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9.

본 글은 2020년 11월 26일(목)에 진행된 이문정과 최우람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작가 최우람(Choe, Uram)

LEE : 이문정, Choe : 최우람

LEE : 그동안 인터뷰에서 언어의 영향력이 강해 한 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기억하기도 어려운 제목을 짓는다고 이야기해왔다. 작품의 의미를 한정 짓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혹시 언어로 작품의 의미를 다 담아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즉 미술가의 입장에서 느끼게 되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의미가 한정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닌가?

Choe : 작품의 제목을 지을 때 언어의 한계를 느낄 만큼 언어에 조예가 깊지 못하고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은 것 같다. 작품 제목을 통해 작품이 더 감각적으로 강렬하게 와닿게 하거나 언어를 이용해 생각을 확장하는 작가들도 많다. 또한 시나 노래 가사는 의미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언어적 생산물이기 때문에 미술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달한다고 해도 언어가 한계를 갖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언어가 열린 감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작품의 의미를 희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저 사운드가 되고 잘 기억나지 않는 제목을 만들게 되었다. 내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세계가 좁혀지는 것을 방지한 거다. 조각으로 미술을 시작했고 지금도 조각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간 안에서 내가 연출한 것들, 내가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최대한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작품의 제목이 항상 그와 같은 특징을 갖는 것도 아니고, 제목을 통해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제목을 짓는 방식을 단정적으로 확언하기는 힘들다. 정해진 공식은 없다. 학술적인 이름을 지은 것은 초기 작품들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이후에는 라틴어를 조합해서 제목을 만들기도 했다.

LEE : 제목을 ‘무제’로 한다거나 숫자로 대체할 생각은 없는가?

Choe : 그런 작품도 있다. <URC-1>(2014)과 <URC-2>(2016)의 경우 어떤 의미가 있는 특별한 제목을 붙이지 않고 별을 발견했다는 콘셉트에 맞게 새로 발견한 별의 이름을 짓는 방식 그대로 ‘URam Catalog’를 줄여서 ‘URC’로 정했다.

<하나(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 metallic material, soft Tyvek, motor, electronic device(custom CPU board, LED), 250(h)×250(w)×180(d)cm, 2020 ⓒ최우람

LEE : 최근에는 상당히 명시적으로 읽힐 수 있는 제목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Choe : 강하게 분위기를 몰아가고 싶을 때 그렇게 짓는다. 최근작인 <하나(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2020)의 제목은 단어 그대로 하나, 단일(체)을 뜻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바라보며 시작한 작품으로 지금, 현재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앞으로나 뒤로나,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위치 모두에서 결국 하나의 덩어리라는 느낌을 담아낸 것이다.
작업을 시작할 때 논리적인 추론을 따를 수도 있고 직관적인 영감을 따를 수도 있는데 나는 후자인 경우가 많고 그런 방식을 더 좋아한다. 나는 어떤 이슈에 집중할 때 일부러 아무 소리나 정보도 없는 깜깜한 공간에 혼자 머무르는 시간을 만든다. 스스로 명상 혹은 백일몽 같은 상태를 느끼는 것을 즐기고 실제로 그때 많은 것들을 본다. 스르르 잠이 들 정도로 이완되는 상황에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보이고 내가 집중하고 있던 것들이 표현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마 내 머릿속에 잔뜩 들어 있던 것들의 집합체일 텐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니 나도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는지 찾아야 할 때가 있다. 논리적인 단계를 거친다면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언어들을 미리 준비할 텐데 그렇지 않아서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LEE : 최우람의 작업 중 일부는 작가가 밝힌 작품 설명에 특히 더 의존해서 감상하게 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앞의 답변과 연결되는 질문이다. 기계생명체의 기원이나 특성 등에 대한 내러티브를 만들면서 말로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는가?

