다.

권오상 도판 <Red Shirt and Whistle, Calder s Circus> print on 54 wood panel, varnish, chain, dimensions variable, 2018 ⓒ권오상

LEE : 보통 한 작가의 작업을 연구할 때에 형식적인 면과 그 안에 담긴 의미(개념)적인 면을 함께 분석하고 싶어 한다. 권오상의 전 시리즈에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서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작가의 내면 혹은 취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이 늘 궁금했다. 앞선 답변을 들으니 그런 것들을 더 이상 궁금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완전히 포기가 안 된다. 그렇게 많은 이미지들이 중첩되는데 그 안에 이야기가 하나도 안 담길 수 있을까? 의미 생성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가 없을 수 있나? 무의식적으로라도 작가의 취향이 담길 것이다.

Gwon : 검색을 통해 얻은 이미지 전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선별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을 많이 만들어야 하면 검색된 이미지를 모두 사용한다. 이미지를 선택할 경우에는 즉흥적으로 고른다. 그런데 그 선택 자체가 작가의 취향과 관련이 있을 거다. 지금 진행 중인 작품 중 하나(모빌 mobile)가 동영상 ‘칼더의 서커스(Calder’s Circus)’와 연결된다. ‘칼더의 서커스’라는 그 단어 자체에 영감을 받았다. 작업을 위해 검색을 했고, ‘칼더’, 그리고 ‘서커스’와 관련된 이미지 100여 개를 모았다. 그런데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치 미국 맥주집이 연상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나의 전작들과도 심하게 괴리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칼더의 서커스’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풍경들을 단어로 바꿔 검색한 뒤 이미지를 모았다. 무작위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엄밀히 말해 취향이 굉장히 빠르게 반영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사용되는 이미지가 그때그때 바뀌는데도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비슷한 분위기가 된다.

LEE : 작품을 많이 제작해야 할 경우 검색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모두 사용한다고 했다. 무작위성이 강조되려면 검색된 결과(이미지)의 첫줄부터 차례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Gwon : 그렇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스태프들이 선택을 해 준다.

LEE :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Gwon : 그 이미지를 선택한 스태프의 취향이라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배제하는 이미지는 있다. 너무 손으로 그린 것 같은 이미지라든가, 아니면 너무 구체적인 이미지라든가 하는 것들. 가이드는 있다.

LEE : 매 작품마다 가이드를 주는가?

Gwon : 그렇지는 않다. 단어로 조절하는 게 우선적이다. 검색을 할 단어는 내가 확정한다. 작품에 따라, 검색해서 나오는 이미지에 따라 단어의 조합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이미지를 찾는다. 얼마 전 BMW와 작업을 했을 때 사용한 키워드가 브랜드의 슬로건과 관련된 ‘용기, 탐험’ 같은 추상적인 단어였다. 그럴 경우 뒤에 단어를 하나씩 추가해 간다. ‘용기, 스컬프쳐’, ‘용기, 그래픽’ 이런 식으로 조금씩 다른 단어들을 붙여서 이미지를 유도하는 부분이 있다.

LEE : 이전 인터뷰들을 보면 즉흥적, 무작위적으로 작업한다는 설명이 꽤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Gwon : 완벽한 무작위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작위적이라 설명할 만한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나의 취향이 지나치게 반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작위적인 작업 방식을 의도할 때가 있다. 내가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다 선택하면 사용되는 이미지, 작품의 형태, 구도 등이 모두 똑같아진다. 잡지 ‘월페이퍼(Wallpaper)’ 한 권을 통째 오려 사용하는 것도 작업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월 페이퍼’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에 나의 취향이 담겨 있을 수 있겠다. 또한 <매스패턴스>의 경우도 덩어리들이 즉각적으로 결합된다. 조각을 만들 수 있는 조합이라는 게 매우 상투적이다. 소조를 할 때 큰 덩어리를 구성하기 위해 작은 덩어리들을 붙이는 방식과 연결된다. 조각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덩어리와 덩어리가 서로 지지해서 서 있으려면 나올 수 있는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뉴 스트럭쳐>의 경우에는 칼더의 스태빌(Stabile)이라는 명확한 가이드가 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칼더의 <무제 Untitled>(1976)-레드 치즈(Red Cheese)-에 철판이 3장 사용되었다면 나도 <더 플랫>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인쇄된 3장의 판을 준비한다. 각각의 판들이 만나는 연결 부위는 칼더의 작품과 동일하다. 칼더의 스태빌은 몇 점 없기 때문에 같은 형식을 조금씩 변형시키며 작업하고 있다.

