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0.

본 글은 2023년 11월 19일에 진행된 이문정과 정소영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작가 정소영(Chung, Soyoung)

LEE : 이문정 Chung : 정소영

LEE : 프랑스에서 태어나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현재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선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듣고 싶다. 또한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Chung : 작가 약력에는 주로 출생지, 대학교 이후의 학력이 나오다 보니 내가 계속 프랑스에 머물렀다고 오해받을 때가 있는데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일로 넘어가 5살 때까지만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한국에서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러시아에서 졸업했다. 국가 간 여행이 자유로워졌다고 하더라도 자발적인 국경(경계)의 넘나듦, 자유나 유목민적인 삶은 허상, 판타지인 것 같다. 나 역시 과거에는 탈 영역이 가능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발적이진 않았지만,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들이 내 근간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살면서 더 하게 된다.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 나는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모범생이었다. 개성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내 안에 있는 평범성을 혐오했던 것 같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고, 작가가 되면 특별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기 부정에서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나를 극복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 Pence)』(1919)을 보면서에서 그려지는 예술가상을 보며 환상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다 아버지 일 때문에 가족과 함께 러시아에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에서는 국제고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대학을 프랑스 국립학교로 가면 학비가 없고, 너무 어렸을 때 머물러 기억하지 못했던 프랑스에서의 향수도 찾아보고 싶어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 진학했다. 한국에 머물며 입시처럼 유학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졸업 뒤에도 특별히 마음을 먹었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특정한 목표를 갖고 정착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2007년에 ‘쌈지 스페이스 단기 레지던스 단기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고, 예정된 전시를 하나둘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당시 주변에서 도움이 될 거라고 추천해줘서 지원한 공모에도 모두 되었다. 한국의 미술 현장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신진 작가들에 대한 지원도 풍부했고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LEE : 누군가는 국내 미술 현장이 녹록하지 않다고 한다.

Chung : 물론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 있지 않았으면 이 많은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사회에서 주변인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주변인의 위치에 놓이게 되고,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에 비해 결과는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적인 제약들도 많았고 내가 여기에 머물만한 사람이란 것을 계속 증명해야 했다. 비자나 기본적인 삶에 대한 걱정이 있으면 기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한국 작가로 살면서 만나는 자유와 속박이 있는 것처럼 외국에서의 자유와 속박이 있을 텐데 그중에 나는 한국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전시도 많이 하고 싶었고, 당시 한국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시기적으로 잘 맞았다.

<하우스파티> single channel video, 8분 40초, 2016 ⓒ정소영

LEE : 과거에 비해 그 영향이 줄었다고 해도 성장하고 머무르는 지역과 그곳의 문화적 특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의 역사를 다루는 태도도 한국에서 성장한 작가와는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고 작가도 그 부분을 느낄 것 같다.

Chung : 그렇다. 다만 특정한 주제의 경우 단지 내가 외국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서 나타나는 특징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2016년부터 참여한 ‘리얼 DMZ 프로젝트(REAL DMZ PROJECT)’는 다양한 작가들이 함께였다. 나는 그 안에서 따로 노는 느낌이 있었고 내가 맡은 역할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사성보다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주목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쌓임, 이 세상의 물리적인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조각적으로 실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참여한 큐레이터, 내 또래의 참여작가들과 대화하면서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만났던 한국 근대사를 다룬 작업들은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내가 겪지 않은 것에 대해선 작업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기 때문에 분단은 내가 다룰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건 해외에서 머물렀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 나와 같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가진 거리감이었다. 그래서 내가 찾는 장소성도 이 주제와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해 ‘리얼 DMZ 프로젝트’에서 운영한 ‘양지리 레지던시(Open Call: 2017 Yangji-ri Residency)’에 지원해서 이 지역과 연결된 장소성이 발현될 수 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LEE : ‘네이버 헬로우 아티스트’의 인터뷰 마지막에 조각에 관해 이야기했다.¹⁾본인을 조각가라고 생각하는가? 본인 작업의 바탕을 조각이라 생각하는가?

