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4.

본 글은 2020년 11월 20일(금)에 진행된 이문정과 이계영 큐레이터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큐레이터 이계영 (Lee, Gyeyoung)

LEE : 이문정, LGY : 이계영

LEE : 그동안의 활동 궤적을 봤을 때 사진 전문 큐레이터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사진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큐레이터 이계영이 생각하는 사진의 매력과 차별성 등을 듣고 싶다.

LGY :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사는 사람은 아니라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우연에 가깝다.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의 스틸컷은 사진 이미지이다. 이미지의 유사성 때문에 사진을 더 편하고 친숙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보통 사진은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성을 띤다고 생각하지만 프레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선택과 편집이라는 작가의 의도나 주관을 보여줄 수 있다. 관객은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것만을 볼 수 있고 프레임 밖의 상황은 알 수 없다. 사진은 객관의 외피를 갖고 있지만 작가가 프레임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꾹꾹 눌러서 은근하게 보여주는 것이 매력적이다.

LEE : 사진을 다루는 전시를 기획할 때 조금 더 신경 쓴다거나 하는 점이 있는가?

LGY : 사진 전시라고 해서 전시를 기획하는 나의 태도나 방법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진을 좋아하고 다른 매체나 장르에 비해 조금 더 전문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사진만을 다루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무엇’보다 ‘어떻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 또 나는 전시 기획자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창조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전달하고 매개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특정한 주제나 소재, 매체에만 제한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저 사진으로 논문을 썼고 대림미술관이 사진 전문 미술관이던 시기에 그리고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보니 사진적인 표현이나 문법이 낯설지 않은 것이고 이것이 나의 강점이라 생각하는 정도이다.

[프레임 이후 프레임](2018) 전시 준비 모습. 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에서 사진평론가 김승곤 소장 아카이브를 김수정 코디네이터와 분류했다. 이계영 촬영.

LEE : 안정성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따른다고 했는데 혹시 독립 큐레이터로서의 활동을 고려해 본 적은 없는가?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으나 그만큼 본인이 원하는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기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로서의 활동을 지속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LGY : 독립 큐레이터로서의 활동을 일부러 피하거나 하진 않았다. 미술관에서 인턴을 한 뒤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 곳이 대림미술관이어서 그 다음의 선택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다. 서울디자인재단과 가인갤러리 등에서 일하기도 했으니 내가 꼭 미술관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아마 내가 지향하고 선택해 온 전시 기획, 연관된 미술 교육과 행사 등이 미술관에 더 맞았던 것 같다. 독립 큐레이터로서의 활동은 운영과 경영 등을 모두 직접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다. 단순히 여건이 힘들다거나 재정적인 면을 말하는 게 아니라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력과 나이가 많아진 지금은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LEE :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큐레이터에게 협업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작가를 비롯해 정말 많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체를 종합적으로 굴러가게 하면서 결과물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협업이라는 측면에서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LGY : 예술 창작과 관련된 일들이 다분히 개인적인 인식 과정과 경험을 수반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전시를 만드는 일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특히 미술관의 전시는 더 그렇다. 시각예술은 눈에 민감한 작업이다 보니 전시라는 가시적인 결과물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관여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 모두가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장 한 명의 힘만으로 배를 운행할 수 없다. 조타수를 비롯해 선원들이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전시의 완성도나 관람객 수와 같은 가시적인 결과와는 별개로 나와 협업하는 사람들이 진행 과정에서느끼는 만족도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내 경우 다른 큐레이터에 비해 팀플레이, 협업과 연대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나는 전시에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성취감을 느끼길 원한다.

LEE : 큐레이터로서 활동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지향 등이 있다면 조금 더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LGY :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앞선 답변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고, 전시 주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예술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과 사회에 뿌리를 둔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나는 기획자인 동시에 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일부이다. 따라서 그에 따른 역할과 책임감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시 자체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전시 혹은 미술이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총체적인 경험으로서의 전시를 중요하게 여기며, 전시기획자를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편이다.

LEE : [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2019)은 근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우르는 전시였다. 모든 미술 작품, 전시는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상황과 긴밀하지만 이처럼 역사(적 사건)가 전면에 드러나는 전시의 경우 기획 과정에서 남다르게 요구되는 항목들이 있을 것 같다.

