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6.

본 글은 2024년 4월 19일에 진행된 이문정과 강현아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작가 강현아(Kang HyunAh)

LEE : 이문정, Kang : 강현아

LEE : 인터뷰하는 모든 작가께 하는 기본 질문이다. 미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 미술, 특히 환경 조각을 전공하게 된 계기와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같이 말해주면 좋겠다. 첫 개인전 [단:상](2012)은 디지털 드로잉 혹은 종이에 먹과 색연필 등을 활용한 평면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삽화 혹은 캐리커처 분위기도 풍기는 작품들이다. 전시 제목 그대로 일상에서 작가가 느끼고 생각한 단상들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작가에게 첫 개인전은 남다른 의미가 있을 텐데, 이러한 작업을 선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Kang : 우선 미술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면 방바닥에 누워서 낙서 같은 무언가를 끄적였던 것 정도이다. 그 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미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처음에 중어중문학 전공으로 대학에 붙었지만 고민하다가 비실기 전형으로 디자인과에 다시 입학했다. 당시까지는 미술을 하고 싶다 정도였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성실히 학교에 다녔고, 졸업 후 취업을 알아봤는데 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에 역부족이었다. 낙담하던 중에 제빵을 배웠는데 나와 맞았는지 빵을 정말 잘 만드는 거다. 얼마 안 되어 취업도 제안받았다. 그런데 손으로 뭔가를 만들다 보니 빵이 아니라 미술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그래서 미술학원을 알아보고 제대로 미대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회화도 해보고 싶었지만, 물감값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입시를 준비하며 재료를 여러 번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조소를 선택했다. 물론 이건 입시 미술에 한정된 거였고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나에겐 미술을 전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고 대학에 붙지 않으면 취업할 예정이었는데 정말 다행히 붙었다.

<성장통> 25x17cm, 종이에 먹, 2011 첫 개인전 [단:상] 출품 작품 중 하나, 도판 제공=강현아

사실 대학에 들어간 뒤 고전적인 조각들을 배웠고, 졸업 후의 진로를 고민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미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학교도 답답했다. 그래서 3학년 때 1년 휴학했고,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 취업용 자격을 위해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그러던 중 미술 관련 사이트를 전전하다 ‘오픈스튜디오네트워크’ 웹사이트가 흥미롭고 재밌어 보여 용기를 내어 전화해 웹사이트에 공개된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곳은 미술인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설립된 단체 ‘미술인회의’와 연결되어 있었다. ‘미술인회의’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전국적으로 작가 작업실 상황을 파악하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공론화하는 ‘오픈스튜디오네트워크’였다. 나는 자원봉사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작가를 만나고 인터뷰했다. 당시가 2006년 경인데, 나는 일주일의 반은 학원에 다녔고, 나머지 반은 동시대 미술 현장을 경험했다. 막연하게 작가를 갈망하던 학생이 작가들을 실제로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가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졌다. 이번에는 현실 속에서 매력을 찾은 거다. 그 덕분인지 복학한 뒤 학교생활도 재미있어졌다. 아마 3학년 이후 복합 매체를 사용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더 그랬을 거다.
하지만 졸업 후 바로 작가가 된 건 아니다. 조형물 관련 회사에 취업했는데 두 군데 모두에서 해고당했다. 또 미술 관련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일을 마친 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다. 그때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힘들었고, 그럴 때마다 그림을 그렸는데 이게 모여 첫 개인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힘들 때 나 자신의 마음 상태나 외부와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 등을 그린 작품들이다. 비수기 때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게 해주는 공모에 이 그림들로 지원했고 전시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 활동을 돌아보면 첫 개인전이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매우 의미 있는 전시이다. 해고당하고 임금을 떼인 나에게 보상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게 개인전이었던 것 같다. 개인전 이후 대학원을 다니는 내 동기들이나 작업하는 친구들의 공부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학부 때와는 깊이가 달랐다. 또 그들이 미술계에 진입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 무리에 합류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때부터 생계를 위해 미술 수업을 하면서 작업을 했고, 당시 함께 했던 동료들과 함께 자연스레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LEE : 첫 개인전 출품작들을 보면 종이에 먹을 쓰고 있는데 남다른 이유가 있을까?

Kang : 미술을 전공하기 전에도 뭔가를 끄적이는 게 습관이었다. 특별한 생각 없이 다이어리에 기록하듯 그린 거다. 왜 먹을 선택했는지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자연 재료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를 때도 내가 편하게 만질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다. 또 너무 차갑거나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재료는 거부하는 것 같다.

