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7. 31.

본 글은 이문정과 차승주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대화일시: 2018년 7월 25일)

큐레이터 차승주 (Cha, Seungjoo)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인사미술공간 큐레이터 (2013년 7월-현재)
Project Space in Leeds, England 협력큐레이터 (2011년 12월-2012년 4월)
제 10회, 11회 전주국제영화제 기획팀 팀장 (2008년 10월-2010년 6월)
고양문화재단 아람미술관 큐레이터 (2007년 5월-2008년 9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시 코디네이터 (2005년 8월-2005년 12월)

LEE : 이문정, Cha : 차승주

LEE : 그동안 매우 적극적인 기획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Cha : ‘자연스럽게 큐레이터가 되었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 시작은 2005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전시 <모호이너지의 새로운 시각 The New Vision from Laszlo Moholy-Nagy>이다. 지금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큐레이터학을 공부하고 인턴을 하는 등의 체계화된 과정을 밟지만 그 당시만 해도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나의 경우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인문학과 문예사조 등을 공부했고, 당대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술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모호이너지의 새로운 시각>에 전시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 그 이후부터 나 스스로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볼 기회들이 생겼다. 당시 작품 연구, 도록 제작, 전시 디자인, 도슨트에 이르는 전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에 참여했다.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나의 의견이 전시 디자인에 반영되고, 관객들이 나의 안내로 즐겁게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에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다.
이후 고양문화재단에서 다양한 전시 기획을 진행했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영화제와 관련된 모든 행사를 기획했다. 그런데 영화제를 기획하다보니 전시 기획은 무엇이며 큐레이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술관학은 무엇인가 등이 궁금해졌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전문성을 갖기 위해 국제적인 무대를 경험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 입사한지 벌써 5년이 넘었다.

LEE : 개인전이든 그룹전이든 다양한 작품을 한 자리에 조화롭게 설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체를 감독하고 조정, 관리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특별히 요구되는 능력 및 소양이 있다면 무엇일까? 강인한 정신력은 필수일 것 같다.

Cha : 큐레이터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소양, 장착한 무기가 모두 다를 것이다. 나도 아직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와 융통성을 꼽고 싶다. 전시를 기획할 때 큐레이터는 전시가 진행되는 기관의 비전을 반영하는 콘텐츠를 맥락화해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들을 이해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전시 기획자로서 나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할 때도 있지만,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조율해야 할 때도 있다. 하나의 입장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상황에 맞는 맞춤형으로 나를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 통섭과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동시대적 담론과도 연결된다. 큐레이터라면 동시대 문화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편 그것을 어떻게 예술적 영역에서 보여주고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 밖에 끈기와 작품(예술)에 대한 애정을 들 수 있다.

LEE : 필자는 특정한 공간에 작품들을 조화롭게 설치하는 큐레이터들의 능력에 늘 탄복한다. 예전에 아주 유명한 큐레이터가 자신은 전시 기획을 위한 공간에 들어서면 바로 머릿속에 3차원적 시뮬레이션이 그려진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Cha : 전시는 작품과 관객을 만나게 하는 장소를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전시(공간)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전시 디자인도 작품과 같은 전시 콘텐츠의 하나라 생각한다. 결국 작품들은 특정한 공간 안에 전시되는 것이므로 공간은 작품과 관객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기획자가 공간에 작품을 어떻게 배치하는 가에 따라 관객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의 석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이것이었다. 나는 전시 디자인에서 동선이 발생시키는 내러티브가 전시 주제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양한 동선의 선택지도 관객마다의 전시 경험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시 기획자는 ‘왜 공간을 이렇게 꾸며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이 안정적으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도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모호히너지의 새로운 시각>전에서 모호이너지가 에펠탑 같은 첨탑에서 부감(bird's eye view)으로 촬영했던 사진 작품을 (일반적인 전시 방식처럼 벽에 거는 것이 아니라)바닥에 붙이고, 관객들이 높은 계단에 올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작가와 유사한 시각적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 이번 신미경 개인전 <사라지고도 존재하는>(2018)의 경우 1층과 2층의 콘트라스트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2층의 작업들이 한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시리즈별로 흥미를 유발하도록 조성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에는 공간디자인을 통해 무엇보다 작품이 주제와 유기적으로 얽혀 최대한 돋보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큐레이터로서 전시 경험을 배가시킬 수 있는 실험을 시도하는 동시에 관객들이 스스로 내러티브를 발생시킬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드는 데에 신경 쓴다.

