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테이블 [네트쇼 - 기획: 정소라, 참여 작가: 지희킴, 진인이나래, 김도균(kdk), 이정형 , 노상호]
진행: 이문정

2022. 3. 3. 김도균, 정소라, 이문정

이문정 : [네트쇼]는 “온라인 전시 및 포럼의 공간”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첫 시즌에 이 다섯 명의 작가를 선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 입장에서 참여를 결정하게 된 이유도 듣고 싶다.

정소라 : 인터넷이 가진 몇 가지 특징인 비물질성, 원격현전, 인터랙티비티, 연결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작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들이 다루는 매체도 모두 달라야 했다. 그래서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에 각각 중점을 두고 활동하는 작가들을 선정했다.

김도균 : 사용자가 많은 인기 있는 SNS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진행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오늘날 무엇이든 작업이 될 수 있지만 또 무엇이든 작업이 아닐 수도 있는데 인스타그램을 예술 작업에 활용했다는 점 그 자체가 흥미롭고 유의미해 보였다.

정소라 : 김도균 작가의 경우 항상 새로운 매체의 개념과 방식을 잘 받아들여 표현한다. 과거 인터넷 아트(Internet Art)가 빠르게 부상했다가 쇠락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재부상했고 나 역시 주목하게 되었다. 김도균은 인터넷의 특징 그 자체를 잘 살릴 작가였다. <개와 늑대의 시간>의 피사체가 낮에서 저녁으로 바뀌는 애매한 시간대인 것 역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명확한 경계를 무시하거나 넘어서는 데에 흥미를 갖는 작가의 태도와 연결된다. 이는 네트쇼가 기본적으로 추구한, 그리고 포스트 인터넷 아트(Post-Internet Art)에서 이야기하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결과도 관련된다.

이문정 : 김도균 작가는 해가 지는 시간대의 하늘을 찍은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을 황혼을 뜻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하늘을 찍은 이미지를 보고 모노 톤의 하늘을 찍은 <g>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김도균 : 해가 지는 시간이라는 의미여서 선택했다.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하늘이지만 이번 작업은 하늘 이전에 시간이 피사체였다. 해가 지기 5분 전부터 해가 진 5분 후까지 10분이라는 시간을 60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개인지 늑대인지 알아볼 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의 시간대란 게 로맨틱하기도 하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그 시간에는 모든 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정소라 : 그 시간대를 보여주기 위해 어떤 대상을 찍을지 고심한 것으로 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하늘이다. 작가가 바라보며 촬영하는 하늘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하늘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이것은 작가가 사과와 같은 특정한 사물을 찍는 것과 다른 상황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대상이 변하지만, 특히 하늘은 그 변화가 뚜렷하게 혹은 오묘하게 드러난다는 것도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시간이 피사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상이었다.

kdk(김도균) [개와 늑대의 시간] 20210417190410_f22 s1_20_37°47'22_N 126°13'37_E 270°W ⓒkdk
kdk(김도균) [개와 늑대의 시간] 20210419190610_f22 s1_10_37°31'49_N 127°3'48_E 270°W ⓒkdk

이문정 : 작업할 때 인스타그램만의 특수성과 관련해 특별히 기대했거나 계획했던 부분이 있는가?

김도균 : 실제로 석양의 하늘을 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찍은 사진을 본다는 경험은 키치하기도 하고 가볍게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SNS를 통한 예술 작업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작업했다. 그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반대 개념으로만 생각해왔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특장점이 다르다. 그러나 반대는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것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프라인에서도 가능한 것을 굳이 반복해서 보여줄 필요는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적합한 방식을 각각 잘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발표한 사진들은 최고의 상태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인화해 전시하든 책의 형태로 만들든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물질적인 형태로 보여주든 모두 가능하다. 10분이라는 시간을 연이어 촬영한 60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시리즈이기 때문에 이것을 연결하면 영상이 될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NFT 형태의 영상으로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60개의 레이어(layer)가 있는 작업을 만들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문정 : <개와 늑대의 시간>은 특히 현장성이 두드러졌다.

김도균 : 하루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최소 해가 지기 시간 1시간 전에 촬영할 장소에 도착해야 했고 촬영을 마친 뒤에도 1시간 정도 소요됐다. 촬영에만 2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업로드에도 2시간 정도 걸려 총 4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촬영 장소는 그날 나의 마지막 일정이 어디에서 진행되는지에 맞춰 결정했다. 마지막 촬영지는 정서진이었는데 시간이 촉박해 포기할 뻔했을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했다.

이문정 :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을 때 하늘 사진이 연이어 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기획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또 사람에 따라 이와 같은 이미지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인스타그램이다.

김도균 : 그 부분을 꽤 많이 고민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슷한 하늘 이미지가 도배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응은 다양했다. 이미지가 줄지어 보이는 게 좋았다는 사람도, 래그(lag)에 걸린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촬영하는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해서 그것을 함께 본 사람들은 같은 시간대를 공유해서 좋았다는 피드백을 남겨주기도 했다.

kdk(김도균) [개와 늑대의 시간] 20210420190810_f22 s1_4_37°31'49_N 127°3'47_E 270°W ⓒkdk
kdk(김도균) [개와 늑대의 시간] 20210424191010_f22 s1_25_37°33'14_N 126°36'25_E 270°W ⓒkdk

이문정 : 우연이든 <개와 늑대의 시간>을 보고 영향을 받았든 작가와 유사한 시간대에 유사한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릴 수 있다. 유사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작품과 비교했을 때 쉽게 복제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사진작가이기 때문에 관련된 생각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맥락이 다르고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어떤 사용자는 차이를 못 느끼고 넘어갈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생각해봤는가?

