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1.

본 글은 2024년 5월 16일 이문정과 ‘나나와 펠릭스’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artist 나나와 펠릭스(Nana & Felix)

LEE : 미술(예술)에 대한 가장 앞선 시기의 기억이나 경험은 무엇이었는가?

FELIX : 미술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예술에 포함된다고 수 있으니, 토베 얀손(Tove Jansson)의 무민(Muumi) 동화책인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Hur Gick Det Sen?)』(1952)를 꼽고 싶다. 아직도 어렸을 때 읽은 책을 갖고 있다. 동화책 자체가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촉각적으로도 여행할 수 있는 구성으로 만들어져 있어 오늘날 북 아트의 관점에서 봐도 흥미로운 책이다.

NANA : 유치원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곤 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 특별하게 각인된 강렬한 기억은 없고 자연스러웠다. 그전에도 여러 미술 작품을 봐왔지만, 내게 큰 영향을 줄 정도로 나를 사로잡았던 경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안도 타다오 건축 그 창조의 과정](1998)을 본 것이다. 이 전시를 보러 20번도 넘게 갔다.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전시 이후 미술에 관한 태도가 확 달라졌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다니다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이후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할 때 예술을 하고 싶었지만, 입시 학원에서 만나는 미술은 내가 보고 알았던 예술과 너무 달랐다. 그리고 나는 데생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입시 준비를 중단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영국에 갔다. 그곳에서 영어를 배우고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미술대학에 입학해 있었다.

LEE : 그러면 두 사람 모두 자연스레 작가로까지 이어진 건가?

NANA : 둘 다 그건 아니다. 나의 경우 최소 두세 번의 고비가 있었다. 나는 영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다 마친 뒤 작가로 활동을 시작할 때쯤 한국에 들어왔다. 런던에 한 갤러리가 내 작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전시 제안을 해왔는데, 그것도 포기할 만큼 지쳐 있었다. 그 외의 여러 변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니 어떤 연고도 없고 어떻게 나를 알리고 활동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노력을 해봤는데 잘 안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작업이 부족했던 것 같다. 여러 다른 일도 하고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가, 이런저런 노력 중 알게 된 기회를 통해 핀란드에서 두 번째 석사 과정을 밟게 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한 번 더 작가로 활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활동하다 펠릭스를 만나 오늘에 이르렀다. 총 세 번의 전환(시도)이 있었다. 미술을 접한 처음부터 ‘나는 작가가 될 거야’라고 결정했던 건 아니고, ‘하고 싶다➜정말 하고 싶다➜이거 아니면 이제 아무것도 없다’로, 점층적으로 마음이 확고해졌다. 펠릭스도 처음에는 유리공예를 하고 싶었는데 여러 과정을 거치다 사진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FELIX :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가장 나다운 방법은 예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운동가가 되어 사회-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내게 맞지 않았다. 사회의 한 일원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 예술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전에는 쉽지 않았던 소통이 예술 활동을 통해 조금씩 가능해짐을 경험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동시대 아파트 속 추상표현주의 동양화_몬드리안 101>, 아카이벌 피그먼트 인화, 표구, 66x39cm, 2016,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LEE :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을 것 같지만 궁금하다. 혼자 작업하는 것도 쉽지 않고 전시를 준비하는 중에 기획자나 다른 협력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늘 둘이 함께 작업을 같이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팀으로 활동하게 된 것인가? 물론 그 과정이나 결과물이 더 흡족하니 ‘나나와 펠릭스’라는 팀으로 활동할 것 같지만 의견을 나누고 합의하는 과정이 한 번 더 있는 거다.