LEE :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아르코미술관은 그동안 실험성과 대중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전시들을 선보여왔다. 큐레이터로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관객들의 흥미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 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나가는가?

Cha : 대중이 즐겁게 관람하기에도 좋고 미술계에서도 새로운 실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전시를 만들려 노력한다. 아르코미술관과 인사미술공간의 전시를 분리해서 이야기하면 더 명확할 것 같다.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실험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중적인 연결고리도 만들어야 한다. 미술관의 지향도 그렇지만 대중들이 오가는 장소에 위치한 미술관의 특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 둘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고민한다. 이 말이 실험성을 낮추고 대중성을 높인다는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대중적이라 알려져 온 작가의 전시를 기획할 때에는 실험성을 부각시킨다. 그런 점에서 아르코미술관의 전시는 어렵기도 하면서 의미 있기도 하다. 반면 인사미술공간의 경우에는 실험성과 신진 작가들의 개별 작업 자체에 보다 집중한 전시가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대중성에 대한 제약을 덜 받는다.

LEE : <박흥용 만화전>(2014)의 경우가 바로 대중성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실험성을 함께 보여준 전시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여전히 존재하는 대중예술을 향한 편견에 맞서는 용감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대중예술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듣고 싶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기획팀장을 맡았던 경험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혹시 아르코미술관에서 대중예술(대중문화)과 관련된 또 다른 전시를 만날 수 있을까? 대중예술을 다루는 전시는 아직도 상당수가 상업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기획자뿐 아니라 관객들도 그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Cha :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을 이분법적으로 양분하던 시대는 지났다. 과거에는 둘 사이에 암묵적으로 우열이 있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선호와 취향의 문제가 되었다. 만화도 시각 예술의 영역에 포함된다. 내러티브가 담긴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드로잉, 회화로 이해될 수도 있다. <박흥용 만화전>은 문화 산업으로만 여겨져 온 만화를 순수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뤄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이것이 다른 만화 행사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만화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만화가, 작가주의 만화를 보여준 박흥용을 예술적으로 조명하고자 했다. 그의 전작(全作)을 전시장에 들여왔다. 나는 대중예술도 충분히 예술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르코미술관은 공연예술의 메카와 같은 혜화에 위치한다는 특수성을 갖는다. 또한 아르코미술관은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속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매우 다양한 영역의 문화 예술이 함께 하는 전시를 선보이기에 더 적합한 조건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LEE : <2017 뮌 개인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뮌의 특성이 극대화되는 동시에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전시였다. 아르코미술관이 그렇게 달라보였던 적도 없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 것도 같았고, 몇 세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전시 기획 및 설치에서 남다른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다.