김도균 : 누군가는 <개와 늑대의 시간>를 가볍게 넘길 것이고 누군가는 궁금증을 갖고 보면서 뭔가 특별한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양한 반응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진 않았다.

정소라 : 애초에 디지털 이미지라는 게 복제를 허용한다. [네트쇼] 역시 온라인 전시라 그런 상황에 열린 상태였다. 누군가 김도균의 사진을 복제해서 올리거나 유사한 장면을 보고 사진 찍어서 올릴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밈(Meme)처럼 재미있는 요소로 확장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공간이고 디지털 이미지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보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문정 :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김도균 : 석양이 질 때 촬영해 자정 전까지 60장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행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인스타그램의 매커니즘을 잘 알지 못하면 업로드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 노력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아 아쉽기도 했지만, 열흘 동안 계획한 대로 잘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이문정 : 인스타그램의 속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과 전시를 진행했다. 아직 익숙한 방식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 계획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지 궁금하다.

정소라 : 오프라인에서의 전시는 대체로 구상한 대로 진행되는 편이다. 그러나 온라인은 다르다. 그래서 참여한 모든 작가에게 결과물이 계획대로 나와도 좋고 바뀌어도 좋다고 했다. 심지어 전시 기간 동안 기획 의도나 방식이 변경되어도 상관없었다. 즉흥성이 발휘되는 그 자체로 인터넷과 SNS의 특성을 살리는 게 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 가지는 시각적 조건들도 있다. 네트쇼 계정에 들어와 보게 되는 이미지는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팔로워 수에 따라 보이는 이미지가 바뀌는 상황 때문에 각각의 관객(사용자)에게 보이는 최종 결과물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김도균 작가의 경우 계획한 그대로 나왔다. 600장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그것까지도 예상한 것과 차이가 없었다. 한 가지, 기대에 비해 사용자들의 반응이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진행될 당시는 지금보다도 대면이 급격히 줄어들었던 시기이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자는 의미도 조금은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 사람들이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원격현전으로 만나는 것이 유의미했다. 물론 디지털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연결하려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그러면 전시의 콘셉트나 의미가 너무 확장될 우려가 있어서 진행하지 않았다.



2022. 3. 3. 정소라, 진 인이 나래, 이문정

이문정 : [네트쇼]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그리고 참여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 인이 나래 : 그동안 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의 전시에 국한해 활동해오지 않았고, 어떤 플랫폼을 통해서든 예술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SNS에서 전시한다고 했을 때 반가웠다. 전시를 마친 뒤에는 작업이 영구적으로 아카이빙되기 때문에 휘발성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정소라 : 진 인이 나래 작가의 작업은 다소 무겁고 어려울 수도 있는 주제, 때론 공격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는 이슈를 다루고 있어서 인스타그램이 가진 즐겁고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감상하면 오히려 낯섦이 덜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표피적이고 대중적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술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플랫폼이 바뀌면 관객(사용자)에게 전달되는 작품의 메시지도 조금 달라질 것이다. 전문가가 만든 희귀한 음식을 장인의 접시에 담을 수도 있지만 굉장히 대중적인 접시에 담을 수도 있다. 그러면 오히려 더 부담 없이 음식의 묘미를 즐길지도 모른다.

진 인이 나래 <하바툴바라카-경단 레시피> ⓒ2020 NARAE INNI JIN All Rights Reserved

이문정 : 개인적으로 진 인이 나래 작가의 <불편한 친구를 내보내는 차 레시피>(2020)에서는 왜 지네가 등장하는지 궁금했다. 계피(차)는 지네뿐 아니라 곤충 대부분이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다.

진 인이 나래 : <불편한 친구를 내보내는 차 레시피>는 전시 [Terrapolis, 땅의 정치](2020)의 연계행사였던 <최초의 만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최유미 선생님의 신간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2020)에 대한 강의가 있었는데 이때 참여자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와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한 것이 <최초의 만찬>이다. 나는 그때 이 레시피를 공유했고 [네트쇼]를 위해서는 짧은 영상과 사진을 제작했다. 제목에 지네가 등장한 것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지네를 몇 번 발견해 놀란 경험 때문이었다. 지네가 계피를 싫어한다는 정보를 보고 계피차를 끓여서 온 집에 계피향이 나도록 하니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존재와 다 가까이 지낼 수는 없다. 어떤 존재와는 친하지만 어떤 존재는 불편하다. 내게 불편한 존재를 멀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식을 찾으려는 시도를 비유적으로 담았다.

이문정 : <(항)바이러스 주스 레시피>(2020)의 경우 의도적으로 키치적이고 조야한 분위기가 나게 한 것 같다. 작가는 유전자조작 과일과 항바이러스 성분이 있는 과일을 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전자조작 주스를 선택했다. 마지막에 마스크를 벗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 인이나래 : 나라면 유전자조작 주스를 선택할 것 같아서 그대로 보여줬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선택의 상황이 닥쳤을 때 결국 그렇게 하게 될 것 같다. 마스크는 인간의 통제를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지점을 말하고 싶었다. 인간은 자연을 통제할 수도 없고, 바이러스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언젠가는 통제가 풀리는 순간이 생긴다.

이문정 : 진 인이 나래 작가의 경우 다양한 작품이 올라와 있는데 바이러스, 인종, 성 정체성처럼 민감하고 첨예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는 작가의 전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지는 주제이다.