NANA : 둘 다 발전적인 논쟁을 좋아한다. 그리고 토론을 정말 많이 한다. 작업실 밖으로 작품이 나가 선보여 지기 전에, 서로를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있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많고, 서로 양보하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바를 강하게 피력하기도 한다. 물론 서로의 생각에 대한 존중이 있어서인지 늘 돌파구를 찾는다. 때때로 둘 중 한 명이 끝까지 강하게 밀어붙이면 신뢰하고 따라가기도 한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학원(석사) 때 만나서 그때부터 서로의 작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해왔다. 그래서 매우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고 뒤끝도 없다. 우리가 함께 작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초반에 비해 논쟁의 시간도 줄어들었다. 서로 맞아가는 면이 늘어난 것도 있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효율적인 토론법을 터득해서이기도 하다.

LEE : 혹시 서로 닮아가서 문제의식이나 취향이 비슷해지고, 이것이 지속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함께 일하는 시너지 효과가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FELIX :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닥쳐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비슷해도 자신의 주관이 확고한 예술가이니 한 사람처럼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LEE : 때로 나만의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FELIX : ‘나나와 펠릭스’의 작업을 하기에도 너무 바빠 따로 할 시간이 없다. 물론 혼자서 했던 이전의 작업을 조금씩 보고는 있다. 단독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은 둘이 같이한 작업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지 않다. 또 공동의 협업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나의 작업이라 생각한다.

NANA : 같이 작업한 뒤로 각자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은 가져본 적이 없다. 또 전 세계적으로 가족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 사업을 하는 많은 가족이 잘해오고 있다. 우리의 작업도 그와 유사하다고 본다.

LEE : 해외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2015년부터 한국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또 둘의 차이를 느낀다면 무엇이 다른가? 관련해 작업에 변화가 생겼는지도 궁금하다.

NANA : 사실 우리의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2015년 당시 우리의 계획은 핀란드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활동하는 거였다. 국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나 전시에 참여할 때 잠시 들어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한국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우리 작업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계셔서 지금까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핀란드에서도 그랬고, 우리는 우리 주변의 환경을 느끼고 체험하며 그것을 작업으로 연결하는 게 좋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한국에 대한 것들이 작품에 포함된다. 작업 초반에는 한국이면 한국, 핀란드면 핀란드, 그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한국만의 문제라기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FELIX :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환경(의 뒤에 있는 이야기)은 저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결국 인간으로서 만들어내는 풍경, 특히 구조적인 측면이나 미래를 향한 방향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엄밀히 말해 작가로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경험을 개별적으로 담아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노마디즘이란 단어가 붙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다기보다 상당히 조심스럽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유목적인 삶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적도 없다. 완벽하게 노마디즘적인 작업이 가능할까? 뿌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작업하려면 물리적으로든 개념(정신)적으로든 어느 정도 머무르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발견한 액자, 아카이벌 피그먼트 인화, 가변 크기(현재까지 총 400여 점), 2016~2018, 2022~ongoing,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LEE : 나나와 펠릭스의 작업에 대해 말할 때 ‘산책자’란 단어가 등장한다. 산책(걷기)을 하게 되면 내가 속도를 조정하며 직접 이동하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산책을 계획적으로 하는지, 정처 없이 걷는지 궁금하다.

NANA : 우리가 ‘산책자’란 단어를 말한 적은 없다. 그냥 우린 ‘정말 많이 걷는다’라고 말한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5~6시간이 기본이니 여유롭고 유유자적한 산책의 수준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걷는 거다. 우리는 걷기를 탐험이라고 말한다. 나와 펠릭스는 둘 다 굉장한 탐험가이고 서울만 해도 엄청나게 커서 탐험을 계속할 수 있다. 초반에는 그냥 탐험 그 자체였고, 이제는 그 시간에 얻는 물리적이고 비물리적인 것들을 작업에 많이 가져온다.

FELIX : 오늘도 인터뷰가 끝나면 도봉구 쪽으로 탐험하러 갈 계획이다. 그러니 당연히 어느 정도 계획된 거다. 그러나 무엇을 발견하고 수집할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지도를 보진 않고 걷는 방향 정도만 정한다. 골목이 예뻐 보이면 한 동네를 계속 돌 때도 많다. 특정한 지역만 가고, 안 가고 하는 식으로 한정하지도 않았는데 청담동이나 강남 쪽은 걷다가 골목이 항상 끊겨서 8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다. 그러다 보니 흐름 있게 걸을 수가 없어 잘 안 가게 된다. 우리가 찾는 인간적인 무언가를 찾기 힘들다.

