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9.
본 글은 2018년 10월 15일(월)에 이뤄졌던 이문정과 최두수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LEE:이문정, Choi : 최두수
LEE : 최근 들어 특히 ‘최두수’라는 이름과 유니온 아트페어(Union Artfair)를 분리하기 어려워졌다. 유니온 아트페어는 ‘작가들이 중심이 된 미술시장,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Choi : 유니온 아트페어가 3회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많은 우연과 필연들이 이어졌다. 작가들의 연대, 조합이라는 슬로건을 가진 비영리단체를 결성하여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공모사업에 지원했던 것이 유니온 아트페어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작가들끼리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장터를 여는 것이 가능할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작가들끼리 연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실행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은 실제로 작품을 판매할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한때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호황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도 소수의 작가들만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할 수 있다. 혹자는 ‘유니온’이라는 이름에서 다소 공격적인 메시지를 읽기도 하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해온 미술시장(장터)이나 예술지원사업의 형식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보수적이라 생각한다.
LEE : 오늘날 활동하는 대다수의 작가들은 이념이나 이즘(ism)으로 묶이지 않는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시대적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로 다른 개인들이 강조되는 시대다. 과거에 비해 작가들 간의 연대나 집단 활동이 약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시대에 연대를 표방한다는 것이 -과거의 연대와는 분명 그 결이 다르지만-조금은 남다르다.
Choi : 연대의 방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즘으로 연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유니온 아트페어의 중심에는 정보 공유가 있다. 작가들은 항상 다음 전시 혹은 다음 기회를 위해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것을 나누기 위한 오프라인(offline) 상의 만남이자 연대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또한 예술이 가진 힘이 드러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인간적 연대나 이념적 연대가 아니라 작품을 중심에 놓은 연대다. 예술이 연대의 접점에 놓인다.
물론 기획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다양한 측면에서 높은 효율을 내는 전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방식 안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전달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대안공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안공간의 역사가 20년이다. 이제 대안공간이 배출한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이 과연 얼마나 미술시장에 진입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대안’이라는 단어에 시장은 없었다. 미술을 개념화하고 역사화 할 뿐이었다. 작품이 전시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장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항상 있어왔다. 크리스티(Christie’s, 1766년 설립)와 소더비(Sotheby’s, 1744)는 모두 18세기에 설립되었다. (국제)미술시장에 한국 미술이 지금보다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 따라서 판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지속성 있는 소통이다. 유니온 아트페어를 통해 갤러리 관계자분들에게 작가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하다.
‘2018 유니온 아트페어’ ⓒ최두수
LEE : 전업 작가라면 당연히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다음 작업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 시대에 누군가가 비용을 들여 작품을 구입했다는 사실은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히 돈을 벌었다는 차원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처음으로 작품을 판매했던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도 있다.
Choi : 유니온 아트페어가 하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왜 동시대 미술이 동시대성을 갖지 못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왜 전시가 자연스럽게 세상과 이어지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미술시장이다. 전 세계에 거주하는 나의 친구들이 페이스 북과 인스타그램에 전시 소식과 이미지를 계속 올린다. 그렇게 다들 멋진 전시를 열고 있고 작품을 팔고 있다. 전시가 좋으면 자연히 판매가 이뤄진다. 그게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재미있는 전시는 많은데 작품이 판매되지 않는다. 미술의 담론만 존재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대이니 작품이 좋고 그 안에 담긴 담론(내러티브와 의미)이 좋으면 판매로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가격이 작품의 이면에 숨어 있다. 우리는 그림을 편안하게 못 즐기는 것 같다. 너무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예술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많다. 비단 미술시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LEE : 작가 최두수의 작업을 봤을 때 담론이 매우 강하다고 느꼈다. 이것은 담론에 비해 시각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거대한 담론과 내러티브가 가득한 작업을 본인도 하지 않았나? 그래서 더 절실하게 이 문제를 고민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Choi : 나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판매로 이어지지 못하고 담론에 묻혔다. 물론 미술시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작품들 중에는 판매하기에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도 있다. 또한 저예산으로 진행하는 작품의 한계는 분명 있다.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본으로 최대치의 효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보다 조금은 더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미술에도 총 생산량이 있다. 그것에 근거해 서로 경쟁하고, 가격이 형성되고, 정보가 공유된다. 치열하게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누군가가 나의 작품을 구입해 특별한 장소에 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서의 품질이 시각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담론을 덜어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미술은 그 시작부터 굉장히 주술적이었고 언어 너머의 세계를 담아내왔다. 터부의 영역과도 만난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생성하는 것이 미술이다. 그리고 그 영역은 계속 확장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각을 끝없이 제시하면서 성찰하게 이끌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아직도 미술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예술의 이데아(idea)가 반짝이고 멋있는,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들에 머무는 것 같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 다른 작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비교하고 자극받는 기회가 필요하다. 좋은 작품이 계속 세상에 나오려면 작가의 창작 활동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작가도 전문적인 직업이 되어야 한다. 직업이 된다는 것은 미술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프로(professional)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창작 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LEE : 올해까지는 참가를 원하는 작가 대부분이 출품할 수 있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를 원하는 작가들이 늘어날 것 같은데, 언젠가는 원하는 작가 모두와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일정한 절차를 통해 일부 작가가 제외된다면 유니온 아트페어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Choi : 장르불일치로 참여 못한 극소수의 작가들을 제외하면 신청 작가 대부분이 유니온 아트페어와 함께 했다. 최대한 많은 작가가 함께 하는 것이 유니온 아트페어의 지향과 맞다. 물론 참여 작가가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면 섬세한 큐레이팅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판매 위주의 큐레이팅은 아닐 것이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섬세함이 중요하다.