Chung : 그런 것 같다. 요즘 조각가가 하나의 선언처럼 되는 것 같다. 나도 시대적 기류에 편승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건축가들이 내 작업을 좋아한다. 그들이 보기엔 내 작업이 건축적이다. 공간 구조에 관한 생각, 그 구조로 인해 나타나는 시간성, 시간성을 통한 이벤트와 몸의 이동 등에 관한 질문이 건축과 가깝다. 조각이라고 명명되는 작업은 관념적인 대상과 어떤 행위인 것 같아 나는 건축과 조각 중간쯤 있지 않나 싶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지 않았다. 소조의 기본이 되는 흙 작업도 해본 적이 없고 잘 다루는 조각적 재료도 없다. 만약 작가의 몸과 손, 물질과의 긴밀한 관계만을 조각적인 특성으로 본다면 내 작업은 조각적 특성이 약해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내 작업을 조각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물성과 중력과의 대결을 이용하며 상상력의 여지를 주고 움직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조각의 기본은 움직임의 가능성이다. 어떤 사람은 조각을 무게감이나 덩어리로 생각하는데 그건 단면만을 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조각은 토테미즘에서 나오는 석상에서 출발한, 직립적 형상의 전통에 연결된, 고대 인간과 문명 사이에서 나타나는 양상에 근거한다.

LEE : 조각에서의 움직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Chung : 작품 자체의 운동성인데 물리적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리적 현상은 상대적인 개념 같은데, 예를 들어 우리는 고정되어 있지만 지구는 자전하고 있고 시간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운동성을 갖는다. 모든 물질은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인해 점점 소멸할 수밖에 없는 여러 시간성을 제한적으로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잠깐 멈춰진 상태를 영위한다는 생각이 내 작업의 근간이다. 나에게는 움직임의 한 찰나가 중력과 힘의 균형 안에 있어서 어느 순간 고정되는 것이 조각적 상태이다. 그것은 조각이라 불릴 수도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다. 조각이라는 게 어떤 물질성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의 공간 안에 나타나는 물질적 현상에는 시간성이 들어가고 그것을 인지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모든 물질성은 변화하고 있지만 인간의 감각으로는 멈춰있다고 혹은 하나의 덩어리라고 인식될 수 있다. 덩어리와 무게감도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나에겐 좀 더 유동성이 가능한 것이 조각이다. 그래서 영상도 할 수 있고 다양한 프로젝트도 할 수 있다.

<지평선>, single channel video, 8분 20초, 2016 ⓒ정소영

LEE : <지평선>(2016), <돌>(2016), <하우스파티>(2016)는 한국의 역사와 정치적 특수성을 전제로 하는 작업이다. 레지던시 입주나 특정한 프로젝트의 참여 등이 일부 동력이 되었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작가의 의지나 관심 없이 작업으로 나올 수는 없다.

Chung : 그렇다. ‘리얼 DMZ 프로젝트’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고, 작업을 진행할 때는 외부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누구도 강제로 시키지 않았다. 양지리 레지던시는 원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냥 나 혼자 3개월 동안 머물렀다.

LEE : <지평선>의 경우 작가의 설명대로, 언어 표현 그대로 ‘흔들리는 지평선’을 시각화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재료는 많다. 왜 8m의 철 파이프인가?

Chung : <하우스 파티>에 등장하는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기본 단위가 8m 파이프이다. <지평선>에 나오는 파이프는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뼈대가 되고 <돌>에서는 <하우스 파티>의 조명과 비닐이 재료가 된다. <지평선>, <돌> <하우스 파티>는 무언가를 이동시키는 노동의 과정이 마지막에는 파티로 귀결되는 연작이다. 물론 하나하나의 작업은 독립적이기도 하다.

LEE : <지평선>에서 파이프를 들고 이동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숙련된 퍼포머처럼 안정적이다. 그리고 <돌>에 등장하는 퍼포머는 작가인가?

Chung : <지평선>의 퍼포머는 내가 아는 건축가이다. 분위기가 군인 같기도 하고 정진하는 수행자 같기도 하다. 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좌표가 되는 측정의 행위를 계속하는 퍼포머가 건축가인 것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돌>에는 내가 등장한다.