LEE : 산책 중에 수집하는 물건이 이동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적은 없었는지, 수집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실 아무리 많이 걸어도 액자 100개 이상을 수집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NANA : 처음부터 액자를 수집하려 하진 않았다. 걷다가 ‘액자 봐봐, 이쁘다.’ 하다가 모으게 된 건데, 사람들이 액자뿐 아니라 물건을 정말 많이 버린다. 종량제 봉투에 안 들어가는 것 중에 스티커도 안 붙이고 그냥 내놓는 경우가 많다. 하도 액자를 발견하다 보니 이제 액자는 쉽게 찾는다. 조금 과장하면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 때 액자는 항상 나온다. 우리는 그냥 수집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왜 액자가 계속 발견될까(버려질까)?’를 궁금해하고 이유를 생각했다.

LEE : 발견하는 물건을 모두 가져오지 않는다. 그래서 수집의 기준이 궁금하다. 그런데 작가가 자신의 의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주워서 작업하는데 나나와 펠릭스만의 독특한 감성이나 감각이 느껴진다는 점이 가장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컨템포러리 수석>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NANA : 전시 [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2021)에 전시된 작품의 경우 80~90%는 내용물이 없는 액자에 사진이 들어가니 무리 없이 우리만의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액자만 해도 기성품이니 기존에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것과 거의 같은 외양을 가진 것은 선택해 가져오지 않는다. 누군가 디자인해 생산하고 소비자가 구매했는데 어느 순간 버려졌고 우리 손에 들어왔다. 많은 경우 싼값에 대량 생산된 것들이 버려지는데, 이런 액자들은 대개, 극단적으로 말하면 저급한 장식들 혹은 천박한 디자인으로 찍어 내진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액자들도 누군가의 손에 닿아 긴 시간이 스며들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쌓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기괴한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데, 액자(사물)들에 존재하는 이런 기괴한 미를 발견하면, 우리가 그걸 닦아서 잘 보이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컨템포러리 수석> 발견한 오브제, 나무 좌대, 개별 크기 참조, 2022~ongoing, 전시 설치 전경, [버릴 것 없는 전시], 전북도립미술관, 완주, 2024,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FELIX : <컨템포러리 수석>의 경우에는 수석이라는 죽어가는(사라져가는) 어르신들만의 취미를 가져온 거다. 동아시아에서는 돌의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돌의 형태에 맞게 받침대도 만든다. 과거에는 자연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돌을 찾았듯 우리도 재개발 지역을 돌아다니며 철거된 주택에서 나온 것들을 가져다 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올려놓는다. 걷다가 무언가를 발견할 때 행복하다. 지금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도 선택되지 않고 흙더미에 있다면 사람들이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그 기준이나 방법을 완벽하게 정리하거나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수석 좌대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어서 보니 그분들도 특별한 제작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깎는 거다. 엄청난 규칙이나 이론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열심히 만든다.

NANA : <컨템포러리 수석>은 우리도 사랑하는 작업이다. 유물의 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시간에서 나오는 것 같고, 또 사랑받는 유물은 예술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다. 나와 펠릭스는 동시대 미술 못지않게 박물관의 유물을 보러 가는데 어떤 스타일의 거치대에 놓여 있는지까지 유심히 관찰한다.