LEE : 작업 과정에서 작가 본인의 직접적인 손길은 어느 정도 가는가?

Gwon : 작품마다 다르다. 모든 부분을 제어하지는 않아도 모든 부분을 보고 있다. 직접 손을 대지 않더라도 모든 부분을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건축가가 빌딩을 지을 때 본인이 직접 벽돌을 나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모든 계획은 내가 짠다. 계획이 가장 중요하다. 계획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LEE : 본인이 지속하고 있는 개인 작업과 외부의 의뢰로 진행하게 되는 작업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Gwon : 거의 같다. 대부분의 기업이 작업을 의뢰할 때 제약을 주지 않는다. 작가가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할 수 있다. 자사의 이미지가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럴 경우 나는 관련된 이미지를 더 넣으려 하는 편이다. 나의 작품에 구체적이 사물이 등장하거나 상표가 등장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작가 활동 초기부터 기업과 관련된 작업을 상당히 많이 했는데, 그 작업들을 나의 개인전에 놓아도 흐름이 깨지거나 하지 않는다. 실제로 개인전이나 국제전에 등장했던 작품들의 상당수가 기업의 후원으로 제작했던 것들이다.

LEE : 본인의 작업에 차용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그동안 언급이 많이 되지 않았다.

Gwon : 사진조각에서 고전 조각의 구성에 관련된 차용이 두드러지는 것은 2012년 경 부터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글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작업의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하다 보면 차용까지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다른 맥락인데, 나의 경우 사진조각이라는 형식(방법)적인 부분에서 표절을 많이 당했다. 나의 작업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해외 전시가 많아지고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그래서 차용(인용)과 표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LEE : 권오상 작품에서의 인용과 관련해 조금 더 말하자면, 나는 권오상이 미술(조각)사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지점들 옆에 자신의 새로운 지점을 추가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릴리프 Relief> 시리즈를 볼 때도 그 생각을 했다. 다시점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입체주의, 파피에콜레(papier collé)나 아상블라주(assemblage)가 연상되었다. 피카소(Pablo Picasso)의 <만돌린과 클라리넷 Mandolin and Clarinet>(1913)이 생각나기도 했다.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하면서 작업하는가?

권오상 도판 <Relief 11>, wood, 143x202x5.4cm, 2016 ⓒ권오상

Gwon : <릴리프>를 그렇게 봐주는 것도 좋은데, 실제로는 <뉴 스트럭쳐>를 두께감 있는 평면으로 만들어서 벽에 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다 나온 것이다. 나무로 <릴리프>를 제작하다 보니 그동안 <뉴 스트럭쳐>의 재료였던 알루미늄 판보다 두께감도 좋고 비용 면에서도 경제적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릴리프>의 재료 그대로 <뉴 스트럭쳐>를 제작하고 있다. 피카소를 이야기한 사람은 처음이다. <릴리프>를 발표한 이후 모마(MoMA)에 갔을 때 아르프(Hans Arp)의 작품을 보고 ‘이렇게 만들었었구나, 멋지다’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LEE : 작업을 하면서 미술사의 주된 전환점들을 생각하는가?

Gwon : 예전에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회화와 달리 조각은 동서양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조각사의 끝에 나의 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다.

LEE : 앞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일 수도 있겠다. 과거의 인터뷰들을 보면 로댕(Auguste Rodin), 마이욜(Aristide Maillol), 부르델(Antoine Bourdelle)처럼 모더니즘 조각의 시작점에 있는 작가들이 종종 등장한다. <칼레의 시민 The Burghers of Calais>(1884-1895)을 언급하기도 했다. 조각의 순수한 정체성을 강조했던 모더니즘 시대를 열었던 조각가들이라 권오상이 추구하는 지향과 잘 맞는 작가들이다.