정소라 : 진 인이 나래 작가의 경우 이미 제작된 작품의 비중이 컸지만 상관없었다. 여러 가지 상황상 신작으로만 채울 수 없었는데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없던 작품들을 인스타그램에서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진 인이 나래 : [네트쇼]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처음부터 인스타그램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다는 것을 고려해 수정, 보완했다. 일례로 인스타그램에는 1분 이내의 동영상만 올릴 수 있다. 각각의 플랫폼이 갖는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일정 부분에서 새로 작업을 하게 된다. 또한 연계 이벤트로 관람객과 참여자들이 자신만의 레시피 선언, 레시피 시(poem), 레시피 소설 등을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도록 하는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이는 인스타그램의 특수성을 활용한 것이다. 플랫폼이 형성되는 초반이다 보니 참여가 많지 않았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진 인이 나래 <세상의 모든 꽃들 - 연잎밥 레시피> ⓒ2020 NARAE INNI JIN All Rights Reserved

이문정 : 플랫폼의 성격에 맞게 일정 부분 보완 수정했다고 했는데, 작업할 때 인스타그램만의 특수성과 관련해 특별히 기대했거나 계획했던 부분이 있는가?

진 인이 나래 : <식탁 위의 우리들>(2021)에 업로드된 작품 중 영상은 세 편이었는데 영상만을 해당 작품이라고 한정할 수는 없다. 즉 <식탁 위의 우리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인 전시지만 인스타그램만의 전시는 아니다. 개념 자체, 개념이 아우르는 것 모두가 나의 작업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전시될 수 있다. 나는 플랫폼을 메타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네트쇼]에서 주로 다뤄진 음식이라는 주제/소재의 경우 요리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고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도 있다. 연회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나에게는 모두가 요리를 중심에 놓은 같은 작품이다. 요리를 선택한 이유는 ‘먹는다는 것’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하기에 권력 관계까지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거울 수도 있는 이슈에 편하게 접근하게 해주는 매개로 음식이 효과적이라 판단한 부분도 있다. 음식 조리과정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정소라 : 작가는 어떤 경로를 통해 발표해도 자신의 작품이지만 기획자에게는 어떤 플랫폼에 어떻게 공개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오프라인 전시장과 온라인이 다르고, 인스타그램에 바로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것과 유튜브에 업로드한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의 링크를 경유해 보도록 하는 것은 다르다. 같은 관객이라도 어떤 경로를 통해 작품에 접근하고 어떤 것을 클릭해서 보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미술관을 걸어 들어가 미술 작품들을 보다가 진 인이 나래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과 온라인에서 광고를 보다가 진 인이 나래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이문정 : 인스타그램의 속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과 전시를 진행했다. 아직 익숙한 방식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 계획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지 궁금하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존재하고 전시되기 때문에 관객(사용자)과 작품(작가) 사이의 상호작용이 물리적인 전시장에서보다 더 활발히 이뤄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정소라 : 진 인이 나래 작가도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다. 다만 작품제작비 등 현실적인 이유로 라이브 방송이나 1인 시위 등은 실행되지 못했다. 특히 인터넷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상호작용이나 연결성을 이용해 설날 연휴 즈음 사용자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작업을 계획했다가 간단한 해시태그 운동으로 바꾼 게 아쉬웠다. 작가들과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공유했는데 [네트쇼]의 첫 시즌이다 보니 그것이 다 드러나지 못했다.

이문정 : 앞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갈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앞으로 <식탁 위의 우리들>이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있는가?

진 인이 나래 : 지금 드는 생각은 <세상의 모든 꽃들>(2020)과 관련해 실제 공간에 모여 성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만들어 같이 부르기도 하는 연회를 열고 싶다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인간 아닌 식물이나 꽃 같은 다른 생물들의 성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밭이 있는 곳에서 열어도 좋겠다.



2022. 3. 4. 이정형, 정소라, 이문정

이문정 : 모든 작가에게 하는 공통 질문이다. 이정형 작가는 [네트쇼]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참여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지부터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이정형 : 여태까지 많이 시도된 형식이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았고, 시도되지 않은 만큼 형식적으로 구애받는 게 없다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전시 형식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문정 : 개인적으로 <바닥에 마킹을 하면서 우리는 너를 엘름그린 너는 피크라고 불렀어 While marking the floor, we called you elmgreen(느릅나무의 녹색), you peak(봉우리, 최고봉, 절정)>(2021)에 담긴 의미가 궁금했다. 제목이 길고 독특하다.

이정형 : 귀여워서 선택했다(웃음). 범용적이기도 하면서 어느 맥락에 갖다 붙여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뜬금없기도 한 문장이다. 예술의 언어라는 게 존재하고 그것은 개방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갖는다. 그래서 맥락을 이해하는 경우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의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의미를 담았다. 말 그대로 맥락 없는 단어의 조합이기도 하고. 읽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궁금해할 만한 것을 택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 자체가 지시에 관한 내용이다 보니 뭔가를 부르고, 의미하고, 이해하고, 그런 부분을 다 담을 수 있는 것을 원했다.

이정형 <바닥에 마킹을 하면서 우리는 너를 엘름그린 너는 피크라고 불렀어> ⓒ2021 Chunghyung Lee all rights reserved.

