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에틱

curator 정소라

2021. 04. 09.

본 글은 2021년 2월 15일(월)에 진행된 이문정과 전명은 작가의 대화를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작가 전명은(Eun Chun)

일우스페이스 큐레이터 (2017년 2월-2018년 6월) 갤러리 플래닛 이사 (2016년 1월-현재) 카이스트 리서치&아트 갤러리 KAIST Research & Art Gallery 큐레이터 (2012년 2월-현재)

LEE: 전명은의 사진 대부분은 감각하기 어려운 것을 감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혹은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 나아가 불가능한 것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는 다가가기에 어려운 이상 혹은 진리 등을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인생을 함축하는 것처럼 읽힌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계속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은 절망과 허무의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Chun :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나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처럼 특정한 인물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그동안 만난 인물들이 남겨주고 간 추상적인 질문들을 반추하며 작업한다. 내가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에 다다르려 하는가?’나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것을 향하는 삶의 태도이다. 사전에 받은 질문지의 마지막 질문이 보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에게 본다는 것은 삶을 생각하는 것이고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태도를 고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사진>(2015), <금곡의 기억>(2016)은 시각장애인이 살고 있는 시각 세계가 어떤 건지 궁금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작업을 지속하다 보니 문제의 본질이 시각 감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망각과 기억, 멈추어진 것과 움직이는 것, 나아가 죽음과 삶에 관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전명은 도판 <새와 우산 #3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76x101cm, 2015 ⓒEun Chun

LEE : 작업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의도적으로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간 것은 아닌가? 자연스럽게 변해갔다고 해도 작가가 그것을 인지하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의미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다.

Chun : 특정한 방향을 의식적으로 향하지는 않지만 생각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관련해 작업 초기에서부터 발전한 부분이 있다면 그 출발점은 내가 2000년 배낭여행 중 파리 로댕 미술관(Musee Rodin) 정원에서 미완성작품들을 마주한 순간이다. 깎다가 만 돌덩어리들이 있었는데 감동적이었다. 로댕(Auguste Rodin)은 마치 창조주처럼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돌 안에 있던 것을 찾아 나가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나는 로댕 조각의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게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예전부터 거기 존재하고 있던 감추어진 어떤 것을 찾아 나간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 그리고 작업의 결과 보다도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한다. 작업에서 어떤 인물을 다룰 때도 인물이 도달한 결과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LEE : 결국 인간은 불가능을 향해 가는 존재인가?

Chun : <글라이더 Glider>를 위해 체조 경기 영상을 많이 봤다. 내가 찾고 있는 이미지가 어떤 형태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철봉 금메달리스트인 엡케 존더란드(Epke Zonderland)를 알게 되었다. 2012년 그는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4년 후인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선 철봉을 놓쳐 마치 날아오르려는 자세처럼 팔을 벌린 채 얼굴을 바닥에 맞대고 떨어졌다. 사지를 뻗은 채 매트 위에 떨어진 모습이 마치 새 같았다. 순간 ‘이 사람은 날고 싶었던 거구나, 날려 했던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졌다가 일어난 선수의 얼굴은 새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들어 높은 철봉을 바라보더니 뛰어올라 중단되었던 경기를 이어나갔다. <글라이더>에서 시선이 살짝 위를 향하는 철봉 선수의 얼굴을 촬영한 작품은 바로 그 순간, 그 선수를 생각하며 진행한 것이다. 나는 결국 날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날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이 좋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계속 바라보는 상황이 좋다. 내가 촬영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날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 나 역시 꿈을 꾼다. 그 과정에 있는 것이 나의 사진이다.

전명은 도판 <글라이더 HB I>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39x52cm, 2019 ⓒEun Chun

LEE : 혹시 날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날아가는 혹은 그와 유사한 행위나 이미지가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Chun : 내가 날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기 보다 그 형상 자체를 좋아한다. 날고 있는 형상에 매력 혹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날아가는 형상에 대한 상징적인 로망 같은 게 있나 보다.

