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8. 17.
본 글은 이문정과 송원영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대화 일시: 2018년 7월 25일)
송원영 감독/작가, 이미지 제공=성북구립미술관
LEE : 미술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장르 중에 영상을 중심에 놓고 활동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Song :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전공을 미술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1993)을 보고 실재하는 오브제가 아닌 이미지만으로 관객에게 감동과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것이 영상에 집중하게 된 가장 큰 계기이다.
LEE :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에 음악과 이미지(영상)가 어느 정도 관련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철저하게 음악에 근거해 내러티브 혹은 이미지를 구성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가사와 멜로디 어느 쪽에 더 영감을 받는 편인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장소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지도 궁금하다.
Song : 회사를 운영해온 10년을 기준으로 전반기에는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감각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분명 경험도 부족했고 어설펐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곡을 많이 듣고 자료도 엄청 찾아보았다. 후기에 해당하는 현재는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다. 자료도 많이 찾지 않는다. 자료라고 보는 것은 사진작가들의 작품 이미지뿐이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음악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 나만의 기준으로 의미를 한정짓게 되었다. 고정관념이 생긴 거다. 그래서 지금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음악도 많이 안 듣고 가수(뮤지션)에 대해 조사하지도 않는다. 이전의 뮤직비디오도 거의 안 찾아본다. 사전 지식 없이 음악이 주는 인상과 느낌에 집중해 작업해야 새로운 작업이 나올 수 있다. 또한 뮤직비디오는 편집(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곡을 정말 많이 듣는다. 처음에는 직감적으로 느낌에 집중해 작업을 하지만 편집 단계에서는 몇 백번 이상 들으면서 이성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감독마다 작업 방식에 차이가 있을 텐데 나는 상당히 즉흥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또한 나에게 자유가 완벽히 주어질 경우, 의미나 메시지보다는 이미지 중심의 작업을 한다. 이렇게 답변하면 어떤 사람은 허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작업하는 것이 무의미가 목적이란 뜻은 아니다. 의미란 만드는 사람이 완성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감상자가 만드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의미의 정답 같은 것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한정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열어두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마치 미완성처럼 보이거나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는 것이 더 좋다.
LEE : 만약 본인의 뮤직비디오가 음악 없이 상영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본인의 뮤직비디오가 영상만으로도 독립적인 작품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음악이 없다면 무의미한 영상이라 생각하는가?
Song : 음악이 없으면 반쪽이 된다. 나는 뮤직비디오가 철저히 기능적인 작업이라 생각한다. 음악은 뮤직비디오 없이도 음악이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는 음악이 없으면 굳이 ‘뮤직비디오’일 필요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정체성 자체가 음악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나 비디오 아트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일정 부분 독립성을 추구하는 뮤직비디오 감독도 있다. 그러나 나는 특정한(주어진) 음악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뮤직비디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똑같이 상업적인 테두리 안에 존재하고 제작비를 받는 것은 비슷하지만 영화에서는 흥행, 광고에서는 제품의 판매처럼 뮤직비디오는 음악의 홍보라는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 중심에 음악이 놓이는 것이다. 나는 뮤직비디오가 기능성이 높은 영역이라 생각한다. 특히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반드시 음악이 있어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콘텐츠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
LEE : 그러나
Song :
LEE :
Song : 나에게는 의미 있는 칭찬이다. 사실 두 작품 모두 난해하다고 비판을 받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평가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행위는 매우 주관적이고 특수한 것이다. 대중적인 작업이라 해도 개개인이 생각하는 대중성의 범위가 매우 다르다.