Choe : 정확히 표현하면 나의 언어에 한계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냥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글이 바로 나올 때도 있고 작품에 선행될 때도 있다. <URC-1> 같은 경우 폐차하는 공장을 방문했다가 영감을 받고 이야기도 술술 풀어나갔었다. 때때로 내가 백일몽 속에서 봤던 광경들을 만들고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점점 시간이 지나고 어떤 감각에서부터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메모나 아이디어 스케치를 다시 넘겨보면서 되새김질해보기도 하고 다시 빠져들어 글을 쓰기도 한다.

LEE : 기계생명체의 시작과 특성 등을 설명하는 글을 보면 매우 논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비논리적이다. ‘그렇구나’라고 몰입하여 읽게 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상의 이야기이다. 내러티브와 형상 제작이 같이 진행되는가? 분리되는가? 영감이 떠오를 때는 분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Choe : 같이 진행될 때가 제일 많다. ‘기계생명체’나 ‘신화’ 시리즈의 경우 내러티브가 있어야 현실성이 높아진다. 세상에 없던 어떤 존재를 선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생명체는 이러저러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모르면 관객이 감을 잡기 어렵다. 설명을 듣기 전과 후의 느낌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내러티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 꼭 필요하다.

LEE :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그만큼 많이 보고 읽어야 할 것 같다.

Choe : 요즘은 유튜브를 많이 본다. 접근성과 확장성이 좋아 자꾸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책을 읽을 때 작업의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생각과 상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뇌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각 정보와 달리 문자는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던 관념들에 파장을 만들고 그것들이 뒤섞이도록 한다. 머릿속에서 언어의 여백을 채워가는 순간이 훨씬 강렬하다. 그동안 나의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많은 출발점은 언어였다. 머릿속에 ‘사람이 이런 거구나,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우주는 이렇게 돌아가는구나’와 같은 생각(깨달음)이 떠오를 때 글을 쓰는데, 문장 한 줄이라도 읽었을 때 더 많이 쓰게 된다. 특정한 장르를 정해놓고 읽는 것은 아니다. 만화책도 읽는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약 5개월 전에 읽은 『도덕경 道德經』 (기원전 4세기경)이다.

<Custos Cavum> metallic material, resin, motor, gear, custom CPU board, LED, 220(h)x360(w)x260(d)cm, 2011 ⓒ최우람

LEE : 최우람의 기계생명체들은 정교한 자태를 보여준다. 최고의 기술과 기교, 유려한 움직임의 절정을 보여주는 기계이다. 정말 아름답게 움직인다. 나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의 작품들은 그로부터 초연해진 것 같고, 오히려 그와 같은 능력을 살짝 숨기려는 것 같다. 남다른 이유가 있는가?

Choe : 유려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것은 움직임 자체에서는 기계적인 냄새를 최대한 안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공간과 시간에 살아 있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하는 기계생명체의 서사를 더 강조하기 위해 그 부분에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기계생명체이기 때문에 형상은 누가 봐도 기계 같아야 하고 금속성이 드러나야 했지만 움직임은 유기적 생명체를 따라갔다. 이것이 내 작업을 대표하는 특징이고 장점으로 작용한 것도 맞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부분은 단점이다.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면서, 매우 완벽하게 완결된 것을 관객에게 드러내려는 의지가 강하다 보니 설계하고 테스트하기를 정말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작품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 다양한 실험을 더 하고 싶은데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정밀한 움직임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가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날아가는 시간을 느끼고 있다. 한 5~6년 정도 된 것 같다.
기계 문명의 시작에는 인간 욕망의 확장이 있기 때문에 파고들수록 만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기계생명체 이야기의 바탕에는 인간이 남게 되는 것이다. 또 과거에는 인간을 생각할 때 ‘우주는 무엇인가? 인간 존재는 무언인가?’와 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현자처럼 혹은 영매처럼 느끼고 확 터뜨려서 보여주려 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내려놓게 된 것 같다. 나 자신도 내가 집중하고 있는 인간 중의 하나임을 상정하고 점점 내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최우람이라는 사람도 어떤 시점에 이 세상(지구)에 태어나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생명체이기에 그 안에 모든 시간과 역사와 사건들을 다 흡수했을 것이고 그 흔적이 내 신체에,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작가는 완결된 것, 기승전결이나 정반합을 통해 결론 내린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의 작업도 실험의 과정 중에 있고 미술이란 반드시 마침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 없는 부분이나 허전한 부분을 그런 것들로 채우려 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조금 더 나 자신에 집중하면서 작업하면 나만이 갖고 있는 무언가에 더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계적인 형상과 움직임 그 자체보다 내가 본 것, 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쪽에 집중해보고 싶어 노력 중이다. 그런데 습관이 오랫동안 들어 있어서 막상 설계에 들어가면 또 붙잡고 있게 된다. 여하튼 기계적인 냄새가 덜 날 수도 있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매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멀고, 인생은 짧다.