LEE: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진이 많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상상이다. 본인과 이전에 진행했던 인터뷰에서도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상시에 어떤 상상 혹은 공상을 하는가? 즐겨 하는 상상이 있는가?

Chun : 많이 하는 것 같다. 주로 내가 가고 싶은 공간에 관한 것이다. 사실 상상의 순간이 더 흥미진진하다. 여행할 때보다 여행하기 전 계획을 세울 때가 더 흥분되고 재미있지 않나? 어디 가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고. 그러나 나는 소설가만큼 엄청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그 정도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상상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사진은 모두 상상력과 연결된다. <글라이더>도 기계체조 선수의 얼굴, 동작을 포착한 한 장의 이미지로 제시되지만, 거기엔 많은 이야기가 배경으로 존재한다. 문맥(context)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서 촬영하고, 그것을 함축하면서 시각적으로도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선택해 전시했다. 내 사진의 상상력은 문맥에서 온다. 나의 사진은 그저 하나의 표정, 순간을 포착한 게 아니다. 그것이 이미지로 다 드러나진 않지만 촬영된 대상이 처해있는 상황은 매우 구체적이다. 명확한 기승전결의 줄거리는 아니더라도 모델이 처한 상황이나 모델이 바라는 것, 살아온 삶 등이 사진에 담겨 있다.

전명은 도판 <풀 #1>,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8x81cm, 2019 ⓒEun Chun

LEE : 회화나 조각 작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스케치, 에스키스를 한다. 에스키스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리고 촬영하기 전에 어느 정도 이미지가 정해지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는 계획이 가능하면서도 완전한 계획은 불가능한 피사체를 찍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업 과정은 즉흥과 계획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Chun : 매우 즉흥적으로 작업한다. 대단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 보면 황당할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테스트 샷이 에스키스라고 할 수 있겠다. 테스트 사진을 통해 방향을 잡아가는 편이다. <플로어 Floor>(2018-2019)의 경우 대여섯 차례 초등학교 기계체조 선수들의 테스트 촬영을 한 뒤 내가 끌리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찾고, 추상적인 머릿속의 이미지를 토대로 본 촬영에 들어갔다.

LEE : 사진은 한순간에 이미지가 정착된다. 정지한 대상의 경우 촬영하면서 화면의 구성 등을 생각할 여유가 있다. 그런데 움직임이 있는 대상을 촬영할 경우는 다르다. 움직임의 순간을 촬영한 본인의 사진과 스냅 사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즉흥적인 부분이 큰 사진이라고 이야기해서 물어보는 질문이다.

Chun : 움직이는 대상이라고 하면 나에게는 인물이다. 아직 동물을 찍은 적은 없으니까. 촬영 방식은 스냅 사진의 방식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강조하고 불필요한 요소는 통제한다. 일단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내가 구축하고 싶은 이미지를 찾으면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든 뒤 모델이 동작을 취한다. 모델이 어떤 제한도 없이 사방팔방 돌아다니는데 내가 그것을 쫓아다니면서 찍는 방식은 아니다. 그와 같은 작업은 테스트 촬영에서 끝난다. 이건 현실적인 문제와도 직결된다. <플로어>는 가까이에서 클로즈업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정적으로 카메라 앞에 정지해 있었다. <글라이더>에서는 움직임의 순간을 촬영한 사진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선수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강한 인공조명이 필요하고, 인공조명이 비출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물리적 공간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 공간을 벗어나면 촬영이 어려워진다.

LEE : 그렇다면 움직임의 속도나, 특정 동작을 잠시 정지 상태로 유지하고 촬영하기도 했는가?

