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1. 23.

반짝이는 가능성, 확산하는 동시성¹⁾

경기도미술관 2024 동시대 미술의 현장전 《사라졌다 나타나는》, 2024.8.8.~2024.10.20.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경기도미술관의 2024 ‘동시대 미술의 현장’ 전시 《사라졌다 나타나는》은 폭발(소멸)과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별”처럼 변화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다. 전시된 작품들은 주제와 형식에서 집중과 확산, 흘러감과 쌓임, 형성과 해체, 독립성과 관계성 등을 담아낸다. 또한 다양한 감각의 경험을 끌어내어 지금 이곳(전시장)에서 끝없이 지각하고 반응하는 나 자신의 현존을 확인시킨다. 시각을 비롯해 청각, 촉각 그리고 경계를 나누기 모호한 다중적 감각을 끌어내는 순간들은 이내 연상과 추론의 순간으로 이어지고 창작과 감상의 근원적 문제를 되새기게 한다.

《사라졌다 나타나는》, 경기도 미술관, 2024, 전시 전경, 촬영=이문정

전시된 작품들은 각 작가의 영역을 명확히 보여주지만, 의미적 연결을 놓치지 않아 흐름을 매끄럽게 따라갈 수 있다. 마주한 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낯설게 반영하는 거울을 주된 매체로 선택한 강수빈은 반사된 이미지로만 자신을 볼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인지시키고 동일성과 비동일성, 익숙함과 낯섦을 오가는 주체의 상황을 제시한다. 또한 파편화된 허상을 제공하는 거울 이미지는 자신을 온전히 파악하고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를 끌어낸다. 거울 속에 담긴 전시장은 실체와 환영 모두에 관한 사유를 끌어내며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잠재성을 가진 비실재적인 내부 또는 외부 세계가 된다.
최지목은 시각적 경험과 표현의 기본 조건인 빛과 빛을 응시하는 자신에게 몰두하며 잔상을 그려낸다. 아롱거리며 눈에 맺히는 잔상의 관찰은 개인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그것의 재현 역시 기억에 의지해야 하기에 작가의 회화적 행위는 매우 주관적이고 창의적이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예술 창작의 본질을 고민하게 되는 동시대 미술가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실재하지 않지만, 분명 눈에 보이는 환영인 잔상을 그리는데 그 결과물이 추상화에 가깝다는 점은 작가가 회화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붙잡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레이코드, 지인은 시각과 청각을 넘어서는 다중 감각을 제공한다. 빨간빛은 눈을 자극하고 귀는 먹먹해진다. 떨림은 전신을 감싼다. 주파수가 낮아 울림 혹은 진동으로 전달되는 소리는 귀가 아닌 온몸으로 체험된다. 모든 감각은 아름답게 얽힌다. 현전하는 소리이다. 특정한 하나를 지목하기 어려우나 분명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는 감각의 종합을 가져온다.

《사라졌다 나타나는》, 경기도 미술관, 2024, 전시 전경, 촬영=이문정

반투명한 사각의 면을 접어가는 과정이 담긴 장서영의 <폴딩 오퍼시티(Folding Opacity)>(2023)는 영상 작업에도 유효한 환영과 평면의 관계를 상기시키고, 시각적 촉각성을 극대화한다. 접을수록 선명한 흰색에 가까워지지만, 암흑의 영역이 넓어지는 상황은 종착이거나 새로운 시작이며, 해답을 구함과 동시에 또다시 질문(난관)에 봉착하는 예술(삶)을 담는다. <서클(Circle)>(2017)에서는 무한 반복되는 영상 작품의 상영, 끝없이 이어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룬다. 관객이 전시장을 떠날 때, 존재가 소멸할 때가 “출구”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작품은 상영되고 시간은 계속된다. 권현빈의 작품에서처럼 시간 쌓기가 시도되기도 한다. 인간은 시간 속에 머물지만 그것을 초월하려는 희망과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축적된 시간의 증거인, 잉크가 침윤된 석회석 조각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는다. 무언가의 잔해, 발굴된 유적을 닮은 조각들은 시간 그 자체이다. 한편 기억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이혜인은 기억 속의 시공간과 존재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복잡하게 엉클어진 형상들과 중첩된 붓질은 작가의 내면에서 재구성되는 기억, 질서정연하지만 무질서하기도 한 기억의 형상화이다. 사실 기억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의 원천 역시 기억이다. 또한 기억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늘 현재이고, 떠올릴 때마다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이 쌓여 현재의 내가 형성된다.
전시를 반추하니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사선을 보여주는 벽들과 그에 어우러지며 구성된 공간이 떠오른다. 시각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약동을 세련되게 암시하는 “가능성과 동시성”의 시공간에서 끝없이 발화하는 과정 중에 있는 “별”과 같은 작가(작품)들이 반짝인다.