<돌> single channel video, 8분 37초, 2016 ⓒ정소영

LEE : <돌>을 위해 비닐과 조명으로 빛나는 돌을 만들었다. 왜 진짜 돌이 아닌 빛나는 돌을 만들었는가? 단순히 가벼워 보이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돌이 무거워 보이지 않는데 굉장히 힘들게 끌고 가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Chung : 굉장히 고운 흙이 물이 잠겨 있는 상태의 논이어서 디딘 발을 빼기도 어려웠고 돌을 끌기도 힘들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져가는 것만 상상했고 다른 것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 안에 들어가니 힘들게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돌>은 양지리에 가기 전부터 계획했던 작업이다. 이전의 작업들은 앞서 말했듯 물성과 중력의 싸움으로 인해 어떤 구조가 생기고, 구조 안에 공간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생기는 시간을 담는다. 그런데 우리는 빛과 빛이 없음에 따라 공간에서 시간을 인식한다. 나는 빛이 하나의 물성인지 비물질성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당시의 나는 물성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돌> 이전에 빛을 넣은 덩어리를 만들어 빛의 무게와 물성을 생각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고, <돌>에서는 그것을 끌고 갔다. 약간 인생의 무게 같은 것을 생각했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끌고 다니는 작가의 숙명을 생각해보면 어떤 생명은 있지만 알 수 없는 무게감을 떠올리게 된다.
양지리 레지던시에 지원한 것도 고요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 무겁지만 빛나는 장소의 느낌 때문이었다. 벼가 자라지 않는 논은 삭막해 보이지만 굉장한 가능성을 함유한다. 또한 복잡한 역사성을 가진 장소와 그곳에 거주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끌렸다. 게다가 양지리는 현무암 지대라 개간 사업을 해서 논으로 만든 곳이다. 지뢰밭도 도처에 널려있다. 현무암은 용암에서 온 것이고 그 안에 에너지와 열의 속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나 땅에서 무언가를 캐내서 생활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LEE : <돌>의 경우 화면의 우측 끝에서 퍼포머가 등장하고, 영상이 끝날 때 좌측 끝에 도착한다. 수평적 이동이다.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Chung : 나는 영화적인 서사나 카메라 워킹을 생각하기보다 하나의 프레임 속의 공간을 생각하며 작업했다. 프레임 속 공간에 설치 작업이 이뤄지는 것처럼 생각하다 보니 그와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공간을 횡단하는 이동의 경로를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우스파티>도 설치 조각 안의 영상으로 보고 있고, <지평선>도 풍경 속에 존재하는 지평선/수평선에서 왔다.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기],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 2013 ⓒ정소영

LEE :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기>(2013)에서부터 지질학적 사유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콘크리트, 석고 모래 등의 건축 자재를 이용한’ 인공 지층이 보여주는 도시(인간/문명)의 지질학은 도시의 시간(역사)과 자연의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지층을 조각적인 입체로 만들어 투명한 장(캐비닛) 안에 넣은 것도 그렇고, 지질학이란 주제만 봐도 매력적이다. 또 인공적인 도시의 지층에 담긴 시간은 인간과 문명을 생각하게 한다.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기’는 이러한 내러티브를 모두 담는 제목 같은데 조금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

Chung :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기’라는 제목 자체가 어떤 지지력에 관한 생각이다. 우리는 살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현상에 함몰되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층과 그 층만큼 존재하는 대지의 지대와 시간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다. 우리도 결국 시간 층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제목을 지었다. 나의 시간과 도시의 시간, 그리고 자연의 시간을 분리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그 안에 담겨 있다.
나는 그 중간 지점에서 환경과 환경, 시간과 공간을 설정해주었고 그 안에서 발현되는 우연성을 기대했다. 사실 시멘트와 같은 작품의 재료들은 인공물이다. 그러나 기초 재료는 다 땅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자연이고, 인공(도시)이고, 내가 만든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물론 결국에는 그 안에서 분명한 개별성을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다 다듬어서 만든 눈물 모양의 <Material VI>(2013)이다. <Material> 시리즈는 내 기준에서 굉장히 인공적인 형태를 만든 것이고 그것을 유리장 안에 넣은 행위 자체가 인공적인 시간을 가두는 인공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여행한다는 것은 그 안에 만들어지는, 그 안에 들어가면 영원할 것 같은 또 다른 시간성을 예시한다는 의미이다.

