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04.
본 글은 2024년 4월 15일에 진행된 이문정과 최정은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LEE : 이문정 , Choi : 최정은
LEE : 모든 작가에게 드리는 첫 질문은 미술에 관한 첫 기억과 미술을 전공하게 된 계기이다. 또 유학했던 이유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도 같이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
Choi : 부모님이 일식집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두 분 다 항상 일하러 나가셨고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그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잘 그리는 편이었던 것 같다. 가장 오래된 미술에 관한 기억은 유치원 다닐 때 나비를 그렸는데 보통은 나비의 양쪽 날개가 다 보이는 정면의 모습으로 그리는데 나는 나비의 측면을 그렸다. 당시 선생님과 어른들이 어린아이에겐 충격으로 남을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보이셨다. 그날 이후 선생님이 부모님을 부르시고, 이 아이는 영재이니 미술을 꼭 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동네마다 그림 잘 그린다,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있는데 내가 그중 한 명이었다. 자연히 내 인생에서 그림 외의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미술로 돈을 벌려면 디자인을 전공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해서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입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수능을 망치고 인생에서 첫 좌절을 맛봤다. 그래서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갔는데 얼마 못 다니고 모든 것을 중단한 뒤,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아 호주로 건너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디자이너의 작업에도 당연히 자신의 창작과 개성이 담긴다. 나는 대중 혹은 클라이언트를 맞춰야 한다는 데에서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건너갔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유학에 관한 어떤 준비도 없이 그냥 떠났기 때문이다. 거의 1년 동안 혼자 여행하고 돌아다니면서 나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호주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시드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에 가서 앉아 있었는데 그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너무 좋았다. 내가 미술이라는 영역의 일부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미술과 관련된 모든 직업을 다 조사했다. 그러다 최근에 주목받는 작가 중에 내 마음에 드는 많은 작가가 골드스미스 대학교(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출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yBa(young British artists)이었다. 그곳이 내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일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목표를 세우고 준비해서 골드스미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데, 강남에서 유명한 유학 전문 학원에 다녔는데 외부 크리틱 시간에 처참한 평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고민하다 부산으로 내려와 혼자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지원했고, 합격했다. 지금 보면, 작품에 대한 그 정도의 비판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놀랐던 거였다.
이후로 내가 작가가 될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조차 안 했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일 당장 그만둘 수도 있다. 작가의 길이 당연하지만, 목을 매거나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열망에 함몰되면 아무것도 못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쏟아내지만, 만약 안 되면 내 인생에선 여기까지인가 보다 생각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작가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그걸 안 해도 괜찮다는 정도로 자유로운 태도를 갖는다. 여담인데 나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공장에서도 일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나에게 맞는 것 같다.
LEE :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점, 즉 성인이 된 이후 익숙한 곳을 떠나 미술을 배우고 접했다는 점의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Choi : 나는 좋았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미술까지 한국에서 배웠으면 너무 안주했을 것이다. 외국에 가서, 낯선 백지상태에서 흡수하고 반응하게 되니 더 유연해질 수 있었다.
<선의 샤워> 2020, 실 커튼, 센서, 모터, 빈백, LED, TV 및 혼합 재료, 가변 설치, 도판 제공=최정은
LEE : 최정은의 작업에는 붉은 색조가 자주 등장한다. 전시마다, 작품마다 상당히 다채롭게 사용한다. 물론 보라색도 등장하고 빨간색만 쓰는 것은 아니지만 색조의 스펙트럼이 명확하다.
Choi : 솔직히 입시 미술을 준비할 때부터 나는 색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색 조합이 어렵다. 조형적인 부분, 형태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색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식별하고 해석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인간 외 다른 생명체들은 다른 방식으로 색을 인지한다. 인간 대부분이 보는 색들을 조합하는 게 나에게는 왜 힘들게 느껴지는 건지 고민하다가 하나의 공간 안에 자리하는 작업들에는 한 가지 색을 선택,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색의 힘이 정말 강해졌고, 자연히 내가 이 색을 써야 하는 이유와 효과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나의 작업은 생명체의 움직임과 그 기제에 대한 것이기에 빨간색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본질적인 색이란 생각도 든다. 또 어떤 작업에서는 여성의 신체 부위(의 상징)에 손을 넣는 식으로 경계를 허무는 행위를 하기도 하는데, 그와 연결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피와 연결되고 몸의 경계에 상처(흠)가 생겨 보게 되는 빨간색은 두려움의 색이다. 우리가 늘 갖고 있지만 실제로 보게 되면 두려움을 갖게 되는 가장 원초적인 무언가의 상징으로 빨간색을 선택했다.