LEE : 그런데 최종 마무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너무 잘 되어 있고 촌스럽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NANA : 손작업과 노동, 시각적인 미감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나 자신이 봐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FELIX : 미술계 일부에서는 미학적이고 조형적인 작품들을 상업적이라 치부하는 경향이 있고, 일부러 시각적으로 미완성처럼 끔찍하게 못 만들어 보이는 것들을 모아 작품으로 제시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하나의 시각적인 감상품이 된다. 그 자체가 미적 양식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개념을 강조하거나 원하는 바가 있다고 해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것에 한계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향수병 Home Sick>, 설치 시 전체 크기 약 260x300cm(총 35점), 29.7x42cm(each), 종이에 잉크, 2021,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LEE : 펠릭스의 경우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한 것이 사회적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관심이 많았는가? 나나와 펠릭스의 작업에는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주제가 직간접적으로 담겨 있다. 특히 재개발이나 부동산 등도 생각하게 된다. <달나라 부동산>(2016)은 매우 직접적이다.

NANA : 우리 둘이 같이 일하게 된 중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게 비슷한 경향이다.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인 가치가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실재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펠릭스는 다큐멘터리식 접근, 특히 건축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좋아해 건축 혹은 공간과 연결되는 사진을 주로 찍었고 나는 사진으로 조각을 만들었다. 이전에 혼자 작업할 때는 추상적인 조형물을 많이 만들었는데, 환영을 만들어내기보다 물질성에 관심이 많아서였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그 어떤 허구도 이보다 재미있을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에서 너무 많이 발견된다. 현실이 상상보다 더 이상할 때가 많다. 그것들을 가져와서 다시 보여주는 게 우리 작업의 핵심이다.

FELIX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냥 작업에 보여주는 건 아니고, 이해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다 나오는 결과물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 중 하나가 투기인데, 사실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삶의 모든 것이 투기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는 인간 본성엔 모순이 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집을 갖기 전에는 집값이 오르면 안 되지만 내가 집을 가지면 올라야 하는 이중성만 봐도 그렇다.

LEE : 많은 예술인이 경험하는 거지만, 작업의 주제나 성격상 나나와 펠릭스는 특히 삶과 작업이 잘 구분되지 않을 것 같다.

NANA : 우리가 정말 판타지 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으니 모든 게 다 작업의 주제와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와 안 할 때를 분리하기 어렵다.

LEE :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없는가?

FELIX : 그래도 일만 하는 건 아니다. 각자 좋아하는 걸 한다. 핀란드에 있을 때 나나는 조용히 가만히 있기를 좋아하고, 나는 야외에 나가서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것을 참 좋아한다. 또 버섯이나 베리(berry)를 채집하고, 수영도 즐긴다. 하지만 한국에선 일상과 작업의 구분이 없다. 그런데 이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예술가로서의 기회가 많다. 핀란드는 5시면 모두 집에 돌아가고, 일을 안 하니 업무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밤 11시에도 연락이 온다. 우리는 작업을 더 많이 선보이고 싶으니 제안이 들어오면 정말 즐겁게 응한다. 계속해야 하고 계속하고 싶다. 만약 지금 우리에게 휴가를 한두 달 준다면 정말 신나 하며 여행을 떠날 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업할 때 행복하고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작업하면서 쉰다. 특히 걸으면서. 또 질문과는 조금 다른 내용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예술가, 작가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바라본다. 핀란드에서는 예술가라고 하면 생계를 위한 진짜 직업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한국에서 더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네포폴리스 Nephopolis> 총 9점, 34.7x29.7cm(each), 잉크에 펜, 2022,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LEE : 작품들에서 우울한 정서가 찾아지기도 한다. <컨템포러리 수석>도 인간의 이중성을 담아내는 매우 처절한 작업, 풍자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은유적이지만 사회의 숨겨진 부분을 드러낸다. 누군가가 작업을 위해 세상을 의도적으로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FELIX : 작업을 위해 일부러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무언가가 부정적 혹은 문제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또한 ‘부정적’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질문을 던지게 되니까. 나아가,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부정적인 인식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Animal Farm)』(1945)을 보면 결국 아무리 좋은 변화도 변질될 수 있다. 따라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일수록 더 비판적이어야 한다.