LEE :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층에서 발굴한 조각들을 조각 작품(또 하나의 인공물)으로 가공해 유리 상자에 넣었다는 점에서 예술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예술만큼 시간을 함축하면서 시간을 가로지르는 것이 있을까 싶다.

Chung : 그럴 수 있다. 어떤 특정한 문명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조각적인 물성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스스로 형태를 잡아가는 재료, 즉 의도를 갖고 뭔가를 깎아내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용액을 부어 흘러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층위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LEE : 당시 작가의 작업 방식/태도가 지질학과 닮았다고 설명했는데, 그 이유를 자세히 듣고 싶다.

Chung :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닮았다고 단정적으로 규정하진 않는데, 그때는 워낙 지질학에 관심이 있었고 사람들도 그와 관련해 질문을 많이 해서 더 그런 식으로 말하게 되었다. 나는 지질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관련 책을 읽고 지질학자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수식으로 진행되거나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학문이라기보다 행동파다. 끌과 망치, 샘플을 챙겨서 어디론가 탐사를 간다. 땅속에서 나온 조각들을 통해 전체를 생각하고 그 기원과 시간을 유추해나가는데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닮았다. 우리는 내가 살면서 겪는 단편적인 사실에 근거해 많은 것을 정의하고 유추한다.

LEE : 모든 과학에는 상상력이 영향을 주겠지만 특히 지질학은 논리적인 상상의 여지가 큰 것 같다. 그리고 정소영의 작업에는 우주도 나오는데 막연히 보면 지질학과 천문학도 닮았다. 물리적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영역을 다룬다.

Chung : 지질학자들 스스로도 굉장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상상의 여지가 많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기>도 우주를 말하진 않지만, 우주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미드나잇 존: 이사부>, 11분 41초, 열수암석, 망간단괴 단면, 화산암 단면 암석 스캔, 싱글 채널 비디오, 66x110x11cm, 나무 프레임, 씨알콜렉티브 설치 전경, 2021-2022 ⓒ정소영

LEE : <미드나잇 존: 이사부>(2022)도 심해의 광물인데 달 표면처럼 느껴진다. 땅, 물, 그리고 우주는 다르면서도 닮았다. 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볼 때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막연히 공기가 없고 중력을 벗어난 것 같은 공간이다. 그런데 작가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우연히 발견한 돌 하나에서 지구의 시간을 상상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리학과 지정학으로 연결되었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발견한 돌인지, 그 돌(들)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Chung :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은유적 설명이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작업에 대해 글을 써주신 분의 표현 같다. 그것이 글의 앞뒤 맥락에서 분리된 채 인용되었다. 나는 길을 가다가도 ‘저기 있는 돌(사물)은 어디에서 왔을까?’란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가 인공물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지각 활동이나 화산 활동으로 인해 굳어진 것일 수 있고, 그 기원은 다양하다. 나는 그 유래와 현상을 어떤 연속성 상에서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돌은 꽤 많이 주워서 하나를 지목하긴 어렵다.