LEE : <반복되는 타살>(2022)에서는 작가의 말대로 강력한 색채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상체와 무릎의 굴곡>(2020), <선의 사워>(2020)를 비롯해 최정은의 작품에서 빨간색이 주조 색인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빨강과 빛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 주술적이면서도 에로틱하다.
Choi : 나는 애가 정직한 빛 아래 작업을 놓는 방식에 취약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조명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나의 작업들은 조명 효과에 더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했다. 이에 대해 조명이 너무 1차원적이지 않냐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강력한 효과라고 생각해 지속해 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오브제의 한계를 숨기기 위한 장치로 강한 조명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인위적인 조명 효과가 없었던 ‘챔버1965’에서의 개인전이 의미 있다. 강약 조절을 할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기지 않았나 싶다.
LEE : 원래 빨간색을 좋아하는가?
Choi : 아니다.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업에 자주 등장하니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내 주변 물건에 빨강이 등장하기도 한다. 취향이 바뀐 것은 아니고 익숙해진 느낌이다. 초록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역시 인체에 등장하는 색이다. 복숭아색도 살갗이나 피부가 한 번 덮인 색 같은 느낌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빨간색에서 무속의 느낌을 많이 받는 듯하다. 주사도 붉은색이고. 그러다 보니 기대한 것 이상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LEE : 그러면 한동안 붉은 색조가 지속될 것 같은가?
Choi :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내가 만든 허물 같은 복식을 입고 산에 가서 행위 한 뒤 그 사진을 선보일 계획 중인데 그때도 빨간색이 등장한다. LEE : 퍼포먼스로 확장되는 것인가? 사실 최정은은 왜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지 궁금한 작가 중의 한 명이다. 행위하는 존재(작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면 무속적인 인상이 더 강해질 것도 같다.
Choi :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관중 앞에서 하는 공개 퍼포먼스는 아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까진 아니지만, 멍게신의 흔적을 따라가는 무언가가 될 것 같다. 내가 멍게신의 허물을 발견해 산에서 그것을 쓰고 사라진다는 설정이다. 준비 중인 전시의 주제와 연결된다.
<두 번째 행하시는 말씀> 2023, 천, 실, 퍼, 철 등 혼합재료, 가변 설치, 도판 제공=최정은
LEE : <두 번째 행하시는 말씀>(2023)의 경우 멍게인 동시에 여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형태이다. 그 안에 손을 넣는 행위 자체로 불편함 혹은 조심스러움을 유발한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의 <혼(Hon)>(1966)이나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정 부분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상대적으로 최정은의 작업을 언급할 때 페미니즘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게 전달되어서일까? 페미니즘으로만 한정되지 않는 것이 긍정적이지만, 한 번쯤은 주제, 재료, 형상 등에서 정식으로 언급할 필요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
Choi : 나는 작업할 때 오롯이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토해내는데 내가 여성이니 당연히 페미니즘적인 무언가가 담긴다고 생각한다. 내 작업의 한 부분에 페미니즘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작업할 때 특정한 이즘이나 개념을 염두에 두진 않는다. 내 작업 스타일상 그렇게 되면 특정한 카테고리에 갇혀버릴 것이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내 작업에 페미니즘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내가 진심으로 페미니즘과 관련된 목소리를 내는 것인지, 그냥 내게 나오는 건지 구분을 명확히 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후자도 유의미하겠지만. 물론 관람객들이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찾아진다고 말해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페미니즘적인 작업이라고 단정적으로 한정하고 그 외의 것은 찾으려 하지 않는 식의 해석에는 반대한다. 예전에 나의 작업을 페미니즘적으로 읽었던 사람 중 한 명이 내게 ‘너는 페미니즘적인 작업을 하면서 왜 그렇게 여성스럽게 입고 다니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적지 않아서 놀랄 때가 있다.