LEE : 움직이지 않는 최우람의 작품을 상상하기 힘들다.

Choe : <자화상>(2012)처럼 움직이지 않는 작품도 있긴 하다. 내가 이처럼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기계를 좋아했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캔버스가 계속 움직이고 무언가를 행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내가 떠올리는 장면들은 정지해 있지 않고 공연을 하고 있다. 열리고, 변화하고, 몰아치고, 몰려다니고. 나에게 제일 익숙한 재료가 그처럼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의 작품에서 움직임이 사라지려면 엄청난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하나(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에 회화적인 요소가 들어간 것도 하나의 실험으로 볼 수 있다.

LEE : 조각이 움직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

Choe : 나에게 그것은 ‘발레리나는 꼭 움직여야 하는가?’라든지, ‘음악은 꼭 소리가 나야 하는가?’ 또는 ‘철학은 왜 꼭 언어로 적혀야 하는가?’ 등의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예술의 역사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실험들이 있긴 했지만, 결국 창작자의 표현은 축적된 역사를 발판으로 확장되고 변화해간다. 나의 머릿속은 춤추고, 노래하고, 숨 쉬며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 방식이고, 내가 생각하는 생명의 본질이자 모습이다. 움직이지 않음, 다시 말해 변함없이 영원하다는 것은 나에게 결국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조각은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불변의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 갈구의 방편이었기 때문에, 움직이고 변화하는 조각은 그것이 멈추는 순간 죽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거부하고 싶은 반응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예술은 지구상에 존재해 온 인간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마음을 열고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즐겨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Pink Hysteria> metallic material, glass, vinyl, electronic device (CPU board, motor), 271(w)x271(d)x211(h)cm, 2018 ⓒ최우람

LEE : <Pink Hysteria>(2018)의 경우 이전의 작업과 재료, 움직임의 느낌이 다르다.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Choe : 많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Pink Hysteria>는 세상 속의 인간에게 조금 더 집중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2018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화해 모드로 가면서 북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고 관련 다큐멘터리도 방송되었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북한의 중요한 행사 때 진행된 군중 퍼레이드를 보여줬다. 손에 프로파간다 간판을 들거나 분홍색 조화를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열정적이었던 사람들이 퍼레이드가 끝나자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가는 모습을 또 다른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북한의 사람들은 폐쇄적인 체제 안에서 강압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떨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도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서 끌려다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독자적인 선택과 판단으로 나 자신의 삶을 이끌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집단적 사고에 휩쓸려 이리저리 부유하고 있다. 그러한 나의 감상을 담았다.
분홍색 꽃들은 전체가 모터 하나로 작동하기 때문에 군무를 추듯 함께 움직인다. 마치 만원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람들의 모습 같기도 하다. 투명해서 뚫려 있는 것 같지만 분홍 꽃 주변에는 안 보이는 막이 존재한다. 갇혀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유리 벽을 짰다. 꽃들은 움직일 때마다 유리 벽에 계속 부딪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 조명을 굉장히 밝게 해서 유리창에 꽃이 비치기 때문에 결국 꽃은 계속 자신(의 이미지)에게 부딪히게 된다.