정소라 : 이번 전시에서도 이정형 작가가 전시디자이너, 전시현장 조성을 하는 역할을 하며 경험한 것들이 바탕이 되었다. 작업에는 현장에 있는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현장에서는 상용되지만 전문가 그룹에 들어가지 않고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단어도, 이미지도 단순하고 어렵지 않아 알 듯 모를 듯하다. 만약 단어 자체가 너무 어려우면 상상 자체를 막는데 알 듯 모를 듯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문정 : 특정 집단에서 사용하는 언어만 의미 파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일상의 대화를 나눌 때도 결국 의미의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한 단어의 의미를 찾으려 하면 또 다른 단어가 연이어 나오기 때문에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다 끝나는 것이다. 또한 특정 단어를 사용한 사람이 머릿속에서 생각한 의미를 다른 사람이 100% 온전히 전달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확장해서 해석해도 되는가?

정소라 : 그 측면도 생각했다. 정답이 없는 게임, 퀴즈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정형 : 내 작업에서 그런 오해가 발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함께 있음으로 인해 수많은 변수나 사건들이 생기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애초에 정답을 가르쳐 주기 위한 텍스트나 이미지가 아니었다. 의심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길 원했다.

이문정 : <바닥에 마킹을 하면서 우리는 너를 엘름그린 너는 피크라고 불렀어>는 신작로 채워졌다. 작업할 때 인스타그램만의 특수성과 관련해 특별히 기대했거나 염두에 두었던 게 있다면 무엇인가?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정사각형의 프레임을 가진다. 한 줄에는 3개의 칸이 있는데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새로운 이미지가 업로드되면서 기존의 이미지가 깨지기도 하고 원상 복구되기도 한다.

이정형 : 인스타그램은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의 포맷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조각이나 설치, 회화, 무엇이든 실재하는 공간에 놓인 것을 보는 것과 인스타그램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작업의 방향성을 잡았다. 인스타그램 공간은 가상의 공간이자 플랫폼이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는 전시공간과는 확실히 다른 형식의 경험이었다. 모든 전시공간이 그렇듯 인스타그램도 가능성과 제약을 동시에 갖는다. 예를 들어 한 번 포스팅한 뒤에는 삭제 외에 이미지를 수정할 방법이 없다.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보이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점도 특수한 부분이다. [네트쇼] 계정의 이미지도 내 전시 다음에 진행되는 전시 업로드 상황에 따라 이미지가 해체되고 재조합된다.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이문정 :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을 보여준다는 것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방식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정소라 : 이정형 작가의 경우 진행 중에 콘셉트가 몇 번 바뀌었는데 그것대로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언어와 특수 영역의 폐쇄성에 집중했다. 예술도, 전문가들의 세계도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닫혀 있다는 의미다. 이 폐쇄적인 언어를 이해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와 맥락을 붙잡을 수 없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서로가 서로를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그 둘의 작용으로 더 추상적으로 갈 수도 있다.

이정형 <바닥에 마킹을 하면서 우리는 너를 엘름그린 너는 피크라고 불렀어> ⓒ2021 Chunghyung Lee all rights reserved.

이문정 : 이정형의 작업에서 특히 인스타그램 이미지의 표피성, 감각성이 극대화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미지와 텍스트의 상관관계나 예술의 폐쇄성 등을 생각하기 전에 눈에 보이는 이미지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이정형 : 앞서 말했듯 전체 이미지가 깨지지 않고 보이기도 하고, 파편화되기도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같은 SNS여도 홈페이지나 페이스북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전면에 등장하는 이미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감각적인 이미지가 강조된 게 공간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물리적인 공간처럼 오라(aura)를 줄 수 있는 환경이 사라져 관객은 이미지만을 감각하게 된다.

정소라 : 전시가 진행될수록 시각적인 이미지에 집중하게 되어 전달하려는 개념이 다소 약해졌을 수도 있다.

이문정 : [네트쇼]에 참여하며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나 경험이 있었는가?

이정형 : 예상하지 못했다기보다 새롭게 발견한 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물질화되지 않아도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우리가 꺼내지 않고 쌓아놓은 데이터 쓰레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을 어떻게 작업에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문정 : 데이터 쓰레기는 개념적으로 이정형 작가의 다른 작업과도 연결된다. 여태까지 물질성이 강한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작업은 데이터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이정형: 전시라면 전시이고 또 구독의 느낌도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순차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포스팅을 하면서 다음에 업로드할 작업을 조율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데이터를 소개하는 방식이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전시와 제일 큰 차이점이었다. 그밖에 전시를 준비하는 데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같았다.

정소라 : 이정형 작가의 경우 그 과정이 다른 작가들과 달랐다. 오프라인 전시는 설치일이 있고 오픈하기 전에 모든 것을 완료해야 한다. [네트쇼]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끝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수정할 수 있었지만 작가는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전시를 오픈한 뒤에도 계속 고민하고 작업을 해야 했으니까. 인터넷 아트나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전시가 갖는 특징은 매우 많다. 한 명의 작가에게서 그 모두를 다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작가마다 강조하는 지점이 다르다. 이정형의 전시에서는 인스타그램의 계정과 계정 사이를 넘나드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미지와 텍스트의 여러 조합이 등장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양쪽의 계정을 모두 오고 가야만 완전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이미지와 텍스트가 [네트쇼] 계정과 이정형 작가의 개인 계정으로 나누어지기도 했다.



2022. 3. 6. 정소라, 지희킴, 이문정

이문정 : 지희킴 작가는 [네트쇼] 참여 제안을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첫 참여 작가이다 보니 막연하게 느껴졌을 수 있을 것 같다.