Chun : 동작을 행하는 과정 중에 모델을 멈추게 한 뒤 촬영한 적은 없고, 움직임의 속도나 시선 처리 등은 조절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라이더>의 경우 선수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동작이 아니라 무한정 여러 번 요청하고 촬영할 수 없었다. 선수가 특정한 동작을 한 번 해주었을 때 내가 놓치면 정말 미안한 상황이다. 그래서 최대한 한 번에 촬영에 성공하려 노력했다. 물론 여러 번 촬영한 적도 있다. 체조 선수가 안마를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의 경우는 정말 여러 번 찍었고 3일 정도 작업한 결과물이다. 선수가 안마 연기를 선보이기 전 안마를 바라보고 있는 긴장된 순간의 얼굴을 포착하고 싶었다. 사실 <글라이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움직임은 운동의 단계로 진입하기 직전의 순간, 즉 도움닫기나 정지 자세, 체조 기구를 붙잡고 올라타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 선수의 폭발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까지 나는 정말로 움직임의 상황에 놓인 대상을 촬영해본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전명은 도판 <글라이더 PB I>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88x66cm, 2019 ⓒEun Chun

LEE : <글라이더>와 같은 작업은 분명 움직임의 순간이 포착되는 사진이다. 어쩌면 사진은 회화보다도 움직임을 담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은 움직임이 아니라 움직임의 한순간을 포착한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움직이는 대상과 정지한 대상을 찍을 때 가장 크게 느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Chun : 개인적으로 움직임이 너무 극적으로 표현되는 사진은 느끼하게 느껴져서 피하는 편이다. 나는 동세와 동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한다. 이 순간도 아니고 저 순간도 아니며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넘어가려는 틈새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발견된 순간이 내게는 가장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한편 정지한 대상(사물)을 촬영할 때는 그것이 지닌 온전한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 그 앞에서 많이 관찰하려 노력한다. 정해놓은 정답이 머릿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말로 온전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데, 찍다 보면 ‘마음에 든다’고 느껴지는 어떤 순간이 있다. 대상과 교감이 되는 것 같은 순간이다.
내가 촬영한 사물(오브제)은 아버지의 조각품이나 내가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물건처럼 많이 봐왔던 것들이다. 그밖에 겨울과 봄의 풍경을 계속 찍고 있는데 내 머릿속에 있는 문학적 서사의 광경을 만나면 찍는다. 내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있던 근원적인 풍경을 찾아다닌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발품을 팔면서 진행했다. 한편 경기도미술관에서 진행된 한국전쟁70주년기념전 [흰 밤 검은 낮](2020~2021)에 출품했던 작품의 경우 전시를 기획한 구정화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서 사망한 북한군들의 유해를 모아둔 묘지를 촬영했다. 이전에 촬영한 익숙한 사물들과는 달리 그곳의 비석은 완전히 낯선 대상이었다. 한참 동안 비석을 바라보다가 촬영을 시작했는데, 무성하게 자란 수풀 속에 있는 수많은 무명의 비석들을 보며 ‘만약 내가 북한군을 만났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니 북한군이 총부리를 내게 겨눈 순간이 상상되어 섬찟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마가 막 끝나서 무릎까지 자란 수풀과 그 속에 고즈넉이 파묻힌 부동의 비석이 참 평화롭게 다가왔다. 마치 ‘누워 있는 조각가’의 모습처럼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존재가 공존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의 조각품을 찍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찍었다.

전명은 도판 <적군의 묘 #3>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10x88cm, 2020 ⓒEun Chun

LEE : 인물 사진의 경우 모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할 텐데 혹시 모델과 소통이 잘 안 되었거나, 모델이 원하는 표정이니 동작을 보여주지 않아 원하는 이미지를 얻지 못한 경우도 있는가?

Chun : 인물 사진의 경우 사진을 찍는 나와 인물 사이의 관계가 다인 것 같다. 내가 인물을 얼마나 솔직한 태도로 대하는가, 그리고 모델은 나를 얼마나 믿고 카메라 앞에 있어 주는가가 중요하다. 인물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내 마음대로 어떤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저 내 눈앞에 있는 인물이 발산하는 흥미로운 부분을 포착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글라이더>의 경우 기계체조의 6개 종목에 맞춰 6명의 선수를 찍었는데 각 선수의 매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애초에 내가 찍고 싶지 않거나 나와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을 모델로 선택한 적은 없다.