<신약초 시리즈> 캔버스에 아크릴, 수채화 채색, 62x42cm, 2017, 도판 제공=강현아

LEE : 첫 개인전 이후 전시 [신양생](2017)에서는 전혀 다른 주제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약초 건강식품 등의 효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휘둘리는 사람들, 심지어 건강식품이나 영양제를 과다복용하거나 영양제를 먹으면서 한편에선 건강에 치명적인 행동이나 음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또한 건강 혹은 병간호에 정성이 중요하지만, 그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평가 기준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인 관심사와도 연결되는 작업이라 특히 흥미로웠다.

Kang : 내가 대학교 때 가족이 병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러자 원래 약재나 청 담그기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가 거의 매일 약재를 조사하시고, 우리 가족은 건강에 좋다는 약재를 달이거나 우려서 먹게 되었다. 특히 본초학이 흥미로웠는데, 약효를 결정하는 게 식물(약초)이 가진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가 붓기를 없애주는 이유는 물을 뱉어내는 힘 때문이고.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약초는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산소를 뱉어내는 식물이어서이다. 실제로 서식지의 환경 조건에 따라서 똑같은 쑥과의 식물이어도 흰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들의 약성이나 생존 전략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나는 게 흥미로워서 시각화하게 되었다. 반대의 예로 과거와 달리 지력이 약해져 인삼의 효능이 예전 같을 수 없다고 한다. 또 불로장생 같은 만병통치 약초는 없고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한 것들이 약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약초의 효능을 잘 알려면 많이 먹어보고 관찰해야 하니 오히려 우리 주변의 것들이 약재로 쓰인다는 거다.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의 물성이 약성으로 드러나게 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약재 작업을 하게 되었다. 한편 약재 작업은 2015년도의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REAL DMZ PROJECT)>(2015)와도 연결된다. DMZ의 환경은 어떨지, 지뢰가 있고 늘 감시받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어떤 생존 전략이 있을지 생각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LEE : 작가가 적은 글과 드로잉은 어느 정도까지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상상은 어느 정도 더해졌는가? 100% 완벽한 상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작업은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약초 시리즈-어디에나 있을법한, 어디에도 없을 법한 약용식물>(2017)을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Kang : 나는 상상의 여지가 많은 것에 관심이 있다. DMZ도 마찬가지였다.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조금만 바꿔도 굉장히 그럴싸해 보일 수 있다. 사실 이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특히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약초나 건강식품의 효능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효능이 과장되고, 사람들은 그것에 쏠리고, 자본이 모인다. 처음부터 자본에 의해, 즉 상업적인 이윤을 위해 살짝 변형되어 유포될 수도 있다. <약초 시리즈-어디에나 있을법한, 어디에도 없을 법한 약용식물>도 이름을 조금씩 바꾼다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씩 변형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그 중간을 오가는 걸 좋아한다. 일종의 놀이이기도 하다.

LEE :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관객이 자유롭게 해석한다 해도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Kang : 앞서 말했듯 주변의 평범한 것들에서 약성을 찾고 그것을 약초라고 하듯이, 주변의 버려진 사물이나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이 가지고 있을 서사나 물성을 약성처럼 유의미한 것으로 바꿔보자는 마음으로 상상을 덧붙였다. 건강뿐 아니라 사람을 혹하게 하는 것들에 휩쓸림은 살아가기 위한 노력 중 하나이다. 나도 포함되는 이야기이다. 끝없이 현혹되는 것은 인간의 불안한 삶, 죽음 앞에서의 무력함이 계속 건드려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걸 자본주의나 특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용하는 거고. 그래서 안쓰럽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믿음을 갖고 계속 좋다는 것을 챙겨 먹는다.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도 바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건 인간의 생존 전략 중 하나인 것 같다.

<기이한 dmz 생태누리공원> 파주 캠브 그리브스, 2018, 도판 제공=강현아

LEE : 그런데 그림책을 보면 말 그대로 잘 그렸다.