NANA : 우리는 욕하거나 모욕적인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조금은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도발적 요소를 통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주제 혹은 언어이든 아름다움이 먼저 다가오는 작품을 만들려 한다. 인간이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생산과 파괴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특수한 무언가가 있는데, 그 무언가를 우리는 ‘발전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작업은 우리가 느끼는 이 ‘발전의 미학’이라는 것을 얕은 지식이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총동원하여 만들고 보여주는 과정에 있다. 인간의 본성이 어떤지,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거시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 세상을 지켜보면서, 누군가 혹은 어떤 사회가 그에 대해 답을 안다고 외치면 주목해서 보는 정도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다양한 크기(총 9점), 각각 50x100~145.5cm, 종이에 먹, 족자, 2017,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LEE : 혹시 작업할 때의 생각과 현실을 실제로 살면서 하게 되는 생각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진 않는가?

FELIX :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라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는 작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는 얘기는 아니다(웃음). 우리의 원칙은 우리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작업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작업이 그 정도로 사회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사회적 혹은 문화적 이슈를 작업의 시작 혹은 중심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을 가져오는 핵심인데 그게 사회적인 이슈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뿐이다. 그래서 흐름의 순서가 다르다. 우리 둘 다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을 경험했을 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별의 아픔이 사라질 거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아픔을 잊을 정도로 삶을 재촉해서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계속 일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말이다. 그런 상황이 좋게만 느껴질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작품에 담기다 보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드러나게 된다. 역으로, 작가가 작업에서 추구하는 삶과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 속 삶이 다르면 작가가 다루고 싶은 주제를 깊게 다룰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인종차별을 받지 않은 사람은 인종차별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논리 말이다. 잘 모르는 외부인이 함부로 말하게 되면 오류가 생길 수 있지만, 외부인이 그 이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막아서도 안 된다. 오히려 더 정확히 파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LEE : <폐쇄 회로>(2024)의 경우 전시장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봤는데도 정말 무서웠다. 인간을 옭아매는 미래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FELIX : 이 작품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통로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이게 인간의 문명 같았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짓는 건 좋다. 그런데 울타리를 치고 번호 키가 없으면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고, 연결된 도로도 잘라 자기들만의 섬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에게는 폐쇄 회로와 같았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잘살게 될수록 바깥과는 단절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폐쇄 회로> 동기화된 2채널 동영상, 4분 무한반복, 2024,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LEE : 얼마 전 아파트 단지 내에서 친목 활동을 할 뿐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 만나기 위해서 소개팅도 주선한다는 기사를 봤다. 보통 자신들이 사회의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라 생각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NANA : 나도 그 기사를 봤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진짜 상위층인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특권 의식이다. 개인적 견해지만, 이런 상황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을 텐데 한국에서는 더 응축되어 나타나는 느낌이다.

LEE : 나나와 펠릭스의 작품들은 소멸이 아니라 그 이후를 생각하게 한다. 윤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우울의 정조는 어느 정도 깔려있다. 버려진 물건을 작품으로 만들어서만은 아니다. 아름다운데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도 느껴진다. 특히 <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2016~2018)의 경우 무덤 같기도 하고 슬픔의 분위기가 강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종교적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돌아가신 작가의 아버지를 뜻한다.

NANA : 일단 나와 펠릭스는 모두 무신론자이다. 그리고 액자는 아무리 싼 것이어도 누가 가져다가 집에 걸고 오랜 시간 소유(방치)했다가 버려진다.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액자인데도 그 모든 역사가 보이는 것 같아 매료되었었다.
<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우선 기독교의 신이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교회가 많고 그와 관련된 물건들도 많이 버려져 있다. 나의 이모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교회를 시작하셨고 그래서 엄마의 가족들 거의 모두가 그 교회를 다닌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음은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과학과 술, 여행, 사진을 좋아하셨고 무신론자셨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 종교 문제로 갈등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 뜻대로 기독교 신자가 되겠다고 내게 괜찮겠냐고 물어보셨고,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니 나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빠 장례식날부터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돌아가신 아빠도 하나님께 돌아오셨는데 하면서’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불효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작업의 구조를 잡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사실 윤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에서 말했듯 버려진 물건을 가져다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이니 불교적인 윤회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것에 한정하지 않고 넓은 의미에서 순환과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죽은 생명체를 새와 벌레, 미생물과 균류들이 먹으며 또 다른 생명이 유지되는 것과 비교할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미술(전시)이란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좌대 위에 올려놓고, 그럴싸한 텍스트를 적어 작품이라며 전시하는데 이 역시 일정한 시간 동안만 붙잡고 있다가 떠나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작품은 순환이 맞다.