LEE : <사진은 학자의 망막>(2011~2012)에서 천문가가 아니라 아마추어 천문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Chun : 나도 작업을 하면서 알았는데 천문학과에서 공부하는 것과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하는 일이 달랐다.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하는 것은 천문학자의 주 업무가 아니다. 그래서 아마추어들이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은 학자의 망막>은 천문학자의 전문성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순수한 열정,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처음으로 작업했던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송재원 선생님도 대학로의 혜화역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린 천문관측 동아리 전시에서 우연히 만난 분이다.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었던 엄태호 선생님의 경우는 선생님의 개인 블로그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자작망원경을 보고 반해서 강원도 양구에 있는 댁까지 만나 뵈러 갔었다.

LEE: 특정한 매체를 중심에 놓고 작업할 경우 그에 맞는 기술과 매뉴얼을 따라야 한다. 사진의 경우엔 이 부분이 더 중요할 것 같다. 혹시 그와 같은 매체적 특징 때문에 한계를 느낀 적은 없는가?

Chun : 나의 사진을 위해 필요한 특별한 효과는 없다. 자연광에서 기본적인 방식으로 촬영한다. 빛(자연광)을 확보하고, 최대한 셔터 속도를 확보하고 찍는 게 다이다. <글라이더>에선 스트로보를 활용한 정도이다. 내가 대단한 사진적 기술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한계를 느낀 적은 없다. 그리고 나는 기본적인 것만 잘 지키면 누구나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과 자기만의 취향만 있으면 된다. 사진은 기계로 하는 예술이기에 기술적인 면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만 지키면 그 다음부터는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내가 무엇을 어떤 태도로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하다. 그 단계에 이르면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또한 사진이 가진 매체적 한정성이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것을 즐기는 편이다. 폴리 아티스트, 체조 선수 같은 내가 다루는 인물들은 사실 영상으로 찍으면 더 효율적이고 쉬울 수 있다. 그런데도 내가 사진으로 촬영하는 이유는 소리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다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것을 이미지로 암시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말한 상상력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사진이 가진 한계라면 한계, 특징이라며 특징일 수 있는 이 부분이 나의 작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LEE: 사진에서 프레임은 중요하다. 프레임 안의 이미지들은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 중 작가에게 선택된 것이다. 프레임 밖을 상상할 것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 관객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결국 프레임 안의 이미지이다. 프레임의 안과 밖의 경계선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Chun :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직관적으로 상황마다, 최대한 상황에 맞게 선택한다. 나는 프레임 안에 많은 것을 넣기보다는 빼는 것 같다. 내가 워낙 단순한 것을 좋아해서인지 프레임 안의 것들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것이 좋다.

LEE : 프레임 안의 이미지를 통해 프레임 밖의 것도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Chun : 당연히 프레임 밖을 암시해야 한다. 내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단면이지만 단면 너머를 최대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사진은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 보여주는 부분보다 훨씬 많다. 나는 프레임 밖의 것들을 알고 있고, 그것이 사진에 보이지 않더라도 암시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칼 드레이어(Carl Th. Dreyer)의 <잔다르크의 수난(La Passion de Jeanne d'Arc)>(1928)은 풀 샷이나 미디엄 샷 없이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구성된 무성영화이다. 그러므로 인물과 인물 사이에 교차되는 시선, 대화, 관계, 내러티브는 클로즈업된 얼굴의 단면들을 통해 전개된다. <플로어>를 촬영하면서 이 영화를 늘 머릿속에 떠올렸다. 클로즈업된 아이들의 얼굴 위로 바람, 빛, 당시 우리가 촬영하던 체조장 뒷마당의 공간감, 즉 화면의 바깥이 기록되기를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전명은 도판 <플로어 #5>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8x144cm, 2019 ⓒEun Chun

LEE : 혹시 촬영이 완료된 사진 일부를 잘라 또 다른 작품으로 제작한 적은 없는가?