LEE : 미술에서 꽤 오래전부터 생태적인 작업과 연구들이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 특히 더 많은 프로젝트와 전시들이 진행되었다. 정소영의 작업은 분명 생태주의를 떠오르게 한다. 동시에 지질학과 해양학은 순수과학인 동시에 자연/자원 개발과 긴밀하고, 지정학은 국제관계학/정치지리학의 한 분야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중심이 되는 대표적인 학문이다. 비인간적인 존재를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도 있지만, 예술 역시 매우 인위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지층으로 치면, 인간이 만든 지층은 자연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얇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은 자연을 타자화했다. 그래서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는 전시 [대지의 시간](2022)에서 발표한 <미드나잇 존>(2021) 연작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우리가 무엇을 수집하고 관찰하는지 대상이 어떤 환경에서 존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놓치고 쉽게 잊고 사는 깊은 장소들, 그리고 그 장소들에 담겨 있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²⁾
고 밝히고 있다. <미드나잇 존>은 말 그대로 생태를 대상으로 한 작업이며, 생태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관계인 만큼 <미드나잇 존> 역시 생태주의적인 작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이란 인상을 받았다. 나아가 정소영의 작업은 전체적으로 인간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Chung : 여러 맥락에서 읽힐수록 좋다. 솔직히 나는 비인간이라는 말 자체의 이분법적인 개념, 그리고 비인간의 시선이라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술 안에서도 비인간의 영역은 없는 것 같다. 당장 시간이란 개념도 인간의 개념이다. 다만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시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작업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 욕망이 좌절되고 거리감이 줄지 않고, 때로는 우회할 때도 있지만 그에 대한 작업을 지속하는 거다. 예를 들어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기>와 같은 작품은 내가 만들지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이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나는 또 바닷속도 어떻게, 어디까지 갈 수 있고 갈 수 없을지, 그것을 대하는 이 마음은 무엇인지를 작업에 담고자 한다. 불가능한 영역을 불가능한 마음으로 표현하는 거다. 그래서 그게 더 인간적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불가능함에도 비인간의 시선으로 보자고 하는 것은 자연을 이용해 무언가 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들자는 태도와는 분명 다르다.

<미드나잇 존: 깊이 ⅠⅡⅢ＆Ⅳ>, 전시 [대지의 시간] 설치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수장고 복도에서 발견한 진열장, 제설용 염화나트륨, 가변 설치, 2021 ⓒ정소영

LEE : <미드나잇 존>과 관련해 “미술관에 존재하는 느린 시간”이란 표현을 썼는데 어떤 의미인가?

Chung : 작업하면서 제일 즐거운 동시에 힘든 시간이 전시 설치할 때이다. 미술관이든 갤러리든 공공의 장소에 전시하고, 관객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보러 온다. 그런데 그 외에도 많은 시간이 있다. 관객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나는 전시 때마다 그 시간을 느낀다. 내 작품의 유리 진열장은 지하 수장고로 가는 복도에 있던 것을 활용했고, 창고 안에 먼지 쌓인 게시판 같은 것들도 사용해서 작업했다. 그래서 당시 인터뷰에서 말한 “느린 시간”은 그런 잊힌 시간을 의미한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시간.

LEE : <미드나잇 존>에서 “발굴 발췌하는 행위를 현상과 실체를 객관화하는 과정으로 보고 진열장은 체계화 박제화”로 이해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 발굴, 발췌를 객관화라기보다 주관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Chung : 내 작업은 역사성과 시간성, 그리고 해양의 지식을 주관화하는 게 맞다. 다만 대중들이 받아들일 때를 생각해보면 객관화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나의 작품이 놓여 있으면, 그보다 앞서 해양 발굴물이 놓이면 관객들은 검증된 하나의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이다.

LEE : 작품을 위한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과정을 설명해주면 좋겠다. 지질학, 지정학, 해양학, 각각의 학문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하는가? 각 분야와 관련된 지식이 필수적이지만 자유로운 작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일정 깊이 이상 다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에 기반한 작업인데 문학적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Chung : 체계적이지 않다. 우연히 눈에 뜨이면 줍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갈 때도 있다. 나는 작업의 주제가 자연과 맞닿아 있어서 놀러 가서도 무언가 얻어올 수 있다. 내 주된 관심과 주제는 일관성이 있게 지속되기 때문에 당시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는 정도이다. 예를 들어 해양 작업은 2018년도에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에 입주하면서 시작되었고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해양보다 다른 작업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었다. 온 앤 오프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양 작업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모든 작업은 진행 중이다. 레퍼런스와 관련해 책보다는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을 선호한다. 글로 된 지식도 중요하고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을 책으로만 읽는 것은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내가 직접 만져보든 뭔가를 해서 나와의 접점이 있어야 주관성이 생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론만으로 작업을 할 수는 없다. 해양 같은 경우는 원하는 대로 물속에 들어갈 수 없다 보니까 해양학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분들에게 돌을 빌려오는 과정들을 거친다. 어떻게든 나의 경험으로 만드는 과정이 있다.