<꼴리산수자수병풍(렐라 헌정작)>, 공단에 꼰사, 6폭 병풍, 176x245cm, 2023, 도판 제공=나나와 펠릭스

LEE : <향수병 Koti Ikävä>(2018-2020)에서는 서울과 책가도 형상을 연결했고 <꼴리산수자수병풍(렐라 헌정작)>(2023)에서는 자수를 활용했는데 탁월한 선택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와 핀란드의 전통이 더해지는 동시에 현시대를 담아낸다. 수공이 많이 들어가 보이는 점도 작품에 더 관심을 갖게 한다. 또 <덩굴 Vines>(2024)은 한지에 프린트했다. 이런 식의 선택은 분명히 전통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월오봉아파트고속도로도>(2017)도 그렇고, 팔각 모반을 이용한 것도 마찬가지다. <네포폴리스 Nephopolis>(2022)에 조선시대 궁중 회화인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의 오색 금박 구름을 차용한 것도 사전 조사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2022)에서는 족자가 등장하는데, 전통적인 서예나 회화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모두가 상당히 계획적으로 보인다. 나나와 펠릭스에게 국적과 민족성을 초월하기와 그것을 드러내기 사이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NANA : 이렇게 정확하게 질문받은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우리가 처음 한국의 전통적인 무언가를 가져와 작업에 활용하게 된 이유는 반발감 때문이었다. 아파트 이름부터 시작해서 영어면 무조건 좋다는 맹목적인 호감에 대한 반발심이다. 옷이든 가게 이름이든, 상표든 잘 이해하지 못해도 외래어면 그냥 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우리대로 막 가보자’란 마음으로 한국의 전통으로 놀아보기를 시도했다. 나와 펠릭스는 모두 기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잘 모른 채로 만드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반발심이 없었다면 우리가 문외한인 한국 전통 예술을 적용하지 못했을 거다. 우리가 전통을 잘 알지 못함에도 작품에 등장시키면 사람들이 ‘뭐 하는 거야?’라고 하며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까? 불편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까? 궁금했고 일종의 도발을 원했다.

FELIX : 예전에 걷다가 <일월오봉도>를 발견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나중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원본을 발견했다. 그런데 같은 양식의, 유사한 외관의 작품이 하나가 아니었다. 또 작가 미상이었다. 몇백 년 동안 같은 그림을 계속 그려온 거다. 특히 민화는 모든 사람이 다 그릴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민주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있다, 크게 문제 될 것 없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찌 보면 상반되는 이유가 중첩되어 시작된 거다. 물론 모든 작품이 같은 이유와 계기를 가진 것은 아니고, 한국 전통을 가져온 모든 작품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한편 <동시대 아파트 속 추상표현주의 동양화>(2016)는 제목이 암시하듯 조금 비꼬는 의미가 담겼다. 전국에 어디든 표구에 담긴 전통 동양화는 식장이든 장례식장이든 너무나 많이 걸려있지만 아무도 인지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 그런 표구에 걸린 전통 풍경화가 먼지가 쌓여 고여 있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너무 평범하고 익숙해서 인지조차 안 하게 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살짝만 틀면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예술 작품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든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아야 소통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매우 익숙한 족자 같은 것들을 살짝 비틀어 제시하면 효율적으로 바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활용할 때도 있다. 전통 예술에서 다양한 포맷들이 이미 효율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새롭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사람들이 아예 모르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겹게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조금 더 재미있게 제시하는 거라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