LEE : 인간의 욕망에 관한 탐구를 바탕으로 기계 생명체를 만들어왔다. 작가가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 죽음에 대한 공포는 기술을 비롯한 인간 문명 발달의 주된 원동력 중 하나이다. 또한 인간과 기계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과학적 결과물들은 인간이 안정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수명도 연장시켜 주었다. 인공 장기, 냉동인간 등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유치한 질문일 수 있지만,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혹시 기계화된 매우 정교한 인간의 형상, 기계생명체와 같은 기계 인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가?

Choe : 해본 적 있다. 지금보다는 예전에 많이 했었다. 상징적인 인간의 형상이 담긴 작품이 있긴 하다. <Norm>(2017)은 줄자가 인간의 형상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네트워크의 신을 표현한 <Scarecrow>(2012)도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인 형상 이상으로 인간을 닮은 기계를 표현해야 하는 작품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옛날에 생각했던 퍼포먼스가 있기는 한데, 인간을 닮은 기계가 일어서려다가 계속 넘어지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위해서는 정말 인간 수준으로 걷는 기계가 필요한데 작가 개인이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업들도 쉽게 빌려주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었다. 사실 인간과 같은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한다.
인간을 모방한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수많은 기업이 앞다퉈 하고 있고 나는 그런 발전을 보며 감탄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현재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는 어떠한 장벽을 뚫은 것 같다. 그 속도가 상상도 못 했던 수준으로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조만간 거의 인간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는 자신이 상상하는 신의 영역에 다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실현된 모습이다. 그런 존재가 정말 만들어진다면 그것의 존재만으로 우리는 인간이 특별하다고 믿었던 모든 가치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신이 되는 동시에 그저 기계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순간이 될 것이다. 그것은 너무 거대한 전환점일 것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사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기계에게 점점 더 빨리 많이 내어주고 있다. 사실 ‘기계에게’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욕망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이 흥미롭고, 내가 작품을 통해 실험해야 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Scarecrow> electric wire, metallic material, motor, hydraulic cylinder, custom CPU board, metal halide lamp, 370(h)x500(w)x240(d)cm, 2012 ⓒ최우람

LEE : 인간을 위한 도구이자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는 과학 기술은 실제로 인간의 삶에 많은 이점을 가져왔다. 그러나 빛에는 그림자가 항상 따라온다. 과학 기술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Choe : 과학 기술의 폐해라는 표현은 인간의 잘못을 실체 없는 상징물에 떠넘기고 싶어서 하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과학 기술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특성상 언제나 상상하고 꿈을 실현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과학 기술은 끝없이 발전해간다. 결국 그 과학 기술을 획득한 집단이나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빛과 그림자를 결정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역사가 알고 있듯이 누군가는 폭탄 투하를 명령했고 누군가는 버튼을 눌렀다. 과학 기술은 스스로 투하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마저도 기계에 권한과 책임을 전가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미래의 환경을 갉아먹는 일인 것 같다. 옛날엔 조금씩 갉아 먹던 환경과 자원을 이제는 과학 기술을 앞장세워 되돌릴 수 없을 속도로, 대량으로 먹어 치운다. 그런데 그 덕분에 개인의 삶은 풍요롭고, 역사상 어느 때 보다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나는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와 유튜브(YouTube)에서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낀다. 테크놀로지와 자본과 정치는 항상 맞물려있고 기술은 인간 자체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름다운 만큼, 또 추악한 만큼 테크놀로지는 그 모든 것을 그저 확장할 뿐이다. 폐해의 해결은 결국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있다. 당연히 서로의 욕망은 많은 부분 충돌되니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이런 현실이 내가 공존과 균형의 세계를 꿈꾸게 되는 이유이고, 지금까지 내가 해온 작업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LEE :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로 제작한 <URC-1>의 작업 과정 동영상을 보고 많이 놀랐다. 매우 복잡한 기계적 구조를 가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선보인 작품 중 가장 많은 부품으로 구성된 작품은 무엇인가?