LEE : 그냥 막연한 상상인데 정소영 작가는 언젠가 바닷속도 활보하고 우주로도 나갈 것 같다.

Chung : 실제로 정소영이라면 갔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바닷속은 마음먹으면 들어갔을 수 있다. 그런데 DMZ 프로젝트 때도 생각한 건데 가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그리움이나 경계를 넘지 않아 혹은 넘지 못해 생기는 상상력이 매력적일 때도 있다. 내가 다큐멘터리 감독은 아니기 때문에 나만의 작업 영역을 유지하기 위해 언저리까지만 가거나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다. 탈출구라고 해야 할까? 여지를 남겨 놓는다. 나는 핵심이 있다고 믿으며 핵심에 도달해 그것을 명확히 알아내거나 그 핵심을 전할 마음이 없다. 그보다는 ‘왜 거기에 가고 싶어 할까? 경계는 왜 있는 것일까? 경계 안에 머무르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어떤 한계와 한계로 인한 상상력이 작업의 내용이 된다. 그래서 특정한 장소에 관한 작업 의뢰가 들어와도 그 장소와 관련된 단편적 사실을 다룬 적이 없다. 오히려 생경하게, 거리감이 느껴지게 작업하든가 어떤 구조에 대해 작업한다. 돌을 갖고 있고 돌에 대해 작업하지만 돌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돌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 돌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은 한정적인 영역 안에서도 충분히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 수 있는 상상력 발휘가 가능하다. 특별하지 않은 재료로도 상상력을 증폭할 수 있는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터넷만 연결해도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고 연구자도 많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실을 재현하거나 알리기 위해 미술을 하는 게 아니다.
많은 개념과 서사들이 작품에 담기는 것도 좋겠지만 나에겐 감각의 영역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물리적이거나 아카데믹한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작업이 진행될수록 표준을 벗어나 열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문학도 그런 힘을 가진 것 같다. 실제 작품의 제목 등에서 그런 쪽으로 의도하고 있다.

[해삼, 망간 그리고 귀](2021) 전시 전경, 원앤제이갤러리, 2021 ⓒ정소영

LEE : 전시 [해삼, 망간 그리고 귀](2021)에서 유기체와 비유기체를 비유하기 위해 해삼과 망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심해에 존재하는 유기체와 비유기체는 더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전시를 다룬 기사에서 “인간의 시선 안에 물질을 담는 대신 물질이 담긴 시선 속으로 다가가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에 대한 부연을 부탁한다.

Chung : 이 모든 작업은 망간단괴에서 시작했다. 가파도에서 ‘바다의 시간’에 대한 작업, 해안과 땅,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것이 지정학적으로 해역의 문제가 되는 상황은 무엇인지 조사하며 작업하게 되었다. 수면 아래에 관한 생각은 팬데믹 이후로 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가게 되면서 바다에서도 내가 못 가는 영역을 생각하게 된 거다. 경계들이 지표와 바다 표면뿐 아니라 지하, 해저도 경제권과 관련해 나뉘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 망간단괴라는 해양 광물을 알게 되었다. 망간단괴는 심해에 있는 덩어리로 자라는데 최소 몇천 년 이상 걸린다. 우리와는 다른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자라나는 광물인 거다. 그런데 이 광물은 경제적 가치가 높고 해양 영토 문제와도 연결된다. 태평양에도 망간단괴가 많은데 우리나라가 그것을 채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한국의 해양 영토가 한국 주변에만 있는 게 아니라 태평양에도 있는데 해양자원의 채광 기술을 가진 나라들이 쪼개서 가졌다고 한다. 경계의 영역이 지표면이나 해양 표면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해저 밑에도 있고, 그것이 경제권으로 나뉘어 있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해양 박물관에는 관련 기계들이랑 여러 가지가 다 소개되어 있다. 또 이 광물을 차지하기 위한 여러 내용이 있는데 조금 더 들어가면 식민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나는 그쪽으로 작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하튼 망간은 우리 몸속에도 있고, 과일, 땅에도 있는 미네랄 성분 중 하나이다. 그래서 차원과 경계를 넘나들면서 엮어주는 물질이 있다면 망간일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했고, 망간이 갖는 시간성에 대해 작업하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망간을 보여주고 망간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 망간을 알수록 바닷속에 사는 광물들이 굉장히 생명체 같았다. 또 망간이 자라나는 광물이기 때문에 바닷속에 있는 생명을 이야기하다 해삼이 갖는 영속성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다가가려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전시이다 보니 ‘귀’가 들어오게 되었다.