지희킴 : 내가 SNS와 친한 사람은 아니어서 인스타그램에 나의 작품이 공유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미술 기관과 작가들이 인스타그램을 활용하는 것을 보며 오늘날 SNS 플랫폼이 시각예술가에게는 중요한 소통과 홍보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마침 [네트쇼] 제안이 들어왔고 해볼 만한 도전이라 생각했다.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형식으로 내 작업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아서 그 부분에 집중했다. 아무 정보 없이 전시장에서 보면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내 작품과 작품에 영감을 준 글을 함께 묶어서 공개하는 식으로 변주했다. 좌에서 우로 넘기며 이미지를 보는 인스타그램의 방식을 활용해 나의 글이나 내가 좋아하는 문학의 구절이 나오고 마지막에 작품 이미지가 나오는 게 마치 가상의 책장을 넘기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또 게시자가 위치를 설정하면 사용자가 그것을 클릭해 구글 지도로 들어갈 수 있는 점도 염두에 두었다. 가상의 세계라고 하지만 이야기와 이미지, 장소까지 하나로 엮어내 실재감을 높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시간적인 반응에도 관심이 갔다. 보통의 전시장에서는 관객이 나의 작품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거나 좋다는 반응을 그렇게 즉각적으로 하기 어렵다.

이문정 : 지희킴 작가의 <My shade is yours>는 9장으로 구성된 이북(e-Book) 같기도 하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함께 놓는 방식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누군가는 끝까지 보지 않고 창을 닫을 수도 있다.

지희킴 : 누구든 한두 페이지만 보고 닫을 수 있다. 사람들이 작품의 이미지가 있는 마지막까지 잘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있었다. 나는 이미지에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한 페이지에 텍스트를 보기 좋게 나누는 게 어려웠다. 한 페이지에 몇 글자를 넣어야 다음 페이지에 대한 호기심이나 극적 효과가 있을지는 이전에는 해보지 않은 고민이었다. 일기 같은 글들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다.

지희킴 <피와 살이 너를 뒤덮을 때 5> 아르쉬지에 과슈, 130x242cm, 2021 ⓒJihee Kim

이문정 : <My shade is yours>는 각 피드의 첫 페이지에 번호만 적혀 있어 어떤 텍스트와 이미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이미지가 업로드되는 상황이나 관객의 상황에 따라 이미지가 혼재되더라도 작가가 정한 순서를 명확히 밝히고 싶어서 그런 것인가? 지희킴의 회화는 이미지가 파편화되고 여러 층이 쌓이기도 하는데 그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었다. 작가가 최대한 제어하려고 한 것 같아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인터넷의 세계 역시 권력과 자본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원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즐긴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는 누군가의 필요와 계획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지나친 확대 해석일 수도 있겠으나 명확하게 제시된 순서를 보며 인터넷상에서 이미지와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과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의 관계를 떠올리기도 했다.

지희킴 : 애초에 이미지와 이야기의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피드의 첫 페이지가 연극무대의 막과 같은 기능을 하길 바랐다. 나의 경우 업로드되는 순서도 중요했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진다.

정소라 : 작가와 피드마다 번호가 적힌 일종의 표지를 넣을 것인지에 대해 의논을 많이 했다. 인스타그램의 속성을 고려하면 바로 작품이 노출되는 것이 맞지만 연극의 막처럼 조금은 비밀스럽게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서히 드러나도록 했다. 그래서 막이 열리면 ‘이야기 → 작품의 부분 이미지 → 작품 전체’의 순서로 등장하는 것을 연극의 시작에서부터 끝으로 가정했다. 첫 페이지가 가리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기대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선택이 좋았을지 확언할 수는 없다. 전시에 있어서 모든 선택은 양가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문정 : 지희킴의 <My shade is yours>는 이미 완성된 작품을 놓고 그에 관한 기억을 추출해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소개글에서 기획자는 ‘상상과 사유의 공간이 부딪히자 디지털 이미지로 보여 더 평평한 이미지가 된 지희킴의 회화가 다른 형태의 입체감을 형성하게 된다’고 적었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정소라 : 회화 작품이 디지털 이미지가 되어 완전히 평평해졌지만, 작품을 제작하게 된 계기, 제작한 장소 등 여러 내러티브가 더해지면서 회화 작품만을 마주할 때와는 또 다른 방식의 입체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통 온라인의 공간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더 복합적인 레이어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지희킴 : 나의 대형 회화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중첩되어 있지만, 작업할 당시에는 그리는 행위에 몰입하고, 또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휘발되는 부분이 생긴다. [네트쇼]를 준비하면서 사라진 것 같은 기억을 다시 들춰볼 수 있어 좋았다.

이문정 : <My shade is yours>는 동명의 오프라인 전시로까지 이어졌다. 기획자의 말대로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을 넘어서 실재하는 물질성을 가진 작품,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그 의미가 모호해졌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더 이상 컴퓨터와 인터넷에 기반한 가상 공간에서 실행되는 예술로만 한정하지 않고 있다.

지희킴 : 전시장에서 인스타그램으로만 내 작품을 보다가 실제로 보니 물성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해준 관객을 만났다. 내가 그렸고, 원본을 잘 알고 있어서 나는 내 작품의 이미지가 온라인에서 전시될 때 그렇게 평평하게 보일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피드백이었다.

정소라 : 참여 작가 모두에게 온라인 전시 이후 오프라인 전시를 원하면 장소 제공이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지희킴 작가만 오프라인 전시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디지털 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보니 물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참여 작가 모두에게 [네트쇼]가 계기가 되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다음 단계의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지희킴, <피와 살이 너를 뒤덮을 때 7> 아르쉬지에 과슈, 130x242cm, 2021 ⓒJihee Kim

이문정 : [네트쇼]가 다른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도 있는가?