LEE : 재료의 사용이 중요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은데, 천과 바느질 등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작으로 올수록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하늘거리는 얇은 천은 촉각성이 더 강조된다. 또한 바느질이나 섬유를 이용하는 작업은 여성 미학,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분석될 확률이 높다. 자수나 바느질은 본인이 다 직접 하는 건가?
Choi : 모두 내가 직접 한다. 그리고 상당히 페미니즘적인 작업이라는 점도 동의한다. 그런데 바느질을 처음 선택한 이유는 그냥 어려서부터 바느질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설치 작업을 할 때 외주를 맡긴 뒤 조립하는 정도로만 물리적 노동을 하는 것에 약간의 죄의식이 느껴졌다. 작업에서 글을 쓰는 게 제일 어려운데, 그건 개념적인 부분인 거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물리적 결과물, 즉 공간을 장악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를 하지 않음에 대한 불편함이 무의식적으로 쌓인 것 같다. 나의 경우 거대한 설치는 전시 후에 그냥 폐기해 왔다. 보관을 시도해 봤는데 모든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지구에도 안 좋은 짓이다. 전시 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 허무했고,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해졌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거대한 크기로까지 내가 직접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제작법을 찾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또한 천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껍질, 경계를 만들기에 적합했다. 뭔가 가변적이기도 하고 얇은 것, 촉각적인 것도 딱 맞았다. 바느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하는 모든 행위의 과정이 흔적으로 다 남아 작가의 시간이 온전히 보인다.
<오직 넘치는 사랑의 일기> 2023, 천 위 자수, 20x30cm(5ea), 도판 제공=최정은
LEE : 초기 작품부터 눈이 등장한다. 구멍 안에 손을 넣어 꺼내는 투명 구슬은 개구리알 혹은 눈이 연상된다. <너를 위한 나의 의무>(2019) 같은 이전 작업에서도 눈이 등장했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눈’과 관련한 의미가 있을까? Choi : 어렸을 때 눈이 움직이는 인형을 보고 받았던 충격이나 공포가 있어서 내게는 오래전부터 강력한 인체의 움직임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눈’ 하면, 파놉티콘(panopticon)처럼 지켜보는 감시가 떠오른다. 그게 권력일 수도 있고 지식일 수도 있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 말이다. 이는 종교에도 해당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제약이 되는 건 자신이 믿는 신의 계명이다. 보이는 눈은 그것의 움직임 때문에 받게 되는 느낌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눈의 작용은 나(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발동되는 행동, 기세 같은 것이다. 나의 개인전에는 하나의 눈처럼 지켜보는 CCTV가 설치되기도 했는데 관음적인 시선과도 결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나의 눈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방향, 내가 원하는 이상과 자아를 향해 오롯이 가려고 하는 것, 내가 아닌 다른 눈은 나를 그 반대로 이끌어 괴리감이 있는 상황들을 담아낸다. 사실 내 작업에 등장하는 말씀을 뽑는 장치에서 나오는, 말씀이 담긴 장난감도 개구리나 파충류의 알 같은 느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알들을 보다 보면 눈알이 떠오른다.
LEE : <행하시는 말씀> 시리즈는 앞으로 몇 번째 연작까지 나올 것 같은가? 현재 세 개까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버전이 달라지는 기준은? 언제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가?
Choi : 앞으로 계속 나올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나의 일반적인 생각을 적었다면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에서의 전시 [페이지 너머](2022)에 출품한 <오직 넘치는 사랑의 일기>(2023)에서는 대전에 관련된 내용을 넣었다. 올해 부산에서 세 번째 발표했을 때는 부산과 연결되지만, 더 광범위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과거와 막연히 연결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실과도 연결되게끔 적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도 전시 지역에 따라 계속 조금씩 변할 것 같다.