Choe : <URC> 시리즈의 경우 그렇게 많은 공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작업을 시작할 때 이번에는 부품을 몇 개 써야겠다, 혹은 많이 써야겠다는 식으로 정하지 않기 때문에 한 작품이 얼마나 많은 부분으로 이뤄지는지 정확히 세보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크면 클수록 많이 들어간다. 올해 대만에서 발표한 <Dragon Boat>(2020)에도 정말 많은 부품이 들어갔다.
질문에서 언급한 <URC-1>을 예로 들면 아이디어 스케치는 정말 단순했다. 원형의 구조물을 그리고 거기에 눈의 형상을 가득 채웠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까?’ 여기에서부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거꾸로 가는 거다. 라이트를 하나하나 만들어 둥글게 뭉쳐 놓기 위해 우선 라이트를 모았다. 당시에 현대자동차에서 헤드라이트를 지원해 주었다. 자동차 약 120여 대의 램프, 개별 램프로는 약 230~240개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자동차의 라이트는 전기가 너무 많이 필요해 전시장에서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합한 LED를 구해 교체했다. 약 10종류의 LED를 테스트해서 밝기를 결정하고 헤드라이트를 분해해 교체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복잡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불을 켜고 끄는 것을 제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개별 램프에 1~2개씩 들어있는 LED를 제어하기 위해 LED 제어 보드를 LED에 연결했다. 하나의 LED 제어 보드가 LED 하나를 켰다 껐다 하기 때문에 LED 수만큼의 LED 제어 보드를 연결해야 했다. 구의 형태라 한 곳에 몰아놓을 수 없어 내부 벽에 펼쳐서 붙였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대단해 보이고 많이 복잡해 보이는데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다 보면 완성되어 있다. 모든 작가가 그렇듯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다. 물론 나 역시 완성된 후에 ‘이게 이렇게까지 복잡한 거였구나’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직관적인 상상들이 최대치로 표현되기 위한 과정이 매우 길고 복잡한 것이고, 그 과정의 흔적들이 결과물에 축적되어 대단해 보이는 것 같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도 벽돌 하나하나가 쌓여 완성되었다. 나의 작업도 그와 같은 과정으로 얻어진다.

<URC-1> Motor Headlights, Steel, COB LED, Aluminium radiator, DMX Controller, PC, 296(h)x312(w)x332(d)cm, 2014 ⓒ최우람

LEE : 계획했던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던 경우는 없는가?

Choe : 나라는 사람 자체가 조금 과한 도전을 즐기는 편이라 항상 무리한 목표를 잡고 진행하지만, 완전히 실현 불가능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잘려 나간다.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빨리 판단하는 편이다.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비용, 시간과 노동력 등을 감안해서 적정선을 조율하려고 노력하지만, 원하는 모습을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는다. 이건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LEE : 모든 작품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최우람의 작품은 완성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있을 것 같다. 미완성을 감출 수도 없다. 작품 제작을 시작할 때 완벽하게 계산하고 철저히 계획대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

Choe : 어려서부터 무언가 만들면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고 정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편이어서 늘 주변 사람들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철저한 계획의 능력은 나에게 없는 것 같다. 전시장에서 완성된 모습을 처음 본 작품도 많았고, 해외 전시를 위해 신작을 준비하다가 비행기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미완성된 작품과 공구를 함께 캐리어에 담아간 적도 있었다. 나는 전기, 전자, 소프트웨어 부분을 담당하는 박태윤 팀장님, 작업실 업무를 총괄하는 노유리 실장님과 파트너로 함께 일하고 있다. 두 분 모두 오랫동안 함께 한 분들이다. 다행히 노유리 실장님이 제작과 전시에 관련된 일정, 설계 기한, 부품 수급, 직원 일정 등과 관련해 철저한 계획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안정적으로 기한을 맞추고 동작 연출에도 더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LEE : 오늘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완성된 작품이 전시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분해되고 재조립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Choe : 분해와 재조립은 나의 업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대한 분해해서 운송할수록 비용이 절감되니 당연한 일이다. 상상의 세계와 물리적 세계의 간극은 언제나 존재한다. <Dragon Boat>는 현지에서 조인 볼트만 1000개 가까이 될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에 대만에 도착한 뒤 2주 격리, 한국에 돌아와서 2주 격리를 해야 했다. 시간이 너무 소요되는 것 같아 작업실에서 작품 조립 동영상을 촬영하고, 완성 후 운송 포장을 위해 분해할 때 파트 별로 어떻게 조립되었는지 번호를 붙이고 기록해 작품만 보냈다. 이후 대만의 설치팀과 화상으로 대화하면서 조립을 진행했다. 난이도가 A부터 F까지 있으면 거의 A 정도 되는 복잡한 작품인데 일주일 동안 설치를 완료했다. 팬데믹 시대에 새로운 설치 가능성을 실험했다고 할 수 있다.