Gwon : 그런 부분도 의식은 했을 거다. 그런데 그 세 명은 조각 전공자들이 가장 많이 배우는 조각가들이다. 조각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지점이기 때문에 많이 다뤄진다. <칼레의 시민>이 언급된 것은 2006년 아라리오 갤러리(천안)에서의 개인전 때 발표했던 작품 때문이다. 당시 2층에 전시했던 사진조각의 구성이 <칼레의 시민>에서 나온 것이었다. 가운데, 대리석을 찍어 만든 사진조각 좌대가 <칼레의 시민>과 같은 크기였다.

LEE : 뜬금없는 질문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해보겠다. 모빌은 움직이는 조각이다.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키네틱 아트(kinetic art)도 미술사의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혹시 실제 동력을 사용해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 계획은 없는가?

Gwon : 나의 모빌 작업은 실내에 있기 때문에 칼더의 작품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조각이라기보다는 공간에 떠 있는 조각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키네틱 작업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왜 움직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내 입장에서는 조각이 굳이 움직일 이유가 없어 보인다.

권오상 도판 <A Statement of 540 Pieces on Twins>, C-print, mixed media, 180x110x50cm, 1999 ⓒ권오상

LEE :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데오도란트 타입>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탄복했을 것 같다.

Gwon : 1998년, 발표 당시 주변 사람들은 ‘자꾸 사진 찍으러 다니더니 이상한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의 첫 작품을 완성했을 때 ‘아, 뭔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 느낌이 가능했던 게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 계간미술 』(1988년 봄호)을 봤다. 1989년에 『 월간미술 』로 바뀌었는데 그때부터 구독해서인지 그런 감 같은 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LEE : 당시 미술 잡지에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이 꽤 많이 소개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도움이 되었나?

Gwon : 한문이 많았기 때문에 실렸던 글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도움이 되었을 거다. 국립현대미술관의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1993)이나 호암갤러리의 <팝아트의 슈퍼스타 앤디 워홀>(1994)과 같은 전시들이 많이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민중미술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들도 많이 등장했다. LEE: <데오도란트 타입>은 시리즈의 제목뿐 아니라 개별 작품의 제목도 은유적이다. 그런데 이후에는 직설적이면서도 간결하게 바뀌었다. 남다른 의도가 있었나?

Gwon : 초기의 사진조각 작품들은 <쌍둥이에 관한 420장의 진술서>(1999)처럼 제목이 길었다. 문학적인 느낌이어서 이론가나 선배 작가들이 좋아해준 것도 같다. 그런데 작업 양이 많다 보니 작품 제목을 다 외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2001년 개인전 때부터 짧고 명료한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다. <더 플랫>과 <릴리프>는 단어 그대로 결과물이 평면이고 부조여서 그렇게 붙였다. <더 스컬프쳐>는 조각가임을 공표하기 위한 제목이었다. 나의 작업은 조각이 확실하니 이제는 나를 조각가로 생각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뉴 스트럭쳐>의 경우에는 선조(先祖)의 뼈를 가져다 쓴 거라 ‘스트럭쳐’인데 새로운 신작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뉴(new)’를 붙였다.

LEE : 제목이 다시 은유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없는가?

Gwon : 있다. <매스패턴스> 중 두 점의 제목이 좀 길다. ‘윌리엄스버그의 중국식 화병과 문조’, ‘명나라 신선의 두상과 새들’이다.

LEE : 제목이 시구 같다. 제목을 정할 때 많이 심사숙고하고 고민을 하는 편인가?

Gwon :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LEE : 본인을 다룬 글이나 기사를 다 읽는가? 만약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하나? 앞선 답변에서 오독의 가능성도 열어둔다고 했는데, 본인의 작업을 오해해도 괜찮나?