LEE : 점점 무속 혹은 미신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점을 보러 다니고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재미와 호기심으로 미신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많은 사람이 미신, 무속적인 경험을 한다. 물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긍정 혹은 부정의 평가를 함부로 내릴 수 없다. 또한 맹신은 무교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나 신념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금 넓은 의미에서 종교를 분석하는 철학자들의 글을 볼 수 있다.
Choi : 오늘날이 과거보다 더 불안정할 수 있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찾는 것 중 하나가 점이다. 사실 예술가들도 매우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본인은 본질적인 것을 탐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 삶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그 사이의 간극이 커서 심리적으로 무너질 위험도 있다. 지나친 일반화란 반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기의 미래가 안 보이니 점을 보러 가는 거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무언가에 빠질 수 있다.
<멍게신 오신 날>, 2023, 실크 위 디지털 인쇄, 자수. 400x100cm, 도판 제공=최정은
LEE : <이온의 무릎>(2023), <멍게신 오신 날>(2023)에서 ‘멍게신의 허물’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인간이 멍게를 먹을 때 벗겨내야 하는 껍데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허물에서 뱀이 바로 생각났는데 뱀은 과거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종교와 긴밀한 상징이다. 재생에 관한 이야기도 해볼 수 있다.
Choi : 그 모두를 생각했다. 허물이라는 단어 자체가 탈피해 또 다른 곳으로 갔다는 걸 의미한다. 부활이나 재생처럼 업그레이드되는 느낌도 있다. 지금은 허물만 남았지만, 확실히 존재했고 성공적으로 허물을 벗고 재생되었으니 존재의 확실한 증명이다. 그래서 허물이 매우 좋은 장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다리가 5개 이상이거나 아예 없으면 징그러워한다. 그런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방향성을 상상할 수 없어서인 것 같다. 다리가 2개이거나 4개인 존재는 어디로 향할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데, 지네나 뱀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이 존재들이 나를 위협할 건지 아닌지를 알 수 없어서 오는 무서움인 거다. 우로보로스(Ouroboros)도 시작과 끝, 즉 방향이 아예 없다. 그냥 무한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상징으로 허물을 떠올렸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물 안이 비어서 더 여지가 많다.
<기쁜 소식> 2021, 은사 천 위 프린터와 자수, 센서, 모터, 무령 및 혼합 재료, 가변 설치, 도판 제공=최정은
LEE : “산속에서 발견한 멍게신의 허물”인 <멍게신 오신 날>(2023)은 왜 그런 형태에 프린트가 되어 있는가? 일반적인 허물의 형태도 아니다.
Choi : 그전까진 내가 직접 디자인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게 신의 영역이라기보다 나(인간)의 손안에 들어가 있는 디자인처럼 느껴졌다. 신인데 한 인간인 작가에게 제한받는 것 같은 거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밖에 있는 것들을 끌어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AI에 글을 넣어서 나온 이미지들을 특정한 프레임에 재배치하였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전시를 위해 <기쁜 소식>(2021)에 적었던 글을 입력해 얻은 이미지다. 엄청난 이미지가 나오길 원했던 것은 아니고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지속될 것 같진 않다. 기대보다 정교한 답변(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LEE : <이온의 무릎>(2023)을 야외에 설치한 사진을 보면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기괴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Choi :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산에 올라가서 사진 찍을 때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내가 인간의 근원이자 신으로 설정한 멍게는 수생생물이다. 바다에서 나오면 죽기 때문에 그들이 절대 가지 못하는 곳은 산이다. 진화한 인간이 해저 밑으로 갈 수 없듯이 멍게신이 갈 수 없는 곳, 멍게신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는 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욕망이 발현되는 장소이자 허물을 벗고 새로운 존재가 되어 나가는 곳은 산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당시에 ‘여기가 유토피아야’라면서 신나서 찍었다. 그런데 막상 공개되니 반응이 ‘무섭다’여서 재미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늘 흥미롭다.
<이온의 무릎> 2023, 천, 실, 가변 설치, 도판 제공=최정은
LEE : 현재까지의 작품을 보면 최정은의 작업은 몽환적이기도 하고 키치(Kitsch)적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은가?