LEE : 기계적인 원리를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 최우람의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본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연구하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Choe : 기계 문명에 대한 철학적 지식과 견해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모를수록 순수하게 받아들여서 좋을 수 있다. 내 작품을 그저 움직이는 조각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내 작업을 일종의 퍼포먼스라 생각한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 궁금증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에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을 것이고, 어느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는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현대 음악과 무용이 결합된 공연을 감상할 때 음악가와 무용가가 어떻게 훈련했는지를 아는 것보다 공연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영감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전에 바닷속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인간이 사는 곳과 고작 10m 떨어진 곳인데 전혀 다른 경이로운 세상이 존재했다.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가 주는 이미지와 역동성 때문에 마치 우주에 온 것 같았다. 말미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도 그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Ouroboros> metallic material, resin, 24K gold leaf, motor, machinery, custom CPU board, 12(h)x130(Ø)cm, 2012 ⓒ최우람

LEE : <Ouroboros>(2012)는 움직임이 주는 효과가 얼마나 강렬한지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우로보로스는 무한한 시간성을 상징한다. 사실 반복적인 움직임을 끝없이 보여주는 최우람의 다른 기계생명체 역시 시간, 나아가 생성과 소멸, 재생과 부활, 순환 등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최우람의 작품 앞에 서면 유한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작가가 시간, 그리고 소멸(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Choe : 얼마 전, 내가 만든 작품 중에 꽃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음에도 꽃처럼 생긴 형상이 제법 많은 이유를 생각해봤다. <Urbanus Female>(2006), <Una Lumino>(2008), <Arbor Vitae>(2011)와 같은 작품은 누가 봐도 꽃의 형상이다. 꽃들이 겹쳐져 있거나 꽃스러운 느낌이 드는 작품도 있다. 그래서 나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꽃 형상의 근원을 고민하다가 꽃이 생과 사의 중간 경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꽃을 무감각하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곧 사그라질 것이지만 씨앗을 퍼트려 다음 세대로 생명을 전달하는 존재인 꽃은 생명체로서 갖고 있는 욕망을 짧은 시간 동안 펼쳐낸 뒤 시든다. 그래서 내게 꽃이라는 이미지가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다음으로 내 작품 속 꽃의 형상이 왜 움직이며 순환의 고리 안에 들어가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내가 만든 꽃은 만개한 채로 영원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항상 피고 지는 과정 중에 있고,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이것을 조화와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요즘엔 마치 영원한 생을 얻은 것처럼 시간을 멈춰놓은 프리저브드 플라워도 있다. 꽃시장에 가보니 진짜 꽃을 파는 가게가 한정된 수량만을 진열해두는 것과 달리 조화를 파는 가게는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보다 풍성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이 전하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환이 그 안에 없으니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은 거다. 시드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생과 사의 순환 과정이 없는 생명체는 무생물과 다르지 않고, 살아 있음만으로는 생명이 아닐 수 있다. 생에는 죽음이 항상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죽어야 하고, 별도 태어났다 사라져야 하는 것 같다. 그와 같은 과정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잠깐 피었다가 곧 질 것임을 알기 때문에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순환에 대한 경외가 반응하는 것이다. 결국 영원과 죽음은 동일 선상에 있는 것 같다. <Una Lumino>처럼 만개했다가 지기를 반복하는, 순환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든 것은 거기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그에 대한 경외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나(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에도 이런 생각이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의 작품들은 모두 움직이기만 하지 않고 죽음을 상징하듯 멈춰 있는 순간들이 있다. 계속 움직이기만 한다면 그 역시 생명과 멀어지는 것 같다.