Gwon : 나와 관련된 기사는 다 읽는다. 물론 기사는 이미 공개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고쳐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해라거나 잘못 봤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의 작업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LEE : 본인의 작품 앞에서 관객이 자신만의 시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본인 작품의 기능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왜 자신만의 시공간을 권오상의 작품 앞에서 가져야 하는가?

Gwon : 어디에 가도 자신만의 시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설명한 이유는 일상에서는 매일 무슨 생각들을 하느라 진정으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관객들이 내 작품 앞에서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되는,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그게 진짜 자신의 시공간을 갖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게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오상 도판 <New Structure 5 Cheese & Crystal Lamp>, Inkjet print, Aluminum, 351(h)x208x122cm, 2014 ⓒ권오상

LEE : 대화를 진행할수록 특별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감상하는 것이 작가가 원하는 감상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글을 쓰는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 나의 경우 작품을 감상한 후 연상되는 키워드 등을 바탕으로 생각을 발전시킨다. 설득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료를 조사하며 근거를 찾기도 한다.

Gwon : 그렇게 감상한 것들은 모두 글로 적을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는 그 글을 읽으며, 그 글을 바탕으로 작품을 감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술은 글로 적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 ‘왜 미술을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나?, 미술을 문장으로 다 설명할 수 있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LEE : 미술은 분명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다. 그러나 미술이 역사나 사회 안에서 의미를 부여받으려면 일정 부분 언어(적 세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Gwon : 그 정도의 분량은 나의 작업에 있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내 작업을 분석해주셨다. 주로 제작 방법과 형식에 집중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각 감상은 작품이 놓인 공간을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구조와 공간을 느끼는 것인데 그것을 말로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다. 조각 그 자체(의 덩어리)와 조각이 존재하지 않는 비어있는 공간을 함께 느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완벽히 언어화할 수 있을까?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에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문맥을 모두 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전공자들이 작품을 편하게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무엇을 통해서든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관객들이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와 같은 감흥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다른 장르에 비해 미술이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은 책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다.

LEE : 언어로 작품의 의미가 한정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Gwon : 오늘날은 분명 의미가 많아 보이는 작품을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내 주변의 작가들만 봐도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작업하지 않는다. 작가가 작품을 제작할 때 그처럼 복잡하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정되었든, 아니든, 누군가가 작품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것을 언급해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좋아한다. 그게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말고도 작품을 경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거다. 작품을 보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감상법이다. 이 방법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 역시 현대 미술을 그렇게 감상하는 것 같다. 내가 만나는 모든 작품에 대한 언어화된 지식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식이 없다고 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감상의 방식은 여러 개다. 물론 작품을 연구해서 그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나는 무엇보다 실제 작품을 마주하는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술 감상은 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같다. 만약 나의 작업이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작품이 보존될 것이고 후대의 사람들도 나의 작품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작품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 게 낫다.

LEE : 정말 젊은 나이에 데뷔를 했고 스타 작가가 되었다. 조각을 전공하는 현재의 학생들 중 누군가는 권오상을 조각가의 로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거나 작가로서 활동하는 데에 있어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가?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는가?

Gwon : 무엇보다 나 자신이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 스타일이다. 대범하다거나 아무 것도 신경 안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내 작품(조각)은 망쳤다고 할 만한 상황이 없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그 부분을 다시 만들면 된다. 처음 만들기 시작한 스태프가 완성을 못하거나 해결을 못하면 다른 스태프에게 맡기면 된다. 나의 작품은 계획된 날짜에 반드시 완성된다. 나의 작업실이 마치 공장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스태프들에게도 감정 이입을 많이 하지 말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처럼 편하게 생각하면서 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 경험을 말하자면, 많이 알려질수록 활동하기가 더 편하다. 더 많이 회자되고 주목받을수록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자신감도 생긴다. 심리적으로도 더 안정되는 것 같다. 미술은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가 아니다. 그러니 관심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작가라는 직업 자체로 인한 압박감은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나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면서 작업을 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 같다. 주목받는 작가이기 때문에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이 재미있는 게 본인만 관두지 않으면 계속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재능이 있는 작가, 작업을 잘 하는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고 조각을 잘 깎는 사람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재능이 많은 작가는 죽기 직전까지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다. 약 10년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작가는 힘든 직업이다. 나의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내가 지금 45살인데, 이 나이는 작가로서 정말 젊은 거다. 그런데 45살부터 70살까지는 오히려 주목받기 힘들다. 이 구간을 전업 작가로서 잘 해결해나간다면 역사에 남는 작가가 될 것이다.