Chun : 사진의 크기, 인화할 종이, 액자의 형식 등은 나중에 결정하는 편이지만 프레임 안의 이미지, 즉 프레임 안의 구성은 작업 초반에 결정한다. 예를 들어 <플로어>는 테스트 사진을 찍어 나가면서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크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촬영한 사진의 일부를 잘라내서 다른 사진을 만든 적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다.

LEE : 사각형이 아닌 다른 형태의 프레임을 가진 사진을 선보일 생각은 없는가?

Chun : 그동안 한 번도 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나면 형태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의 형태를 표현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 외의 것을 전달하는 사진은 내가 구현하고 싶은 사진이 아니다.

LEE : 사진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

Chun : 사진은 이미지다. <어떤 사람의 사진>에서 시각장애인과 작업을 했을 때의 일이다. 탁자 위에 사진이 한 장 있는데 그들에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하게 할 수 없었다.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져지는 것도 없다.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손을 잡고 만지면서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빛을 받은 손이 그림자를 드리울 때 만일 그걸 보지 않는다면 전달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그림자란 사진의 성질과 매우 유사한 또 다른 형태의 이미지다.

전명은 도판 <어떤 사람의 사진>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3x75cm, 2015 ⓒEun Chun

LEE : 사진의 흑백과 컬러는 어떻게 결정하는가?

Chun : 색의 경우 보통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결정한다. 흑백인지, 컬러인지는 촬영 과정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대한 초반에 결정하는 편이다. 사실 나의 경우 필름 카메라가 아니라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두 컬러로 촬영한 뒤 흑백으로 전환한다. 그래서 촬영을 다 마친 뒤 언제든지 바꿀 수 있지만, 마지막에 갑자기 바꾼 경우는 드물다.

LEE: 사진의 크기 선택은 언제, 어떻게 하는가? 같은 제목의 사진이어도 크기에 따라 전달받는 감성과 메시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똑같은 작품도 크기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으로 다가온다.

Chun : 회화는 작업을 시작할 때 크기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사진은 명함 크기에서부터 3m까지 얼마든지 축소, 확대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크기 결정은 매우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이다.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혹은 작업 중에 결정할 때도 있지만 보통 전시 공간에 이미지가 어떻게 들어갈 지 판단하면서 결정하는 것 같다. 공간이 결정되면 사진의 크기, 액자, 설치 방식이 결정된다. 물론 이 모든 선택을 하는 기준은 느낌이다. 추성아 큐레이터가 기획한 갤러리2에서의 전시 [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2021)에서 발표한 <배클램트#1>(2020)은 곰 인형의 눈을 크게 찍은 사진인데, 눈이 행성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크게 인화하기로 결정했고, 그 옆에 달을 찍은 <사진은 학자의 망막-송재원 보름달 직전의 달>(2012)을 나란히 걸었다. 달 크기와 곰 인형의 눈 크기를 맞춘 거다.
물론 사진이라는 매체가 갖는 현실적인 한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사진에는 4:6이나 4:5 등의 관습적인 판형이 존재하고, 이상한 이야기지만 나도 이 판형을 따르는 편이다. 인화지의 규격도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피그먼트 프린트 인화지 폭이 44인치(111.7cm)이기 때문에 길이는 얼마든지 길어질 수 있지만 폭은 110cm 정도가 최대이다. 만약 그 이상 크기의 프린트를 제작하려면 가능한 다른 용지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종이 종류와 크기를 확인해야 한다.

전명은 도판 [스나크 :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 갤러리2 설치 전경, 2021, 사진: CJY ART STUDIO ⓒSungah Serena Choo and Eun Chun