Cha : 뮌은 영상, 미디어 설치, 공공 미술, 화려한 조명과 그림자로 알려진 인지도 있는 작가였다. 그래서 ‘뮌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어떤 사유를 하고 있을까?’와 같은 개념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를 통해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뿐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이 탄탄하게 드러나길 바랐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달리 중진 작가들 역시 신진 작가들 못지않게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과 요구가 있다. 또한 그들의 작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그룹전보다는 개인전에서 가능한 일이다. 아르코 중진작가 시리즈는 이런 기획 의도를 갖고 있다. 물론 기획자의 입장에서도 모험이다. 중진 작가들은 이미 대중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지명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대표작을 예상하고 오는 관객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작업을 중심에 놓되 이전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도 드러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LEE : 인사미술공간에서는 신진 작가들을 위한 전시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절대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최근 젊은 신진 작가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신진 작가들을 평가 혹은 선정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Cha : 공통점이 있다고 단순화시키고 분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나 형식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 작가들이 의도했다기보다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현재 신진 작가라 불리는 작가들은 인터넷 세대다.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지각 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들 중에서 일부는 새로운 것이나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을 수 있고, 이런 점이 어떤 면에서 이전 세대의 작가들보다 장르 해체적인 활동으로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작가를 선정하거나 평가할 때에는 개념과 예술적 실행이 독창성과 실험성이라는 두 축 안에서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지에 집중한다. 또한 현재의 신진 작가는 훗날 중진 작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성장가능성,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본다. 또한 주류라 불리는 경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올곧게 지켜내는지도 살펴본다. 말로 표현하니 평범한 기준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LEE : 전시 혹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도록이나 리플렛의 글을 읽다보면 너무 어려워 오히려 혼란스럽다고 이야기를 하는 관객들이 있다. 동시대 미술이 너무 난해하다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무 것이나 가져다 놓고 미술계의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명작으로 돌변하는 것 아니냐고도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모더니즘 추상 미술이 보여준 일상과 미술의 단절, 엘리트주의적인 속성 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도 그러한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전문가들이 불필요하게 작품에 의미 부여를 한다는 비판에 대한 큐레이터의 생각을 듣고 싶다.

Cha : 일정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미술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정답이 있다고 전제를 한 뒤 답을 찾으려 작품에 접근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하니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주입식 교육 혹은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의 폐해라 생각한다. 미술에 정답은 없다. 어떤 작업이든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 또한 의미 전달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담긴다. 그것을 전달받는 사람도 자신만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논리적 근거가 있다면 어떻게 읽어내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해도 감상할 때 즐겁고 재미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평론가나 큐레이터가 일부러 어려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평론가와 큐레이터는 글과 전시를 통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들이 평상시에 논하는 이론들을 그들이 평상시 사용하는 어휘로 서술하다보니 대중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도록의 글과 리플렛의 글을 차별화시키려 노력한다. 도록에 실리는 전시 서문에서는 전시가 창출하는 담론과 작가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가감 없이 쓴다. 그러나 관객을 위한 전시 안내서인 리플렛의 글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LEE : 한두 개를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새로운 작가를 찾을 때 어떤 경로를 이용하는가?

Cha :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작가 조사를 한다. 정해놓은 좋은 방법은 없다. 최근에는 국내외 레지던시에서 정보를 얻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속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역의 미술 활동들을 지원하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LEE :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주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은 보내는가? 미술이 아닌 영역 중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Cha :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은 일의 연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나 연극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의 삶이 미술에만 함몰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 어떻게 보면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더 잘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쉬는 시간만이라도 잠시 미술을 벗어나려고 하는 편이다. 2016년에는 직장인 아마추어 연극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요즘에는 디제잉에 관심을 갖고 있다. 10월에 열리는 신진 작가 전시에서 작업의 일행으로 디제잉이 진행된다. 전시 준비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개인적으로 자료를 찾아보고 할 정도로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 밖에는 2015년부터 등산을 하고 있다. 산악회 활동을 하지만 주기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이 맞을 때마다 참여한다. 자연의 숭고함 앞에서 인간이 작아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자연의 흐름 안에 머물면 나를 힘들게 했던 수많은 일들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LEE :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순수하게 즐기는 편인가? 자신도 모르게 분석을 한다거나 전시 기획안이 머리에 떠오른다거나 할 수도 있다.

Cha : 때로는 개별 작품보다 전시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볼 때가 있다. 이 작품이 전시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 작품이 왜 이 위치에 놓인 것인지 등에 대해 생각하며 공간 배치나 전시 전략 등을 유추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할 때 순수하게 몰입하는 편이다. 나의 직업적인 요소들이 개입하지 않게 되는, 즉 순수하게 감상이 가능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메모해둔다.

LEE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Cha : 큐레이터로서 경력이 쌓이면서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용감함이나 과감함이 줄어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고, 이제는 능숙해져 기계적이거나 순응적인 기획자가 된 것은 아닌지 고민할 때도 있었다. 대화를 하면서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왜 여전히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