2020. 12. 14. (2020. 11. 25. 인터뷰)

LEE : 오늘은 정물 조각을 중심으로 질문을 하려 한다. 정물 조각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이 다양한데 선택을 어떻게 하는가?

Gwon : 작가에게 많이 요구되는 것 중의 하나가 상상력이다. 나는 상상력이 내용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작품의 형식, 구조, 그리고 재료에도 담긴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발휘하는 상상력의 많은 부분은 재료와 연관된다. 사진조각에서 사진을 이어붙여 입체로 만드는 것도 재료에 대한 상상력이다. 사진조각의 경우 내부 프레임을 짜는 것도 기존에 잘 쓰지 않는 방법들을 선택했다. 초창기에는 알루미늄 스틱을 구부리고, 나사가 아닌 리벳(rivet)을 사용해 연(鳶)살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리벳은 청바지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다시 푸를 일이 없는 나사 같은 거다. 이후 내부는 단열재인 아이소핑크로 채워 넣었다. 보통은 스티로폼을 생각할 텐데 스티로폼은 가루가 너무 날리고 정전기 때문에 몸에 붙으면 떼어낼 방법이 없다. 칼로 잘 잘리지도 않는다. 이와 달리 아이소핑크는 커터칼로도 쉽게 잘리고 바닥에 가라앉아 스티로폼보다 청소하기도 쉽다. 내가 작업 코팅을 위해 사용하는 에폭시(epoxy)도 보통 조소과에서는 돌과 돌을 붙일 때 쓰는 접착제이다. 나는 이 성분이 레진(resin)이기 때문에 코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사용했다. 이후에 많은 조각가가 에폭시로 코팅을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재료는 조각에서 아무도 쓰지 않던 것이다.
정물 조각과 관련해 이야기해보면, 나는 점토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흙은 먼지도 굉장히 많이 날리고 무거워서 관리가 힘들다. 비슷한 것으로 자동차를 모델링할 때 공업디자이너들이 쓰는 유토도 있는데 그 감각이 점토보다 끈적하고 딱딱해서 내가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다. 여하튼 지점토가 점토에 제일 가까운데 그중에는 구체관절인형을 만들 때도 사용되는, 돌가루가 섞여 있어서 플라스틱만큼 튼튼한 라돌(La Doll)을 대량으로 사서 사용했다. <스몰 스컬프쳐 Small Sculpture> 시리즈에는 시바툴(sibatool)을 사용했다. 시바툴은 레진에 주제와 경화제를 섞어 플라스틱을 만드는 점토인데 성형하기가 쉽지 않아 요즘은 스컬피(Sculpey) 더 많이 쓰고 있다.

권오상 도판 <Small sculpture 2019-25>(Jaguar XJR-9 #2 LM24 1988 winner), Acrylic on Resin, 3.8(h)x7.8×14cm, 2019 ⓒ권오상

LEE : 지점토로 정물 조각을 만들었고, 람보르기니도 정물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했다. 사실 <더 플랫>에서부터 <데오도란트 타입 매스패턴스>, <릴리프>, <뉴 스트럭쳐> 모두 정물 조각이라 할 수 있다.

Gwon : 정물인데 사과나 배 같은 열매(자연물)를 만드는 게 아니라 캠벨 수프(Campbell Soup) 같은 생산품, 공산품을 만드는 편이다. 대부분 그것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치이다. 나는 21세기에 작업을 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만나고 나와 함께 하는 사물들을 작품으로 만들게 된다. 나는 내가 만난 골동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의 집에서 촬영한 불상 이미지로 사진조각을 만든다면 그 역시 동시대적이라 생각한다. 불상은 과거의 물건이지만 지금의 시대에 콜렉터의 집에 있는 그 자체도 현재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를 반영해야겠다고 의식하면서 작업하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나의 주변에서 이 시대에 사진 촬영할 수 있는 것들, 검색할 수 있는 것들을 다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LEE : 권오상의 작업에는 작가가 염두에 둔 미술사적인 바탕과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정물 조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보치오니(Umberto Boccioni)의 <공간 속에서의 병의 전개 Development of a Bottle in Space>(1913)이다. 물론 피카소(Pablo Picasso)도 생각난다.