LEE: 어떤 카메라를 즐겨 사용하는가? 사진은 카메라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가끔 ‘이 카메라가 아니면 이 사진은 나올 수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Chun : 아버지가 쓰시던 마미야(Mamiya) 중형이 집에 있어서 처음에는 대부분 그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러다가 정희승 작가가 호스만(Horseman) 대형 카메라를 줘서 그걸로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필름으로 찍다 보니 컷 수가 적은 탓에 사진 테크닉이 도무지 늘지 않는 느낌이 들어 2017년 중형디지털카메라 펜탁스(Pentax) 645z를 샀고 지금까지 그 카메라를 주로 사용한다. 당연히 어떤 카메라를 쓰는지가 작품에 영향을 준다. 사진작가에게 장비는 중요하다. 단, 자신이 가진 장비를 100%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플로어>의 경우 프린트 사이즈가 꽤 컸으므로 내 것보다 사양이 낮은 카메라였다면 그 정도의 해상도를 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카메라보다 더 좋은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결과물이 좋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 좋은 장비를 살 필요는 없다. 나는 항상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장비를 100% 활용하지 못한 상태에선 다음 단계로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작업한다.

LEE: 작품을 위한 것 외에 평상시에도 사진 찍기를 즐기는가?

Chun : 거의 안 찍는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5년경까지는 벼룩시장에서 산 보이그랜더(Voigtländer)나 올림푸스팬(Olympus Pen) 카메라를 목걸이처럼 메고 다녔다. 그러나 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로는 안 찍는다. 아마도 내가 SNS를 안 해서인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이 물어보는데 아직은 SNS를 할 생각이 없다. 나는 무언가를 볼 때 바로 휴대폰을 꺼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편이다. 평상시에 카메라가 아닌 내 눈으로만 보려고 한다.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LEE: 본인의 사진을 다른 누군가가 촬영한 사진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한 적은 없는가? 또 작품을 위해 사진을 찍을 때와 본인이 본인의 전시 전경을 찍을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진작가이니 조금 다른 기분이 들 것도 같다.

Chun : 전시 전경을 촬영할 때는 무엇보다 공간의 느낌을 최대한 담으려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아마 어떤 작가든 전시 전경 사진을 보면 아쉬움을 느낄 것 같다. 전시 전경을 촬영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다른 분이 찍어주면 감사하다. 여태까지 특별히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도 없었다. 만약 내 작업이 회화나 조각이라면, 특히 입체적인 작업이라면 누가 어떻게 촬영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나의 작품은 말 그대로 프레임 안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작품이 특별히 새롭게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나 역시 전시 전경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촬영할 때가 있다. 매번 작품을 촬영하는 화가도 있다. 사진을 찍은 뒤 화가가 내 작업실로 와서 작품의 색 보정 등을 미세하게 하는데, 그런 작업을 지속하다 보니 색에 대한 나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림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 색을 보정하면서 작품에 더 가깝게 이미지를 완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정말 재미있다. 색을 다루는 화가의 행위도 흥미롭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사진으로 풀어낼 수 있는 지점이 없을까 구상 중이다. 화가를 모델로 삼는다기보다 화가와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싶다.

LEE : 전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018)에서는 사진을 마치 조각처럼 바닥에 눕혀 놓았다.

Chun : OCI미술관에서의 전시인데, 전시를 기획한 김소라 큐레이터가 내 작업을 놓고자 제안했던 공간이 미술관 3층이었다. 마룻바닥이고 천장이 낮은 그 공간이 내면적이고 은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려져 있던 방문을 열고 쓱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각상을 찍은 흑백의 큰 이미지들이 공간 속에 툭툭 놓인 것처럼 보이면 어울릴 것 같았다. 커다랗고 납작한 흑백 이미지가 과감하게 공간을 점유해나가는 광경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전명은 도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OCI미술관 설치 전경, 2018, 사진: EH ⓒOCI Museum of Art

LEE: <어떤 사람의 사진>의 경우,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의 대화라기보다 아이와 어른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서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경우 조금 더 사회적인 관계를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확장해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Chun : <어떤 사람의 사진>에 함께 해준 민주와 현주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났고, 작업할 당시는 중3이었다. 지금은 대학생이다. 그 아이들에게 헌정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문을 받고 보니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이기 이전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아이와 성인의 만남인 것 같기도 하다. 관련해 지금도 선명한 일화가 있다. 한번은 그 아이들에게 ‘너희가 나의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고 고백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에게 돌아온 답변은 ‘그냥 포기하세요’였다. 그 순간 내가 보는 것을 그 아이들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내가 사는 시각 세계를 중심에 놓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각자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긴 작업이다. 내게 정말 중요한 많은 것을 깨닫게 했던 작업이다.