Kang : 나는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배운 적 없어서 열등감 같은 게 있다. 색연필로 그리는 이유도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어서다. 너무 어려서부터 미술을 전공하면 대학 들어온 뒤 그리기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데 나는 늦게 시작해 지금도 재미있게 그리는 것 같다.
그림책과 관련해 ‘리얼 DMZ 프로젝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강원도 철원에서 <동송 DMZ 생태관광>(2018)을 발표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DMZ를 알고 있었고 그 외의 정보는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약초에 관심이 있다 보니 DMZ에 사람이 접근하지 못해서 약초 그대로의 모습이 지켜지고, 신비로운 약초가 정말 많다는 설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약초꾼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약초꾼은 DMZ에 들어가 봤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DMZ를 휴전서 바로 근처가 아니라 양구 근처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약초꾼의 말도 과장인지 사실이지 명확하지 않다.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사실 약초꾼을 따라 현장에 가고 싶었는데 무산되었다. 그래서 혼자 그 근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깻잎 밭을 발견했는데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밭에 못 들어오게 개인이 만든 철조망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그 철조망이 국가 안보 때문에 설치되었던 것들과 너무 비슷해 보였다. ‘전시’라는 단어도 ‘展示’, ‘戰時’로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동송 DMZ 생태관광>(2018)을 깻잎 밭 현장에 설치했다. 이 작품은 이후 여러 곳에서 전시했는데, 파주 캠프 그리브스에 설치된 <기이한 DMZ 생태누리공원>(2018)을 보고, 출판사 ‘소동’ 대표님이 출간을 제안해 주셔서 그림책 『기이한 DMZ 생태공원』(2020)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이전 약초 작업을 보고 사람들이 작품에 글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같이 있으니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이한 DMZ 생태공원> 소동출판사, 2020, 도판=강현아

LEE : 혹시 그림책 출간이 미술 교육 활동으로 이어진 것인가? 미술 교육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는 것 같다.

Kang : 생계를 위한 것도 이유에 있을 텐데, 사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일도 가능하니 그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내 작업과 연결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기를 좋아한다. 또 미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며 함께하는 게 좋다. 교육 프로그램이 나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작업 세계와 교육관이 일치하는 작가는 아니다. 오히려 분리하는 편에 가깝다.

LEE : 작품이 설명적이라는 것은 장단이 있다. 대표적으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너무 나열하는 것 아닌가, 여지를 주는 데에 방해되지 않을까 같은 의견이 나올 확률이 높다.

Kang : 그 부분이 내가 보완해야 할 점이라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많이 지적받는다. 작업이 어느 정도 쌓이니 잘 드러나서 그 부분을 고민하게 된다. 매체에 따라 조절을 해야 할 것 같다.

LEE : 서양 의학에도 같이 관심을 가질 법한데 어떤가? 그리고 약초에 대한 검증된 의학적인 자료들이 꽤 많을 텐데 그런 자료들을 어디까지 조사하며 진행했는지, 작가의 상상이 어느 선까지 허용되었는지 궁금하다.

Kang : 당시 내가 양생(養生)이란 단어에 푹 빠져있었다. 그래서 ‘콘크리트 양생’처럼 다른 물질에 양생을 시도해 길러보고 보양해 보기도 했다. 서양까지 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게 내가 워낙 관련성이 있는 옆쪽(다른 것)으로 확장되는 타입이어서이다. 당시에도 몸으로 살짝 이동했다. 몸이 곧 자연이고 인간은 소우주라는 너무 익숙한 문장에 집중하며 요가 같은 몸 관리 쪽으로 넘어갔다. 코로나 때였는데 당시 고미숙 선생님의 이른바 ‘동의보감’ 3종 세트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엑스레이처럼 몸을 다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상상의 여지가 큰 동양의학 그림들에 더 끌리기도 했다.

LEE : <내장 악보(Organ music)>(2021)의 경우 인간의 몸은 하나의 세계라는 익숙한 문장을 재현한 것 같다. 한편으로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첫 개인전을 비롯해 동양화적인 분위기가 나는 드로잉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데 그것이 한의학에 관심을 갖는 것과 연결되는가? 또 2023년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프레젠테이션 및 비평가 리뷰’ 때 말했 것처럼 담백한 분위기가 여기서도 찾아진다. 재료뿐만이 아니라 표현 방식에서도 그렇다. ‘세련되다 아니다’의 문제를 말한 것은 아니다.

Kang : 기억한다. 그때 ‘담백’하다는 표현이 반가웠다. 기술이 부족해 보일까 걱정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재료 선택의 모든 이유가 동양의학을 다뤄서는 아니다. 매끈하기보다 투박한 듯 자연스러운 재료들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자연에서 와서 정제가 덜 된 재료들이 좋다.