LGY :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아주 긴 시간 동안 고민하거나 계획한 전시는 아니었다. 회의 중 즉흥적으로 떠오른 주제였다. 그런 만큼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들, 전시를 준비할 당시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더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전시의 키워드이었던 ‘기록, 기억, 기념’은 내가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사진, 아카이브 작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그동안 축적된 나의 지식과 경험을 종합할 수 있었다. 주제를 놓고 보더라도 역사를 다루는 전시인 만큼 ‘기록과 기억’은 쉽게 정할 수 있었고, 여기에 기념을 넣으니 안정적으로 균형이 잡힌 삼각형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나는 미술관에서 역사적 사건에 관한 기념 전시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선동적이어서는 안 되며 스테레오 타입화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국수주의적으로 보이거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장치를 만드는 전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전시를 진행했다. 특히 [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에서는 과거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로 끌어들이려 했다. 역사적 사건이 그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이 전시는 그저 3.1운동의 ‘순간’만을 다루지 않는다. 이 시기를 살아 온 ‘사람’에 대한 전시이다. 마지막 황실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그 시기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어르신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도 있었다.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러시아나 중국에 살게 된 사람들, 그 시기를 온전히 견뎌온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현재로 이어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기쁘게도 전시에 대한 평가가 좋았고 인도 순회전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지켜봐 왔던 것들을 편안하게 풀어낸 전시가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큐레이터로서의 활동과 노력이 효과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고무적이었고 나의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기억에 남는 전시이다.

<1919년 날씨 맑음>(2019) 전시 전경, 장용근 촬영, 대구미술관 제공

LEE : [서울사진축제 특별전 북촌, 북촌 사람들](2013),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2018)은 일정 부분에서 자료 수집 및 정리 작업이 필수적인 전시였다. 개인적인 견해로 이와 같은 전시에서 기획자가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다. 그 조율은 어떻게 해나가는가? 또한 개인전이든, 그룹전이든 참여한 작가들의 정체성과 기획자의 정체성이 공존해야 할 텐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LGY : 나는 오히려 아카이브와 관련된 전시에 기획자가 더 많이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자료도 기획자의 읽어 내는 방식에 따라 충분히 달라 보일 수 있다. 목적과 내용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자료가 다른 맥락으로 읽힐 수 있을 때 기획자의 기획력이 더 발휘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개인적인 취향과도 잘 맞는다. 나는 흥이 많고 감성적인 사람이지만 전시와 관련해서는 감정을 건드리거나 과장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건조한 자료가 가깝게 다가오는 게 있었다.

LEE : 전시를 기획할 때 각각의 전시에 대한 의미 부여, 설득력 있는 당위성을 담아내는 작업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 경우 지나치게 자의적인 의미 부여가 나오지 않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LGY : 나는 자료와 내러티브, 개념이 차분하고 촘촘하게 채워져 있는 전시를 좋아하고, 그러한 전시를 선보이려 노력한다. 그러한 취향이 전시에 차별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촘촘하다는 표현은 내가 내 전시를 말할 때 쓰는 단어로 감성이나 직관보다는 내재적인 논리를 중요시하는 전시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역사나 사회적인 이슈에서 영감을 얻고 주제를 찾는데, 전시의 주제 자체가 하나의 당위성이 되기도 한다.

LEE : 전시 기획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찾고,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시의 개념이나 주제를 어떻게 찾고,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LGY : 나는 시의성을 띤 사회적 이슈나 역사적인 사건 등을 미술 안팎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편이다.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생각을 확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지치기를 해가면서 정리하기도 한다. 전시 개념을 잡기 위해 자료 조사나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떨 때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전시뿐 아니라 공연이나 영화, 문화, 역사와 사회 등 다양한 영역을 예민하게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도 전시 주제가 하루 이틀 고민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보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쌓이면 내가 필요로 할 때 어떤 형태로든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신·길>(2015) 포스터, 에이지아이 소사이어티(AGI Society) 디자인,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LEE : 미술 외에 무용이나 영화와 같은 문화예술 장르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다원적이고 융복합적인 문화예술 행사나 전시를 기획할 계획은 없는가?