<Una Lumino> Scientific name : Anmopispl Avearium cirripedia Uram, metallic material, motor, LED, CPU board, polycarbonate, 520(h)x430(w)x430(d)cm, 2008 ⓒ최우람

LEE : 많은 수의 작품에서 종교적인 아우라가 전달된다. 압도적인 시각적 효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다루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우람의 작품들을 보면 공상과학보다는 신화적인 상상력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자신의 작품에서 숭고 혹은 성스러움이 전달되길 바라거나 의도한 적이 있는가?

Choe : 작품을 통해 신과 종교(다신교)를 만들겠다고 시도했던 적도 있다. <Kalpa>(2010)라는 시리즈인데 <SG>(2010)가 주신이었고, <FN>(2010), <CN>(2010)은 여러 다른 신들이었다. 서로 회전을 다르게 하는 존재들이 겹쳐져 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간 신이라고 보면 된다. 우주를 지배하는 신은 결국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시간이라고 가정했다.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 즉 인간의 짧은 수명과 감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이 수백억 년에 걸친 모든 변화를 통해 우주를 상상하고 관찰하는 생명체를 만들어낸 만물의 창조자이자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라 생각했다.
<Kalpa> 시리즈의 모든 작품은 은하계, 성운이라든지 초신성(supernova)처럼 우주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토대로 만들었다. 허블우주망원경(Hubble space telescope)은 우주에 떠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우주의 이미지들을 얻을 수 있다. 우주의 개념에서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가 광년인데 빛이 1년 동안 가야 하는 거리가 1광년이다. 지구에서 태양까지는 빛이 5분 정도 이동하는 거리이다. 5분이어도 그렇게 먼데 그 속도로 100억 년을 가야만 볼 수 있는 빛을 허블우주망원경은 볼 수 있다. 덕분에 인간은 100억 년 전의 별을 보고, 더 나아가 우주가 생성된 초창기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우주가 무(無)였을 때, 그러니까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의 역사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허블우주망원경을 선지자, 허블우주망원경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신의 형상으로 보았다. 그 자체로 끝없는 시간이란 것을 품고 있으니까.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신)을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만든 허블우주망원경이 볼 수 있는 거다.
내가 왜 그와 같은 작업을 했는가를 생각해보니 그 시작은 대학생 때 배낭여행 중에 보았던 종교적인 이미지들이었다.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교회, 회화와 조각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천사들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거기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도 그때 체험한 압도라는 장치가 나의 무의식 속에 계속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너를 포함한다, 너는 내 안에 있다’와 같은 메시지를 풍기는 경외라는 감각이 내 작품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것 같다.
또한 인간을 생각하다 보면 종교를 빼놓을 수가 없다. 여기서 종교란 기독교와 불교 등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돈, 금융, 바이러스, 특정한 기업에 관한 생각과 감각은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내는 특성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물질적으로 실존하지 않는데 실존한다고 믿는 마음과 태도는 거의 비슷한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제일 큰 특성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간 이야기를 하는 나의 작품에 종교, 믿음과 관련된 부분이 담기게 되었고, 관객들이 내 작품이 놓인 공간에 들어설 때 종교적 장소에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드는 것 같다. 이를테면 <Scarecrow>는 그 높이가 교회의 십자가상, 대웅전의 불상 정도이고, 교회의 십자가 뒤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장치들을 직접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SG> metalic material, resin, motor, gear, custom CPU board, LED, 162(h)x181(w)x160(d)cm, 2010 ⓒ최우람

<CN> metalic material, resin, motor, gear, custom CPU board, LED, 23(h)x8(w)x19(d)cm, 2010 ⓒ최우람

LEE :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작품의 경우, 예술이 기술에 함몰될 위험이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최우람의 작업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최우람의 작품은 오히려 조물주와 같은 강력한 예술가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한다. 예전에 예술이 무엇인지 답하기 어려우며 본인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할 때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