<내장 악보(Organ music)> 종이에 색연필, 78x108cm, 2021

LEE : 건강과 양생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반대인 질병과 죽음을 그만큼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가 생각하는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Kang : 동양에서는, 불교만 봐도 인연설(因緣說)이나 연기설(緣起說), 아니면 동전의 양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생과 죽음을 말한다. 마치 호흡할 때 들어 마시고(생) 내쉬는 것(사)처럼 둘이 같이 작용해야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죽음의 세계를 가보지 않았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그 기저에 깔린다. 아마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 상태일 것 같은데, 나의 경우 무엇보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게 가장 무섭다. 하나의 과정이라고는 이해는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LEE : 전시 [사물들의 이야기](2022)에 출품된 <금문(Golden Gate)>(2022)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해당 전시에서 일상의 사물을 수집해 부장품으로 꾸며 전시했다. 개인적으로 과거의 유물 중 상당수가 당시에는 일상의 사물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소개 글에 적힌 것처럼 당연히 인류세를 생각하게 된다. 작품 자체는 공감이 가고 시의적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 어떤 작업보다 직접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현아의 작품 중 일부는 이처럼 의미가 바로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부분이 담백하다는 인상을 준다.

Kang : 내 기억에 서문을 써주신 분이 원래는 죽은 사람을 위한 용도인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생(삶)의 공간에 함께 있으니 자기 쓰임을 다 했다고 혹은 하지 않았어도 우리의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일회용품 환경문제를 인류세로 연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간은 약 100년, 플라스틱은 500년 정도를 산다고 했을 때 플라스틱이 인간보다 오래 산다. 그러면 그것을 사용하던(사용하다 버린) 인간이 죽고 난 뒤에도 남을 덴데 나중에 오늘날 청자나 백자가 소장되고 전시되듯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만든 작품이다. 또한 유물을 통해 고대 문명을 추측하고 이해할 수 있듯이 그것들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인간을 애도하는 사물로서 존재해 현대인들의 삶을 대변해 줄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이 다 합쳐져 부장품이란 설정으로 만들었다.

<금문(Golden gates)>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가변 크기, 2022, 도판 제공=강현아

LEE : 과거 이집트 문명만 봐도 미술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승에 갔다가 이승에 돌아올 때를 위해 만들어진 미술인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실제로 부장품을 발굴해 과거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 Kang : 죽음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 이집트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삶과 죽음은 잠시 동안의 여행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흘러 영혼이 다시 내 몸에 들어간다는 가정하에서는 확실히 덜 무섭다. ‘부장품(실용품)이 예술이 된 사물들, 과거의 사물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다시 보여지는 상황을 한번 만들어보자, 죽음의 세계에 인간의 삶에 있던 무언가가 놓이면 덜 무섭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시작했다. 또 인간이 살다가 죽으면 결국 남는 것은 죽음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다. 당시에 브론즈라는 금속, 즉 영구적인 재료와 대비되게 스티로폼을 썼다.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사물 중 하나란 이유도 있었다. 예술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 어디에서든 쉽게 만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가벼운 재료 위에 금색 칠을 했다.

<고라니 수영장> 1채널 영상, 버려진 아이스박스 스티로폼, 석고붕대, 석고, 블라인드, 가변 크기, 2023, 도판 제공=강현아

LEE : [조각레지던ㅅ-용심과 차원-](2023)에서 발표한 <고라니 수영장>(2023)은 동물들의 평화로운 장소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동물원이 연상되기도 한다. 물 위의 그림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분위기가 오묘하다.

Kang : 그곳에 처음 갔을 때 낯설고 아무도 없고, 조용했다. 약간 무섭고 음침한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 어떻게 있었는지 아찔하기도 한데 폐허 같은 데에 곳곳에 놓인 조각품들, 유원지의 흔적들이 초현실적이기도 했다. 정말 뜬금없어 보이는 데에 작품이나 사물들이 놓여 있다. 저지대여서 장마나 폭풍이 오면 항상 물이 차 있고, 놀이기구에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분위기가 독특했다. 내가 죽은 고라니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원래 그곳이 야외 수영장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두려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부조화스러운 것들이 조각 레지던시라고 생각하면 바로 이해된다.