LGY : 여태까지는 영화 관련 행사에서 전시를 기획하거나 전시에 무용이나 영화와 관련된 작품을 넣는다거나 하는 식의 소극적인 방식으로 실현해 왔다. 그런데 이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싶다. 그런 기회를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LEE : 미술관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것은 관객 혹은 대중들에게 미술을 효과적으로 경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큐레이터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는 전문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야 한다. 실험성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한다는 것은 상반되는 목표를 동시에 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궁금하다.

LGY : 나는 큐레이터가 가진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시를 만드는 것은 누군가가 본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 낸 전시가 어떻게 읽히고 해석되는가는 중요한 문제이고, 전시를 기획할 때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미술을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통로인 교육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공공미술, 미술관 교육, 영화 관련 기획 등에 꾸준히 관여하거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러한 생각과 관련이 있다.
내 경우에는 전시를 어렵다고 느끼는 관객들을 위해서는 교육팀과의 협업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점을 추가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는 과정 자체를 흥미로워 하는 편이다. 도전할 무언가가 생겼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LEE : 전시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공간 구성이다. 여러 점의 작품을 개념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어울리게 설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또한 미술관의 경우 전시디자이너가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경우 업무의 진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LGY : 기가 막힌 노하우라고 할 만한 건 없다. 나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큐레이터가 작품(미술)을 통해 스토리텔링하는 영역의 전문가라면 디자이너는 공간에 구현할 것을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공간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전시라면 디자이너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조율하는 편이다. 기획자라는 이유로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진 않는다. 공간디자이너가 따로 없는 경우에는 공간 구성도 내가 하게 되는데, 이 경우 최대한 시각적으로 상상하고 전시의 흐름을 살리면서 관객의 동선을 편안하게 이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전시 때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대응 방법도 매번 바뀌는 것 같다. 전시 현장의 구조, 공간감, 조도 등에 따라 유동적으로 진행하지만 상상한 것과 실제 구현된 것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줄이려고 애쓰는 편이다.

LEE : 큐레이터로서 현재 한국 미술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가?

LGY : 한국 미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겠지만 ‘코로나19로 촉발된 성찰과 통찰이 전시에 어떻게 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궁금해하고 있다. 전시의 형식에 있어서는, 대면 활동이 자제되다 보니 온라인 전시(관람)가 만들어지지만 대부분 전시장을 그대로 촬영해 보여주는 일차적인 방식에 머무르고 있다. 바이러스의 출현 주기가 더 짧아질 것이란 예측도 있는데, 그렇게 될 경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고 전시가 온라인에서만 열릴 수도 있다. 당연히 ‘온라인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던 사람으로서 미술관 구조와 작동 방식을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한국의 행위 미술을 다루는 전시를 준비 중이라는데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하는 중이다.

LEE : 큐레이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LGY : 나에게는 예술 자체보다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 이는 큐레이터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 삶의 태도이다. 자기만의 독립된 세계를 유지하고 미학적인 영역에 집중하는 예술도 필요하지만, 나는 예술이 삶에 기반한다고 생각하기에 현실을 보여주고 현실과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미술이 왜 꼭 현실을 반영해야 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는데 나는 현실과 연결되는 것이 미술의 중요한 책임과 역할이라 생각한다.
미술 전시에 디자인이 들어갔을 때 어색해 보인다는 나의 이야기에 존경하는 선배님이 ‘미술은 질문을 던지고, 디자인은 해법을 제시한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미술관과 디자인재단 모두에서 일을 했던 내가 볼 때 정말 맞는 이야기이다. 나는 내가 기획하는 전시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하게끔 유도하길 원한다. 그것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예술 자체에 집중하는 전시는 기획하지 않겠다거나 그와 같은 작품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큐레이터로서 사회를 담아내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기획과 관련해서 이야기하면, 서울디자인재단에 들어가고 보니 내가 직접 전시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사업을 발주하고 외부 인력이 기획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판을 깔아주고 플랫폼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직접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다시 미술관에 돌아와 보니 전시를 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확장된 시각에서의 기획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기획을 조금 더 큰 의미에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