LEE : 필자가 경험한 유니온 아트페어는 디스플레이가 상당히 독특했다. 누군가는 정돈이 덜 되어 보인다고도 하고 작품을 감상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기획자의 취향 문제인가?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인가?
Choi : 단순히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디스플레이의 형식은 음악의 믹싱(mixing)에서 온 것이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디제잉(DJing)을 해왔다. 음악은 섞을 수 있다. 디지털 소스로 저음, 중음, 고음을 다 떼어내고 두 음을 섞어 새로운 순간(moment)을 만들 수 있다. 그게 바로 디제이(DJ)들이 하는 믹싱 작업이다. 전혀 다른 음악들이 섞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매우 감각적이다. 음악이 섞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 한 뒤 그것을 이미지와 공간에도 적용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섞인다는 것은 깔끔하게 구분되는 경계와 경계가 빈틈없이 붙어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경계와 경계가 겹쳐지는 부분이 생기는 거다. 그것은 작품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기준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때로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그 방식을 읽어내며 재미있어 하고, 누군가는 우리 의도와 달리 불편해 하며 접점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부분들이 결합되면서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도 영향을 주었다. 전시 <현자네 돌>(2014)이나
LEE :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경매사 모두 전문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작가가 작업에 몰두하는 만큼 그들은 전시 기획과 판매 등에 전념한다. 작가가 중심이 되어 만든 장터가 갖는 특수성이 무엇인가?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알고 싶다. 또한 작가들이 기획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한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것이 분야를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거나 작가들은 작업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님을 본인도 알 것이다. 다양한 시도들은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 혹시 유니온 아트페어 외에 작가들의 정보 공유와 연대를 위해 다른 전시나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가?
Choi : 유니온 아트페어는 작가들이 중심이 된 장터이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가장 보기 좋았던 것은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친구가 된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관객, 컬렉터의 입장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분명 존재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축제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이 보완되어야 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다양한 기획들을 구상하고 상상하고 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정도다. 미술을 어떻게 일상, 생활, 즐거움 안으로 들여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또한 전시 기획하시는 분들, 많은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의 수고, 그분들이 미술에 갖는 애정을 잘 알고 있다. 그 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장을 좋아했다. 시장에는 신기한 게 정말 많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시장은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다. 사람들과 같이 구경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대화, 만남을 통하지 않으면 더 깊이 있는 무언가가 나오기 어렵다.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시장은 더 좋다. 나에게 미술시장은 가장 좋은 놀이터이자 공부방이다. 예술은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내 앞에 가져다준다.
LEE : 지금 이 말을 하는데 눈이 반짝거린다. 행복해 보인다.
Choi : 나는 미술(예술)이 정말 좋다. 힘이 된다. 미술 작품만큼 강한 오브제는 없다. 때로는 외로움과 처절한 삶의 지점들까지도 다가가는 게 예술이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시각적으로 그리고 표현에서 많은 것들이 왜곡되어 있다. 학습되어 길들여진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예술이다.
LEE : 이완 작가와 꽤 오래 같이 했다. 첫 만남이 궁금하다.
Choi : 만난 지 12년 이상 된 것 같다. 이완 작가가 2005년 갤러리 쌈지에서 개인전
LEE : 개인적으로 친구였다가 일을 같이 할 때 예상치 못하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꽤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Choi : 나와 이완 작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전시 오픈을 앞두고 작가는 너무 외롭고 힘들다. 평론가가 글을 탈고할 때와 비슷할 것 같다. 그런 순간에 항상 나타나 주는 동생이다. 나 역시 그런 형이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함께 해주는 사람, 무대 뒤에서 늘 함께 하는 사람이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스페이스엑스엑스 개관전, ‘In case of fire’ 전시 전경, 2016 ⓒ최두수
스페이스엑스엑스 개관전, ‘In case of fire’ 전시 전경, 2016 ⓒ최두수
LEE : 스페이스엑스엑스(space xx)를 정확히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스페이스엑스엑스가 다른 전시 공간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Choi : 스페이스엑스엑스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artist run space)다. 유니온 아트페어를 기획한 비영리단체와는 별개의 기관이다. 11월 크리스티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 11명을 소개하는 전시를 스페이스엑스엑스가 기획한다. 이번이 3번째다. 에릭 창(Eric Chang, 크리스티 아시아 수석부사장)이 2017년 유니온 아트페어에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크리스티와 같은 국제 미술시장에 한국 젊은 작가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다.
LEE : 작가로서의 활동과 관련된 질문을 하나만 하겠다. 이전 작업들을 보면 유독 콘크리트(시멘트)를 자주 사용했다. 남다른 이유가 있는가?
Choi :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콘크리트 벽만 본 것 같다. 시멘트 물, 유리 철근이 전부인 벽이다. 우리는 항상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콘크리트 건물에 인생의 대부분을 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생을 보낸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사용했다.
LEE : 본인이 예술가라고 불리길 원하는가? 예술가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Choi : 예술가는 정말 갖고 싶은 타이틀이다. 내 생각에 나는 아직 부족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그 때와 지금의 나는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예술가란 무엇일까? 아직 답하긴 어렵다. 다만 나는 예술가들에게 늘 감사하다. 그것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예술가들이 해놓은 창작물들을 볼 때마다 감사하다.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자신의 창작물을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삶은 따라가고 싶은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