정소라 : 그렇다. 실제로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았고 권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기획의 시작은 인스타그램이 아니라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의 한 부분으로 인스타그램을 선택했다. 인스타그램은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플랫폼이다. 또 수용자의 측면에서 인스타그램은 개별 계정을 굳이 클릭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접근성이 뛰어나다. [네트쇼] 계정을 팔로우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그런 효과들에 더 주목할 수 있었다. 다만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한정하지 않고 [네트쇼]만의 플랫폼을 만들어 실험을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2023. 2. 9. 노상호, 정소라, 이문정

이문정 : 그동안 [네트쇼]에 참여한 작가들을 보면 SNS와 긴밀한 분, 그렇지 않은 분 다양했다. 그런데 노상호 작가만큼 SNS와 긴밀한 작가도 없을 것 같다. 이전 작가분들 중 다수는 [네트쇼]를 위해 SNS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런데 노상호 작가는 이미 SNS를 바탕으로 작업을 발표해왔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했다.
앞선 작가들과의 라운드테이블에서도 했던 질문이다. 기획자로서 노상호 작가를 선정하게 된 이유, 그리고 작가로서 [네트쇼]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정소라: 일단 온라인, SNS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노상호였다. 사실 이미 온라인에서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고, 관련된 연구 글들도 발표되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네트쇼]를 진행하면서 노상호 작가가 계속 떠올랐다. SNS를 늘 접하는 작가에게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노상호 작가의 작업 대부분이 회화인데, 마티에르가 있다고 해도 평면인 회화가 디지털 공간에서 보여지는 상황에 관해 2020년 전시에 이어 한 번 더 질문해보고 싶기도 했다.

노상호: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전시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편이다. 텍스트적으로 동의하지 않아도 한다. 품이 심하게 추가되지 않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원래 온라인에 있던 작업을 이용하는 거라 부담감도 없었다. 내 그림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니 전시도, 온라인 공간을 돌아다니는 이미지도 내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네트쇼에 참여한 다른 작가에게는 온라인을 위해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이미 10년째, 365일 전시 중이기 때문에 온라인 전시를 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이 내 작업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궁금해서 참여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팬데믹 이후에 나타난 온라인 전시의 결과물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전시가 그 방식을 너무 나이브하게 접근해 재미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온라인 전시에 특별히 흥미를 갖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네트쇼]를 하게 되면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닌지 늘 의심한다. 다른 기획자들이 고민해도 나온 결론이 현재의 온라인 전시라면 그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여하튼 온라인 전시와 관련해 처음의 생각과 결과물이 왜 다른지 자연스럽게 아는 방법은 같이 전시하면서 대화하는 것밖에 없어서 참여했다.

노상호 <THE GREAT CHAPBOOK 3>, 50호, 2022, 도판 제공=노상호

정소라 : [네트쇼]를 진행하고, 작가와 대화하면서 작가가 자기 작품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람들이 자기 작품 이미지를 가지고 놀며 변형하는데도 마치 관람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이문정 : 최근에는 온라인상의 전시가 그렇게 많이 시도되는 것 같지 않다. 내가 가장 많이 본 것은 실제 공간에서의 전시를 촬영해 보여주는 방식이었고, 메타버스에서의 실험 등도 흥미로웠으나 아직 기술적으로 제약이 있는 것 같다.

노상호 : 2019년부터 2020년에 상당히 많았다. 사실 기금의 영향도 크다. 또 팬데믹에 가능한 전시를 시도하다 보니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네트쇼] 미팅 때도 얘기했지만 기술적으로 고도화되지 않아도 온라인 전시가 가능한데 왜 아직 한계가 뚜렷이 보이는 메타버스나 3D 환경을 조성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온라인 전시에 대해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비용이 든다. 또 [네트쇼]와 관련해 한정된 전시 기간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온라인상의 전시를 꼭 오프라인상의 전시와 동일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수많은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데 아무도 전시라고 명명하지 않아 전시라 인식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의 웹사이트 혹은 어떤 작가의 계정이 이미 전시로서 기능한다.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인위적으로 전시를 만들지 않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전시에 대해 정리를 잘하면 되었을 문제이다.

이문정 : 보통 작가들이 자신의 웹사이트에 작업 혹인 전시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것 자체도 전시란 말인가? 전시라는 것을 인식하고 준비해야 온라인 전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식이면 인터넷에서 특정 작품을 검색해 얻게 되는 이미지를 보는 것도 전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상호 : 물론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작가, 특히 외국 작가 중에는 일반적인 방식을 벗어난 형태로 자신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또 괴상할 정도로 특이한 홈페이지 모음에 들어가 보면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 중에 전시 못지않은 결과물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그것이 미술 작업인지 아닌지 인식하지 않는 경우라 예술적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나처럼 미술계에서 작가라고 인정받은 사람이 일정한 형식으로 계정을 운영해야만 예술 작업이고 전시가 된다. 영상 작업의 경우 현장 설치와는 다르겠지만 온라인이나 유튜브에서 전시처럼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작가의 아카이빙 페이지도 전시가 될 수 있다. 나만 해도 모든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실제로 다 보지 않는다. 도판으로 공부한다. 온라인으로 전시 관련 이미지나 영상을 볼 때 내가 전시를 관람한 사람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 현장에서 보지 않아도 되는 맥락의 작가들도 많다. 앞으로 전시라고 읽을 수 있는 온라인상의 형식이 꽤 많아질 거다.

