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인터뷰 [예술의 경계]
키워드 인터뷰는 동시대 예술의 이슈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미술인들의 답변을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답변은 인터뷰를 진행한 순서대로 업데이트 됩니다.
질문
오늘날 예술적 결과물들을 보면 장르 간의 경계, 예술과 일상의 경계 등이 해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강화되고, 엘리트주의가 심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해석이 공존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예술이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작가 백현진 (Bek, Hyunjin) 2019. 04.23. (인터뷰-2019. 04. 11.)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예술이다’라고 할만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인가? 예술은 계속 변하는 거다. 예술의 패러다임도 계속 바뀐다. 내가 생각할 때 예술인 것과 예술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내가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다른 말로 ‘이런 게 진짜 예술이지’라는 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말로 ‘이런 건 진짜 예술이 아니지’라는 것도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다 다른 것처럼 예술은 모두에게 다 다른 것이다. 작가들은 그저 각자 자기의 예술을 만드는 거다. 나의 작업을 예술이라 불러도 되고 안 불러도 되는 것 같다.
작가 이동욱 (Lee, dongwook) 2019. 05.21. (인터뷰-2019. 05. 13.)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예술가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부분은 작가 본인만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밖에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관객이 필요할 것이다.
작가 이동기 (Lee, dongi) 2019. 05.21. (인터뷰-2019. 05. 14.)
특히 현대 미술에서, 작품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예술을 성립시키는 절대적 조건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제도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근대(modernism) 이후 순수미술의 개념이 성립되고 예술이 교회나 왕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서 미술관, 갤러리, 컬렉터, 비평가, 저널리즘 등이 참여하는 거대한 제도 혹은 시스템이 형성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예술가 또는 예술 작품은 그와 같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완전히 포착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제도와 작업 사이에 모종의 긴장 관계가 발생하는데, 그런 상황 속 어느 지점에서 예술이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시스템에 저항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작가들은 의식적으로 제도를 거부하려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 제도에 충실한 작업을 하게 된다. 반면에 어떤 작가들은 제도에 편입되려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낯선 작업을 하게 된다. 현대 미술에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해체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일상이란 사람들의 생활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도의 바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뒤샹(Marcel Duchamp), 피카소(Pablo Picasso), 워홀(Andy Warhol) 심지어 다빈치(Leonardo da Vinci)나 마네(Edouard Manet)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등장하는 모든 의미 있는 예술가들은 제도와 그 외부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예술계가 할리우드(Hollywood) 영화계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할리우드는 매우 강력한 시스템이지만 끊임없이 유럽이나 아시아의 실험적인 감독들을 영입함으로써 스스로 경직된 제도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건 마치 뱀파이어가 새로운 피를 수혈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