Gwon : 지난번 인터뷰에서 말했듯 정물화는 있는데 왜 정물 조각은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작업으로 이어졌다. 정물 조각이 없으니 내가 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다. 초창기에 인물을 많이 만들었는데 인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진이다 보니 특히 더 ‘내가 모르는 사람인데 이것을 감상하고 소장해야 하는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한 10여 년 동안 인물을 만들다 보니 매번 다른 사람을 모델로 작업해도 계속 똑같은 것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비슷한 크기의 다른 사물을 만들게 된 것도 있다. 정물은 가만히 있어 사진 촬영하기에도 더 수월하다.

LEE : <The Sculpture 8>(2006)의 경우 분위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말하는 대표적인 작품 감상법인 공간에서 덩어리를 느끼듯 감상하게 안 되는 것 같다.

Gwon : <The Sculpture 8>는 당시 작업실에 있는 내 테이블 위의 상황을 재현한 거다. 노트북, 사진조각을 위한 에스키스, 물감, 음료수 등 무언가 많이 섞여 있다. 실제 상황과 다른 점이라면 테이블이 고전적인 조각의 좌대처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The Sculpture 8>은 펜디(FENDI)에서 팔라조백(Palazzo Bucket Bag)을 런칭하는 행사에 설치할 조각을 의뢰해 제작했다. 조금 작은 사이즈인 <The Sculpture 9>(2008)도 내 테이블을 재현한 건데 나이키(Nike)의 요청으로 제작했다.

권오상 도판 <The Sculpture 9> Acrylic on paperclay, 100x190x52cm, 2008 ⓒ권오상

LEE : 앞으로 이와 같은 정물 조각을 더 제작할 계획은 없는가? Gown : 더 하고 싶다. <더 스컬프쳐> 시리즈는 항상 더 제작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점토 같은 걸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만들기도 했고, 입시 미술도 점토를 재료로 준비해서 익숙하다. 또 스스로가 점토 조각에 능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한다.

LEE : 작은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스몰 스컬프쳐> 시리즈는 왜 제작하고 있는가?