정소라 : 노상호 작가와 나는 온라인 전시에 관한 생각이 약간 달라 보인다. 아카이빙된 상태, 작가 홈페이지도 전시의 형태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전시라는 것은 하나의 주제, 키워드로 기획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작가가 말한 것은 넷 아트, 인터넷 아트 같은데 그러한 형태의 작품들이라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기획의 힘이 필요하다.

노상호 : 전시라는 건 하나의 콘셉트로 작품들을 새롭게 끌어다 놓는 거다. 어떤 기획, 초점이 있어야 전시이긴 하다. 다만 나는 작가들이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자기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또 온라인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졌기 때문에 작가와 전시에 관한 규정도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면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는데 여기에서 지도만 만들고 다음 단계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조형적으로 기상천외한 지도를 만들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올리는 거다. 그것이 유튜브를 비롯한 다른 사이트로 옮겨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계속 볼 수 있다. 1천만 뷰를 기록하고, 방문자도 몇백만 명 이상이다. 게임 내부에서 어떤 사건이 되고 유행이 만들어진 거다. 나는 이런 상황이 재미있다. 물론 작가라 불리는 사람이 만든 결과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시인가 아닌가 질문하면 나는 명확히 답하기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미술 외부의 사람과 이야기하면 모든 것을 너무 미술로 본다고 비판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작가니 그렇게 보인다. 그들이 온라인 전시스러운 것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네트쇼]에서 작가가 아닌 누군가 들어와 이런 질문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작가 혹은 작가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어떤 형태의 작업들을 하고 있다면 기획이 필요한가란 생각도 들었고, 반대로 엄청나게 기획적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최근에 이슈인 큐레이팅 계정도 이와 연결해볼 수 있다. 내가 어떤 관점을 갖고 온라인의 사건들을 캡처하고 그것을 모아 글을 쓰면 그 자체로 기획이 된다. 패션 쪽에서도 이런 일이 많다. 또 아주 예술적인 작업인데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 모두 언급하지 않는 경우를 볼 때 안타깝기도 하다. 예전에 왜 미술의 영역이 줄어드는가에 관한 대담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대안적인 형식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을 호명하는 기술이 없다 보니 더 전통적인 것밖에 말하지 못하고 아무도 안 보게 된다고, 다소 공격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는 최근 자기 계정에서 라이브를 켜고 작가를 초대해 인터뷰만 진행한다. 검색하다 오브리스트가 그 자체를 전시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을 보고 공감했다. 나 역시 해당 라이브를 봤는데 재미있었다. 인터뷰하는 작가의 작업에 대한 개념이 다 나오는데 그건 그냥 소개가 아니다. 오브리스트의 말대로 그 자체가 퍼포밍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브리스트가 그렇게 SNS 계정을 운영하는 게 바로 큐레이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계가 허물어져서 더 예술적으로 강화된 형식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참여자 송유빈, 여시영의 <유빈과 시영이 본 것들>, 부분, 2023, 도판 제공=정소라

이문정 : 내가 만나서 대화하는 작가와 큐레이터 대부분은 물리적 공간에서 실제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갖는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작가와 인터뷰 중에 작품이나 전시를 이미지 혹은 영상으로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신진 큐레이터를 만난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상호 작가 역시 그와 같은 태도가 일정 부분 있는 것 같다.

노상호 : 그렇다. 또한 실제로 작품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것은 표본 집단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전시를 해온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실제 전시장에 오는 게 좋다고 말한다. 디지털 툴을 이용해 페인팅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이미지를 인쇄하면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이 표현되지 않아서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작가에게 물어보면 온라인 전시가 더 좋다고 말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자신이 온라인에서 하는 행위가 작업인지 아닌지, 미술인지 아닌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인 사람도 많다고 본다. 그들은 온라인으로만 봐도 상관없는 형식을 가진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들을 작가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작가로 호명하지 않고 그 사람도 잘 모르겠으니 굳이 주장하지 않고 그냥 자기 영역을 만드는 거다. 그의 활동은 다양한 영역으로 명명되고 불릴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삶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고 그에 따라 전시를 감각하는 방법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고 오프라인 전시나 물성을 가진 작업에 부정적인 태도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절대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미술을 왜 했을까? 나는 미술의 물성을 좋아해 오프라인에서 전시하는 작가이다. 다만 그와는 전혀 다른 온라인의 경험도 좋아하는 것뿐이다. 인터뷰 때 두 이야기를 모두 다 하는데 당연히 강해 보이는 쪽만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

이문정 : 상품, 상업화만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작업이 복제, 변형, 배포되는 것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작품의 고유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이 온라인상에서 많이 소비될수록 작가의 영향력이나 권력이 더 강해진다. 오히려 작가적 아우라를 공고히 할 수 있다.

노상호 : 그렇다. 나는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를 포기한다고 말한 적 없다. 사람들이 내 작품 이미지를 많이 복제할수록 당연히 나의 아이덴티티가 세질 수밖에 없다. 내 이미지가 많이 퍼질수록 고유성은 더 짙어지기 때문에 많이 퍼질수록 좋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자기의 작품이 변형되거나, 작품의 의도가 오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복제되고 변형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생각이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할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미술 전문가들도 내 작업을 오독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독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작품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순간부터 또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되니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나와 나의 작품을 뭐라고 해석하고 평가하는지 신경 쓰며 메이게 된다. 얼마 전 정서경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자기가 설정한 5명 이하의 사람들에게만 피드백을 듣는다. 안 그러면 글을 쓸 수가 없다’는 대목에 공감했다.

이문정 : 작품의 배포나 변형과 관련해 여태까지 한 번도 당황한 적 없나?