<ISA(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 브론즈, 페인트, 2021, 원앤제이갤러리 2층 설치 전경 ⓒ정소영

LEE :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선택한 이유에 제주도라는 장소적 특수성이 있었을 것 같다. 여기에서 <어부의 섬>(2018), <여성의 섬>(2018)을 만들었다.

Chung : 내가 1회 입주작가인데 지원해서 가는 곳은 아니다. 초대받아서 작업 계획서를 제출했다. 당시 DMZ 프로젝트를 끝낸 뒤였는데, 앞서 말했듯 그곳에도 제주도처럼 현무암이 있다. 한탄강 주변이 다 현무암인데 북한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가장 남단인 가파도와 가장 북단인 DMZ의 지형학적인 특성을 통해 우리가 뭘 느끼는지가 궁금해졌다. 가파도에서는 돌에 관한 생각보다는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나타나는 이슈나 어부들의 삶을 다루었다. 물은 정말 유동적이고, 인간이 살기 더 어려운 곳이고, 무섭지만 그만큼 상상의 영역이 더 크다. 지질학을 떠올리게 하는 재료는 너무 많다. 그러나 바다는 별로 없다. 물과 육지는 다르고 우리는 육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육지와는 다른 바다의 물성을 조각으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다. 그래서 작업하기가 힘든데, 그만큼 더 재미있다.
<어부의 섬>과 <여성의 섬>은 동시에 생각한 작업이다. 『이어도 깊이 읽기』(2016)를 읽고 해양을 둘러싼 지정학적 관점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이어도는 사실 섬이 아니라 폭풍 때만 윗부분이 조금 보이는 정도의 암초이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경제 배타적 수역 갈등 때문에 한국이 선점하고 해양 기지를 세웠다. 영국의 소코트라(Socotra)호가 좌초되면서 최초로 발견되어 소코트라 록(Socotra Rock)으로 불렸고,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이어도라고 이름 붙였다. 전설 속 이어도가 지금의 이어도라는 근거가 없음에도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이어도의 설화를 보면 제주도에서 여성들이 고생하니까 남자가 없는 여성의 유토피아 섬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어부들이 풍랑 때문에 죽어서 못 돌아오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어부들의 섬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런 서로 다른 지점이 현재의 지정학적 현상과도 닮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작업이 <어부의 섬>과 <여성의 섬>이다. 특히 <어부의 섬>은 형태 자체가 시리즈로 나왔고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여성의 섬>은 조금 더 한정적인 크기로 제작되었다. 여러 해역의 층위와 수위의 차이, 그 안에 표류하는 어떠한 부표에 관한 이야기인데 만약에 다시 제작한다면 한다면 개념이 더 잘 드러나게 재료나 규모에 변화를 줄 것 같다.

<어부의 섬>, 한-중 배타적 수역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부표, 구리, 가변 설치, 2018 ⓒ정소영

LEE :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집’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수집은 시간성을 담아내는 오브제를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혹시 작업에 아직 등장하지 않은 수집품이 있다면?

Chung : 내가 무언가를 수집하게 될 경우, 그 계기는 오직 작업을 위한 것이다. 그냥 내 마음에 들어서 무언가를 가져오고 소유하진 않는다. 조각이라는 영역은 재료를 어디서 구해오는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데 내가 하는 작업과 현실 속 이야기 사이에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집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수집을 시작했다. 지금은 정착한 편에 가깝지만, 한동안 언젠가 떠날 사람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굴레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내 작업만으로도 너무 많다.

LEE : <이미륵의 거울>(2020)은 같은 장소를 바라보는 다른 시간의 두 존재, 그 둘을 연결해주는 물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이다. “시간의 물질화”가 효과적으로 실현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기억을 담는 물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주는 은거울반응용액은 처음에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가?