Choe : 예술가는 삶과 세계로부터 느끼고 깨달아 자기 안에서 여과시켜 드러내는 존재인 것 같다. 옛날로 치면 제사장, 아니면 영매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제정세와 역사, 현시대에 대한 조사와 통계 같은 것을 문서로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예술가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무엇으로 전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긴 역사가 함축되었으나 여태까지와는 다른 감각으로 무언가가 발현되는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탄복하게 된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느끼고 정의하겠지만 이와 같은 행위를 하는 존재들이 예술가이다. 나는 생물학적인 인간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지려는 특성만 남겨놓은 영매와 같은 존재가 예술가라고 믿고 있다. 예술가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역사를 담아내고 끌어내는 존재이다.

LEE : 최우람의 작품 앞에 서면 ‘당신 눈앞에 놓인 작품을 창조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라고 선언하는 예술가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 말 그대로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와 같은 예술가이다. 그래서인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Choe : 재미있는 표현이다. 어쩌면 대학생 때의 배낭여행이 아직도 내게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르네상스 미술에 압도되고 감명받았었다. 풍요로운 시대에 끝없이 파고들어 만들어낸 결과물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를 좋아한다. 마니아적인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의 삶을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르네상스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LEE : 요즘 들어 예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추가되지는 않았는가?

Choe : 이제 정말 더 모르겠다. 오히려 어렸을 때,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배울 때에는 ‘미술이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다양한 온라인 매체들을 통해서 우리가 전에는 알거나 볼 수 없었던 인간의 놀라운 창의성과 능력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것을 확인할 때마다 미술(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한편 매체적인 부분에서는 VR 등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체험들이 가능해지면서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과 표현의 수단도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향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가 인간의 뇌와 직접 결합되는 단계로 가고 있다. 해상도가 더 좋아지고 성능만 더 발달한다면 인간이 어느 공간에든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순수한 감각이 지배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아직 발현되지 않은 어떤 부분을 자극할 것이고 아직 우리가 모르는 인간의 특성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고 확장성은 무한대로 올라갈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생각하다 보면 ‘작가가 전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작가와 작품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LEE : 최우람의 작업은 조각이지만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이기도 하고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예술이기 때문에 미디어 아트(media art)로 분류될 수도 있다. 다만 매우 물질적인 느낌이 강한 미디어 아트이다.

Choe : 출발 자체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조각으로 미술을 시작해 조각에 빠져 있다가 기계 장치를 통해 조각이 퍼포먼스를 하는 작업에 푹 빠진 경우이다. 무엇보다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조각적인 특성을 계속 갖고 있고 물질적인 특성들이 더 강하게 드러날 것이다. 아직 그 외의 것을 충분히 잘 알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한때 영상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후 영상 작업이 정말 많아지고 다양해지자 흥미가 감소했다. 역으로 물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르네상스 미술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이 아직 내게 남아 있어서 현상이나 풍경보다는 압도적인 현물을 만드는 것에 더 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더 열어봐야 한다. 이제 시작인 것 같다.

LEE : 현재 가장 관심 가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Choe : 외적으로는, 모두 다 그렇겠지만 팬데믹을 맞닥뜨린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자연의 정복자로서 마치 모든 것을 정복한 듯 거만했던 인류가 대화도, 타협도 불가능한 원시 생명체로부터 전면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SF 영화에서 상상했던, 외계인이 침공했을 때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모든 인류가 힘을 합쳐 이겨낸다는 이상적인 생각은 영화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체험하고 있다. 나는 이 엄청난 현상이 우리의 어떤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지를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 비교적 전쟁이 적었던 시기, 질병이 종교와 분리되어 인류가 과학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기여서 더욱 두드러지는 인간의 본질들을 명확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의 인류와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내적인 면에서 나의 관심사는 ‘내가 내 안으로 어떻게 더 들어가 볼 것인가’이다. 동서양의 역사에서 그처럼 거대한 종교적 건물이 세워지고 압도적인 종교적 미술품들이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작업을 할 때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해서 나오는 겉치레들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리고 나를 나 자체로 받아들이고 나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