LEE : 종교적 이미지도 등장한다. <바람 기억>의 뮤직비디오에도 기독교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Song : 지금 이 자리에서 깊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신앙적인 부분들도 작품에 넣었다. 그러나 누가 물어보기 전에는 굳이 먼저 말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대로 경험했으면 좋겠다. <바람 기억>이 수록된 ‘나얼 솔로 1집’ 자체가 성경적 내용을 담고 있다. 나 역시 작품을 통해 신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LEE : 개별 작품과 관련된 질문을 조금 해보겠다. <잘 지내>(2009)에 등장하는 말 타는 여성은 어떤 의미인가?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Song : 한 번에 완성된 작품이다. 고속 촬영한 것인데 촬영할 때 고생했다. 곡을 듣는 데 말을 타고 달리는 여성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로 보이든 간에 상관없이 마지막에 여성이 날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그런 홀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제작비와 시간, 기술적 한계로 더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꽤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LEE :
Song :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을 4분 30초 동안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화면이 느리게 흘러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유독 시간이 정지했거나 느리게 흐른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LEE : <미안해>(2012)의 경우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읽어내는 게 어려웠다. 불친절하고 단절적이라 느꼈다. 필자에게는
Song :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우선 하나하나의 컷(cut)이 불협화음을 일으킬 정도로 최대한 분리되길 원했다. 현재인지 회상 속 과거인지 명확히 분리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은 것은 연출력의 한계다. 당시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과거와 현실의 간극이 좁아지면서 현실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한 것과는 별개로 하나하나의 작품에서 나의 부족함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해결할 수 있다. 그냥 모호하게 ‘아쉬웠다’ 정도로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아주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나는 나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늘 불만족스럽다. 그래서 나의 작품에 대한 비판에 수긍하고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에 공감한다.
LEE : 송원영의 뮤직비디오를 설명할 때 초현실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일부 작업에는 해당하지만 일부 작업은 매우 현실적이다. 보통 초현실적이라면 은유성이 강한 경우가 많은데 어떤 작품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직설적이었다. <찢긴 가슴>(2012)의 경우가 그렇다.
Song : 나는 나의 작업이 완벽한 초현실은 아니라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은 현실인데 딱 하나의 포인트만 초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내가 생각하는 초현실은 팀 버튼(Tim Burton)의 영화 정도의 상황, 혹은 100% 환상으로 가득 찬 것이다.
LEE : <잊어요>(2012)는 다른 뮤직비디오에 비해 느슨해 보일 정도로 유독 편안한 분위기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가?
Song :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가수가 직접 연기한 뮤직비디오다. 내가 계속 시도하는 것 중 하나가 가수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것이다. 배우가 아닌 가수가 연기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야 한다. 연기가 조금 어색해 보이는 상황까지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물론 나도 이런 시도를 할 때 걱정된다. 뮤직비디오 감독은 일정 부분에서 해당 노래와 가수의 마케팅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조금은 느슨하고 어색한 순간이 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완벽하진 않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밭에서 남성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낸 여성이 사라지는 설정도 마음에 든다. 이별은 그런 거다.
나얼(Naul), <기억의 빈자리>, 2017, 뮤직비디오 스틸, 이미지 제공=송원영
LEE : 뮤직비디오에서 내러티브란 가사나 곡의 분위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데 의미보다 이미지에 중점을 두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또 즉흥적으로 작업한다고도 했다. 아무리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의미를 만드는 것이라 해도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고, 뮤직비디오의 등장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미를 유추하게 된다. 또한 대중가요의 뮤직비디오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사랑의 과정 중에 있는 젊은 남녀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진부함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작업의 경우 필수적인 요소다.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도 아니다. 진부함이란 편안하고 익숙한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 자체가 그렇게 새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작업을 할 때 익숙함의 표현을 즐기는가? 아니면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가?
Song :
LEE : 기능적인 작업임에도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송원영만의 특별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풍부한 감정, 특히 광고의 경우에는 가족애인 것 같다. 송원영의 광고를 보고 나면 뭉클해진다. 그런데 21세기에 그러한 감성에 집중한다는 점이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과잉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Song : 나의 작업이 갖는 대표적 특징은 경험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감을 얻어내야 할 때에는 나의 경험을 완벽히 살려낸다. 박카스 광고인 <불효자로 산다는 것>(2013)은 나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것이다. ‘왜 눈물이 나는 광고를 만들 수 없을까? 예쁘고, 아름답고, 멋있고, 재미있는 광고는 다 있는데 왜 짠하고 뭉클한 광고는 없나?’라는 생각에서 박카스 광고를 만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담은 만큼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 광고에 몰입하고 공감했다. 멜론(Melon) 광고 <우리 지난날의 온도>(2017)도 내가 대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LEE : <우리 지난날의 온도>는 일방적인 헤어짐을 다루고 있다.