Choi : 몽환적일 것 같다. 키치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게 키치는 누구보다 앞서면서도 위트 있는 무언가인데 지금의 나는 빠르게 반응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결과물들도 조금 더 토속적이고 환상적인 쪽으로 가고 있다.
LEE : 2023년 전시를 보니 종교 혹은 믿음에 관련된 전시들에서 소개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멍게신을 비롯한 작품들이 더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신’이 강하게 각인되는 것 같다. 종교적인 분위기로 작업이 한정될 위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Choi : 솔직히 말하면,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하게 전달되길 원한다. 내가 종교를 믿고 신앙을 바탕으로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종교적인 것을 작업에 가져온 경우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과거로부터 종교적인 행위가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속 신앙이 가진 강력한 것들을 자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다. 내 작업이 종교의 교리처럼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되어 계속 전파되기를 원한다. 작품은 작가 자신만 보려고 만드는 게 아니다. 본인을 제외한 한 명 이상에게 보여줘야 하는 게 작업이고, 내가 작가로 활동하려면 나든 내 작업이든 유명해져야 하고, 빨리 퍼지려면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종교는 매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과 연결된다. 역사적으로 종교와 정치는 긴밀했고, 예술도 마찬가지다.
LEE : 최정은의 작업은 무교적이고 복고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동시에 SF적이다. 이전에 만났을 때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이 역시 점점 강화되는 인상이다. 실제로 SF영화 등을 보면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원시적인 분위기(특히 종교 등)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SF영화나 소설은 실제로 미래를 예견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감상에 대한 작가의 의견은?
Choi : 맞다. 요즘은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한다. 나 역시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그래픽 작업이나 인터렉티브적 효과를 활용하기도 하고 AI가 결합된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늘 호기심을 가지고 실험해 본다. 완벽하진 못해도 어느 정도 따라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최첨단으로 갈수록 원초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같이 느낀다. 나 하나도 이런데, 세계도 마찬가지일 거다. 고도 발전 사회로 진화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풀지 못한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이 있다. 미래로 갈수록 그 둘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져서 그 간극에서 오는 어색한 지점들이 계속 발생할 거라 예상한다. 주제뿐 아니라 원초적인 행위가 반복되는 바느질을 하고, 촉각성이 강한 천을 사용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영상을 찍고 그래픽 작업을 하는 미래적인 행위와 과거를 향하는 것 같은 원초적인 것들을 합치고 싶다.
LEE : <수행하는 오브제>(2023)는 탈피를 기다리는 누에고치가 생각나서 작품의 제목(의미)과 형상이 직관적으로 연결되고, 종교적 존재들이 자신의 역할을 하기 전에 수행의 시간을 갖는 상황도 떠오른다. 얇은 사슬이 수행의 상징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괴물이 떠올랐다. 그 안에 멍게신이 들어가 있는 것도 같지만 인간을 위협하는 기괴한 생명체가 공격의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Choi : 작업의 형태는 늘 신체 내부 기관 또는 자연물에서 영감을 얻는다. 또 바닷속의 생명체들은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그중 발견된 것들을 보면 인간의 몸 안에 있는 것들과 닮았다. 존재하지만 실제로 보기 어려운 것들이 믿음의 형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실존하는 신체 내부와 보지 못한 이상(향)이 굉장히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직 넘치는 사랑의 일기> 2023, 천 위 자수, 20x30cm(5ea) 중 도안동 가새 바위, 도판 제공=최정은
LEE : <오직 넘치는 사랑의 일기>(2023)에서 다뤘던 대전의 설화는 무엇인가? 많은 작품에서 주문 혹은 시 같은 문장들이 나오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글을 보면 마침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Choi : 애초에 전시 기획 단계에서부터 대전의 설화와 관련된 작품을 요청받았다. 글은 내가 조사한 대전의 설화 속 주인공에게 빙의해 일기를 쓴 거다. 내가 선택한 설화의 주인공은 다 여성이다. 부정적인 성격은 다 여성 인물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효녀가 자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을 무릅쓰고 죽순을 구해왔는데 집 앞에서 계모가 그 딸을 죽이고 자신이 죽순을 구해온 척했다. 아버지는 병이 나았고 계모와 계모 딸과 행복하게 살았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쇼크사한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는 용이 승천하는데 그 아래에서 빨래하던 아낙네가 ‘이무기가 올라간다’라고 말을 해 부정 타고 용이 떨어져 죽었다는 거다. 생각보다 설화에 허무한 게 많았다. 마침표는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생각해 보니 문장이 끝날 때가 아니라 글을 쓰다가 내가 쉬어야겠다고 느낄 때 마침표를 찍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읽는 누군가를 생각하기보다 글을 쓰는 나 자신에 더 몰입하여 아직 말이 덜 끝났음을 스스로 티 냈는지도 모르겠다.