노상호 : 상업적으로 사용되었을 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없다. 앨범 재킷과 같은 소위 상업적인 작업을 하면 내가 만든 이미지가 정말 많이 훼손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문정 : 먹지의 사용도 치밀하게 계획한 것처럼 보인다. 의미적으로 완벽히 연결된다. 말 그대로 복제의 아날로그 버전이다.

노상호 : 나는 먹지가 나를 굉장히 잘 나타내는 도구라 생각한다. 그러나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작업에 관한 텍스트(개념)를 완벽히 적고 작업을 시작하는 작가는 0.1% 정도라고 말한다. 보통은 작업한 뒤 되돌아보며 개념을 선택해나간다. 나도 그렇다. 나는 먹지가 편했다. 빨리 그리고, 대고 그리고 싶어서 선택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 의도에 정말 잘 맞았고 내 작업과 관련한 많은 의미가 중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문정 : 작가들과 인터뷰할 때, 왜 이 재료를 쓰고 왜 이 색을 선택했을까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을 한 뒤 물어보면 ‘그냥, 보기 좋아서’ 등의 답변이 돌아올 때가 많다.

노상호 : 그렇다고 그에 관한 여러 추측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냥 보기 좋아서 했다는 답변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겼다. 내재화되어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게 된 것에 가깝다. 많은 학생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개념, 작업의 논리적 타당성 등을 확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실제로 수업 중에 그렇게 요구받기도 한다. 나는 그런 상황에 부정적인데, 그렇게 억눌리다 보면 작업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이문정 : 정소라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와 관련해 “이번 전시는 정기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는 노상호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모티프로 하여 예술가의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적 층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적 층위”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부탁한다.

정소라 : 디지털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존재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고, 또 여러 층위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게 원본과의 관계 속에서의 어떤 존재일 수도 있고, 아무리 원본이 있어도 디지털화되는 순간 이것은 독립된 하나의 개체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작가가 그걸 다시 재생산했을 때와 완벽히 그 작품과 관련이 없는 참여자가 그걸 소비하고 재생산했을 때 디지털의 어떤 존재적인 가치, 의미, 이런 것들의 층위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

참여자 김재아의 디지털 이미지, 부분, 2023

이문정 : 참여자를 사전에 섭외하기도 했고, [네트쇼] 인스타그램에서 공개적으로 모집한 뒤에도 소수를 선택했다. 어느 정도 이상의 완성도를 위해서 선정한 것인가? SNS의 속성을 이용하는 기획임에도 큐레이터의 의도에 부합할만한 사람을 선정해 참여시킨 이유가 있을까?

정소라 : 온라인의 특성이 굉장히 유동적이기 때문에 그 특성을 너무 고려하면 기획자인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형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안정적으로 가기 위해 오프라인 전시 형태를 따르면 온라인의 특성이 살지 않는다. 그래서 [네트쇼]를 진행하며 중간 지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네트쇼] 인스타그램 계정의 비밀번호를 공유하며 참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내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대중을 참여자로 선정하기엔 위험성이 있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홍보나 상업적인 용도로 악용될 수 있었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올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열어두는 건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또 기획자인 내가 구상하는 결과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전시가 만들어지려면 어느 정도는 한정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노상호 :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은유이다. 나는 전시에 모두가 참여하는 게 SNS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지 모두가 실제로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오프라인 전시도 같다.

이문정 : 이것도 공통 질문이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는가?

정소라 : 노상호 작가가 인스타스램이나 SNS에 익숙했기 때문에 [네트쇼]를 하나의 실험이나 시도로만 대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노상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누가, 어떻게 다르게 읽고, 다르게 배열하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다 보니 앞선 전시에선 작가들이 80% 정도 아이디어를 주고 내가 살을 붙였다면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나는 작가가 매일 자신의 계정에 작품 이미지를 올리는 분이니 [네트쇼]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까, 어떤 시도를 할까 궁금했다. 기회가 된다면 노상호 작가가 구상하는 온라인 전시를 보고 싶었던 거다. 개인 계정에서 진행 중인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스타그램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궁금했다. [네트쇼]의 특성, 지향은 작가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전시이다. 기획자가 장황한 콘셉트를 써 내려가는 전시가 아니라 작가들이 전시 기간 내내 자유롭게 유동적으로 어떤 형태를 만드는 장을 만드는 전시이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이미 전시를 하고 있는 작가이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필요성이 덜했을 것 같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전시 준비 기간이나 지원금 등을 더 여유 있게 제공했어야 한다. 또 참여자들과 조율해나가는 것도 예상보다 어려웠다. 가능성을 열어두려 한 것이 전시 자체를 느슨하게 만든 것 같다.

노상호 : 미팅 때도 말했고, 조금 전에도 말했는데 나는 온라인 전시는 오프라인 전시와 그 형태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바뀌는 전시니까 기간이나 제목도 없고, 언제나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고착화된 전시의 형식을 온라인에 가져오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계정을 새로 만들어 전시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미 나의 계정들에서 알아서 작동하고 있으니 내가 또 하나의 계정에 작품을 게시하는 건 의미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오프라인이라면 미술관, 갤러리가 바뀌어 전시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만으로 새로운 긴장감을 줄 수 있지만 온라인은 그렇지 않다.

정소라 : 온라인을 활용하고 있지만, 나 역시 오프라인에서 전시 기획을 시작했던 사람이다 보니 고정화된 어떤 관념을 완벽하게 못 버리는 것 같다. 또 노력해도 세대 문제를 완벽히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노상호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를 던져줄 때마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되고 자극을 받을 수 있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