Chung : 유튜브에 ‘거울 만들기’를 검색하면 나온다. 나의 모든 과학적 지식은 중학교 2학년 수준을 넘지 않는다(웃음).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중학교 2학년까지의 교과 과정이 보통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어려워지면서 더 재미있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미술의 영역을 떠나는 것 같다. 거울을 만드는 사람들은 완벽한 거울을 만들어야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거울을 만들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파악하고 그것을 구해 내가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고 물질의 가능성과 나의 가능성이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이미륵의 거울> 투명한 유리에 은거울용액 반응,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 각 80x120cm, 2021, [해삼, 망간 그리고 귀] 설치 전경 ⓒ정소영

LEE : 지층, 해양 광물, 돌(템즈강, 블라디보스코트 등), 물은 작가의 표현대로 모두 시간성을 함유하는 대상들이다. 시간은 모두를 관통한다. 본인만이 내린 시간에 대한 정의가 있다면?

Chung : 그때마다 좀 다른 것 같다. 지질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시간이 쌓여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시간이 쌓이긴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각과 기억하는 방식은 위아래로 쌓이는 상하 관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원형의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항해자>(2022)의 경우엔 가다가 끊어지고, 겹치고, 가다가 다시 끊어지면서 연결돼 있다. 지금 여기에 현재의 내가 있고, 또 어떤 다른 시간에 내가 있는데 이 둘이 만나려는 시도를 한 번, 두 번 하는 건데 연결되지는 않는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는 시간은 원도 아니고 선형도 아니고 가다 끊기고, 가다 끊기는 형태인 것 같다.

LEE : 죽음에 관한 생각도 하는가?

Chung :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한다. 무섭다. 그런데 작업에는 그런 내용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을 영속시키고 지연시키려는, 아니면 가다가 끊기지만 다시 또 연결해서 가는 식으로.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고자 하는 것, 저 멀리 죽음이 있기는 하지만 천천히 가고자 하는 그런 것 같다. 미술관에 느린 시간이 있다고 표현한 것도 미술관 오픈 시간 외의 시간에 또 다른 속도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물질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더 길다. 앞서 말했듯 모양은 변하더라도 우리가 계속 연결 지점을 찾는다면 망간은 몸에도 있고, 땅에도 있고, 바닷속에 있는데 나는 그걸 다 이어서 생각하면서 그 긴 시간 동안 모든 곳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특정한 종교는 없는데 그런 연결성을 믿는 것 같다.

<항해자>, 알루미늄, 분체 도장, 가변 크기, 씨알콜렉티브 설치 전경, 2022 ⓒ정소영

LEE : 때때로 작업이 전반적으로 거시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구체성보다는 본질적이며 보편적/근원적인 이야기,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의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물론 작가마다 작업 방식은 모두 다르고, 감상자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Chung : 나는 별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작업이 아주 구체적이고 미시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작업을 거시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고 있다. 일단 무엇이든 그 속성을 추려내는 게 추상이라고 생각한다. 거시적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본인의 관심사와 영역의 한계성 때문이다. 작품 감상은 자기 자신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인간 중심, 여기서 인간 중심이란 말은 인간이 먹고 사는 이야기에 한정적으로 집중하다 보니 함께 작동하고 있는 평행하게 공생하는 많은 다른 세계에 대한 인지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내 작업도 추상적이고 거시적이라 느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언어 혹은 내가 관심을 갖고 경험했던 말로 쉽게 치환되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다. 이건 당연히 우리가 갖는 한계이다. 보는 사람도 이런 걸 많이 경험하고 관심이 있으면 알 수 있다. 몸속에 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대단한 것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해가 뜨고, 지고, 그림자가 생기고, 밀물과 썰물이 밀려오고 나가는 경험, 비행기를 탔을 때의 아득한 느낌, 가까이 있던 것을 멀리서 봤을 때의 느낌을 말한다. 일상에서 종종 느끼는 나와 세상과의 속도가 어긋나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을 여러 차원에서 느껴본 경험들이 분명히 있다. 이러한 것들이 내 작업의 시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