LEE :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가?
Choi : 설화가 워낙 짧으니 그것을 보면서 하루 종일 상상하다가 글을 쓴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의 개인전 [멍게신 후손의 부흥회](2021)에 전시된 글을 쓸 때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1883)의 초인에 빙의했었다.
LEE : 글이지만 시각적 결과물로 보이는 글이다. 단어들을 선택할 때 시각적인 부분은 얼마나 고려하는가? 의미가 아니라 글씨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보고 단어를 결정하거나 교체한 적이 있는가?
Choi : 100%는 아니지만 그럴 때가 있다. 단어들이 나란히 놓일 때 시각적으로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바꾼다. 아까 말했듯 내 작업은 내가 설정한 종교와 내 예술 행위의 홍보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시각적인 효과를 생각한다. 사람들이 더 매끄럽게 읽길 원하고 뇌리에 더 강하게 박혔으면 좋겠다.
LEE : 작품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인류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멍게가 남는다는 게 대표적이다. 사실과 상상이 어우러지는 방식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Choi :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전개된다. 책을 많이 읽는다. 특히 과학 관련 서적이나 영상물을 자주 접하는 편이다. 어떤 식으로든 내 작업에 관련된 과학적 지식에 나를 노출한다. 다 외우진 못하지만, 그 내용들이 나의 바닥에 깔려 있다가 적합한 순간에 튀어나오길 바란다. 그러면 촌스럽지 않게, 거부감 없이 작품에 담길 수 있다. 내가 제일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과학이나 기술적인 부분에 압도되는 작업이다.
LEE : 드로잉이나 회화, 즉 그리는 작품이 발표되지 않았다. 드로잉을 같이 보여줘도 감각적이고 흥미로울 것 같은데 계획은 없는가?
Choi : 나도 너무 하고 싶은데 그리기에는 아직 한국 입시 미술의 흔적이 많이 보여서 조심스럽다. 제도적 교육의 습관을 빼려고 시도하니 중심을 찾기도 힘들었다. 유학 시절에 나만의 드로잉을 찾으려고 별짓을 다 했다.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그리고, 발로도 그려보고 플럭서스(Fluxus)의 백남준처럼 머리로 그려볼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왼손으로 그리다 보니 잘 그리는 오른손의 방식을 자꾸 따라갔다. 무엇으로 그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 뇌가 그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거다. 그만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그린다는 행위보다 자기 검열을 하는 데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요즘은 ‘그것도 내 일부니 그냥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 아직은 숨기고 있다.
LEE : 최정은의 전 작업을 아우르는 키워드나 주제가 있다면 말해줄 수 있는가? 작품을 단순화하거나 한정하려는 게 아니라 지속되는 흐름이 있는지 궁금하다.
Choi : 나의 작업이나 내 생활 태도는 ‘현재에 충실하자’이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갖지 말고 그냥 지금 나, 현재 안에 있자,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즐기는 나, 내 몸을 내가 잘 알아야 하고, 나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이어서 지금 내가 사는 세상(사회)에 생각하게 된다. 불안하고 현재에는 없는 미지의 것들보다 현실에서 내가 갖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충실하겠다는 태도로 작업하고 있다. 작업은 그와 반대되는 판타지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마치 종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되고 사람들이 모이듯이 내 작업 안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자기 내면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보고 느끼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그 경험들이 전해져서 하나의 큰 사람들의 행동 양태가 드러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