LEE: <사진은 학자의 망막>, <어떤 사람의 사진>, <글라이더>처럼 다른 영역의 사람과의 협업이 필요할 경우 함께 할 사람은 어떻게 선정하는가?

Chun : 협업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작업에서 다루는 사람과의 협업과 나의 작품 완성에서 일어나는, 즉 프린트와 액자 작업 등을 함께 해주는 테크니션과의 협업이다. 전자의 경우 대부분 조사한 것을 토대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식이다. 그래서 첫 만남이 쉽지는 않다. 내가 사교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싫거나 힘들지는 않다. 테크니션의 경우 작업 초기부터 프린트는 유제동 실장님, 액자는 이미지원의 김선애 과장님과 함께 하고 있다.

LEE: <안내인> 시리즈의 피사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나뭇가지처럼 보이는데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된다.

Chun : <누워 있는 조각가의 시간-시계초>는 콜레티아 파라독사(Colletia paradoxa)라는 이름의 남미 식물을 찍은 것이다. 런던에 사는 언니가 공원에서 주워다 놓은 것을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촬영했다. <안내인>은 파리 벼룩시장에서 산 오브제를 찍은 것이다. 자연 상태는 아니고 판매한 사람이 수집한 골동품이다. 가시나무를 찍기 시작한 것은 콜레티아 파라독사를 보고 에티엔 쥘 마레(Étienne-Jules Marey)가 날아가는 새의 운동을 찍은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명은 도판 <누워 있는 조각가의 시간-시계초 #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80x135cm, 2016 ⓒEun Chun

LEE: 문학(글)과 매우 긴밀한 사진이다. 영감을 받거나 염두에 두는 문학 작품이 있다면?

Chun : 겨울과 봄의 풍경을 찍은 사진은 1930년대 한국 문학과 러시아 문학의 정서가 지배한다. 그 분위기가 친근해서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읽었다. 얼마 전에는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adie Said)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 장벽을 넘어 흐르는 음악과 정치 Parallels and paradoxes: explorations in music and society』 (노승림 역, 마티, 2011)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후 음악과 관련된 책들을 이것저것 읽으면서 음악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어려서 음악을 들으며 받았던 ‘벅차오를 정도로 좋다’는 느낌을 왜 사진은 줄 수 없는지에 대해 고민도 하면서 그와 같은 사진을 찍어보자는 마음을 먹고 있다. 음악처럼 그저 사람의 마음에 가 닿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젊은 시인들의 시집에 심취해있다. 특히 그림 그리는 김겨울 작가가 소개해준 안태운 시인의 시가 좋았다.

LEE: 시와 산문 어딘가에 위치하는 사진이다. 서사가 풍부하게 이어지다 바스라지는 것 같은 과정의 연속이다. 여운을 남기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이다. 이러한 인상은 작가의 작업 노트나 인터뷰에서도 찾아진다. 원래 본인의 사유 방식이 그런 것인가? 아니면 작업을 위한 의도가 일정 부분 담긴 것인가?

Chun :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냥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로부터 받은 영향과, 그 수많은 영향들이 모여서 만든 내 모습일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과거 10대, 20대 때 머릿속에 그려 보던 이미지들을 하나씩 직접 실행해 보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거다. 그걸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나일테니까. 시와 산문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아마 10대 시절부터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던 것이 문학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내가 워낙 문학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렇게 느낀다면 기쁘다.

LEE: 전명은에게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Chun : 그에 대한 대답을 몰라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가장 명확한 답은 잘 모르겠다 아닐까? 나에게 보는 것은 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 질문은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본다는 것이 뭔지 몰라서 사진 찍고 있다.

전명은 도판 <네가 봄이런가-목련과 개나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x80cm, 2016 ⓒEun Ch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