Gwon : 르망 24시(The 24 Hours of Le Mans) 레이스에 출전한 자동차들을 만들고 있다. 그 시작은 람보르기니(Lamborghini) 시리즈를 만들기 전에 작은 크기로 연습 삼아 람보르기니와 포르쉐(Porsche)를 만들었던 소형 작업이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The Sculpture 2>(2005)와 같은 큰 조각이 나왔다. 당시 나는 꽤 많은 미니카를 수집했었다. 실제 크기의 18:1 축소비율로 생산된, 약 30cm 크기의 자동차 다이캐스트(Die-Cast)였다. 미니카들을 모아 놓고 작업 준비를 하다 보니 그 만듦새가 아주 정교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그런데 그것들을 바라볼 때의 느낌이나 감상하는 방식이 조각을 감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 시판되었거나 레이싱에 출전했던 자동차들이기 때문에 역사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중에는 조금 더 작은 사이즈의 43:1 축소 모델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여러 이유로 미니카 수집을 중단하고 자동차의 역사를 다루는 책들을 모으다가 흐지부지되었다. 시간이 꽤 지난 2017년 작가들의 취미 활동이 반영된 사물들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전시에 초대받았다. 그동안 수집했던 미니카를 판매하려고 알아보니 가격이 많이 올라 있었고 범접하기 어려운 취미처럼 인식도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실제 미니카 대신 내가 조각으로 만들어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조각으로 만들다 보니 기대 이상으로 내 마음에 들었다. 이후 약 3년 동안 50개를 만들어 『스몰 스컬프처스』 (2019)를 출간했다.
르망 24시 레이스는 100m 달리기를 하듯이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고 끝내는 경주가 아니다. 24시간 동안 드라이버도 2~3명씩 교체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자동차의 내구성과 기술력 등도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참여하는 경주 자동차들의 형태가 조각적이다. 그래서 관심이 갔다. 한편 BMW는 1975년부터 BMW 아트카(BMW Art Cars) 컬렉션을 진행했다. BMW의 레이스카에 미술가들이 페인팅하는 프로젝트로 칼더(Alexander Calder)가 첫 작가로 참여했고 이후 스텔라(Frank Stella), 호크니(David Hockney),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워홀(Andy Warhol), 최근에는 제니 홀저(Jenny Holzer), 제프 쿤스(Jeff Koons),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도 참여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이 참여해서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자동차와 미술을 연결해 생각하는 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올해 코로나19로 작업실의 스태프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스몰 스컬프쳐> 많이 제작하게 되어 현재 100개까지 만들었고 책을 한 번 더 내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스몰 스컬프쳐>의 목표는 손에 쥐고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조각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소장하든가 나와 아주 가깝지 않은 사람에겐 그와 같은 감상의 기회가 없다. 그래서 고화질로 촬영해서 책을 만들게 되었다. 이런 작업은 자연스레 사진과도 이어진다. 작은 사물을 사진 찍으면 마이크로렌즈를 사용한다고 해도 초점을 맞춘 부분을 제외한 부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초점을 이동시키면서 10장 이상 촬영한 뒤 합성해서 작품의 모든 부분의 디테일을 한 장의 사진에서 다 볼 수 있게 작업한 뒤 책에 실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어 눈보다 더 정교하게 포착한 사진이다. 『스몰 스컬프처스』 는 자동차를 보는 나의 첫 번째 감상법이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작품 감상하기와 관련된 시도이기도 하다.

권오상 도판 <Small sculpture 2018-3>(Porche 917/20 Pink Pig #23 1971), Acrylic on Resin, 3.8(h)x8.1×14.4cm, 2018 ⓒ권오상

LEE : 조금 용감한 질문을 해보겠다. 미술사에서 풍경 조각을 본 적은 더 없는 것 같다.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Gwon : 풍경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긴 하지만 아직 계획은 없다. 풍경은 자연과 관련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자연을 조각으로 재현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자연이 위대하고 아름다운데 현대 미술이 무슨 소용인가? 또한 광대한 경관을 바라보며 감탄할 수는 있지만 그 공간감을 표현하고 전달하긴 힘들다. 사진으로도 쉽지 않다. 실재감이나 공간감에서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LEE : <릴리프> 시리즈 중에 어떤 이미지도 없이 나무판 그대로인 상태로 완성한 작품이 있는데 제작 의도가 궁금하다.

Gwon : 작업 중에 그처럼 이미지가 없는 과정은 항상 등장한다. 나무판을 사서 CNC 공장에 보내 원하는 형태로 재단한 뒤 가져오면 작업실에서 표면을 샌딩(sanding)하여 UV 프린트 업체에 보낸다. 프린트가 완료되면 나무판을 다시 작업실로 가져와 바니시(varnish)를 바른 뒤 조립하여 완성한다. 관객은 어떤 이미지도 없는 빈 상태의 나무판을 볼 기회가 없는데 비어있는 상태의 형태만으로도 굉장히 미니멀한 아름다운 요소가 있다. 나뭇결처럼 재료 자체가 드러나는 것도 매력적이다. 구체적인 형상이 없고 복잡하지 않은 어떤 조각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 농담인데 농담 아닌 것 같은 작품이 등장한 거다. 이처럼 비어있는 작품도 계속 만들고 싶다.

LEE : 그러면 추상 조각을 마주하듯이 감상하게 되는 건가?

Gwon : 그렇다. 요즘 들어 내 작업이 목표하는 바가 추상 조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추상 조각을 하고 싶다. <릴리프> 역시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들로 이뤄졌고 내러티브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릴리프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형태들이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사진조각도 조금 더 추상적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피카소와 같은 작가들의 추상 회화나 조각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다.