Song : 모든 이별은 일방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겁하고 어설프게 이별을 통보한다. 이별을 통보받는 사람은 항상 급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 놓인다. 그게 없으면 이별이 아니다. 헤어지는 연인 사이에 균형이 맞을 수는 없다. 나는 준비가 안 되었는데 상대가 일방적으로 나를 떠나는 게 이별이다. 그래야 괴롭다. 그렇지 않다면 이별이 힘들고 슬플 이유가 없다. 나는 찌질하고 솔직한 사람이 광고를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렇다고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터를 아름답게 그릴 수 없듯이 감정이 박살나고 뒤죽박죽되는 이별을 아름답게만 그릴 수는 없다. 나는 이별의 상황을 미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매너리즘에 빠진 커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어리석고 어설픈 이별이다.
LEE : 이야기를 듣다 보니 광고에 대해서는 뮤직비디오와 매우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
Song : 다르다. 나에겐 세련되고 완벽해 보이는 광고보다 사람들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광고가 우선이다. 그러려면 광고가 광고 같지 않아야 한다. 좋은 광고는 상품의 이미지가 사라져도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순적이지만 광고에서 상품이 사라지면 오히려 상업적인 거부감이 줄어든다. 그러려면 나의 의도와 주관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LEE : 여태까지 알려진 송원영의 광고는 대부분은 가족 간의 사랑에 집중되어 있다.
Song : 제일 좋아하는 게 감동이지만 동시에 제일 싫어하는 게 억지 감동이다. 그만큼 보기 힘든 것도 없다. 나의 작품에서도 그런 것이 나타나기 시작할까봐 주의하고 있다. 억지 감동을 피하려면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내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이야기가 전부다.
LEE : 뮤직비디오와 광고 대부분에서 사람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인가?
Song : 클로즈업을 좋아한다. 나의 피사체는 대부분 사람이다. 마치 음식을 입 안 가득 넣듯이 사람의 감정을 가득 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등장하는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의 감정적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송원영, <8-507>, 3분 38초, 싱글채널 비디오(스틸), 2016, 이미지 제공=송원영
LEE : 대부분의 작업이 감성적이다. 앤티크(antique)한 정취가 흐르기도 한다. 그런데 본인의 작품은 직접적인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다. 촬영된 영상이다. 원하는 만큼 표현이 안 될 수도 있고 역으로 과장될 수도 있다. 영상 이미지로 감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계를 느끼지는 않는가?
Song : 초창기에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기계의 눈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노을 지는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과 카메라로 찍어서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그러나 이제는 꽤 오랜 시간동안의 경험이 쌓여 그것이 발목을 잡는 것 같지는 않다.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최대한 근접하게 작업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송원영, <33-501>, 10분, 디지털 디스플레이(비디오 스틸), 2018, 이미지 제공=송원영
LEE : 뮤직비디오와 광고 감독으로 알려진 것에 비해 작가로서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작업을 설명해줄 수 있나? 작가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무엇을 담고 싶은가?
Song :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전시에는 5번 정도 참여했고 아직 개인전은 하지 않았다. 온전히 나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3점 정도다. 물론 더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의 방향성을 확립한 후에 제작한 것이 그 정도라는 이야기다. 우선은 나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감정을 전달하길 바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나의 작업이 아련했으면 좋겠다.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다. 과거 지향적 인간이라 과거에 얽매여 있고 과거의 시간을 좋아한다. 보편적인 의미의 옛날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제일 좋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옛날인 것이다. 추억이 좋다. 아직까지는 나에게 가장 진하고 아름다웠던 때가 지나간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라지는 것들을 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무장 해제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련함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니 소박하고 화려함이 없는 소소한 것들을 담게 된다. 없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아련한 추억, 잊지 못하는 것들을 녹여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