LEE : 이제 <빈 전시장>(2019~)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작가에게 이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을 처음 듣고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 시작과 전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Kang : <빈 전시장>은 미술지원제도에 대한 반응 혹은 그로 인한 현상을 관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끝없는 경쟁 구도 안에서 누군가는 탈락하고 낙담하는 상황이 생긴다. 작가들은 공모를 준비할 때 전시하게 될지, 못 할지 결정되지 않은 공간에 가서 관찰하고 실측하며 선정 가능성에 기대를 싣고 전시 계획을 짠다. 지원받아야 작가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의 규모가 클수록 작가로서의 욕망이 자라나는 이상한 현상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그리고 공모에 떨어지면 그 모든 욕망과 계획이 무너진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짜증과 화남이 뭉쳐있는 상황 속에서 작업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는 결핍이 ‘빈 전시장’을 실행하는 동력과 용기를 만들어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일정을 보면 전시장이 비어있는 시기가 있다. 공모에 떨어져 전시할 공간을 온전히 지원받지 못했지만, 비어있는 잠깐의 시간에 무엇이라도 시도하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연락해 허가받은 곳이 수림아트센터였고 두 번째 전시장은 친한 작가가 개인전을 여는 세마(SeMA) 창고였다. 이후 ‘빈 전시장’은 전혀 연고가 없는 곳, 가까운 작가의 전시 공간처럼 지인의 도움을 받은 곳 모두에서 진행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 맞게 매번 새로운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빈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나의 행위는 점거도, 적극적 침투도 아니다. 그보다는 가능한 시간 동안 잠시 쓰다 나오는 것에 가깝다.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이어 나가야 한다는 마음도 크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흘러가다 보니 9회나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수줍음이 많은 편인데 아무도 없는 고요한 상황이 자유로움을 만들어냈고, 평상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실행할 수 있었다. 미술 관계자도 보기 힘든 특정한 공간의 뒷면을 볼 때도 있다. 반대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했을 때는 라이브로 중계되다 보니 오차가 없도록 사전에 완벽히 계획하고 동작 하나하나를 연습했다.

[사랑의 반대는 버림], 최희정 작가와 빈 전시장, 2024년 1월, 도판 제공=강현아

LEE : 작년에는 최희정 작가의 개인전 [사랑의 반대는 버림](2023)에서 진행했다.

Kang :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 함께 입주했었던 최희정 작가의 제안을 받고 진행했다. 전시 ‘사랑의 반대는 버림’이 지원금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도 내가 ‘빈 전시장’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연결 지점이 있었다. 최희정 작가는 작가로서의 창작활동과 생계를 위해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 또 대부분의 작가가 개인전을 마친 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지친다. 마침 최희정 작가가 전시를 정리하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해 나무의 형상화와 요가를 응용해 만든 동작들을 반복하며 내가 하는 질문에 최희정 작가가 답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사랑의 반대는 버림’이란 제목을 보면 무엇이든 주어가 될 수 있고, 주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생성된다. 그래서 나도 주어가 없는 상태의 질문을 준비해가게 되었다. 관객 없이 최희정 작가와 나, 둘이 진행했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LEE : 지금 작가가 해준 답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아마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전시와 전시 사이의 빈 공간에서 진행한다. 경우에 따라 앞선 혹은 이후의 전시와 관련한 설치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무언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물론 영향을 받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그것이 <빈 전시장>의 특화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게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작가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완전히 빈 공간에서 즉 무와 같은 공간에서 진행할 때와 전시의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진행할 때의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공통점 등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도 있어 보인다. 조금 더 체계화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어떤가? 이제 <빈 전시장> 프로젝트의 시간이 쌓여서 호의적으로 공간을 제공해 줄 기관들이 꽤 있을 것 같다.

Kang : 아르코미술관의 경우 홍이현숙 작가님이 먼저 제안했다. 또한 팬데믹 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전시장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의미 있었다. 나에게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어느 때보다 내가 이곳에서 미술적 행위를 하고 싶고, 할 수 있다는 욕망을 강하게 느끼며 임했다. 그런데 아르코미술관과 홍이현숙 선생님의 전시 [홍이현숙 : 휭,추-푸](2020)가 가진 힘이 컸다.
사실 첫 시작은 그렇게 원대하지 않았다. 기회에 대한 나의 갈망과 좌절 등이 반영된, 조금은 저항적이면서도 틈새를 공략하는 그런 작업이었다. 번외 작업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 나에게 공간을 제공해 준 기관의 관계자분이나 작가분들이 정말 재미있어하고 그 과정에서 개념적 정서적 나눔이 일어나는 것 역시 나의 성향에 맞았다. 그런데 그 어떤 작업보다 많이 이야기되고, 아티스트 토크 등에서도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작업이 되었다. 제도 비판으로 해석하는 분도 있었다. 물론 내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이 주목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말 다양한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 조심스러워진 것도 있다. 오늘 대화도 <빈 전시장>에 대한 고민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이제 강현아의 특화된 프로젝트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시점이 된 것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