LEE : 모더니즘 시기의 추상 미술은 미술의 자율성, 독립성을 추구한 결과였다. 조각의 순수한 본질을 추구하다 보면 공간에 놓인 덩어리와 볼륨감만 남게 된다. 이것은 권오상이 그동안 추구해온 조각이기도 하다. 앞선 인터뷰에서 권오상이 모더니스트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데 이전에는 고전적인 조각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추상 조각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조각 그 자체를 탐구하는 작가인 만큼 둘 다를 추구할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조각과 추상 조각은 그 결이 분명 다르다.

Gwon : 앞뒤가 조금 안 맞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다 원하는 것도 맞다. 추상 조각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사진조각도 인물의 얼굴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조각이 아니라 피카소처럼 조금 추상적으로 사진을 붙여나가는 조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초기 작업의 경우 내부 지지체가 없어 얼굴이 조금씩 계속 찌그러지고 있는데 그 자체가 추상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고 있는 것을 똑같이 만드는 구상보다 추상 작업이 힘들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는데 추상적인 작업은 스태프와 함께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추상적인 것에 대한 감이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권오상 도판 <Busts> C-print, Mixed media, 2016~2018 ⓒ권오상

배우 유아인을 모델로 다섯 점의 작품을 연이어 제작한 <Busts>(2016~2018)가 추상화(抽象化)를 시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것은 구상적인 형태에서부터 추상으로 바뀌어 가는 다섯 단계를 보여주는 다섯 개의 조각이다. 마티스(Henri Matisse)의 연작 <쟈네트 I~V(Jeannette I~V)>(1910~1913)를 생각하며 작업했다. 올해 들어서도 그와 같은 시도를 했다.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조각의 형태를 골조로 검색한 사진을 조금 더 자유롭게 붙여서 와상을 두 점 만들었고,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를 검색한 뒤 수집한 얼굴 사진으로 두상을 한 점 만들었다.

LEE : 작품에 작가 주변의 사람이나 물건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관심사도 담긴다. 또한 구체적인 이미지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어떤 내러티브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며 보게 된다.

Gwon : 작가 개인의 삶이나 취향이 반영되는 것은 맞다. 그것 역시 일종의 내러티브이기도 하다. 나의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는 굉장히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인터뷰에서 다룬 내용만 봐도 미술사나 레이싱의 역사 등이 있다. 그러나 내가 주로 설명하는 내용은 이와 같은 시리즈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내러티브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이야기가 전혀 담기지 않는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내러티브가 전혀 없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러티브가 있는 작업이라 불리는 경우는 전통적인 조각처럼 설화나 종교적인 내용이 담기거나 작가가 소설 쓰듯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를 의미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나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이 담겨 있는 작업인데 완전히 동떨어져 보인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LEE : 권오상의 작업에서 내러티브가 찾아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때의 내러티브에 전통적인 조각에서 찾을 수 있는 선형적인 줄거리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주제나 개념, 담론 등이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감상자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형식적인 부분을 제외한 이야기를 붙잡기가 쉽지 않다고 느껴진다.

Gwon : 미니카에는 내러티브가 없다. 이런 사물은 수석(자연)을 감상하듯 감상하게 된다. 이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풍경은 마주할 때는 그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지 의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를 감상하는 것도 그런 것에 가까운 방식이라 생각한다. 마치 도시 풍경을 바라보듯 말이다. 그냥 주황색과 하늘색이 칠해져 있고, 숫자도 적혀 있고, 광고도 붙어 있구나 하면서. 나 역시 그렇게 감상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나의 조각에도 적용된다. 결국 약간의 내러티브가 있는 듯했는데 없어 보이는 작품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Leepoétique / leepoétique6@hanmail.net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리포에틱에 있으며, 지공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이미지 정보에 기재된 저작권자가 보유합니다.
해당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무단 전재 및 복제, 배포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18~2026. 리포에틱(Leepoétique). All rights reserved.

instagra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